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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 [문화와 삶]안티페미니스트의 프레임 비틀기
    안티페미니스트의 프레임 비틀기

    일본 에이브이(AV) 배우들이 참여하는 ‘성인 페스티벌’이 화제다. 주최 측인 플레이조커는 이 행사가 배우들의 패션쇼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AV 산업 홍보행사라고 보면 된다. 수원시와 파주시, 서울시, 서울 강남구 등이 행사 개최를 불허하면서 일단 4월 행사는 취소된 상태다.한국에선 포르노 제작, 유통이 불법이고, 일본산 포르노의 다른 말인 AV 역시 그렇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불법 동영상 시장은 물론, 특정 장면을 편집하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IPTV 등을 통해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수정판 AV 시장 역시 그 규모가 엄청나다. 이처럼 AV가 버젓이 유통되고 있고, 또 일본 AV 배우들의 한국 진출이 본격화된 현실에서, 함께 판단의 가이드를 잡아갈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건 2023년, 유튜브의 ‘탁재훈의 노빠꾸’나 넷플릭스의 ‘성인물’ 등을 보면서였다. 일본 AV 산업의 소위 ‘일류 배우’들이 한국 예능에 출연해서 ‘건강하고 즐거운 A...

    2024.04.24 20:54

  • [문화와 삶]노란 리본은 오늘도 노랗다
    노란 리본은 오늘도 노랗다

    친구들과 만날 때면 대화 도중 ‘옛날’이 자주 소환되곤 한다. “옛날에는 그랬었잖아.” “옛날이랑 달라졌네?” 같은 형태로 주로 쓰인다.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 전을 가리키는 옛날이다. 옛날을 많이 쓰면 쓸수록 기성세대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니, 친구가 이렇게 고쳐 말한다. “그냥 속 시원히 꼰대라고 이야기해. 우리도 옛날에 선생님들을 가리켜….” 말을 잇지 못하는 이유가 느닷없이 선생님이 떠올라서는 아닐 것이다. 또다시 말 속에 옛날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옛날 없이 이야기가 진행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옛날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음은 분명한 듯하다. 어제의 소식은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한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지난주의 만남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공원에서 만난 아이는 숙제 다 했느냐는 아빠의 물음에 “옛날에 다 했어요!”라고 대답한다. 진작을 강조하는 과장법일 테지만, 이는 시시각각 급변하는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이기...

    2024.04.17 22:01

  • [문화와 삶]이분되지 않을 자유
    이분되지 않을 자유

    한국의 대표 시인으로 손꼽히는 정지용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 설령 그를 잘 모른다 해도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향수’의 구절만큼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몇년 전, 정지용의 문학을 주제로 하여 학위논문을 쓰던 때에는 시인이 멀게만 느껴졌었다.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정지용은 다작하였고, 일본어와 한자, 영어로도 글을 썼기에 연구자의 입장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의 나는 다수의 작품과 방대한 양의 선행 연구를 읽어내며 문학사적 의미를 유추하는 데 급급했다.오랜 시간 그를 연구하다 보니, 최근에는 관점이 달라졌다. 글 뒤에 살아 숨 쉬는 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지용은 문학이 예술성과 자율성, 정치성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던 염결한 시인임에도, 일제강점기에는 검열과 탄압을 견뎌야 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소위 ‘빨갱이’로 몰려 곤욕을 치러야 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광복을 맞이하여 이제는 자유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뻐하던 그가 해방 이후에도 사상 ...

    2024.04.10 22:54

  • [문화와 삶]4월의 흔한 풍경
    4월의 흔한 풍경

    시장 초입의 버스정류장에서 한 할머니와 버스기사가 실랑이를 벌였다. 할머니에게는 아직 정류장까지 오지 못한 세 명의 일행을 위해 시간을 끌어야 하는 미션이 있었고, 버스기사에게는 대부분이 노인인 승객들을 데리고 이 복잡한 시장통을 무사히 벗어나야 하는 미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목표가 충돌하니 언쟁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할머니는 자기 말을 무시하고 자꾸만 문을 닫으려 하는 기사가 야속했고, 버스기사는 다리를 계단에 올린 채 막무가내로 기다려달라 조르는 할머니의 행동에 화가 났다.‘참전하겠습니까?’ 눈앞에 상태창이 깜빡였다. 지체 없이 ‘YES’ 버튼을 누른 것은 노인을 공경하는 젊은이의 마음보다, ‘저 남자가 여자라고 막 대하네?’ 하는 ‘페미’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버스기사가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느냐, 마느냐, 다투는 순간에 내 참전의지는 무엇으로 오해를 받아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 또한 배차 간격이 큰 그 버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를 부축해 ...

    2024.04.03 20:33

  • [문화와 삶]남자를 배신한 자, 누구인가
    남자를 배신한 자, 누구인가

    “테스토스테론이 2016년을 접수했다.” “여성혐오가 이겼다.” “세상 천지에 백인 남자들의 승리가 울려 퍼졌다.”트럼프가 대통령에 선출된 직후 미국 언론이 쏟아낸 말들이다. 2016년 대선은 미국에서 전례 없는 성별 전쟁을 불러왔고, 언론은 앞다퉈 트럼프 당선을 미국 백인 남성의 폭거이자 승리로 기록했다. 극우 포퓰리스트 관종 대통령의 탄생에 깜짝 놀란 언론인들과 정치 전문가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세운 국민, 특히 백인 노동자 계급 남성에 대한 성토를 이어갔다.그런데 이 난리법석을 지켜보며 “이건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닌데? 20년 전에 내가 <스티프트: 배신당한 남자들>(1999)에서 자세히 소개했잖아”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다.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였다.그는 2019년에 출간된 <스티프트> 20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2016년 대선 결과는 성별 대결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백인 남성은 언제나 민주당보다 공화당을 선호했고,...

    2024.03.27 22:15

  • [문화와 삶]‘혹시나’의 힘
    ‘혹시나’의 힘

    친구 둘과 약속이 있어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약속 시간까지 30분쯤 여유가 있어 랩톱을 켰다. 뭐라도 쓸 수 있을까 기대한 건 아니었다. 예열만 하다 달아오르지 못한 채 랩톱을 덮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글 창을 띄워두고 포털에 접속했다. 내 글쓰기 루틴이다. 총선, 선거법 위반, 의료 대란, 대국민 사과, 잡히지 않는 먹거리 물가, 빈집 싸움, 막말 논란…. 분노와 우울을 유발할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포털이 제공하는 뉴스의 제목을 일별한 후, 개중 하나를 골라 클릭했다. 기사 하나를 다 읽었을 때 친구 A가 도착했다.“헐떡이면서 오네. 무슨 일이야?” “먹고사느라. 넌 글 쓰고 있었던 거야?” 얼굴이 빨개진다. “아니, 기사 읽고 있었어.” “나는 요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다.” A는 작은 식당을 개업했다가 얼마 전 배달 위주로 영업 방향을 바꾼 참이었다. 때마침 친구 B가 왔다. ...

    2024.03.20 20:11

  • [문화와 삶]존재와 부재의 증명
    존재와 부재의 증명

    이달 초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로기완>(2024)은 살기 위해 벨기에로 밀입국한 탈북인 ‘기완’의 삶을 들여다보는 조해진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각색한 영화다.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으로의 성급한 귀결은 배우들의 호연으로도 잘 봉합되지 않는 듯해 아쉬웠지만, 기완이 낯선 땅에서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분투하는 장면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는 자신이 북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생의 굵직한 사건들을 진술한다. 이때 어머니의 시신을 병원에 넘기고 돈을 마련했던 비극적인 사연까지 이야기하게 되는데, 해당 병원이 그러한 불법적인 행위를 한 적 없다고 발뺌하자 기완은 궁지에 몰린다. 설상가상 증인으로 나서주겠다던 공장 동료 선주는 그를 배신하고 로기완이 정치적 망명이 인정되는 북한 사람 행세를 하여 난민 지위를 획득하려는 조선족이라고 거짓 진술한다. 기완은 난민의 자격을 갖추었지만 이를 입증하지 못해 고초를 겪는다. 이는 영화 <나, 다니엘 ...

    2024.03.13 22:15

  • [문화와 삶]국민의 방송
    국민의 방송

    지각을 하면 오리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는 벌을 받았다. 언덕 밑에서부터 학교 본관 건물이 있는 곳까지 쪼그려 앉아 귀를 잡고 걸으면 30분이 걸렸는데, 가장 큰 고비는 언제나 마지막 10분 코스였다. 마지막 고지를 오를 땐 교문 너머 건물이 보였다 말았다 했다. 눈앞에 끝이 보이면 초인적인 의욕이 생기기 마련인데 나는 늘 그 지점에서 맥이 풀리곤 했다. 엉덩이를 옮기려 몸을 일으킬 때마다 건물 정면에 붙은 문장이 보이던 탓이었다. ‘참되고 어진 어머니가 되자.’ 여기서부터 스무 걸음. 눈 딱 감고 조금 더 기어가면 되는데 나는 번번이 교문 앞에서 주저앉았다. “선생님 못하겠어요. 이게 제 한계예요.”시간 안에 결승점을 통과하지 못하면 구령대에 일렬로 서서 다시 손바닥을 맞았고 선도부가 벌점도 매겼다. 이미 온몸이 후들거려 걸을 수도 없는데 폭행도 당하고 전과까지 생기다니 지나치게 가학적인 것 아닌가? 온갖 불만을 터뜨리며 교실로 이동할 땐 늘 창밖엔 같은 재단의 남학교가 보였다...

    2024.03.06 20:27

  • [문화와 삶]후회 없이, 함께, 꿈을 꿀 수 있을까?
    후회 없이, 함께, 꿈을 꿀 수 있을까?

    여러분은 영화를 좋아하시는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대답이 쉽지 않을 것이다. 내 경우엔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열광했던 영화들이 있었고, 그런 영화와의 마주침이야말로 내가 삶에서 발견한 행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기억에 남는 대사는 어떤가?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꼽는 것도 간단하진 않다. 너무 많으니까. 그런데 최근 우리의 기억을 물화한 놀라운 책이 한 권 나왔다. 이름 하여 <대사극장>. 총 850여 쪽에 달하는 이 작업에 붙은 부제는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이다. 출간의 변은 이렇다. “한국영화의 전통하에서 대사는 시대와 인간을 드러내는 압축적인 지도의 역할을 해왔다.”책은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영화에서 기억할 만한 대사들을 큐레이션 한다. 첫 대사는 “선생님은 제 마술에 걸린 거예요”(<운명의 손>, 1954)다. 이로부터 “가자… 가자!”(<오발탄>, 1961),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군”(<별...

    2024.02.28 20:16

  • [문화와 삶] 한 수 접는 마음
    한 수 접는 마음

    동네 카페, 앞 테이블에 앉은 아빠와 아이가 종이접기에 한창이다. 동영상을 보고 따라 접는 모습에서 신중함과 열정이 동시에 느껴진다. “방금 어떻게 한 거야? 다시 앞으로 좀 돌려보면 안 돼?” 손이 느린 아이가 아빠에게 부탁을 한다. “실은 아빠도 제대로 못 봤어. 다시 함께 보자.” 마음 너른 아빠가 아이에게 속삭인다. ‘다시’와 ‘함께’에 힘입어 아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영상 속 실력자가 종이 접는 모습을 바라본다. 머릿속으로는 종이를 열심히 접고 있는 1분 뒤 자기 모습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어릴 적 빳빳한 종이를 보면 양가감정이 들었다. 그 팽팽함에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에 흠집을 낼지 싶어 조바심이 일었다. 가만 보고만 있으면 좋으련만, 빳빳한 종이는 자신을 어서 만지라고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종이 위에 큼지막하게 글씨를 써서 이름표를 만들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적어 남몰래 건넬까. 누가 보면 안 되니까 종이를 절반 접어서 줘야겠지. 내...

    2024.02.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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