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 전체 기사 327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추운 겨울의 추억
    추운 겨울의 추억

    아마 사십여년 전, 이즈음의 일이었을 것이다. 김치 광에 부지런히 드나들던 때가. 혹한이 절정에 달하고 반찬거리가 귀해지면 김치가 귀물이었다. 어머니는 그저 김치로 한겨울의 막막한 밥상을 보냈을 것이다. 하우스도 거의 없던 때라 푸성귀를 시장에서 구경하기 어려웠다. 그저 어머니는 김치를 믿었다. 아래쪽 경상도에 갱시기죽이라고 부르는 김치죽은 자주 먹었다. 콩나물이 있으면 넣고 없으면 그만이었다. 멸치나 몇 마리 우려서 식은 밥으로 한 끼를 차렸다. 그 맵고 시큼하며 뜨거운 맛! 요즘처럼 김치냉장고로 익힘을 조절하는 시대에서는 결코 맛보기 어려운 시절의 맛! 하기야 누가 요즘 이런 죽을 좋아하기나 할는지. ‘숭태기’라고 부르던 배추 꽁지가 걸리면 나는 더 좋아했는데, 오래 씹으면 쌉쌀하고 진한 맛이 났기 때문이었다. 가게에서 밥을 해먹는데, 설거지통에 이 꽁지가 버려져 있었다. 젊은 세대는 쓰임새를 모르는 부위가 되었다. 이즈음에는 동치미가 딱 익는 때이기도 했다. 무짠지도 마...

    2016.01.21 20:44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혀를 호강시키는 매생이국
    혀를 호강시키는 매생이국

    예전에 전라도 출장을 가면 어떤 흥분에 들뜨게 마련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거짓말 좀 보태서 ‘홍어가 백반집 반찬으로 나온다’고 믿었다. 분식집에 가도 젓갈 세 개에 김치 세 종류가 기본이라고 했으니까. 하다못해 대학가 앞에서 파는 값싼 백반도 전라도는 다르다고 했다. 광주의 조선대 앞 골목에 늘어서 있던 백반집들은 여전한지 모르겠다.한 집에서 매생이국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곱게 빗은 처녀 머릿결처럼 곱고, 입에 넣으면 올이 가늘게 풀려서 혀를 간질이던 묘한 질감이 희한하게 여겨졌다. 파랫국이나 김국은 몰라도 매생이라니. 그때 밥 퍼주던 ‘아짐’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뜨거우니 조심하라고. 매생이국은 김이 나지 않아 미운 사위 오면 주는 국이라며 멋모르고 숟가락을 푹 넣었다가는 입천장이 홀랑 벗겨진다고. 그러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 웃으셨다. 실제로 미운 사위에게 주던 기억이 나셨던 걸까. 이후 전라도 해안지방을 돌아다닐 때 한겨울 ...

    2016.01.14 20:3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주방 연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주방 연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예전에 프랑스 요리사들의 평균 수명은 30세를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의 일이다. 주방이 주로 지하에 있었는데, 배기가스를 내보내는 것이 고작 굴뚝뿐이었으니까. 역풍이라도 불면 주방은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굴뚝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대기 상태에 좌우되니까. 우리 부엌도 마찬가지였다. 나무와 검불,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때면서 살강으로 그 연기가 빠져나가길 기대하는 게 고작이었다. 지방의 몇몇 식당에 가보니, 각종 고기를 배출 팬도 없는 주방에서 굽고 있었다. 그 연기를 ‘걸러내는’ 장치가 요리노동자의 폐였던 것이다.주방은 산업보건의 악조건에 속한다. 한여름 배 만들고 쇠 만드는 중공업 현장만큼은 아니겠지만, 주방도 만만치 않다. 여담인데, 조춘만씨라는 사진가가 있다. 중공업 현장에서 배관과 용접 일로 잔뼈가 굵은 분이다. 그의 회고기를 읽다보니, 1970년대에는 월간 700시간 작업도 예사였다고 한다. ‘야리끼리’라고 해서, 도급식 작업이 보통이던 시절의...

    2016.01.07 20:49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이름만 돼지갈비
    이름만 돼지갈비

    어릴 때 하굣길이 멀고도 길었지만 무엇보다 배가 고파 힘들었다. 마침 그 중간쯤 되는 골목에 돼지갈빗집이 몇 개 있어서 회가 동하게 했다. 이른 오후에도 갈비 굽는 사람들이 꽤 있어 뿌연 연기를 연방 길에 뿜어냈다. 그 시절에는 삼겹살보다 갈비였다. 주로 연탄을 때서 구웠다. 한번은 막 문을 연 갈빗집에서 대낮에 고기를 구워 먹고는 구토를 하고 쓰러진 적도 있었다. 열 개가 넘는 드럼통 탁자에 연탄을 막 피운 터라, 연탄가스가 가게 안에 가득 찼던 까닭이었다. 그런 해프닝도 있었지만 지금도 연탄불에 고기 굽는 가게는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불땀 좋게 불문을 열어두고 석쇠가 빨갛게 달아오르면, 간장 먹은 돼지갈비를 척척 올려 굽는 재미! 천하일미가 달리 없다.돼지갈비 요리법은 세계적으로 다양한데, 한국식이 아마도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양념 때문이다. 간장은 이미 그 자체로 강력한 조미료이니 고기 맛을 두 배로 돋운다. 여기에다 설탕까지 넣어서 굽는 까닭에 혀가 녹도록 맛이 ...

    2015.12.24 20:45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바다에 대한 책임
    바다에 대한 책임

    예전에 본 충격적인 장면 하나. 깊은 밤에 마포 어딘가를 걷고 있는데 길가 하수구에 무언가를 부어서 버리는 사람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검은 콜타르 같은 찐득한 액체였다. 바로 옆에는 닭튀김집이 있었다. 그가 황급히 사라졌고, 시민정신 없는 나는 구태여 물어볼 여지가 없었지만, 아마도 기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바보처럼 ‘저 기름을 정화하는 데 필요한 깨끗한 물의 양은 서울운동장을 채워도 모자랄 거야’ 이런 계산을 하고 있었다. 요새 폐유랄까, 쓰고난 식용유는 거둬가는 분들이 있어서 알뜰하게 처리된다. 거둬들인 기름이 쓸모가 있기 때문에 기름 거두는 일도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그분은 한 말에 얼마씩 돈도 주신다. 폐유를 처리해 주시는데 돈까지 주니 황송할 뿐이다. 재생과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과 기술이 높아지면서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튀김집에서 몰래 기름 버릴 일이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끔찍한 뉴스가 나온다. 우리는 수세식 화...

    2015.12.17 21:08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사람맛’ 나는 종로 뒷골목
    ‘사람맛’ 나는 종로 뒷골목

    피맛골이 사라진 지 꽤 오래다. 거대하고 멋없는 건물이 그 자리에 들어섰고, 서울시민의 추억도 묻혔다. 언젠가 무지막지한 시장이 또 뽑혀서 뚝딱 가짜 피맛골을 만들어낼지 모르겠지만, 우리 마음속의 피맛골은 끝난 것이다. 피맛골 끄트머리에 있는 육의전박물관은 유리판 아래 유물로 살아남았으나, 피맛골은 어디에서도 되찾을 수 없게 완전히 파괴되었다. 사실 피맛골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밀린 전설의 단성사와 피카디리를 바라보는 건 중년 이상의 서울시민에게는 아련한 통증이다. 우미관은 또 어떻고. YMCA 뒤편의 학사주점들은 언젠가 닥칠 개발의 삽날을 어떻게 견디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갈비에 밀주 같은 막걸리를 마시던 ‘와사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데, 박제가 된 추억이라도 건지러 가는 이들이 있는지. 다행스럽게도 종로 거리가 생명력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니다. 피맛골 건너편 동대문 쪽으로 향하는 관철동과 관수동 라인은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았다. 종로3가에서 종로...

    2015.12.10 20:48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굴과 소주 한잔
    굴과 소주 한잔

    어김없이 철은 돌아온다. 우리는 시장의 음식으로 알아챈다. 굴이 흥성하구나, 눈 오는 밤 굴 회에 찬 소주 한잔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음식은 기억의 매개다. 냄새와 시각적 이미지는 순식간에 사람을 순간 이동시켜버린다. 굴을 보니, 온갖 이미지가 떠오른다. 친구와 함께 달렸던 통영의 해안도로, 박신장(굴 까는 작업장)의 전쟁터 같은 노동, 무엇보다 천북굴이 생각난다. 버려진 양식굴이 스스로 새끼를 키우고 대를 이어 그 죽은 껍질이 하나의 거대한 인공섬을 이룬 천북굴의 독특한 모양 말이다. 대개는 천북의 천막 굴집에서 굴을 구워 먹지만, 그 녀석들의 상당수가 앞바다에 있는 그 인공섬이다. 굴이 하나의 ‘나라’를 이룬, 인간은 기어이 거기 가서 굴을 캐온다. 양식 굴이었지만, 이제는 자연산이 된 운명의 굴밭. 어디나 굴 작업장은 고단한 노동의 현장이다. 알뜰한 낭만 따위는 없다. 앞서 박신장에서는 말을 잘 못 붙인다. 많이 깔수록 돈이 붙는 도급형 노동이기 때문이다. 손놀림이 ...

    2015.12.03 21:05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요리사와 예능
    요리사와 예능

    리모컨을 돌리면 요리사이고, 다시 돌려도 식당이라고 한다. 갑자기 왜 이렇게 우리가 요리에 지대한 국민적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걸 두고 요리의 시대라고들 한다.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모든 고상한 취미에 질려서 찾아낸 대중의 호사라고도 하고, 먹는 일의 귀중함을 뜻한다고도 한다. 취직도 안되고, 그나마 다니던 직장도 잘렸으니 어려운 고민하지 말고 집에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음식이나 보면서 다 잊으라는 처방 같기도 하다. 유행인 것도 같고, 모종의 정치적 암시처럼도 여겨진다.하루 세끼는 세상사의 모든 진리를 넘어서는 실체적 존재다. 높은 곳에 앉아 호령하는 권력자도 결국은 세끼의 엄중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고, 그 정언은 먹어야 살고, 먹는 일을 그만두게 될 때 깨끗하게 사라지게 되는 인간사의 명쾌한 결론을 압축한다. 그래서 요즘처럼 음식과 요리에 대한 높은 관심이 예사롭지 않다.텔레비전을 틀면 요리사가 나온다. ‘쿡방’(요리...

    2015.11.26 20:44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망해가는 청년창업
    망해가는 청년창업

    불황 중에도 이른바 홍대 연남동 상권은 성업하고 있다. 원래 장사가 잘 되던 곳으로 꼽히는 홍대앞 상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철길을 폐쇄하고 공원이 생기면서 권역이 넓어진 것이다. 나들이 손님과 청소년들이 몰리면서 이쪽에도 큰바람이 불었다. 자고 일어나면 권리금이 두 배씩 오르고, 임대료가 뛰었다. 골목 구석구석도 이런 바람을 업고 상권이 개발되고 있다. 몇 년 전에 아무개 인터넷 사이트에 등재되었던 홍대앞 상권의 먹거리 집들이 대략 500여 개였는데, 이제는 다섯 배 내지 여섯 배 정도로 늘어난 것이다(열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상권이 커지고 있으니 모두 장사가 잘 되는 까닭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도 못하다. 나는 이곳을 가끔 돌아보면서 어떤 막연한 두려움이 일었다. 그 두려움의 원인을 하나씩 생각해보았다. 우선은 자본과 모리배들이 가난한 세입자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의심이었다. 놀랍게도, 이 동네는 바닥 권리금이란 것이 활개를 친다. ...

    2015.11.19 20:3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포장마차
    포장마차

    술집에서 완전 금연이 된 이후 애연가들의 묘책(?)이 생겼다. 하나는 편의점이다. 가게 밖에 놓인 파라솔에서 맥주 한 캔에 한 대 피워 무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술과 담배란 찰떡궁합이다. 법이 바뀌어 피우고 싶을 때마다 밖에 나가 옹색하게 흡연하던 애연가들에게는 묘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져서 이도 쉽지 않다. 그래서 찾아낸 게 포장마차다. 포장마차는 합법적인 가게가 아니다보니 흡연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술 마시면서 한 대 피우는 재미를 위해 일부러 포장마차를 찾는 것이다. 언젠가 종로쪽을 걷는데, 곰장어 굽는 연기와 함께 자욱한 담배연기가 풍겼다. 아직도 포장마차거리가 남아 있었다. 특이한 건, 안주 그림과 함께 중국어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는 점이다. 서울의 낭만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에게 포장마차가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한때 서울은 불법 포장마차가 번성하면서 크게 사회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권리금이 억대를 호가하고, 조폭들까지 이권다툼에 끼어들...

    2015.11.12 20:44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