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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 전체 기사 327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만두
    만두

    절대 믿지 않겠지만, 삼십 몇 년 전에 소개팅하던 내 친구들이 선택한 메뉴 중에는 물만두도 있었다. 흐늘흐늘한 날개를 가진, 뜨뜻미지근한 물에 담겨 나와서 젓가락으로 집노라면 미끄덩하고 도로 빠뜨리기 일쑤이던 물만두. 그걸 소개팅 메뉴로 먹었다는 건 이해가 안되지만, 사실이다. 분식집이 소개팅 장소로 이용되던 때였다. 변두리 분식집에서도 거의 갖추고 있던 메뉴인지라 누구나 물만두를 먹었다. 그때 분식집은 나름 격과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알루미늄 찜기에 천을 깔고 그 위에 아홉 개씩 올라 있던 통만두, 문자 그대로 철판에 지져서 구운 군만두에 고기만두와 찐빵도 있었다. 통만두와 찐만두는 원래는 다른 만두였는지 모르겠지만 분식집에서 시키면 같은 것이었다. 찜기째 서빙하면 통만두였다. 반죽을 발효시켜서 둥글게 빚는(중국식으로 말하면 파오츠(包子)) 만두는 고기만두라고 불렀다. 부푼 반죽을 떼어 재빨리 소를 넣고 끝을 예쁘게 오므리던 기술자들의 솜씨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가게 ...

    2016.06.09 21:05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여수의 41번집
    여수의 41번집

    여수를 다녀왔다. 몇 해 동안 여수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엑스포의 영향이다. 서울에서 3시간이 채 안 걸리는 초고속열차가 등장했다. 이름도 여수엑스포역이다. 지방의 가게 간판은 지역 규모와 달리 초대형인 경우가 많은데, 이 도시는 이른바 도시미관에 맞춰 작고 아담한 모양을 자랑한다. 엑스포 말고 여수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버스커버스커 때문이라는 농담도 있다. ‘여수 밤바다’는 아예 여수 관광정책에 반영된 듯하다. 어찌 되었든 여수의 맛은 여전하다. 몇 가지 달라진 풍경도 있다. 명물인 연등천 포장마차촌은 위세가 많이 줄었다. 이곳의 포장마차는 1부터 40 몇까지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본디 ‘못잊어’ ‘한잔집’ 같은 이름이었다고 한다. 포장마차는 원래 불법이다. 하나 시민이 사랑하는 명물이 되다보니 없앨 수도 없었다. 그래서 기존 상호를 지우고 번호를 매겼다. 숫자는 운치가 없으나 관리가 쉽다. 기존에 번호를 받은 포장마차는 영업을 하되, 새로 진입하는 것은 막겠다는 시의 묘...

    2016.06.02 21:02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진짜 원조
    진짜 원조

    요즘 오래된 식당이 유행이다. 그 때문인지 생긴 지 몇 년밖에 안된 프랜차이즈 식당이 수십 년 역사라고 광고하고 있다. 영어로 ‘since 19xx년’ 하는 식으로 역사를 홍보하는 곳도 늘었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대중에게 검증받았다는 뜻이다. 이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았으니, 갸륵한 일이고도 남는다. 그것도 모자라 ‘원조(元祖)’ 논쟁도 벌어진다. 오래된 식당에서 일하던 사람이 독립해 근처에 개업하면서 처음부터 ‘원조’라고 붙인다. 또 그 옆에 새로운 집이 생기고 역시 같은 문자를 쓴다. 그러니 진짜 원조집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결국 ‘시조(始祖)’라고 다른 문자를 고른다. 원조나 시조나 같은 뜻인데도 말이다. 그래도 언중이 원조라는 말에 익숙하니, 아예 ‘원조의 원조’라는 낱말로 튀어나왔다. 그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의심한다. 저거 진짜일까. 그러다가 한 집은 ‘태조(太祖)’라고 쓴다. 한 왕조의 첫 임금을 칭하던 말이 식당가로 흘러든 것이다. 진짜 원조도 아니...

    2016.05.26 20:52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기사식당
    기사식당

    맛있는 집을 찾아내는 몇 가지 요령 중에 ‘기사식당’을 가라는 내용도 있다. 입맛 까다로운 운전기사들이 좋아하는 곳이니, 대개 먹을 만하다는 평을 듣는다는 것이다. 실제 그런 면이 있다. 운전기사들이란 기동성이 있으니, 일부러 맛있는 곳을 찾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기사식당은 80년대 호황기에 크게 번성하기 시작한 서울의 대표적인 업종이다. 기사식당이라고 따로 법적 분류를 하지는 않지만,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차를 세울 공간, 빠른 서비스, 혼자서 시켜도 부담 없으며 단백질과 채소, 곡물이 적당히 어우러진 영양을 담보하고 있다. 여기에 한때 기사식당에서만 이루어지는 독보적인 서비스가 있었다. 동전 바꿔주기, 장갑 같은 소모품 판매, 세차 서비스, 커피와 요구르트 서비스였다. 누룽지맛 사탕이나 박하사탕을 공짜로 주는 것도 기사식당에서 처음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중 몇 가지는 없어졌다. 먼저 동전 교환이다. 소액도 카드로 지불하는 풍조가 퍼지면서 동전이 거의 필요 없게 됐...

    2016.05.19 20:59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감잣국의 전설
    감잣국의 전설

    노동자의 음식이라면, 흔히 국밥이다. 빨리 먹고 얼른 일할 수 있는 음식이다. 해장국도 국밥의 하나다. 고깃점 대신 뼈로 끓였다. 소뼈와 선지, 우거지를 넣은 해장국이 서울과 인천에서 유행했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이런 음식이 인기를 끌었다. 인천은 개항도시였고, 서울과 함께 전국에 두 개밖에 없는 미두취인소(쌀 선물거래소)가 사람과 돈을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돈과 물자가 몰리면 노동자들도 많아진다. 허룩한 속을 한 그릇의 뚝배기로 달랬다. 소 말고 돼지뼈로도 해장국을 끓였다. 흔히 감자탕이라고 부른다. 소뼈 해장국과 달리 별다른 역사적 기록이 없다. 옛 신문을 봐도 감자탕은 일제강점기까지 감자로 만든 설탕(감저당·甘藷糖·전분에서 당을 추출해낸 것)을 뜻했다. 1970년대 초반에야 감자탕이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흔하지 않다. 이유가 있다. 본디 감자탕은 감잣국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감잣국은 1960년대 기록에 이미 나오기 시작한다. 그때는 다 그렇게 불렀던 까닭이다. 감잣국은...

    2016.05.12 21:02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밴댕이 골목의 역사
    밴댕이 골목의 역사

    경인선 전철의 끝은 인천역이다. 그런데도 인천 토박이들은 ‘하인천역’이라고 부른다. 바다에 가까운 제일 끝 역이기도 했고, 상인천역이 과거에 따로 있었기 때문에 구별해서 불렀던 것 같다. 인천역을 끝으로 해서 이어지는 인천의 ‘원도심’은 개항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본디 한적한 어촌이었던 이 지역이 개항의 물결을 타고 격랑의 세월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일본인들은 항구로 조선의 쌀을 일본으로 날랐고, 박래품(舶來品)으로 상징되던 서구의 새로운 물량이 쏟아져 들어왔다. 임오군란의 분노한 군인들을 피해 일본 군사고문단이 도망친 항구도 이곳이고, 청의 장수 오장경이 수천의 병사를 이끌고 진입한 곳도 여기다. 개항은 조선의 운명을 뒤바꿔놓았고, 여기 역사가 새겨졌다.해방 후 인천은 수도권의 제일 중요한 항구로 성장했다. 부두에는 하역 노동자들로 붐볐다. 이들은 고단한 하루를 한잔의 술로 씻어냈다. 공업지대가 생겨나면서 인천은 노동자의 도시가 됐다. 굴뚝이 치솟았고, 사내들이 술과 음...

    2016.05.05 20:52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명란과 식민의 역사
    명란과 식민의 역사

    어린 시절에 내가 살던 서울 한 동네에서는 부잣집 밥상의 몇 가지 기준이 있었다. 우선 밥이다. 하얀 쌀밥, ‘아키바레(추청)’ 품종의 일반미로 지은 윤기 도는 밥이 나왔다. 통일이나 유신벼(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름도 대단하다 싶다) 밥을 먹는 집이 대다수였으니, 아키바레 밥은 부잣집의 필수요소였다. 다음으로는 김이다. 윤기 흐르는 김구이나 생김이 겨울에 늘 밥상에 놓이면 역시 부자의 상징이었다. 소고기 장조림도 그랬다. 한번은 충격적인 음식을 먹었다. 비릿하면서 달콤하고 짭짤한, 발그레한 어란이었다. 바로 명란. 지금도 비싸지만 당시도 부자가 아니면 밥상에 자주 올릴 수 없었다. 뜨거운 일반미 밥 한 술에 명란을 척 올려서 입에 넣었을 때의 감촉을 잊을 수 없다. 부잣집 아들 내 친구는 아예 명란을 잘게 자른 까만 김과 함께 뜨거운 밥에 썩썩 비벼서 먹었다. 천국의 맛이었으리라.노량진수산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간혹 명란을 산다. 입맛 없을 때 물 말아 곁들여도 좋고, 옛 추억...

    2016.04.28 21: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봄나물
    봄나물

    강원도 평창 가리왕산에 다녀왔다. 어떤 때는 5월에도 눈이 온다는 깊은 산중인데, 훈훈한 바람이 불었다. 올림픽 스키 슬로프를 만든다고 대규모 공사가 벌어져 앓고 있는 산이다. 안 그래도 오가는 고속도로를 넓히는지 중간 중간 막혔다. 요즘은 화전(火田)이 금지되어 있지만 산에도 농민이 있다. 특용작물 중심의 농사를 짓는다. 아루농장이라는 젊은 농부의 밭이 거기 있었다. 밭이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적절치 않다. 산비탈에 그저 씨 뿌리고 퇴비나 주는 게 전부다. 화학비료를 주면 오히려 뿌리가 썩는 나물도 있어서 자연농법 중심으로 많이 기른다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희한한 산나물도 이 비탈에서 재배된다. 능개승마, 지장가리(풀솜대) 같은 것들이다. 어린 싹을 먹기에는 지금이 딱 좋은 철이라고 한다. 명이나물도 기른다. 춘궁기에 사람들 명을 이어준다고 하여 명이라고 부른단다. 원래 산에 구황식물이 꽤 많은데, 널리 알려진 곤드레나물과 지장가리, 명이는 질량이 꽤 있어서 배가 ...

    2016.04.21 20:41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해썹’, 누구 좋으라고
    ‘해썹’, 누구 좋으라고

    예전 정권에서 이른바 여론 환기용으로 많이 쓰는 수법이 바로 불량식품 때려잡기였다. 학교 앞 떡볶이 좌판과 심야 포장마차들이 단속반에 걸려 벌금 맞고 ‘구루마’를 압수당하기 일쑤였다. 농약 콩나물이니 석회 두부니 하는 언론의 과장 때문에 군소 업체가 줄줄이 문을 닫았다. 먹거리 안전에 대한 시민의 불안 심리를 절묘하게 이용해서 민심을 조절하곤 했다. 그것은 요 근래 정권에서도 다르지 않다. 대표적 불량식품 추방 대상에 떡볶이를 넣고는, 반대로 한식세계화 첨병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막대한 지원금까지 줘가면서 말이다.해썹(HACCP)이 말썽이다. 관계자 말고는 잘 모르던 이 말이 떡볶이 좌판 아줌마에게는 생존의 언어가 될 모양이다. 정부에서 2017년까지 순대 떡볶이 같은 길거리 음식도 해썹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식품위생법 입법예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해썹 인증이란 식품 생산부터 제조, 소비까지 발생할 수 있는 위해 요소를 관리하는 위생 관리 체계다. 늘 불안하던 차에 잘...

    2016.04.14 22:27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설탕 원죄론, 방향을 잘못 잡았다
    설탕 원죄론, 방향을 잘못 잡았다

    당이 시끄럽다. 선거철 정당(黨)은 아니고, 당(糖)이다. 우리가 음식을 너무 달게 먹고 있으며, 당이 건강에 안 좋다는 문제 제기다. 그러나 당은 우리 생명의 기본 조건이다. 당이 없으면 죽는다. 설탕 안 먹으면 죽는다고? 물론 설탕도 당이지만, 여기서는 세포의 에너지원인 당을 말한다. 같은 당이라도 어떻게 섭취하는가를 놓고 봐야한다. 청량음료와 가공식품, 과다한 곡류 섭취 같은 당이 문제다. 심지어 과일도 많이 섭취하면 당을 ‘올린’다. 중년여성의 지방간은 주요인이 과일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당 문제는 유명한 텔레비전 요리사 백종원씨 때문에 촉발됐다. 과다한 설탕 섭취에 대한 지적은 늘 있어왔다. 그가 프로그램에서 ‘설탕 투하’를 즐기면서 반작용으로 그 위험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셈이다. 당 문제는 단순히 설탕 사용량 문제만은 아니다. 백미 중심의 식사, 고과당이 들어가는 음료(주스도 마찬가지다)도 피해갈 수 없다.설탕은 이른바 ‘삼백’의 위험에...

    2016.04.0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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