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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마음으로 찍는 백반기행
    마음으로 찍는 백반기행

    오랜만에 광주 갈 일이 있었다. 지역에 가는 일은 신난다. 꼽아두고 있던 밥집을 가볼 수 있는 까닭이다. 한 만화가가 전국의 밥집을 주유하는 TV프로그램을 찍고 있는데, 나는 마음으로 찍는 백반기행을 하고 있다. 매일 담그는 김치를 주는 익산의 황등반점도 가보고 싶고 전주의 미가옥에 가서 콩나물국밥에 온 내장을 풀어버리고 싶고, 부산의 옛도심 중앙동에 있는 섬진강재첩국에서 ‘재칫국’(그들의 호칭이다)을 먹고 싶다. 광주는, 허다한 밥집의 전쟁터인 이 호남의 도시는, 어디 한 군데 골라 가기가 미안하다. 광주의 밥집은 어지간하면 한 가락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집들 중에도 빼놓지 못하는 곳이 여수왕대포다. 번듯한 건 하나도 없다. 인터넷에도 나오지 않는, 길을 찾아가려면 그 옆 가게 주소를 찍어서 가야 하는, 금남로 가까운 양동시장의 닭전 구석에 있는 기묘한 밥집인 거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밥을 먹을 때 술을 마시며, 술을 밥 삼아 마시며, 술을 마실 때 밥을 안주로 한다....

    2021.11.19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대왕오징어와 ‘문어발’
    대왕오징어와 ‘문어발’

    옛 서울 도심의 영화관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스카라와 국도는 벌써 기억에 없어졌고, 명보도 옛 영화관이 아니다. 오래 고생해주던 대한극장도 비슷한 길을 걸을 것 같다. 그 와중에 서울극장도 문을 닫는다고 한다. 단성사는 벌써 극장이 아니고 자리로만 남았고, 피카디리도 그러하리라. 어떤 극장이든 주전부리 파는 행상과 리어카가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영화관 내에도 매점이 있었고, 심지어 판매상이 목판에 군것질거리를 담아서 상영 중간 쉬는 시간에 관객석을 돌아다녔다. 영화관 내에서 담배를 팔기도 했던 건 아스라한 추억이다.제일 인기 있는 건 팝콘이 아니라 마른오징어였다. 매점에서 구워서 당당히 팔았고, 극장 앞 최고 인기 메뉴였다. 물오징어와 마른오징어. 아마도 70, 80년대 서울사람들이 제일 많이 먹은 음식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미 냉동시설이 잘 가동되던 때라 사철 물오징어가 나와서 서민 밥상을 채웠다. 그 무렵 오징어가 한때 몇해 동안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대타로 인기...

    2021.10.22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왜 자영업자는 제대로 지원 못 받나
    왜 자영업자는 제대로 지원 못 받나

    이번 국민 재난지원금 논란이 여전하다. 기안부터 확정까지 당정의 엇박자가 있었고, 고작 10% 남짓에 해당하는 국민에게 지원금을 아껴서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현실적인 문제제기도 나왔다. 한편으로는 무너져 가는 자영업 지원에 더 힘을 쏟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재난지원금이 결국 시장에 돌겠지만, 일시적이라는 얘기다. 자영업자들에게도 이미 재난지원금이 돌아가기는 했다. 그러나 액수는 겨우 몇백만원 선에 그친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번 이 칼럼에서 주장했다. 특히 외국과 비교해 자영업자 지원이 너무 약하다는 분석을 내놓은 적이 있다. ‘주간경향’ 1445호(9월27일자)에는 외국 교포 자영업자를 취재해 심도 있는 기사를 실었다. 한국과 외국의 자영업, 특히 정확한 정보 전달이 가능한 교포를 대상으로 해서 피부에 와닿는 데이터를 제시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미국 애틀랜타, 캐나다 토론토의 식당 운영 교민들은 1인당 1억~2억원의 코로나19 지원금...

    2021.09.24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백신 쿡
    백신 쿡

    코로나19가 가져다준 몇 가지 흥미로운 변화들이 있다. 집에서 더 많이 요리하고 배달이 많아진 건 다 아는 사실이다.요새는 이른바 백신 쿠킹이라는 게 있다. 또는 상징적으로 ‘타이레놀 쿠킹’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해열제와 백신과 요리의 기묘한 조합인 셈이다. 백신을 맞고 며칠 쉬는 동안 요리를 해먹을 궁리, 만든 요리에 대한 감상과 자랑(?) 또는 실패기가 SNS에 많이 올라온다. 인스턴트나 밀키트도 있고, 매우 심오한 수준의 요리에 도전하는 이들도 있다. 마이야르 반응을 따지고 수비드와 브라인 같은 전문용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분도 많을 것이다. 그만큼 요새 전문가적 수준과 취향의 자발적 가정 요리사들이 많다는 뜻이다.이런 현상은 주로 한국에서 훨씬 강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특히 교육수준이 높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한국의 40대, 50대가 이를 주도한다. 컴퓨터, 카메라, 자동차 같은 보편적으로 남자들이 많이 즐기는 취미생활에 요...

    2021.08.27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배달 뒤에 남겨진 숙제들
    배달 뒤에 남겨진 숙제들

    배달 음식이 당대의 큰 이슈가 된 지 오래다. 청년 노동, 실업과 자영업, 안전과 건강, 고용 시장, 환경과 폐기물, 교통 환경, 독과점, 모바일 기반 신산업, 감정 노동 등 걸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배달업이라고 하지 않고 배달산업이라고 부른다. 코로나19 시국에 특수를 누리는 산업에 오토바이산업이 들어간다고 한다. 배달업 앱 개발 운영으로 몇조원의 부호도 탄생했다. 코로나19 시국의 일시적 인기라고 보던 외식산업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다. 향후 중요 산업이 될 거라는 확신이 넘쳐난다. 배달해서 집에서 먹는 것이니 외식업이 아니고 내식업이라거나, 밖에서 만들어 집에서 먹으므로 ‘반반’이라는 농담도 있다. 과거의 배달업은 음식업만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많은 분야가 택배와 퀵서비스에 흡수되고 배달=음식의 등식이 만들어졌다. 배달은 외식에서 새로운 룰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평소 배달이 안 되던 음식도 거의 수렴하고 있다. 삼겹살이나 스테이크, 전골 같은 음식도 너끈...

    2021.07.30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청량리시장은 건재하다
    청량리시장은 건재하다

    냉면 계절이다. 요즘엔 일반 식당에서 여름 별식으로 주로 콩국수를 팔지만 예전에는 냉면이 많았다. 열무냉면, 육수냉면을 내놓았다. 열무냉면이라야 담근 열무에 계란 반쪽, ‘다시다’를 듬뿍 넣어 만든 달콤한 국물에 손으로 뜯어 넣는 공장 면이 대부분이었다. 육수냉면도 거의 비슷해서, 열무 대신 매운 양념을 듬뿍 얹어먹는다는 점만 달랐다. 가게 앞 평상에 아주머니들이 앉아서 면이 잘 떨어지라고 손으로 비비던 장면이 선명하다.최근에 청량리시장을 갔더니,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한 그릇에 5000원. 싸다고 냉면이 아니더냐. 소고기 곤 육수가 아니라고 괄시할 것이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장은 가장 싼 것을 공급한다. 아직 힘을 잃지 않은 청량리시장은 그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다. 반찬 일고여덟 가지에 찌개까지 주고 6000원 하는 백반집, 보리밥과 간단한 찬을 내고 4000원 받는 집, 짜장면이 고작 3000원인 중국집, 맥주와 소주를 3000원밖에 안 받는 주점...

    2021.07.02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별점 테러와 식당의 운명
    별점 테러와 식당의 운명

    별점 테러. 특정 식당에 다수의 소비자가 고의로 낮은 점수를 주어 평균점수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말한다. 보통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많이 회자되는 말로 공분을 살 만한 사건을 저지른 목표에 대해 응징 효과를 기대하고 일으키는 작업이다.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이들이 주로 쓰는 용어이기도 하다. 불매운동과 같이 벌이기도 하며, 순기능도 상당히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별점은 다양한 장르에서 쓰이지만 대부분 식당 등 외식업종이 해당된다. 각종 온라인 포털이나 배달앱에는 리뷰를 별점(또는 점수)으로 매기도록 유도하고 있다. 리뷰가 결과적으로 식당의 수준을 높이고, 소비자가 소비 행위를 할 때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므로 장점이 매우 크다. 리뷰란 원래 평가하는 텍스트를 의미하지만, 바쁜 세상에 긴 리뷰를 쓰기도 힘들고 하니 별점으로 간단히 평가를 압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뜻밖의 일도 많이 생긴다. 별점이 ‘벌점’이 되어버린다. 너무 높거나 낮은 점수를 주면 평균점에 영향을 ...

    2021.06.04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경북에도 해녀가 있다
    경북에도 해녀가 있다

    미역이며 다시다, 톳, 우뭇가사리에 김 같은 걸 우리는 보통 해조류로 구분하고 즐겨 먹는다. 한국처럼 해조를 자세하게 종류를 나눠서 식용하고 있는 나라는 없을 듯하다. 서양 세계에서는 오랫동안 종 구분도 없이 그냥 ‘해조’라고 불렀다. 학술적으로는 개별성이 있었지만, 일반 민중은 거의 먹지 않으니 이름도 구체성이 적었다. 오죽하면 서양에서는 김을 ‘노리’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스시 열풍을 타고 일본어 이름이 전해진 것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한국의 김밥이 주목받고 있다. 아마도 이제부터는 ‘김’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해조는 바다에서 엄청난 양이 생산되며, 식량 차원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미각으로 본다면 또 그 비중이 크다. 다시마는 국물 내는 데 최고다. 김은 또 어떤가. 맛있고 간편한 부식이다. 외국 유학생이나 주재원의 집에 가면 제일 많은 한국 식재료가 김이라고 한다. 부피가 작고 항공으로 부치거나 휴대해서 가져가기가 쉽기 때문이다. 다른 재료는 몰라도 김이 ...

    2021.05.07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걱정되는 요리사의 호흡기 건강
    걱정되는 요리사의 호흡기 건강

    드디어 요리사의 호흡기 질환 중 폐암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2월23일, 학교 급식조리원으로 일하던 이아무개씨가 폐암으로 사망한 것은 작업과 관련된 것으로 인정했다. 그는 오랫동안 반찬을 볶고 튀기는 일을 해왔고, 이것이 폐암을 일으켰을 것으로 판정받은 셈이다. 이번 공단의 조치는 조리실의 환경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아무개씨가 일하던 학교 조리원들은 조리실의 배기시설이 문제를 일으켜서 수차례 수리와 보강을 요구했다고 한다. 질병 인정은 다행이지만 만시지탄이다. 사실 그동안 조리실의 환경 이슈는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대단위 산업현장처럼 규모가 큰 작업장 중심으로 산업안전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요리사들이 대부분 2~10인 미만의 영세한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 산업안전 문제를 개별 가게 주인에게 맡기는 정도였다고나 할까. 작은 식당 등을 열 때 배기시설이 충분한지 관에서 꼼꼼하게 점검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2021.04.09 03:0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돈쭐을 내주자’
    ‘돈쭐을 내주자’

    요즘 누리꾼들 사이에서 ‘돈쭐을 내주자’는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다. 배고픈 학생에게 선행을 베푼 치킨집 사장이 알려지면서다. ‘혼쭐’에서 온 말로, 가게가 잘되도록 물건을 많이 팔아주자는 뜻으로 쓰인다. 이런 선행은 일종의 마중물이 되곤 한다. 더 많은 식당들이 이런 좋은 일에 나설 것이다. 좋은 일이다. 다만 평소에 이런 좋은 도움을 주는 식당이 많다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 한국 뉴스만 검색해도 꽤 흔한 일이다. 외국 사례는 어떤가 하고 일본의 뉴스를 검색해보니, 나라현의 ‘겐키카레’라는 식당이 아주 흥미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손님이 식사를 하고 ‘미래 티켓’이라 이름 붙인 식권을 사서 벽에 붙여 두면 배고픈 아이들이 그 후원을 받아 카레를 사먹는다. ‘미래’라는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 아닌가. ‘히미쓰 기지’라는 식당은 노숙인, 부랑인을 위한 식사 후원사업을 한다. 선행과 후원은 어떤 점에서는 이렇게 한 단계, 한 마디(節)를 거쳐가는 게 ...

    2021.03.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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