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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해조를 다시 본다
    해조를 다시 본다

    바다는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풍족히 준다. 한국은 이탈리아, 중국, 일본 등과 함께 세계적인 수산물 소비국이다. 양식도 활발해서 횟집은 양식어종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양식은 이중 생산구조를 보일 정도로 대단하다. 전복이 엄청난 희귀어물에서 대중적인 물건이 된 건 양식 덕인데, 역시 양식한 미역, 다시마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해양수산물은 과거 단백질 공급처에서 미각의 산지가 되었다. 제철음식 하면 시민 누구나 수산물을 떠올리게 된 것도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심지어 방어철에는 홍대앞 횟집에 젊은이들이 길게 줄을 서는 특별한 현상이 벌어진다(방어는 10년 전만 해도 서울사람들은 잘 모르는 어종이었고 값도 쌌다). 대방어, 대방어 하는 말이 11월이 되면 뉴스와 SNS의 키워가 될 정도다. 민어는 또 어떤가. 얼마나 여름 유행을 타는지, 유명 산지는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서 손님을 토해낸다. 전, 탕, 부레와 껍질, 회로 이루어진 세트메뉴를 기계적으로 먹고 금세 ...

    2022.08.26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마늘에 진심인 나라
    마늘에 진심인 나라

    옛날에 팀스피릿이라는 한·미 합동훈련이 있었다. 남한강 지류의 어느 지역에 부대가 도착한 것은 깊은 밤이었다. 며칠간 못 자고 걸으며 피곤했던 부대는 얼른 텐트를 치고 잠이 들었다. 아침 녘에 시끄러운 다툼 소리가 나서 밖을 내다보았다. 늙은 농부가 우리 부대의 책임 있는 부사관에게 따지고 있었다. 봄마다 군대 훈련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밭을 뭉개놓으면 어떡하느냐, 훈련도 좋지만 농사는 지어야 너희들도 반찬 해먹을 거 아니냐, 농사 다 망쳤으니 어떡할 거냐. 보니, 마늘밭이라고 했다. 야밤에 들이닥친 부대로서는 공터가 있길래 얼른 지휘용 텐트를 쳐버린 것이었다. 부사관이란 분들은, 그 시절 농촌 출신이 많아서 척하면 사정을 다 알고 있으니 더 미안한 일이었다. 부사관이 고개를 연신 숙이며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게 어린 병사였던 내 눈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마늘은 농촌에서 돈 되고, 저장하기도 좋고 해서 많이 심어왔다. 나는 요리사이니 시장에서 마늘 시가를 늘 가...

    2022.07.29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장마철, 도시락의 아련한 기억
    장마철, 도시락의 아련한 기억

    장마가 올해는 제법 오는 모양이다. 장마전선이라는 말에 귀를 곤두세우고 뉴스를 듣던 때가 있었다. 실내 생활이 많은 요즘과 달리 과거는 바깥 생활이 흔했다. 날씨는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바깥 채비가 큰일이었다. 도보 생활자들이 거의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살 부러진 대나무 비닐우산, 우산을 수리하던 동네 가게와 작은 개천이 범람하던 장마철의 기억. 우산을 잃어버리면 세상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우산 살 돈이 없어 비를 쫄딱 맞고 귀가하던 사연도 다들 있으리라. 기분이 그런지 몰라도 그 시절은 장마철도 참 길었다. 허름한 집 벽에 곰팡이가 피어야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시작됐다. 장마철이 되고 보니, 옛날 엄마들은 뭘 식구들에게 먹였을까 싶다. 호박 칼국수에 된장찌개, 미역 넣은 오이냉국, 그것도 없으면 마른멸치에 고추장과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 보리밥이나 통일쌀 유신쌀밥을 넘겼다. 강된장에 호박잎 쌈도 먹었던 것 같다. 그때 아이들은 매운 풋고추를 척척 먹었다. 가릴 처지가 아...

    2022.07.01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조선 칼은 다 어디 갔을까
    조선 칼은 다 어디 갔을까

    주방장님은 무슨 칼을 쓰세요? 요리사인 나는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부엌칼 씁니다. 상대가 빵 터진다. 농담하는 줄 안다. 부엌칼이란 말은 뭔가 아마추어 냄새가 나서 그런 듯하다. 전문 주방장이 부엌칼이라니. 부엌칼이란 말은 전쟁시대의 용어다. 적을 베는 무기가 아니라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칼이란 뜻이다.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철마다 파출소에 이런 계도문(?)이 붙어 있었다. “총포도검류 자진신고기간 ○○○○년 ○월 ○일부터….”도검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존재다. 같은 칼이라도 보는 시각에 따라 무기가 되기도, 부엌칼이 될 수도 있다. 이른바 ‘사시미칼’이 그렇다. 듣기로, 조직적인 깡패들이 무기를 갖추긴 해야 하는데, 일본도 같은 장검을 갖고 있으면 총포류단속법에 걸렸다. 그래서 사시미칼, 즉 회칼을 준비했다고 한다. 칼은 그것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 하는 존재의 상황이 물질의 성격을 바꾸기도 한다. 일식집 부엌에 놓여 있는 회칼은 아무리 칼같이 ...

    2022.06.03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우리 먹거리에 ‘팜유·식용유 경보’
    우리 먹거리에 ‘팜유·식용유 경보’

    얼마 전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잠정 중단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팜유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아 대중에게 큰 이슈가 된 뉴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언론은 이 사태의 파장을 분석하기 바빴다. 우선 물가 상승이다. 과자며 라면이며 대개 팜유를 쓴다. 심지어 아이스크림에도 팜유를 쓰는 경우가 흔하다. 1989년 삼양라면 우지 파동을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공업용 소기름을 썼다고 해서 식품기업이 기소된 사건인데 결국 무죄가 났다. 어떻게 보면 요즘 문제가 되는 ‘검·언 유착’의 한 예이기도 하다. 언론의 받아쓰기 관행, 검찰의 무리한 기소, 대중의 무지 같은 게 한데 어우러진 우리 사회의 치부를 보여주는 입맛 쓴 소극이었다. 어찌 되었든, 저 사건 당시만 해도 소기름으로 라면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 후, 튀기는 각종 과자는 식물성으로 다 갈아타게 됐다. 이미 동물성 기름은 나쁘다는 생각을 하게 된 대중을 설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자 시장에서 압도적인 스낵류는 유탕처리 식...

    2022.05.06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명이의 맛 …그것 참 알싸하네
    명이의 맛 …그것 참 알싸하네

    초근목피는 어느 시대나 어느 민족이나 먹었던 음식이다. 초근목피 중의 하나가 바로 나물이다. 탄수화물이나 고기는 늘 부족했고 기근은 사람들을 들판으로 내몰았다. 봄나물의 맛이야 좋은 것이지만, 먹을 게 없어 들판을 헤매던 때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씁쓸한 일이기도 하다. 고기와 감자, 빵만 먹고 살았을 것 같은 유럽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나물을 먹는다. 푹 삶아 간을 하고 기름을 뿌려 요리에 곁들인다. 한국처럼 야생 나물을 굳이 먹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만 다르다. 물론 버섯도 나물로 치면 그렇지도 않다. 야생 버섯은 최고로 비싼 재료니까. 나물은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어릴 때는 먹을 수 있는 나물이 많지만 웃자라면 ‘풀’이 된다. 식량과 잡초는 시간이 나눈다. 기근이든 미각이든 산에 가서 어린 싹을 캐는 일은 결국 인간의 맛과 생명을 구하는 두 가지 뜻이 있었다. 나물이란 날로 먹기 어려워도 삶아서 먹으면 양념이 잘되고 연해서 소화도 ...

    2022.04.08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봄의 맛이 오는 소리
    봄의 맛이 오는 소리

    한때 바지락보다 싸고 흔해서 서해안에서 칼국수를 시키면 동죽 반 국수 반이었다. 어인 일인지 관리가 잘되는 바지락은 여전한데 동죽은 쉬이 보이지 않는다. 흔히 제철이니 뭐니 하는데 그건 곧 사람의 몸은 우주의 운행을 거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입이 깔깔하고 입맛 당기는 게 있으면 대개 제철 음식에 대한 갈망이다. 묘한 일이다. 영양 과잉의 시대라지만, 봄에는 봄을 먹어야 한다. 동죽이며 조개가 한껏 맛이 오른다. 조갯국 한 사발로 겨울을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물 좋은 조개는 역시 산지에 가야 한다. 서해안이 제격일 텐데, 그 동네 재래시장의 밥집은 흔하게 손님이 장봐온 재료로도 요리를 해주곤 한다. 물론 약간의 협상이 필요하다. 조개를 한 바가지 사서 가보라. 영양을 듬뿍 안은 조개는 끓여내면 진액 같은 걸 뿜어낸다. 독을 싹 없애줄 것 같은 기대감을 준다. 무엇보다 그 진액은 감칠맛이 응축되어 있다. 그 서해안의 명물이 봄 실치다. 흔히 뱅어포를 만드는 것인데, 실은 ...

    2022.03.11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내 입에 따스운 밥 한 술이 그냥 들어오는 게 아니다
    내 입에 따스운 밥 한 술이 그냥 들어오는 게 아니다

    선거철이라 묻히는 듯한데, 요즘 장바구니 물가가 그야말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원래 시중 물가는 단기적으로는 채소가 큰 영향을 끼친다. 혹한과 장마가 대표적이다. 상추가 금추가 되는 건 대개 영하 십몇 도씩 내려가는 날씨에 상추가 얼거나 시설 난방비로 생산비가 치솟을 때다. 폭설이 와서 시설이 주저앉아도 마찬가지다. 장마야 말할 것도 없다. 값이 크게 오른 것 중에는 딸기가 체감으로는 가장 커 보인다. 일조량이 부족했다고 한다. 한창 딸기 모종을 옮겨 심을 즈음에 미세먼지 등으로 시설로 지어놓은 하우스가 충분한 빛을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라는 말이다. 올해는 주머닛돈도 궁해 딸기 맛을 딱 한 번 보았다. 기가 막힐 일이다. 장 보다가 딸기를 집었다 놨다 한다. 딸기 제철은 농사 시스템 변화로 1~2월로 당겨졌다. 2월 하반기에는 값이 떨어지려나. 어쨌든 코로나19로 소비는 위축되는 듯한데, 오히려 물가는 오르는 이유는 뭘까. 툭하면 끌어다 야단치는 ‘중간상인의 농간’ 같은 걸까...

    2022.02.11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소멸도시…다 굶어죽을 것 같다
    소멸도시…다 굶어죽을 것 같다

    “거 메뉴가 이제 제대로네.” 보행보조기를 밀며 식당에 들어선 김정숙씨(85)였다. 그이는 이 마을의 최연소자다. 내가 “정말 최연소이시냐”고 묻자 김씨는 혀를 찼다. “우리 동네 청년회장이 여든일곱 살인가 그럴거우.”김씨가 들어선 이 마을 유일한 식당인 ‘노포식당’은 메뉴를 최근 바꾸었다. 죽이 세 개 추가되었고, 반찬 깔아주는 백반은 없앴다. 반찬 만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대여섯 개 있던 식당이 거의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통폐합되었다. 짜장면과 짬뽕, 우동과 돈가스, 비빔밥과 삼겹살을 같이 판다. 3국식당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동네 노인들이 농담을 던졌다. 여기에 죽까지 있으니 메뉴는 완벽해졌다. 필자도 밥을 시켰다. 주문한 음식이 테이블까지 오는 데 한참 걸렸다. 구순 노인이 서빙을 본다. 서빙용 손수레에는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고 써 있었다. 가게에 손님들이 꽤 들어찼다. 대부분 이 지역 공무원이라고 한다. 마을이며 도시가 노쇠해지면 오히려 ...

    2022.01.14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남자들이 요리한다
    남자들이 요리한다

    코로나 시대가 가져다준 몇 가지 흥미로운 변화들이 있다. 집에서 더 많이 요리하고 배달이 많아진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요새는 이른바 백신쿡이라는 게 있다. 백신을 맞고 며칠 쉬는 동안 요리 해먹을 궁리, 만든 요리에 대한 감상과 자랑(?) 또는 실패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많이 올라온다. 과거에 ‘아빠는 요리사’라는 식의 가족 행복 취향의 분위기가 사회에 퍼져나갔다. 20여년 전쯤의 일이다. 요리교실에 아빠들이 등록하고 배우는 일이 뉴스가 되어 보도되곤 했다. 하지만 보도가 좀 앞서나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사회는 늘 의제를 만들고 다함께 영차영차 밀고 가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의 요리도 그랬다. 평등하게 의무를 나눈다기보다는 좋은 아빠, 남편의 바람직한 정체성에 대해 논의하는 형편에 요리가 끼어들었다고나 할까. 요즘 분위기는 다르다. 요리를 먹고 평하는 데서 나아가 이제는 부엌으로 들어간다. 매우 자발적이며, 전문적이다. 물론 이것은 넓게 보면 기혼자들의 현상만은 아...

    2021.12.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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