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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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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와 삶]주민센터 서고에서
    주민센터 서고에서

    집 근처 주민센터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서고에서 볼만한 책이 있는지 훑어보았다.서고를 나오려고 할 때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책더미 속에서 익숙한 저자들의 책이 보였다. 어느 시절엔 손길이 많이 닿았는지 하나같이 낡은 그 책들 속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친구의 책이 보였다. 그가 쓴 책을 손에 들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무너지듯 의자에 앉았다. 마침 그 쾌적한 방엔 아무도 없어 다행이었다.마지막으로 봤을 때, 의식이 없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들었던 그는 나를 알아보았다. 내가 여러 번의 집들이 초대를 미루던 중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중환자가 되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은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귀에 대고 말했다.“마음 편히 있어. 우리 모두 오만 곳에서 마음 편히 살려고 안간힘을 쓰잖아. 어디에 있든 마음이 편하면 그게 최상이야. 그러니, 마음 편히 있어. 그러면 돼.”친구도 나도 우는 줄도 모른 채 울고 있었다.나는 그를 보러 너...

    2026.08.05 20:13

  • [문화와 삶]필요로부터의 거리
    필요로부터의 거리

    일본 출장 중 기업 내 연구소 한 곳을 방문했다.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었는데, 연구소 소개를 담당한 연구원이 인사말을 하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박사학위 전공이 철학이었던 것이다. 다른 연구원들의 전공과 연구 분야를 봐도 통계나 빅데이터를 다루는 연구자는 없었다. 오히려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의 상호 얽힘에 관한 다소간 추상 수준이 높고 이론적인 분야를 주로 연구하는 구성원이 대다수였다.한국에서 경험해온 바에 따르면, 이런 ‘비실용적’인 연구자가 영리기업 연구소는커녕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출연 연구기관 혹은 대학에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박사과정 학생들에게는 하고 싶은 연구만 하지 말고 그래도 좀 취업 가능성이 있는 공부를 하라는 조언이 일상적으로 통용된다. 그러니 이 소개가 놀랍고 신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리기업이 이런 방식으로 연구소를 운영한다고?놀라움은 배가됐다. 그래도 기업 내 연구소인 만큼 자사 제품 이용자의 만족도 조사나 ...

    2026.07.29 20:39

  • [문화와 삶]말무덤에서 태어나는 말
    말무덤에서 태어나는 말

    글 쓰기 위해서 말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 생활이 그렇다. 글만 써서는 먹고살 수 없어 부단히 전국에 있는 학교, 기관, 도서관, 독립서점, 기업 등을 찾기 때문이다. 강연, 북토크, 작가와의 만남, 북콘서트 등 다양한 이름이 붙지만 결국 말을 해야 하는 자리다. 글을 쓰기 위해서 글 쓰는 일에 관해 말할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글로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빛에 힘입고 돌아오는 쪽은 늘 나다. 글 쓸 용기가 생겼다는 말, 오늘부터 꾸준하게 기록하기 시작해야겠다는 말 덕분에 다시 쓰고 말할 용기를 얻는다.경북도청 강연을 위해 이동하는 길이었다. “말무덤이 있네요?” 운전하던 편집자님이 표지판을 보고 말했다. 그때까지 당연히 말(馬)의 무덤일 것으로 생각했다. 잠시 후 말무덤 표지판이 다시 등장했다. “그 말이 아닌가 봐요!” 말을 따라 눈길을 돌리니 말무덤(言塚)이라고 적혀 있었다. “저기 가볼까요?” 편집자님 덕분에 예정...

    2026.07.22 20:05

  • [문화와 삶]로봇을 일으킨 사람들
    로봇을 일으킨 사람들

    광화문광장 한가운데서 로봇이 춤을 추고 있다. 중국 유니트리 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G1이 프로모션을 위해 이곳에서 춤춘 것이다. 키 130㎝에 이족보행이 가능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40여개의 관절을 이용해 능숙한 춤꾼처럼 움직인다. 사람들의 얼굴에 감탄과 두려움이 서린다. 너무 사람처럼 움직여서다.광장에는 연일 무더위가 이어졌다. 날이 더워도 너무 더웠다. 신명 나게 춤을 추던 로봇이 별안간 멈추고 쓰러진 것도 그때다. 놀라움에 관중이 웅성이던 그때 로봇에 다가간 것은 다름 아닌 홈플러스 노조원들이다. 마찬가지로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위에서 단식농성 중이던 그들은 가지고 있던 얼음물과 쿨패치를 한 아름 안고 달려왔다. 광장에서 춤을 추다 가지런히 쓰러진 로봇의 머리와 가슴, 팔과 다리에 쿨패치를 붙였다. 놀랍게도 얼마 후 로봇은 기운을 차렸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홈플러스 노조의 4차 무기한 단식농성 49일 차에 일어난 일이다.홈플러스는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

    2026.07.15 20:08

  • [문화와 삶]생활문화라는 온기
    생활문화라는 온기

    한곳에서 오래 살다가 바로 옆에서 경희궁이 복원되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경희궁은 우리 골목과 붙어 있고, 궁과 맞대다시피 있는 집 사람들은 쪽문을 이용해 경희궁 뒤뜰로 바로 나간다(그러나 이제는 나도 오래도록 재개발 열풍 속에 있는 한 뼘 거리의 이웃들 사정을 예전처럼 알지 못한다).마치 구멍 같은 그 쪽문으로 나가면 서울역사박물관 쪽으로 빙 둘러가지 않고 바로 덕수궁이 있는 정동길로 접어들 수 있다. 엄청 지름길이다. 이웃들의 간곡한 권유(?)로 나도 한때 그 쪽문을 이따금 이용하곤 했다. 그럴 때면 그곳이 서민들의 절묘한 숨구멍처럼 느껴져서 자꾸 뒤를 돌아보곤 했다.골목 가장 으슥한 곳에는 사람들이 ‘비밀의 정원이 있는 집’이라 부르던 집도 있다. 경희궁 뒷마당이 널찍하게 들어앉아 있지만 마치 사유지 같아 보이던 그곳에는 갈 때마다 애기똥풀꽃이 무성했다. 넓고 평평하고 고요해 왠지 비밀이 묻혀 있을 것만 같던 그 집 주인은 주연급 연예인이 되어도 빠지지 않...

    2026.07.08 20:07

  • [문화와 삶]더 써야 할 이유
    더 써야 할 이유

    한 외국인 연구자로부터 인터뷰를 요청받았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 자리인지도 모른 채였지만, 최근 외국인 학자들과 만났던 일들이 퍽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고, 마침 해외 출장 일정 중 시간이 맞아서 기꺼이 응했다. 알고 보니 그는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주요 연구 분야로 삼고 있었고, 나에게 한국의 청년에 대해 열정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화기애애한 대화 안에서, 나는 내가 어떤 지점에서 끊임없이 곤란함을 겪고 있음을 발견하게 됐다.그는 나를 한국의 청년 연구 전문가로 대해주었다. 따져보면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십여년간 청년에 관한 논문과 보고서를 쓰는 일이 주업이었던 나는 당연히 그런 부담감과 무게에 부딪혀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청년이라는 주제 영역은 언제나 너무 폭넓다. 나 스스로가 연구한 적 없어 문외한에 가까운 부분에 대해서도, 청년이라는 단어가 끼어 있으면 무언가 전문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마주하게 된다. 잘 모른다는 ...

    2026.07.01 20:10

  • [문화와 삶]나를 따라다니는 것
    나를 따라다니는 것

    “왜 자꾸 따라와?” 물음이었지만 실은 느낌표였는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뒤를 다른 한 사람이 따라가고 있었다. 뒤쫓는 느낌은 아니었다. 걸음걸음이 애걸복걸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애절하게 한 걸음, 복받쳐서 또 한 걸음. 뭔가 단단히 잘못한 사람이 짓는 표정이 애처로웠다. 따라가는 사람의 소원은 무엇일까. 아마도 따라잡힌 사람과의 대화일 것이다. 대화의 끝에 용서가 있기를 바라기도 할 것이다. 호기심이 더 커지기 전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따라가는 시선을 멈추었다.자꾸 따라오는 것을 생각하다 나를 따라다니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먼저 호기심. 호기심 덕분에 나는 따라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등장인물의 동선을 따라가고 다음 장면이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하게 되었다. 여기서 저기로 건너뛰고 생각에서 생각으로 넘어가다 예상치 못한 곳에 도착하기도 했다. 따라다니는 사람은 도중에서 발견한 것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어진다.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2026.06.24 20:17

  • [문화와 삶]아침에 일어나는 일
    아침에 일어나는 일

    느닷없이 아침 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기지개 모임. 아침에 눈뜨자마자 세수도 안 하고 줌으로 모여서 기지개를 켜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모임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싶은 누구든 참여할 수 있으며, 그 외에는 거의 내용 없음에 가깝다. 이 공기 같은 모임을 누가 연다는 사실과 누군가 참여한다는 게 놀랍게 느껴질 수 있다. 아침이 내 전매특허도 아니고 누구든 마음먹으면 일어나 할 일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고백하지만 이 모임은 누구보다 나를 위한 것이다.지나온 삶은 잠과의 사투에 가까웠다. 어릴 적에는 쏟아지는 잠과 싸웠다. 버스에서 졸다 종점까지 가는 게 일상이어서 매일 학교에 늦었다. 제시간에 가면 선생님이 놀라서 칭찬할 정도였다. 아무 때나 사라져서는 책상 밑이나 방송실 구석이나 들판 한가운데에서 자는 모습으로 발견됐다. 나이가 들어서는 오지 않는 잠과 싸웠다. 어느 순간부터 말라버린 수도꼭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야 눈이 똘망해졌다. ...

    2026.06.17 20:10

  • [문화와 삶]누군가의 꽃밭
    누군가의 꽃밭

    뒤늦게 혹독하게 인생 공부를 하는 지인들이 있다.그들을 떠올리면 윤달, 윤월, 윤일, 윤초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우주의 질서를 위해서는 그냥 둬도 아무런 상관 없지만, 인간의 질서를 위해서는 우리가 깨닫지도 못하는 1초가 드물게 존재하기도 하는 것처럼 모두에게는 저마다 소급해서 더 버티어야 하는 순간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꽃은 그처럼 버텨야 하는 길고도 지난한 과정을 통해 피어난다.문제는 인간의 성공적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기인된 것이 아닐까 되뇌고 있다. 그들이 잘나가는 사람들을 그다지 부러워하지 않고 뚜벅뚜벅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잘나가는 사람은 높이 우러러봐야 했고, 때때로 부러워해야만 했다. 그것은 자신에게 뭔가가 부족하다는 결핍을 느끼는 행위였을 테고, 느낀 이상 부족함을 채울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사고 패턴이자 행동 패턴이다.요 며칠 이런 생각으로 지내며 지금 힘든 자들의 삶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2026.06.10 20:20

  • [문화와 삶]쉬었음 청년은 쉬지 않는다
    쉬었음 청년은 쉬지 않는다

    연구를 위해 인터뷰를 진행할 때 종종 난감한 순간이 있다. 보통 참여자의 기준을 정해두고 그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을 섭외하게 되는데,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면 아예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다. 얼마 전 진행한 그룹 인터뷰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분명 시작 전에 받은 내용에는 취업 경험이 없으며, 구직활동이나 수입을 위한 업무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청년들의 명단이 있었는데,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몇몇 참여자들은 취업을 한 적이 있거나, 현재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고 있거나, 느슨하지만 구직활동을 하고 있었다.객관식 설문조사에 응답할 때 개인 간 범주 해석을 다르게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개인 소득이 발생하고 있거나, 회사에 취업한 적이 있어도 응답자 기준에서 그것이 ‘취업’으로 여겨지지 않으면 취업한 적이 없다고 답하는 것이다. 구직활동 여부 혹은 취업준비 여부에 관한 기준도 다소 모호하다. 채용공고를 이따금씩 검색해보는 정도로는 구직활동을 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2026.06.03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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