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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 일과 되찾는 일
찾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없는 것을 얻거나 여기 없는 사람을 만나고자 살피는 일에 대해, 그러니까 희망과 이상을 좇고 새집과 새 친구를 구하는 일에 대해. 모르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일에 대해, 그러니까 사건의 원인을 밝히고 인생의 목표를 간구하는 일에 대해. 잃거나 빼앗기거나 맡기거나 빌려주었던 것을 돌려받는 일에 대해, 그러니까 유실물을 다시 손에 넣고 상실했던 주권을 회복하는 일에 대해. 헤아려보건대 찾는 일의 근간에는 으레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다.찾는 일은 환희와도 연결된다. 부푼 마음으로 고향을 찾을 때, 숨 돌리기 위해 여행지를 찾을 때 우리는 설렌다. 안식처나 해방구를 발견한 사람처럼 기쁘다. 좋은 물건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모든 일의 중심에 양심을 두는 일 또한 능동적으로 찾는 행위다. 여기에는 취향과 신념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관공서, 병원 등 기관을 방문하는 일은 회복을 통한 ‘찾기’의 실천이다. ... -
붓끝에 따라오는 불과 꽃
1933년 5월, 베를린 광장에서는 반(反)나치적인 도서로 분류된 책들이 불태워진다. 프란츠 카프카,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의 저서도 이때 태워진다.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미하 울만이 설치한 조형물 ‘도서관’의 안내판에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희곡 <알만조르>의 문장이 쓰여 있다. “그것은 다만 서곡이었다. 책을 태운 자들은 결국에는 사람도 태울 것이다.” 실로 분서가 홀로코스트로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진행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했다. 서적을 대상으로 한 탄압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일어난다. 당시 책 파기에 동원되었던 한 교사는 당국에서 봉건적, 자본주의적이라고 규정한 책들을 재활용하기 위해 낱장을 손수 찢어내야 했고, 2t에 달하는 책이 제지공장 기계에서 휘저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리처드 커트 크라우스, <문화대혁명> 교유서가, 2024, 88~89쪽) 우리는 이를 ‘필화(筆禍)’라고 불러볼 수 있다. 글을 뜻하는 붓 ‘필’에, ... -
드림시커
얼마 전 생일에 엄마가 갖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엄마가 재고용 되는 거.”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유능한 생활 지원사였고, 그와 같은 국가 일자리는 1년에 한 번씩 고용을 갱신한다. 그의 운명은 곧 그에게 통보될 예정이었다. 그건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선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낮게 웃었다. “야, 말도 꺼내지 마. 나 덜덜 떨고 있으니까.”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엄마는 재고용이 아니라 추워서 떨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시골의 추위는 매섭고, 기름보일러를 한 번 채우는 값은 60만원이다. 그것만은 절대 변함없는 한 가지 진실이었다. 우리는 자주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기름값의 신이시여. 저희에게 낼 돈을 주소서. 기도는 전해지지 않았고, 엄마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이가 너무 많은가 봐.” 꿈에서 깬 사람처럼 말했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입이 닳도록 말했다. “스무 살이면 나가.” 나는 효녀라, 열아홉에 집을 나가 독립했... -
벌린 손가락으로 맞는 새해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있다. 스산하고 쓸쓸한 분위기나 사람이 가난한 모양을 뜻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이 말은 ‘을사년스럽다’에서 왔다고들 한다. 푸른 뱀의 해, 그러니까 2025년이 바로 을사년이다.설은 여러 가지다. 누군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자리잡았다 하고, 다른 누군 1785년 을사년 대기근 이후 이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뭐가 됐든, 푸른 뱀의 해에 나라가 망하거나 수많은 이들이 배곯아 스러졌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에 스며 있는 셈이다.그리고 참 을씨년스러운 세밑을 지나왔다. 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의 측근은 체포영장 발부가 법치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혹세무민하고, 무안공항에선 가족을 잃은 이들의 절규가 하늘과 땅을 울렸으며, 정당한 고용승계를 요구하면서 385일째 공장 옥상에서 생활하는 한국옵티컬하이테크 노동자들의 억울함은 뼈에 사무친다.아직 을사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아닌데, 이미 이... -
밥심과 갈무리
“나라 꼴이 말이 아니야!” 식당에 앉아 있는데 안쪽 테이블에서 포효하듯 들려온 말이다. 그러자 부끄럽다는 말, 뻔뻔하다는 말, 지금이 21세기가 맞느냐는 말이 연이어 쏟아져 나온다. TV 화면과 테이블 위를 번갈아 쳐다보던 사람들이 밥을 욱여넣는다. 밥심으로 다시 일해야 한다고 한탄한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닌데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든 손으로 새벽까지 물건을 날라야 한다고 한다.한동안 뉴스를 보는 게 괴로웠다. 새 소식이 늘 희망적이지 않음을 안다. 그것이 으레 난데없음, 어이없음과 함께 찾아옴을 모르지 않는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닐 때마다 시민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닫지만, 다음날이 되어도 변한 것이 없다는 걸 발견하는 순간 맥이 빠져 버린다. 밥심으로 다시 일하러 나가지만 돌아올 때면 가슴 어딘가에 숭숭 구멍이 나버린 것 같다. 의미 있던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이 느낌이 무기력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이 시기에 슈테판 츠... -
그들은 자기 죄를 알지 못하나이다
2024년 12월3일 밤 갑작스레 불법적인 계엄이 선포되어 온 국민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국회를 지켜준 사람들,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선 의인들, 발 빠르게 대처한 국회의원들, 불합리한 명령에 미온한 반응을 보인 군인들 덕분에 계엄은 해제됐다. 밤새 창밖의 헬기 소리를 들으며, 서슴없이 ‘처단’을 운운하는 포고령을 보면서 나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저번 주에 송고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글은 출간되지 않겠구나, 어쩌면 이전에 썼던 글이 문제가 되어서 변고가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숨죽여 뉴스만 보았다. 용기를 내어 국회로 달려나가준 이들에게 오래도록 죄스러웠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분들께 빚을 졌다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했다.이후 국회 앞에서 열리는 탄핵 집회에는 거의 매일 참여했다. 1차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국회의원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퇴장하는 105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국회 앞에 모인 사람들과 “투표해, ... -
드라이브 마이 카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엄마의 얼굴이다. 안방 문을 열었을 때 엄마는 침대에 걸터앉아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비상계엄령 선포됐대.” 엄마는 웃느라 흘러나온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알아.” 그러곤 다시 웃기 시작했다. “그런데 웃음이 나와?” “웃음만 나와.” 그 웃음소리가 집 안에 비상하게 울려 퍼졌다.12월3일의 엄마는 이른 저녁부터 졸음이 몰려왔다. 몸이 축 처지고 무거운 것이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았다. 잠이 든 엄마를 깨운 것은 옆집 이모의 전화였다. 소식을 들은 그때부터 터지기 시작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나의 어머니는 1958년생으로, 열두 살 때부터 공장 노동자가 되어 전태일 열사를 알게 된 후 광장으로 뛰쳐나가 정신만큼은 한 번도 집에 돌아온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좋은 생리대나 나에게 알맞은 사이즈의 속옷은 몰랐지만, 근 300년간 일어난 세계사를 앉은 자리에서 읊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를 ... -
주디스 버틀러의 초현실적 한국 방문기
12월3일 새벽, 인천공항 6번 게이트 앞.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자그마한 사람이 온화한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넸다. “이른 새벽부터 움직이게 해서 미안해요. 수고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는 악수를 청하고는 내 차 뒷자리에 올라탔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였다. 그는 “민주주의와 인문학의 위기”라는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버틀러 교수가 내 차에 타고 있단 사실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단순히 그가 ‘빅네임’이라서가 아니었다. 10여년 전 <젠더트러블>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낀 충격과 흥분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에서 평생 느껴왔던 어떤 불편함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바로 ‘젠더 수행성’이라는 개념이다.젠더 수행성이 뭘까? 누구는 이것이 세상을 망치는 ‘사탄 언어’라며 반발하지만,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다. 이렇게 한번 설명해 보자.대한민국에선 이제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 성별고지가 가능해진다. 12월2일... -
안식을 위한 안식
한 해가 저물어간다. 언제부터 “한 해가 저물다”란 표현이 관용적으로 쓰였는지 알 수 없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연말이 가까워질 즈음이면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차분해진다. 설렘은 잠시 눌러두고 가만히 올해를 돌아보기 시작해서일까. 꼼꼼한 사람이라면 이미 내년 계획을 세우고 있을 테지만, 기념일 다음날 목격되는 거리 풍경처럼 내게 마무리는 복잡하기만 하다. 좀처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곳곳에 놔두고 온 미련 때문일까, 정리 또한 깔끔하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저물다’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풍경은 어둠일 것이다. 날이 다 저문 뒤에야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처연한 뒷모습을 그려보며 쓸쓸함에 동참하기도 한다. “저무는 인생”이라는 표현이 새삼스럽지 않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사이좋게 나이를 먹으니까.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들뜨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무수한 저묾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음을 깨닫기도 할 것이다.... -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노벨 문학상 수상의 여파로 한강 작가의 소설에 관해 글을 쓰거나 이야기할 일이 생겼다. 담당할 한 권을 택해야 할 때마다 나는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골랐다. 그것이 한강 작가의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초등학생이던 때, 우연히 <80년 5월,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이 진행 중이던 당시의 현장을 촬영한 독일 기자 힌츠페터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영상물이다. 왜 사람을 쏘아 죽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총에 맞아 입이 사라진 시신을 봤다. 그날 이후로 며칠을, 풀숲에 숨어 떨다가 공수부대에 발각되어 끌려가는 악몽에 시달렸다. 열 살에 처음 마주한 압도적인 잔혹을 어른이 되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오랜 시간 관심을 쏟아온 만큼 그 동력으로 잘 쓸 수 있다고 믿었다.<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