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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 전체 기사 719
  • [문화와 삶]청소광
    청소광

    미국의 케이블채널 TLC에서 방영했던 <My Strange Addiction>은 보편적이지 않은 강박과 중독을 가진 사람들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다. 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플라스틱, 벽돌, 페인트 등을 먹는 이식증을 갖고 있거나 베개, 암석, 남편의 유골과 같은 특정 물건에 집착하고, 귀를 파거나 피부에 앉은 딱지를 떼는 등의 신체 자극 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단순히 기벽 정도로 간주하기 어려운 개인의 병리적 강박 증상들을 ‘보여주는 것’에 충실한 쇼는 강박과 중독을 대하는 특유의 건조한 연출로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다. 완전히 같은 포맷이라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도 개인의 독특한 습벽과 신념을 다루는 <화성인 바이러스>라는 쇼가 있었다. 매운맛에 중독되어 캡사이신 소스를 들고 다니는 화성인, 10년 동안 양치질을 하지 않은 화성인, 매주 연애 상대를 바꿔 만나는 화성인, 애니메이션 캐릭터 베개와 결혼한 화성인까지…. 종영 후 10년이란 시간이 지났지...

    2023.11.15 20:31

  • [문화와 삶] 뜨겁고, 숨차고, 답답한
    뜨겁고, 숨차고, 답답한

    <알바트로스>. 2017년 방영된 TV 프로그램 이름이다. “어제의 청춘이 오늘의 청춘을 만난다”는 콘셉트로 기성세대인 MC들이 일일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고 청년들과 공감하는 예능이었다. 8회에서 진행자 유병재씨는 젝스키스의 장수원씨와 함께 유독 힘들기로 소문난 알바에 도전한다. “헬 알바” “골병만 남” 등의 후기가 넘쳐나는 이 일터는 다름 아닌 고등학교 급식실.새벽에 출근해 “무겁고 뜨거운” 식판을 정리하고 600석이 넘는 홀을 청소한 뒤 1800인분의 점심을 조리하는 과정에 투입된 유병재씨는 뜨거운 불 앞에서 커다란 삽으로 양념에 절여져 한없이 무거워진 제육을 끊임없이 뒤집어야 했던 순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간의 알바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어요. 정말 지옥에 온 것 같았죠. 쉬고 싶다고 멈출 수도 없고.” 그 장면에는 “제육 지옥”이라는 자막이 달렸다.방송국 사람들은 하루의 촬영을 마치고 떠났지만, 그곳이 매일의 일터인 노동자들은 다음날도 똑...

    2023.11.08 20:37

  • [문화와 삶] 가의 인생
    가의 인생

    “가에 대세요, 가에.” 친구 차를 타고 먼 거리 출장길에 올랐다. 숙소 주차장이 꽉 차 있어서 당황하던 찰나, 때마침 밖에 나온 주인분이 말씀하셨다. “가상이요. 가상에 대세요.” 경상도에 왔는데 전라도 사투리가 들려서 잠시 귀를 의심했다. “어디의 가요? 어느 가상이요?” 친구가 다급히 물었다. “저기 가요.” 주인분이 가리킨 곳에는 차 한 대가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밭을 것 같은데요?” “가상에 잘 대면 괜찮아요.” 운전을 잘하는 친구 덕에 무사히 가에 주차할 수 있었다.숙소로 올라오는데 자꾸 헛웃음이 났다. 예의 가상이 가상(假想)이나 가상(假像)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절대 차를 대지 않을 곳이었다. 가상의 적을 만들고 가상의 세계에 빠져든 사람만이 그 공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환영을 보듯 현실 속에서 거짓 형상을 마주하는 사람만이 그 공간에 감히 주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가’라는 단어의 비밀을 하나 ...

    2023.11.01 21:05

  • [문화와 삶] 평론하는 마음
    평론하는 마음

    어느 젊은 시인의 시집 해설을 쓰고 있다. 시집이나 소설집 말미에 실려 해당 책의 방향성을 소개해주고 책에 묶인 각각의 작품이 지니는 의미를 살펴주는 짤막한 글을 본 적이 있을 테다. 이러한 종류의 글을 해설이라고 부르는데, 주로 문학평론가들이 쓴다. 작품론이나 리뷰, 주제가 있는 평론을 쓰는 일보다 해설을 쓰는 일이 언제나 더 어렵게 느껴진다. 여러 저자의 글이 한 권의 책에 함께 묶이는 여타의 글과 달리, 해설은 한 권의 책에 딱 한 편만 실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해설을 잘 쓰지 못하면, 한 작가의 책을 망치게 되리라는 부담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해설 청탁을 받아두고 압박감에 시달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내게 해설을 부탁한 시인을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좀 어색하게 “해설을 잘 써드려야 할 텐데요”라고 말했다. 시인은 그런 부담은 버리라고, 아무렇게나 써주셔도 다 좋다고 답해주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그래도 완성도가 높은 해설이 좋지 않나요?”라고 물...

    2023.10.25 20:29

  • [문화와 삶] 다시 돌아갈 순 없을 거라고 난 생각해
    다시 돌아갈 순 없을 거라고 난 생각해

    나는 늘 걷는 것이 힘들어서 술을 마시고 사람을 만났다. 술이나 낭만적인 기분에 취하면 아무리 많이 걸어도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소주 2병을 마시고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걸었던 날이나 좋아하는 사람과 서촌에서 신촌까지 걸었던 날은 발뒤꿈치 살갗이 벗겨지고 몇번이고 발목을 접질렸지만 아픈 줄을 몰랐다. 술과 사랑은 일종의 축지법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많이 걸어야 하는 날이면 언제나 그것들을 그리워했다.얼마 전 생일엔 <런던은 건축>이라는 제목의 사진집을 선물로 받았다. 런던에 있는 50개의 건물사진과 그에 관한 쉽고 간결한 설명, 짤막한 에세이가 수록된 책이다. 늘어난 아코디언 모양의 다리, 포스트 모던 양식의 양수장, 왕궁과 헛간의 역사가 깃든 대저택까지…. 모든 글은 이 건물들을 관람할 수 있는지도 챕터와 함께 시작되고, 모든 사진은 가까이서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건물의 형태를 포착하고 있으며, 글의 말미엔 이 건물들을 구경하며 걷는 데 소요되는 거리와 ...

    2023.10.18 20:19

  • [문화와 삶] 의존과 돌봄은 ‘쓴맛’
    의존과 돌봄은 ‘쓴맛’

    최근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에서 열린 비판적섬연구학회에 참석했다. 비판적섬연구는 북반구 대륙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남반구 군도의 관점을 세계 인식과 사회 분석에 가져오고자 하는 연구 방법론이다. 여기서 ‘북반구(Global North)’와 ‘남반구(Global South)’는 기존의 ‘1세계’와 ‘3세계’라는 말을 대체해 사용되기 시작한 비교적 새로운 용어다. 처음 1세계, 2세계, 3세계 구분이 등장한 건 냉전시대였다. 서구 자본주의 진영을 ‘1세계’, 동구 공산주의 진영을 ‘2세계’, 이에 속하지 않는 여타의 국가들을 ‘3세계’로 묶었다. 동구권 붕괴 후 2세계란 말은 사어가 되었고, 1세계, 3세계는 각각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의미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3세계 국가들은 대체로 식민지배를 경험했던 터라 오랜 시간 저개발 상태에 머물렀다. ‘저개발’은 결국 타인을 착취해 배를 불려온 제국주의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현실 묘사이자 그들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문화적 낙인이...

    2023.10.11 20:51

  • [문화와 삶] 우리에겐 더 다양한 말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더 다양한 말이 필요하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한가위 연휴가 겹쳐 많은 이들이 따로 또 함께 시청했을 것이다. 연휴의 어느 날 찾았던 식당에서도 아시안게임이 중계되고 있었다. 셔틀콕이 아슬아슬하게 네트를 넘어가고 축구공이 시원하게 잔디밭을 가를 때 입이 떡 벌어졌다. 먹기 위해서 벌린 입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벌어지는 입이다. 각자의 탁자를 앞에 둔 채,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화면으로 쏠려 있다. 탄성이 터질 때 감탄과 탄식이 자리를 뒤바꾸는 건 예사다. 승패가 결정되면 사람들은 다시 탁자 위로 고개를 수그린다. 승부가 나는 것도 아닌데 일제히 손이 바빠진다.경기에 이긴 선수의 탁월한 기량에 손뼉 치면서도, 진 선수의 얼굴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문학은 성공과 승리의 언어로 쌓은 탑이 아니라, 실패와 패배를 껴안고 어렵사리 올린 돌무더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진 선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대회를 위해 갈고닦았을 지난 시간이 짐작되기도 한다. 코트 위에는 땀이 흥건하...

    2023.10.04 20:38

  • [문화와 삶] ‘빨갱이’는 만들어진다
    ‘빨갱이’는 만들어진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검토 중이라던 시기에 육사 측에서 이미 이전을 위한 용역 계약까지 맺은 상태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박정희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한 번도 문제된 적 없었던 홍범도 장군의 과거 행적에 공산주의 프레임을 씌우려는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홍범도 장군이 스스로를 ‘의병’이라 지칭한 것을 번역한 ‘partisan(비정규군)’은 6·25 전쟁 전후에 활동한 ‘공산 게릴라’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지만, 맥락을 생략한 채 홍범도 장군이 빨치산으로 활동했다며, 현재 통용되는 부정적인 의미만을 부각한다. 국방부가 문제 삼는 그의 소련 공산당 이력 또한 윤석열 정부가 경계하는 분단 이후의 공산당과는 거리가 먼 것이며 그의 입당은 독립군 생계유지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더군다나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이들이 참고했다는 군사편찬연구소 자료에는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2023.09.27 18:45

  • [문화와 삶] 여행 대신 모험
    여행 대신 모험

    요즘은 여행 코스를 짤 때 맛집 위주의 동선을 의식적으로 피한다. 식도락 여행은 계획이 쉽고 대체로 높은 만족감을 주지만, 일정을 식사에 맞추다 보니 여행지를 즐길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느껴서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단조로움을 피해 여행 계획을 세운다 한들 그것이 여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식당과 카페가 빠진 계획엔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 드라마 촬영지가 빼곡히 채워진다. 소셜미디어(SNS) 돋보기로 사람들의 사사로운 후기와 사진 명소까지 알뜰하게 훑으면 완성된 계획표에는 여행에서 반드시 의미를 남기고 말겠다는 나의 징그러운 열정만이 가득하다. 여행의 여유는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시작되는 것인데 그 여유를 당겨올 줄 모르는 나는 늘 여행의 시작부터 피로를 느낀다.경부선은 익숙한 노선이지만 기점과 종점만 왕복한 탓에 나에게 충청도는 여전히 미지의 거점으로 남아 있다. 연고가 없어 가보지 못했다는 핑계는 부끄럽지만, 어린 시절의 흔적이 없는 곳을 일부러 방문하는 것...

    2023.09.20 23:01

  • [문화와 삶] 10억원으로 할 수 있는 일
    10억원으로 할 수 있는 일

    8월 말에 제주도에 다녀왔다. 아라동의 작은 서점인 ‘아무튼 책방’과 올해로 24회를 맞은 ‘제주여성영화제’에서 초대를 받아 3박4일 동안 총 4회 강의를 진행하는 일정이었다. 덕분에 오후와 저녁에는 강의를 하고, 밤에는 다정한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아침에는 바다 앞에서 ‘물멍’을 즐기는, 꽤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후로 그 시간을 자꾸만 되돌아보게 되었는데, 첫 계기는 다큐멘터리 <물꽃의 전설>(2023)이었다. 고희영 감독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제주 삼달리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모습을 기록해 엮었다. 작품의 중심에는 87년간 물질을 한 대상군 해녀 현순직 선생과 서서히 말라가는 바다의 슬픈 얼굴이 있었다. 1년에 한두 번 제주를 찾는 외지인에게 동서남북 사방이 모두 다른 제주의 바다는 그저 신비롭다. 이번에 묵었던 서북쪽의 아침 바다는 밝은 쪽빛이었다. 조금씩 물이 빠지는 오후에는 그 푸른색에 살짝 납빛이 돌았고, 바닷물이 다 빠지고 나면 ...

    2023.09.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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