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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새벽 음식 배송 시대
    새벽 음식 배송 시대

    새벽 음식 배송 시장에 전쟁이 붙었다. 몇몇 선발 업체들의 성공에 고무된 기존 인터넷 오픈마켓들까지 뛰어들었다. ‘고무된’ 것이라기보다, 어쩌면 울며 겨자 먹기인지도 모른다. 안 쫓아가면 큰일 날 것 같아, 사업 참여나 일단 해보는 수준이다. 선발 업체들도 실제로 이익을 내는 것 같진 않은데,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고도 하겠다. 이런 새벽배송 음식의 상당수가 간편식(HMR)이다. 셰프가 만드는 음식이 새벽에 당신 식탁에 오른다는 슬로건을 꺼내든 업체도 많다. 시중의 유명 식당 음식도 물론이다. 배달이 불가능한 음식이 거의 없어졌다. 요리사들은 불안하다. 이 시장이 어떻게 될지 관심 있게 보고 있다. 180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근대적인 식당사업, 그러니까 홀과 주방을 마련하고 메뉴를 만들어서 고용된 요리사와 집사들이 서비스하는 그런 식당은 유물이 될지도 모른다. 요리사들에게는 ‘라인’에 서서 음식을 ‘제조’하는 노동자로 전락할 것이란 불안감...

    2019.05.30 21:02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식빵의 추억
    식빵의 추억

    옛날에 엄마가 해주시던 간식은 아주 다양했는데, 간혹 놀라운 것도 있었다. 카스텔라나 도넛(도나스라고 불렀다)이었다. 카스텔라는 그저 완제품으로 된 가루에 계란과 설탕, 물을 붓고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전기밥솥에 찌는 방식이었다. 그다지 맛이 없었던 것 같다. 맛있었다면 지금도 살아남아 있을 테니까. 도넛은 아주 초보적인 방식이었는데, 요즘 전문가게에서 파는 걸 상상하면 안된다. 시장에서 파는 옛날식이랄까, 그런 모양과 맛이었다. 밀가루 반죽에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부풀려서 돼지기름에 튀긴 후 그냥 설탕만 묻힌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꿀맛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발효를 이해한 것 같진 않아서, 부풀리기나 식감이 들쑥날쑥했다. 그래도 어린 시절 달콤함 더하기 빵이라는 조합은 훌륭했다. 70년대는 분식의 시대였다. 샤니, 삼립, 콘티넨탈 같은 유명 제빵 회사들이 빵을 공급했다. 요즘 말로 배송 및 영업사원 격인 아저씨들이 ‘구루마’에 빵을 싣고 산동네 구멍가게까지 빵을 배달했다. 요...

    2019.05.16 20:39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서해안에 갔다
    서해안에 갔다

    요리사 후배들과 종종 산지 재료 기행을 간다. 실은, 한잔 마시자는 목적이 더 크다. 들과 산과 바다에는 제철이 있다. 많이 잡혀서 제철이고, 맛이 좋아서 제철이다. 둘 다 해당되면 진부한 표현이지만 금상첨화다. 아무래도 바다를 가게 되는데, 살아 움직이는 싱싱한 해산물을 보는 기쁨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서해안 어디든 두어 시간 안짝에 닿는다. 무슨 무슨 축제를 한다는 항구는 가급적 피한다. 인심이 아무래도 들쑥날쑥하고, 번잡스럽다. 조금씩 움직여서 인근의 작은 항구나 작은 도시의 장터를 찾는 게 요령 있는 장꾼과 술꾼의 비밀이다. 주중에 시간 내기 어렵겠지만, 값은 한다. 주말보다는 주중, 번잡한 곳보다는 한산한 어항으로. 간재미라고 부르는 작은 가오리를 먹는 맛이 우선이다. 가오리라고 해야 맞고, 넓게는 홍어과에 속하는 물고기인데 그냥 이쪽에서는 간재미라고 해야 맛이 난다. 지금이 제철이다. 산란을 하고 나면 맛이 적어진다. “뼈가 연하고, 살...

    2019.05.02 20:43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아프리카 돼지열병
    아프리카 돼지열병

    돼지고깃집을 하는 친구가 있다. 연초에 들렀더니 표정이 어둡다. 돼지고기가 너무 싸서 그렇단다. 싸게 팔면 남는 게 적으니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위로했다. 그게 아니란다. 들여오는 돼지고기가 너무 싸다는 것이다. 연초면 국내 돼지고기 가격이 바닥을 칠 때였다. 생산비 이하 가격에 팔렸다. 축산가는 비명을 질렀다. “싸다고 좋은 게 아니야. 너무 싸면 폭등할 수 있어. 당장 모돈 도태시켜서 생산가를 맞추라고 당국은 요구할 거고, 그러다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어. 고깃집도 피해를 볼 거야.” 올 초에 이어진 돼지고기 가격 폭락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소비 부진이다. 경기가 안 좋아서 고깃집 장사가 잘 안된다는 뜻이다. 고기가 잘 안 팔리고 싸면 축산가에서는 재고 부담을 안는다. 돼지는 생물이라 이미 기르고 있는 놈들을 마냥 떠안고 있을 수 없다. 단순 재고가 아니라 먹여 살려야 한다. 표준체중보다 더 나가고, 오래 기르면 맛은 대개 좋아...

    2019.04.18 20:37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멍게와 해삼
    멍게와 해삼

    횟집에 가면 늘 나오는 기본 안주가 있었다. 해삼과 멍게다. 얼마나 흔했던지 ‘리필’도 잘해주곤 했다. 30여년 전, 서울은 횟집이 별로 없었다. 일식(日食)도 아니고 ‘日式(일식)’이라고 써놓고 장사하는 한·일 절충식 일식집 아니면 회다운 회는 아주 드물었다. 광어와 우럭이 흔하게 양식되던 때도 아니었고, 이른바 강원도식 물회라는 ‘물가자미 막회’ 같은 요리들을 하는 가게도 막 서울 중심부에 열릴까 말까 하던 무렵이었다. 그래서 민물회도 많이 먹었다. 이스라엘 잉어인 속칭 향어와 얼마나 잘 잡혔던지 막 퍼주던 붕장어가 세트였다. 붕장어는 일본말인 아나고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가까운 인천 연안부두의 어시장에나 가야 좋은 회가 있었고, 서울내기들은 회를 잘 먹을 줄 모르던 때였다. 그런 시절에도 멍게와 해삼은 만만했다. 중국식당에서도 국내산 해삼을 말려서 요리를 했으니까. 당시 ‘중공’이었던 중국과는 무역이 없어서 중국산 건해삼을 구할 수 없던 때였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가...

    2019.04.04 20:51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벨기에 한식당 ‘먹자’
    벨기에 한식당 ‘먹자’

    애진 허이스(41)라는 친구가 있다. 그이의 국적은 벨기에. 입양자 출신이다. 애진이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벨기에로 떠날 때 가지고 있던 이름이다. 지인의 소개로 한국에서 그이를 만났었다. 벨기에 제3의 도시 겐트에서 ‘먹자’라는 팝업식당을 한다고 했다. 팝업이란 비정기적으로 임시 운영하는 형태를 말한다. 그 먹자는 한식을 파는 팝업인데 겐트에서 아주 유명하다. 애진이 언젠가 사진을 보여줬다. 놀랍게도 한국의 삼겹살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이미지다. 드럼통과 불판에 현지인들은 베이컨으로나 먹는 삼겹살을 구워서 쌈장에 찍고 상추를 싸서 먹는다. 뭐 하나 해준 것 없는 조국이 뭐 좋다고, 애진은 이 나라에 종종 온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어릴 때 기억을 되살리려 한다. 무엇보다 음식의 기억이 혀에 붙어 있다고 했다. 먹어보면 마음 창고의 저 깊은 바닥에서 울림이 일어난다. 김치, 된장, 고추장, 우리가 ‘반찬’이라고 부르는 모든 음식들. 아닌 게 아니라 반찬은 그냥 추상적인 명...

    2019.03.21 20:36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노량진 쇼핑
    노량진 쇼핑

    노량진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자주 간다. 하나는 수산시장이다. 다른 하나는 길 건너 고시촌에 볼일이 있어서다. 머리도 깎고 밥도 먹으러 간다. 서울 시내에서 이렇게 괜찮은 품질에 최저가의 서비스를 파는 동네는 없다. 한때 재수생이 많았던 이곳은 이제 ‘종합 공무원 공채시험 준비 타운’이 되었다. 속칭 ‘고시’다. 왕년의 고등고시부터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을 이르던 말인 고시가 이제는 공직에 입직하는 모든 시험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노량진 고시촌은 불안한 젊음의 현주소로 종종 시사프로그램에서도 다루고 있다. 고용시장은 엉망이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 그나마 ‘공직’은 안정된 생활을 바라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참화라고 할 비정규직, 계약직의 차별이 가져다준 결과이기도 하다. 노량진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때 많았던 복사집은 많이 줄었다. 디지털 시대 때문인 듯하다. 흥미로운 건 헬스클럽 내지는 운동교습소가 늘었다는 점...

    2019.03.07 20:38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하이볼’이 싱거운 오사카
    ‘하이볼’이 싱거운 오사카

    최근에 일본의 술집 여행 책을 한 권 냈다. 한 기자와 출간 인터뷰를 했다. 책의 주제는 일본에 가면 싸게 파는 술집 밥집이 많다. 뭐 이런 거였다. 기자가 “일본은 자기 점포에서, 그것도 국가연금을 받는 부부가 음식을 싸게 파는 집들이 많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값이 싼 것이 아닌가?” 하고 물었다. 좀 해설을 달자면, 자기 점포이니 월세도 없겠다, 연금도 받으니 생활 걱정도 없겠다, 나이 든 부부는 음식을 싸게 판다는 것이다. 즉, 이런 가게들이 있어서 일본의 음식 가격이 낮게 유지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질문이었다. 그렇다. 일본의 술과 밥 가격은 1990년대 거품 경기 시대에 멈춰 있다. 그때 우동과 메밀국수, 돈가스 가격이 20여년 동안 별로 오르지 않았다. ‘자가 소유 점포, 연금, 부부 공동 노동’이 상징하는 저가 유지 가게가 영향을 주었다. 일본은 완전경쟁 사회다. 빈틈이 없다. 패를 다 내놓고 치는 화투다. 이문을 내려면, 저 노인 부부처럼 특별한 조건이...

    2019.02.21 20:32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노포를 부술 것인가
    노포를 부술 것인가

    최근에 한국방문위원회 사업에 참여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서울의 노포를 탐방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여러 국적이 망라된 참가자들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언어별로 통역이 제공됐다. 여담이지만, 중국어 팀은 중국, 대만, 홍콩 사람들이 묶였다. 참가자들은 서울에 노포가 있다는 사실에 깊은 흥미를 가졌다. 그들이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얻는 음식점 정보라는 건 역사성까지 담은 경우가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루트는 피맛골의 청진옥에서 시작해서 열차집, 을지로 3가의 조선옥으로 이어졌다. 평균 업력 80~90년에 달하는, 서울의 식당 역사를 보여주는 집들이다. 청진옥에서 서울의 노동 음식과 심야 생활의 역사를 접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에 나무와 물건을 배달하던 노동자들의 음식으로 시작되었을 해장국, 24시간 사람들이 움직이던 1990년대의 등장, 그리고 아직도 하루 종일 불을 끄지 않는 가마솥의 전설에 그들은 놀라워했다. 열차집은 전후 서울의 빈약했던 경제사정...

    2019.02.07 20:49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만두 없는 나라
    만두 없는 나라

    <화교 없는 나라>. 최근에 나온 한국 화교에 대한 책이다. 한국에서 피차별 민족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던 화교사 연구서이다. 저간의 이야기야 깊고도 슬프다. 화교 당사자들로서는 가슴 쓰린 기억들이 많았을 것이다. 화교는 조선 말기에 이미 우리 이웃이 되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살아왔다. 아마도, 짜장면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지배하는 강력한 음식의 추억일 것이다. 나는 짜장면보다 만두야말로 더 화교다운 음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짜장면은 한국인이 사먹는 음식이었고, 그들의 주식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만두가 있었다. 40~50여년 전, 동네에 화교가 살았다. 그들의 주식은 만두였다. 한 번 먹어보라고 해서 먹고는 크게 실망했다. 속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소 없는 만두였다. 원래 중국 만두란 소가 없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발효시켜서 둥글게 빚은 후 쪘다. 그 집에서 밥을 한다고 하면 대개 만두였다. 밥 대신 만두라니. 소가 있든 없든 그 먹음...

    2019.01.2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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