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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체 기사 696
  • [문화와 삶]그들은 자기 죄를 알지 못하나이다
    그들은 자기 죄를 알지 못하나이다

    2024년 12월3일 밤 갑작스레 불법적인 계엄이 선포되어 온 국민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국회를 지켜준 사람들,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선 의인들, 발 빠르게 대처한 국회의원들, 불합리한 명령에 미온한 반응을 보인 군인들 덕분에 계엄은 해제됐다. 밤새 창밖의 헬기 소리를 들으며, 서슴없이 ‘처단’을 운운하는 포고령을 보면서 나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저번 주에 송고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글은 출간되지 않겠구나, 어쩌면 이전에 썼던 글이 문제가 되어서 변고가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숨죽여 뉴스만 보았다. 용기를 내어 국회로 달려나가준 이들에게 오래도록 죄스러웠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분들께 빚을 졌다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했다.이후 국회 앞에서 열리는 탄핵 집회에는 거의 매일 참여했다. 1차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국회의원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퇴장하는 105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국회 앞에 모인 사람들과 “투표해, ...

    2024.12.18 21:10

  • [문화와 삶]드라이브 마이 카
    드라이브 마이 카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엄마의 얼굴이다. 안방 문을 열었을 때 엄마는 침대에 걸터앉아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비상계엄령 선포됐대.” 엄마는 웃느라 흘러나온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알아.” 그러곤 다시 웃기 시작했다. “그런데 웃음이 나와?” “웃음만 나와.” 그 웃음소리가 집 안에 비상하게 울려 퍼졌다.12월3일의 엄마는 이른 저녁부터 졸음이 몰려왔다. 몸이 축 처지고 무거운 것이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았다. 잠이 든 엄마를 깨운 것은 옆집 이모의 전화였다. 소식을 들은 그때부터 터지기 시작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나의 어머니는 1958년생으로, 열두 살 때부터 공장 노동자가 되어 전태일 열사를 알게 된 후 광장으로 뛰쳐나가 정신만큼은 한 번도 집에 돌아온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좋은 생리대나 나에게 알맞은 사이즈의 속옷은 몰랐지만, 근 300년간 일어난 세계사를 앉은 자리에서 읊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를 ...

    2024.12.11 20:45

  • [문화와 삶]주디스 버틀러의 초현실적 한국 방문기
    주디스 버틀러의 초현실적 한국 방문기

    12월3일 새벽, 인천공항 6번 게이트 앞.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자그마한 사람이 온화한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넸다. “이른 새벽부터 움직이게 해서 미안해요. 수고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는 악수를 청하고는 내 차 뒷자리에 올라탔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였다. 그는 “민주주의와 인문학의 위기”라는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버틀러 교수가 내 차에 타고 있단 사실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단순히 그가 ‘빅네임’이라서가 아니었다. 10여년 전 <젠더트러블>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낀 충격과 흥분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에서 평생 느껴왔던 어떤 불편함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바로 ‘젠더 수행성’이라는 개념이다.젠더 수행성이 뭘까? 누구는 이것이 세상을 망치는 ‘사탄 언어’라며 반발하지만,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다. 이렇게 한번 설명해 보자.대한민국에선 이제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 성별고지가 가능해진다. 12월2일...

    2024.12.04 20:58

  • [문화와 삶]안식을 위한 안식
    안식을 위한 안식

    한 해가 저물어간다. 언제부터 “한 해가 저물다”란 표현이 관용적으로 쓰였는지 알 수 없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연말이 가까워질 즈음이면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차분해진다. 설렘은 잠시 눌러두고 가만히 올해를 돌아보기 시작해서일까. 꼼꼼한 사람이라면 이미 내년 계획을 세우고 있을 테지만, 기념일 다음날 목격되는 거리 풍경처럼 내게 마무리는 복잡하기만 하다. 좀처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곳곳에 놔두고 온 미련 때문일까, 정리 또한 깔끔하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저물다’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풍경은 어둠일 것이다. 날이 다 저문 뒤에야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처연한 뒷모습을 그려보며 쓸쓸함에 동참하기도 한다. “저무는 인생”이라는 표현이 새삼스럽지 않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사이좋게 나이를 먹으니까.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들뜨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무수한 저묾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음을 깨닫기도 할 것이다....

    2024.11.27 21:06

  • [문화와 삶]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노벨 문학상 수상의 여파로 한강 작가의 소설에 관해 글을 쓰거나 이야기할 일이 생겼다. 담당할 한 권을 택해야 할 때마다 나는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골랐다. 그것이 한강 작가의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초등학생이던 때, 우연히 <80년 5월,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이 진행 중이던 당시의 현장을 촬영한 독일 기자 힌츠페터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영상물이다. 왜 사람을 쏘아 죽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총에 맞아 입이 사라진 시신을 봤다. 그날 이후로 며칠을, 풀숲에 숨어 떨다가 공수부대에 발각되어 끌려가는 악몽에 시달렸다. 열 살에 처음 마주한 압도적인 잔혹을 어른이 되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오랜 시간 관심을 쏟아온 만큼 그 동력으로 잘 쓸 수 있다고 믿었다.<소...

    2024.11.20 20:05

  • [문화와 삶]복싱핑을 그리며
    복싱핑을 그리며

    나는 시골 학교의 보조 교사다. 내 고객님들은 초등학생이며, 그중에서도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이다. 나는 그런 그들을 도와줄 충분한 능력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세상을 따라가기 어려워하는 어른이다. 나는 아침마다 분모와 분자를 모르는 5학년 친구 옆에 앉는다. 친구는 내가 오면 옆자리를 정돈하며 ‘내 선생님 왔다’라고 말한다. 내가 “이것이 분모고 이것이 분자야”라고 말한 뒤 “무엇이 분모라고?” 물으면 그는 웃는다. 그렇게 수줍게 웃는 얼굴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발그레한 볼이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것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것은 ‘모른다’라는 뜻이다. 서울 어딘가에는 유치원 때 이미 한글을 떼고 영어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있고, 충북 어딘가에는 5학년임에도 한글만 보면 속이 메스꺼워지는 아이가 있다.‘정말 하고 시펏다’라는 문장을 ‘하고 싶었다’라고 고쳐줄 때 그는 비밀을 말하듯 속삭인다. “선생님, 저는 유튜버 할 거니까요.” 그럼 나는 말한다. “일단 분수를...

    2024.11.13 19:51

  • [문화와 삶]닭과 함께 늙어갈 수 있을까
    닭과 함께 늙어갈 수 있을까

    아직도 있을까? 40년 전,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학교 정문 앞에 좌판을 깔고 병아리나 메추리 등을 파는 이들이 있었다. 상자 안에 가득 담긴 채 삐약거리는 이 생명체들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다. 한 마리에 500원, 당시에 아이스크림 다섯 개 정도의 가격이었다. 나는 가끔 어머니의 꾸중을 불사하고 구매를 감행했다. 한번은 병아리를 사다가 큰 사과상자 안에 작은 상자들을 넣어주고는 “이건 침대, 이건 책상” 하면서 집을 만들어 주었다. 마당이 없는 아파트에서 살았으므로, 상자만이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거주지였다. 하지만 잘해준답시고 넣어준 작은 상자에 걸려 넘어진 병아리는 다리가 부러졌고, 다음날 아침 차갑게 식어 있었다.하지만 꼭 그렇게 죽이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병아리가 ‘중닭’이 되어 털갈이를 할 때까지 함께 산 적도 있었다. 그쯤 되어선 어머니도 어쩔 수 없어서(내가 데려온 병아리를 먹이고 돌보는 건 결국 ‘집 안의 노동자’였던 어머니의 몫이었...

    2024.11.06 20:22

  • [문화와 삶]어떤 단어는 삶을 관통한다
    어떤 단어는 삶을 관통한다

    20년 전의 일이다. 집에 가는 길에 문득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블로그를 개설해야겠어!” 나지막한 음성이었지만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그 길이 오르막길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비탈진 길을 걸을 때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니까. 그 힘이 간혹 난데없는 결심을 싹 틔우기도 하니까. 내가 살던 집은 언덕에 있었다. 일명 고시촌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보증금과 월세가 조금씩 내려가던 길이었다. 안온해 보였지만 속을 까뒤집어보면 치열함으로 들끓는 곳이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그 길을 오르면서 나는 언젠가는 내려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블로그를 미래의 새로운 둥지로 여겼던 것일까. 집에 오자마자 그 결심을 곧장 실행으로 옮겼다. 2004년 5월18일이었다. 당시에 블로그를 설명하는 글에 나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나는 나의 모티프를 쥐고 있어요.” 이는 내 간절한 바람이기도 했다. 3년 차 시인이었지만, 내가 시인인 걸 아는 이는 극소수였다. 나는 무명이었기 ...

    2024.10.30 21:07

  • [문화와 삶]얼어붙지 않는 한강과 한국문학
    얼어붙지 않는 한강과 한국문학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벅찬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동료 작가들, 문학계 종사자들, 선후배 연구자들, 학생들과 서로 축하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한강 작가님이 이룬 쾌거이지만, 모두가 제 일처럼 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매일매일이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축제 현장 같다.왜 이제 와서, 뒤늦게 한강 작가의 책을 읽냐는 비판도 있다고 한다. 다소 황당한 지적이다. 모든 나라의 작가와 작품을 알 수 없듯이, 한국 독자도 한국의 작가를 모를 수 있다. 구태여 수상작을 궁금해하는 예비 독자들을 배척할 필요는 없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나면 세계 각국의 독자들이 선정된 작가와 그의 작품을 궁금해하면서 따라 읽곤 한다. 미리 알고 읽어두었다면 즐겁고 뿌듯한 일이고, 읽어보지 않았다면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면 될 일이다. 읽어 본 사람과 읽어볼 사람들이 각자의 다채로운 감상을 즐겁게 나누면 그만이다. 한 사람이라도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한강 작가님...

    2024.10.23 21:00

  • [문화와 삶]소가 우는 마을
    소가 우는 마을

    소가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소스라치듯 몸을 일으켰다. 사이렌처럼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매 하는 평범한 울음이 아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생명이었지만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온몸이 부서지라 외치는 피맺힌 절규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수백 마리가 하나 되어 죽을 힘을 다해 울고 있었다. 듣고만 있어도 내 몸이 절망으로 울리는 듯했다. 뺨이라도 맞은 듯 볼이 얼얼했다. 불이라도 났나 싶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마을 전체가 절망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산과 들이 말없이 푸르렀다.내 이웃은 소다. 나는 요아정(요거트 아이스크림 브랜드)은 없지만 소는 있는 땅에서 산다. 삶에 여러 소음이 있지만, 소가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깰 줄은 몰랐다. 삶에 여러 이웃이 있지만, 소의 이웃으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이사를 왔더니 바로 옆집이 소의 집, 우사였다. ‘소음이 너무 커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으니 주의해 주세요’ 따위의 쪽지를 전하기에는 난감한 이웃이다. ...

    2024.10.1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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