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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청진옥의 ‘국잽이’
    청진옥의 ‘국잽이’

    종로의 유명한 해장국집 청진옥에 갔더니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온다. 머릿수건을 쓰고 뚝배기에 해장국을 푸는 젊은 여인의 사진이다. ‘국잽이’라고 부르는 업무를 오랜 시간 해냈던 직원이다. 그렇게 국잽이로서 정년 넘게 일하고 은퇴했다. 다들 셰프며 파티시에며 소믈리에인 지금 요리판에서는 생소한 직책이다. ‘~잽이’는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를 말한다. 왕년의 우리 직업판에서는 ‘꾼’이거나 ‘잽이’가 많았다. 근사한 벼슬을 호칭하는 이름은 아니었다. 손으로 평생 무언가를 주물러서 업으로 삼던 낮은 신분의 이들이었다. 요즘도 우리는 무얼 잘하는 이를 두고 꾼이니, 잽이니 한다. 직업의 세계에서는 거의 쓰지 않고, 이제는 입말로만 남아 있는 듯하다. 개화기에 서양인에 의해 근대적인 식당 문화가 이식되기 시작한 후에도 우리 민중의 식당에서는 이런 꾼들이 음식을 만들었다. 냉면집, 국밥집, 빈대떡집에서 일하는 이들을 누구도 요리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제법 규모 있는 식당은...

    2019.10.24 21:15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카공족
    카공족

    이른바 카공족이란 말이 회자된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본디 카페는 토론의 장소로 유럽에서 성장했다. 유럽의 민주주의와 철학의 발전은 카페의 몫이 컸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건 그런 의미에서는 권장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종종 심각한 논쟁을 유발한다. 카페의 수익 문제, 손님 윤리(?) 문제가 거론된다. 카페가 공부뿐 아니라 회의와 작업실의 기능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공유 사무실이 유행하는 것처럼, 최근에는 혼자 일하고 움직이는 프리랜서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의 전통적인 카테고리가 무너졌다는 의미도 된다.먼저 장사하는 카페 주인들의 고통을 들여다보자. 내가 종종 가는 한 카페 주인은 일부러 나이 들어 보이는 옷을 입고 출근한다고 한다. ‘알바생’처럼 어려 보이는 사람이 카운터를 지키면 카공족의 ‘체류시간’이 길어진다고 믿고 있다. 눈치 보지 않고 오래 자리를 점유한다는 뜻이다. 카페 주인이 카운터를 지키면 체류시간이 짧아지거나 최소한 음료나 케이크 추가 ...

    2019.10.10 20:31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김용균이라는 빛
    김용균이라는 빛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는 작은 공장이 많았다.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남녀들이 직공으로 일을 다녔다. 아마도 12시간 맞교대 일을 마친 그들이 삼양라면이나 롯데소고기라면 덕용포장을 사들고 퇴근하는 걸, 나는 골목에서 구슬치기를 하다가 보곤 했다. 언젠가 엄마가 “장도 못 담가 먹을 텐데 어떻게 간은 맞추는지 몰라”하고 혼잣말처럼 하시는 걸 들었다. 가난해도 집마다 장독이 있던 시절, 자취하는 노동자 청년들이 뭘로 간을 냈을까. 샘표에 별표, 닭표니 하는 서울의 공장 제품을 썼을까. 어쩌면 설이나 추석에 집에 가서 장 같은 건 가져왔을 것이다. 상하는 것도 아니고, 한번 가져오면 오래 먹을 수 있었을 테니. 그런 명절 무렵에는 동네 전봇대마다 광고 전단이 붙었다. 대절 버스 광고였다. 기억하건대, 그 버스들의 행선지는 대개 호남이었다. 임실-순창-진안-전주…. 곡성-화순-광주-해남-목포…. 비슷한 지역을 묶어서 버스는 떠났다. 선글라스에 흰 장갑을 낀 기사님이 모는 버스...

    2019.09.26 20:59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노포의 조리기구
    노포의 조리기구

    예전에 오래된 한 식당에 들른 적이 있다. 주방을 기웃거리는데, 칼이 좀 특이했다. 주방장이 비슷한 모양의 칼 두 자루를 번갈아 쓰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크기가 달랐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모양은 비슷하지만 아주 작았다. “칼이 비슷한 식도인데 크기가 왜 그리 다릅니까. 용도가 다른 건가요?”주방장이 멋쩍게 웃더니 대답했다. “아, 이거요? 같은 칼인데 작은 칼은 워낙 오래 쓰다 보니 그리되었다오. 한 사십년 썼나.” 갈아서 쓰고 또 갈아 쓰다 보니 그리되었다는 것이었다. 원래 커다란 식도였던 칼이 닳고 닳아서 과도처럼 작아져버렸다. 그는 그것이 안쓰러운지 버리지 못하고 다른 용도를 찾아서 쓸모를 주었다. 무려 사십년 된 칼이니, 무생물이긴 해도 무슨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해도 믿어질 것 같은. 다른 식당에서 있었던 일. 열심히 요리하는 주방장의 나무도마가 특별해 보였다. 얼마나 칼질을 했는지 가운데가 움푹 패어 있었다. 민속박물관 소...

    2019.09.05 20:38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단것 권하는 사회
    단것 권하는 사회

    어렸을 때 박찬호 야구를 보는데 흑인 선수들이 많이 등장했다. 미국 국적 흑인이야 이미 우리가 어느 정도 그 역사를 아는 부분이다. 소설 <엉클톰스캐빈>이 그랬다. 메이저리그에 미국인이 아닌 중남미 국적의 흑인 선수가 많아서 좀 놀랐다. 아니, 왜 저들은 검은 피부일까.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거나 건너뛰었던 고통의 역사가 거기 있었다. 약탈적인 설탕 산업이 중남미 흑인들의 먼 조상을 잉태했었다는 사실 말이다. 설탕이 얼마나 돈이 되고 귀한 산업이었으면 유럽 여러 나라가 혈안이 되어 노예사냥과 생산지 개척에 나섰을까. 아시아라고 다르지 않았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설탕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애를 썼다. 오키나와는 본토 일본인들이 귀중한 설탕 공급지로 써먹었다. 강제 공출과 착취의 역사가 얼룩져 있다. 물론 여기에는 태평양전쟁 시기 참혹한 옥쇄작전에 민간인을 동원하고 이후 미군부대 주둔과 관련한 일본 정부의 태도도 더해진다. 1452년, 단종 즉위년 실록에...

    2019.08.22 20:57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옛날 냉면집에 갔다
    옛날 냉면집에 갔다

    옛날 냉면집에는 종이로 술을 만들어 매달았다고 하는데, 그 종이술이 국숫발을 의미한다고 했다. 직관적 광고물로 그만한 게 없지 싶다. 내가 기억하는 냉면집은 빨간색 바탕색에 흰 글씨로 ‘냉면 개시’라고 써 붙였다. 임시로 판다는 뜻이었다. 찌개 팔고 탕 끓이는 집은 여름에 손님이 줄어드는 법이라 한철 메뉴로 냉면을 추가했던 것이다. 그다지 품질 좋은 냉면이었을 리가 없다. 메밀을 쓴 냉면이라면 기계도 있어야 하고, 그걸 솜씨 있게 다루는 발대꾼이며 기술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만든 면을 풀어서 그럭저럭 만든 육수에 얼음 깨어 넣고 제공했다. 이 계절에 흔한 수박이며 토마토가 올라가기도 했다. 서울식 임시 계절 냉면으로 뇌리에 남아 있는데, 뜻밖에도 그런 냉면을 서울 밖의 냉면집에서 만나기도 했다. 옌볜에는 ‘연변냉면’(동포들은 한자어를 보통 우리식 발음으로 부른다. 지린이 아니라 길림, 헤이룽장이 아니라 흑룡강이다)이 있는데, 수박이 보통 올라간다....

    2019.08.08 20:38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단것 당기는 시간들
    단것 당기는 시간들

    당 권하는 사회. 한때 매운 음식 권하는 사회에서 이제는 당이다. 모두 스트레스와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스트레스가 매운 음식과 당을 요구한다는 사회적, 의학적 연구 결과를 내놓곤 한다. 개인적으로도 충분히 느낀다. 비록 설사를 할지언정 미친 듯이 매운 닭발을 뜯고 떡볶이를 흡입할 때가 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다. 속은 쓰리지만 머리꼭지가 벗겨질 것 같은 쾌감이 몰려온다. 문제는 ‘혈중 매운 농도’가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매운맛의 마력이 뚝뚝 추락하고 나면 허탈해진다. 그래도 땀 한번 흘리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힘을 얻는다. 매운 것도 먹었으니, 자 이제 한번 또 해보자고, 이러면서. 우리는 늘 그렇게 막막한 세상에 부딪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설탕도 그렇다. 매운 것 못지않게 갈망의 농도가 우리 몸에 부표처럼 떠다닌다. 일정한 당의 용량을 원하는 것 같다. 굵직한 기억으로는 군대 시절의 한 토막. 이등병 시절에 휴가를 나왔다. 나도 ...

    2019.07.25 20:28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먹는 일의 계급
    먹는 일의 계급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라면이 화제다. 이른바 ‘투뿔등심 짜파구리’다. 두어 해 전에 유행했던 음식이다. 라면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이 아닌, 일종의 번외의 ‘오덕’ 레시피였다. 좀 뜬금없이 등장하는 음식 같기도 한데 감독은 ‘부자들은 같은 걸 먹어도 다르게 해석한다’는 여지를 부여했던 것 같다. 짜파구리 같은 인스턴트 라면에 어울리지 않게 ‘투뿔등심’을 얹어 먹는 설정을 만든 것을 보면. 그 라면이 그다지 맛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빈대떡에 캐비어 얹은 것 같다. 서로 별 상성이 없다. 그것조차 감독의 의도였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실, 계급적으로 음식 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도 짜파구리를 먹는다. 영화 속의 설정이 아니라 대체로 가능한 일이다. 6000원짜리 저가 냉면집 앞에 고급 외제 승용차가 즐비하고, 한때 어떤 재벌은 짜장면 보통을 찬양했다. 그들이 산해진미를 먹긴 하겠지만, 대개는 접대나 잔치에서나 먹는 것이며 일상의 음식...

    2019.07.11 20:37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부실해진 중국집 짬뽕
    부실해진 중국집 짬뽕

    언젠가부터 중국집 짬뽕이 대체로 부실해졌다. 값은 거의 못 올리는데 해물 같은 재료비는 치솟았기 때문이다. 오징어 빼고 변변한 해물이 안 들어간 지 오래다. 그나마 그 오징어조차 질이 좋지 않다. 어획이 좋지 않아서다. 한때 오징어가 너무 많이 잡혀서 어부들이 출어를 포기하던 90년대가 있었다. 잡아봐야 돈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연근해 어황이 나빠져도 짬뽕은 별문제가 없었다. 더 먼바다로 나가서 잡아올 수 있었다. 선동이라고 부르는, 큰 배에서 잡아서 급속 냉동을 하면 품질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우리가 먹어왔던 짬뽕의 오징어는 대부분 이런 물건이었다. 솜씨 좋은 중화요리사가 팬으로 볶고 끓여내는 짬뽕 기술은 감탄을 자아낸다. 간단해 보이는 요리지만, 손에 붙인 기술의 총화가 만드는 게 바로 짬뽕이었다. 감칠맛, 불에 지진 채소의 향, 뜨거운 육수가 속을 덥혀내는 느낌. 요리 기술자가 만들어내는 음식이다. 한데 우리가 그 ‘최종의 결과물’을 맛보려면 산업의 힘이 필...

    2019.06.27 20:4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차마 그리운 비빔국수
    차마 그리운 비빔국수

    1947년 여름, 몽양 여운형은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괴한의 총에 맞았다. 자택에서 기계면으로 만든 비빔국수를 점심으로 들고난 후였다. 이듬해인 1948년, 어느 신문 기사는 아마도 몽양의 식탁에 올랐을 당시의 유행 음식인 기계국수를 언급하고 있다.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배급된 미국제 건면 조리방법은 냉수를 부어가며 속까지 익히고 삶은 후 찬물에 5분간 담가두었다가 장국이나 비빔국수를 해먹으면 좋다.” 일제강점기에 제분시설이 속속 한반도에 세워졌고, 몽양의 그 ‘기계면’도 이미 보급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잔치국수가 바로 기계면의 일종이다. 제면기로 눌러 뽑는 국수가 흔했던 우리 전통 국수 문화에 이종(異種)이 이식된 셈이다. 가게에서 사들여 삶기만 하면 되는 간편한 기계면은 충격적이었으리라. 해방과 전쟁, 휴전으로 이어지는 동안 미국 원조로 받은 밀이 일제가 두고 간 적산(敵産) 제분공장에서 도정되었다. 동네 곳곳에는 제면기계를 갖춘 가내수공...

    2019.06.1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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