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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 전체 기사 689
  • [문화와 삶]붙드는 이야기
    붙드는 이야기

    최근 한 출판사의 문학상 심사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응모된 단편소설이 1000편이 넘었다. 대상작 1편과 가작 4편 등 총 5편을 뽑았기 때문에 경쟁률 또한 높았다. 나를 포함해 4명의 작가로 꾸려진 심사위원단은 쉼 없이 소설을 읽어야 했다. 심사위원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소설적 완성도를 갖추었는지, 문제의식에 새로움이 있는지, 기성 작가의 스타일을 따라 하지 않고 개성적인 목소리로 서술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삼아 투고작을 읽었다. 사실상 대부분의 응모작은 초반 한두 장만 읽어도 본심에 올릴 만한 작품인지 판단할 수 있었다. 끝까지 다 읽는다고 해도 그 결정이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한때는 나도 투고자였으므로 그 절실한 마음을 안다거나 하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에 붙들려 있었다.효율적으로 심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본심에 올릴 작품을 고르는 데는 큰 어려움이 ...

    2025.11.05 22:31

  • [문화와 삶]글방이 쏘아올린 작은 공
    글방이 쏘아올린 작은 공

    올 한 해 내가 가장 열심히 한 것은 14명의 책을 준비한 일이다. 나는 금방 알았다. 내 책을 준비하는 것보다 즐거운 것이 남의 책을 준비하는 일이라는 것을. 내 직업은 글방지기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글방이라는 곳을 지키는 사람이다. 어떤 마을의 작고 신비로운 우물을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것으로 밥을 사 먹고 월세를 내고 있으니 직업도 맞다. 대부분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직군일 텐데, 그저 그게 내 천직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사람들은 내 직업을 작가라고 알고 있겠지만,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나는 평생 정해진 꿈도 진로도 없었다.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헤매다 대학 시절에 진로 적성검사를 했을 때 추천 직업으로 감옥 간수가 나왔다. 절반은 움직이며, 절반은 움직이지 않는 일이 적성에 맞을 거라는 게 이유였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기함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간수가 적성에 맞다면 글방지기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는 생각이다. 말이 수호신이...

    2025.10.29 21:09

  • [문화와 삶]씨앗으로 미래를 꿈꾼 퓨리오사와  무한나
    씨앗으로 미래를 꿈꾼 퓨리오사와 무한나

    핵전쟁으로 사막화된 22세기, 물과 화석연료를 독점한 독재자 ‘임모탄’이 폐허 위에 군림하고 있다. 호위무사인 ‘퓨리오사’는 압제를 견디다 못해 임모탄을 배신하고 고향인 ‘그린랜드’를 향해 탈출한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의 시작이다.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생명이 약동하던 그곳도 이미 사막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푸르른 땅에서 농사를 짓던 ‘어머니들’은 이제 바이크 전사가 되었다. 결국 임모탄을 제거하고 세계를 해방시키기로 한 퓨리오사. 영화는 그가 독재자를 처단하고 ‘시타델’의 요새로 오르며 끝난다.영화는 세계의 해방을 총알이 아닌 씨앗에서 본다.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퓨리오사가 끝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건 ‘어머니들’이 지켜낸 씨앗이었다. 씨앗이 품은 내일이란 생명이 다시 자랄 수 있는 땅과 그로부터 먹거리를 얻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이 공존하는 세계, 그 ‘오래된 미래’가 열어주는 자급과 자치의 삶이다. 10년이나 ...

    2025.10.22 21:20

  • [문화와 삶]길치의 기쁨
    길치의 기쁨

    길눈이 몹시 어둡다. 낯선 곳에 가면 신경이 곤두선다.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지만 그럴 때일수록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모르면 물으면 된다. 알 것 같아도 확인차 다시 물으면 된다. 모임 자리에 가면 공간을 죽 둘러본다. 머릿속으로 나름의 지도를 만드는 셈이다. 매장 밖에 화장실이 위치한 경우라면, 볼일을 보고 나온 다음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머리가 바빠진다. “나와서 오른쪽, 쭉 가서 왼쪽으로 돌기.” 나직하게 혼잣말하며 화장실에 들어선다. 앞뒤에 큰 문이 나 있는 대형 상가에서 길을 잃은 뒤 생긴 버릇이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얘기지만 당사자로서는 진지할 수밖에 없다.얼마 전 <디어 올리버>를 읽었다. 신경생물학자 수전 배리와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가 나누었던 편지에 수전의 이야기를 덧대어 만든 책이다. 평생 세상을 평면으로 바라보았던 수전은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입체시(立體視)를 획득하게 된다. 학계에도 보고된 적 없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놀라운 시...

    2025.10.15 21:39

  • [문화와 삶]밀고 두드리기
    밀고 두드리기

    초고를 쓰는 일보다 그것을 고쳐 쓰는 일이 더 어렵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나는 원고 작업을 할 때면, 퇴고(推敲)의 늪에 갇혔다고 느끼곤 한다. 고쳐쓰기는 말 그대로 늪이다. 정해진 끝이 없기 때문이다. 아주 약간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한 글자 바꿔놓고 뉘앙스의 차이를 곰곰 비교하면서 종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글은 자꾸 보다 보면 너무 익숙해져서 수정하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낭독하기 어려운 부분은 리듬감을 살려 다시 가다듬는다.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말처럼, 글이란 완성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마감 기한이 없었다면 내가 늘어놓은 글자들에 여태 붙들려 있었을 게 분명하다. 한데 내 선에서 단념하여 송고해 버린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출판사로 전달된 다음에는 편집자 선생님들이 수정 표시를 빼곡히 채운 교정지가 넘어온다. 문법적 오류가 있다기보다는 여러 시선에서...

    2025.10.01 22:29

  • [문화와 삶]아임 인 노웨어
    아임 인 노웨어

    엄마가 사는 시골에 무심코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지 못한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묻는다. “어디 사세요?” 그때마다 시골에 살고 있다고 답하면 도시 사람들은 말한다. “서울에 없었다고요?” 시골 사람들은 말한다. “여기 산다고요?” 도시 사람들은 워낙 정신이 없으니까 그렇다 쳐도 시골 사람들에게는 섭섭함을 느낀다. 벌써 이 동네에 산 지가 3년째인데 마주칠 때마다 “언제 내려왔냐?”고 묻는 것이다.사람들은 SNS 때문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면서 보이는 행사의 대부분은 수도권에서 이뤄졌다. 실상은 겨우 한 달에 두 번 정도만 올라가서 일을 보고 내려오는 것이지만, 평소 일상을 자주 공유하는 편이 아니기에 서울에 있는 것이 주로 ‘보여지는’ 것이다.매번 같은 질문이 반복되자 나마저도 궁금해졌다. 나의 존재는 어디에 머무는가? 나는 365일 중 300일은 시골에 있다. 이곳의 시장에서 장을 보고 이곳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이곳의...

    2025.09.24 21:22

  • [문화와 삶]개 고양이 대학살
    개 고양이 대학살

    “우리는 가자지구를 완전히 포위했다. 전기, 식량, 물, 연료, 모든 것이 다 차단될 것이다. 우리는 ‘인간 짐승들(human animals)’과 싸우고 있고, 그에 맞게 행동할 것이다.”2023년 10월,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이었던 요아브 갈란트의 말이다. 비인도적 행위에 대해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을 죽이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이처럼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건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사용했던 문화전략이다.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집권한 나치가 독일 국민들이 ‘인종 청소’에 동참하도록 선동한 것은 유대인을 철저하게 멸시했기에 가능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데 동원됐던 그 무기를 고스란히 활용했다.인간을 짐승 취급하는 것만큼이나 비극적인 건 짐승은 언제든 짓밟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인간 짐승들과 싸우고 있다”는 말에서 우리는 인간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동물 학살의 뿌리를 볼 수 있다.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없을 때도 수많은 ‘짐승’...

    2025.09.17 20:54

  • [문화와 삶]나를 궁금해하기
    나를 궁금해하기

    이런저런 자리에서 말할 기회가 생겼다. 처음 무대 위에 올랐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마이크를 손에 쥘 때면 적잖은 긴장감이 샘솟는다. 기분 좋은 팽팽함이다. 이 팽팽함이 현장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대부분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말하는 중간중간 온기 가득한 눈빛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유독 불편한 자리는 사람을 얼어붙게 하고 편하기만 한 자리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말실수가 발생한다. 적당한 거리감이 오히려 마음을 늦추지 않게 한다. 이야기하는 도중 엉뚱한 길에 빠진 나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게 해주는 것도 바로 긴장감이다. 정신을 바짝 차린 뒤 다시 궤도에 오를 때면 매번 같은 질문이 싹튼다. 이분들은 왜 여기 오셨을까.내 명함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얼마 전에는 청중 한 분께 조심히 물었다. “최근에 살아 있다고 느낀 순간이 언제였나요?” 골똘히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 답이...

    2025.09.10 20:52

  • [문화와 삶]도움받지 않을 권리
    도움받지 않을 권리

    최근 미국 올랜도의 디즈니월드에 다녀왔다. 동심을 자극하는 캐릭터들, 미래를 꿈꾸게 하는 불꽃놀이,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어우러진 풍경까지, 설렘의 연속이었다. 그중 가장 반가웠던 것은 휠체어를 탄 사람들도 큰 어려움 없이 이 공간을 함께 즐긴다는 점이었다. 엎드린 자세로 타야 하는 롤러코스터에도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개조된 칸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디즈니월드로 가는 셔틀버스를 탈 때면 기사님은 언제나 휠체어에 탄 손님들 자리를 먼저 마련했고, 줄을 서서 기다리던 승객들은 이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이러한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닐 테다. 1992년부터 시행된 ‘미국장애인법’은 대중교통과 공공시설 이용 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도록 이들의 이동권과 접근권을 보장하고 있다. 실로 미국에는 어떤 건물이든 대체로 출입문 자동 개방 버튼이 있었다. 허리쯤 오는 낮은 위치에 있는 그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아무리 두껍고 무거운 문이라도 활짝 열렸다. 보도블록이나 식당 출입구...

    2025.09.03 21:02

  • [문화와 삶]오늘의 날씨
    오늘의 날씨

    내가 처음 자취를 했던 곳은 상가 건물의 꼭대기 층으로, 매일 지상철 소리가 들렸다. 그 집에 살 때 처음으로 휴학계를 냈다. 아빠가 집을 떠나고,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고, 나는 등록금을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직서를 내듯 교수님께 휴학을 선언했고 면담실을 나왔다. 학비를 벌어서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형마트에 입점해 있는 일본 생활용품 매장에 취직했다.나는 그 브랜드를 좋아했다. 비싸서 살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시내에 나가면 줄곧 그 브랜드의 매장을 둘러보곤 했다.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 정갈한 디스플레이, 아늑한 분위기까지. 가능하다면 매장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직원이 되고 알게 된 것은 매장 직원은 그 브랜드의 옷을 입고 일해야만 한다는 것, 그 옷은 본인이 직접 구입해야 한다는 것, 구매 시 직원 할인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통장에 남은 7만원에서 2만원을 뽑아 제일 싼 티셔츠를 샀다. 다행히 바지는 언젠가 샀던 ...

    2025.08.2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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