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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체 기사 697
  • [문화와 삶]소가 우는 마을
    소가 우는 마을

    소가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소스라치듯 몸을 일으켰다. 사이렌처럼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매 하는 평범한 울음이 아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생명이었지만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온몸이 부서지라 외치는 피맺힌 절규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수백 마리가 하나 되어 죽을 힘을 다해 울고 있었다. 듣고만 있어도 내 몸이 절망으로 울리는 듯했다. 뺨이라도 맞은 듯 볼이 얼얼했다. 불이라도 났나 싶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마을 전체가 절망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산과 들이 말없이 푸르렀다.내 이웃은 소다. 나는 요아정(요거트 아이스크림 브랜드)은 없지만 소는 있는 땅에서 산다. 삶에 여러 소음이 있지만, 소가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깰 줄은 몰랐다. 삶에 여러 이웃이 있지만, 소의 이웃으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이사를 왔더니 바로 옆집이 소의 집, 우사였다. ‘소음이 너무 커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으니 주의해 주세요’ 따위의 쪽지를 전하기에는 난감한 이웃이다. ...

    2024.10.16 21:29

  • [문화와 삶]대학살들의 역사
    대학살들의 역사

    “Never Again(다신 안 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력과 살상 행위를 묵인하는 논리다. 이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기억하면서 다신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유대인의 생명과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일종의 ‘판단 원칙’으로서 작동해 왔다.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세계적 철학자가 이를 옹호하기도 했거니와, 내 주변에서도 이에 심정적으로 동조한다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유대인 대학살이 또 다른 학살을 정당화할 정도로 인류 문명사에 있어 그토록 특별한 일일까?얼마 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비판적섬이론학회’에 참가한 영국의 비판이론가 마크 데브니는 유대계 독일 철학자인 아도르노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아도르노는 근대적 기획인 ‘이성’이 어떻게 홀로코스트와 같은 야만을 초래하게 되었는가를 비판하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를 서구 유럽의...

    2024.10.09 20:53

  • [문화와 삶]숨은 보금자리 찾기
    숨은 보금자리 찾기

    며칠 지역 출장을 다녀왔더니 온몸이 찌뿌듯하다. 씻고 침대에 걸터앉으니, 여기가 내 누울 자리구나 싶다. 침대 옆에 놓인 읽다 만 책을 편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흘 전으로 자분자분 돌아갈 시간이다. 읽고 있던 책은 오수영이 쓴 <사랑하는 일로 살아가는 일>(고어라운드, 2024)이다. 둘 다 우리가 매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누군가 “제대로?”라고 물으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는 일의 온도와 살아가는 일의 채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뜻대로 사랑하고 잘 살아가고 싶은 계획은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책을 읽다가 다음 대목을 여러 번 읽었다. “여러분은 삶이 힘들 때 가장 먼저 혹은 가장 마지막으로 누구를 찾아가시나요. 맞아요. 그래서 저도 일단 본가인 대전으로 갑니다.” 승무원 생활과 작가 생활을 병행하던 도중, 그는 버거움을 느끼고 잠시 멈춤을 선택한다. 몸에 맞는 옷과 마음에 걸맞은 상태를 찾기 위해, 상황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당당...

    2024.10.02 20:26

  • [문화와 삶]기약과 기대
    기약과 기대

    추석 연휴에는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다녀왔다. 머무는 지역에서 멀고 일이 많아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반갑고 애틋했다. 모처럼 가족끼리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두 분이 가보지 못했지만 분명 좋아할 만한 곳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흥미로운 과학 전시를 관람했는데 아빠도 직접 보면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될 거라고. 윌밍턴 바다에는 하얗고 동그란 조개껍질들이 많은데 반질반질한 표면을 손끝으로 문지르면 나까지 덩달아 간지러워진다고, 엄마가 분명 좋아할 거라고 한참을 떠들었다. 아직 가보지 않은 많은 곳에 겪어보지 못한 행복들이 마구마구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나 보다.집에 와서도 일에 치여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보낸 주제에 기약 없이 번지르르한 약속을 늘어놓기도 했다.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밝은 순간들만 오려 와서 잔뜩 안겨주고 싶은 마음에, 불투명한 미래가 때론 먼지를 뒤집어쓰고 캄캄해지기도 한다는 ...

    2024.09.25 20:52

  • [문화와 삶]테무 아줌마
    테무 아줌마

    어느 무더운 날 옆방 아주머니(엄마)와 밥을 먹는데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는 그의 세찬 목울대가 시선을 끌었다. 그는 물을 마시고 있었지만, 기실 자랑을 하고 있었다. 내 컵 좀 보라고, 새끼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었다. “뭐야, 그게.” 아줌마는 대답 대신 컵을 내밀었다. 그것에 손이 닿자마자 놓쳐버렸다. “읏, 차!” 내동댕이쳐진 컵은 바닥을 도르르 굴러갔다. 아줌마는 하나 놀라는 기색 없이 그것을 주워 들었다. “얼음컵이지.” 망치처럼 그것을 식탁에 쾅쾅 내리쳤다. “어떤 것이든 즉시 시원해지지.”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능숙한 손짓으로 컵을 까뒤집어 각얼음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얼음컵이자 얼음 트레이였던 거다. 감탄과 무관심에 내가 말이 없자 그가 말했다. “1300원.” 유유히 방으로 퇴장하는 뒷모습에게 물었다. “어, 어디서…?” 문지방 위에 서서 그가 입술을 오므렸다. “테무.”아줌마는 요즘 테무에 빠졌다. 하루가 멀다고 알 수 없는 회색 봉투가 집 앞에 ...

    2024.09.18 20:32

  • [문화와 삶]어떤 놀이의 결말
    어떤 놀이의 결말

    “아이들의 디지털 놀이터.” 한 시사프로의 진행자가 딥페이크 성범죄를 언급하면서 사용한 표현이다. 아이들의 놀이터에 딥페이크라는 새로운 장난감이 주어지면서 범죄까지 저지르게 되었다는 논평이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여자의 얼굴, 신체, 이름을 재료로 삼아 ‘가짜’를 만들어 짓밟고 낄낄거리는 행태는 전혀 새롭지 않다.언론에서 딥페이크 범죄에 ‘놀이’란 말을 붙일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물론 소년들 사이에서 이건 ‘놀이’지만, 이 말이 반사적으로 만들어내는 ‘순진함’이라는 이미지가 문제다. “이것이 범죄인 줄 모르는 10대, 20대 남성”이라는 게으른 설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키운 문화적 뿌리를 지우고 새로운 테크놀로지 탓만 하도록 만든다.물론 딥페이크 기술이 범죄로 이어지는 경로는 제대로 제재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신기술을 갖고 논 ‘아이들’ 대부분은 딥페이크 생산과 유통이 불법임을 알고 있고, 그게 아니라 하...

    2024.09.11 20:50

  • [문화와 삶]짐작의 힘
    짐작의 힘

    상대의 낯빛을 살핀다. 밝은지 어두운지, 밝음과 어두움이 혼재되어 있는지. 사람의 몸에 빛과 그림자가 수시로 통과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는 것이다. 상대가 말할 때 함께 나오는 기운을 헤아린다. 그것이 뿜어져 나오는지, 새어 나오는지 파악한다. 뿜어져 나올 때면 들뜸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새어 나올 때면 어떻게 기운을 북돋울 수 있을지 고민한다. 자신이 먼저 에너지를 발산함으로써 상대의 그것을 끌어올릴 수도 있고, 완만한 상승을 노리고 말에 말을 차근차근 보탤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가 알려준 ‘처음’의 비법이다.“처음이라니? 첫 만남에만 가능하다는 거야?” 친구가 답한다. “아니, 모든 만남의 첫 순간에 해당해. 설사 상대를 어제도 만났더라도.” 혹시 오늘의 만남도 그에게는 살피는 일이었을까. 그가 피곤하진 않을지 못내 걱정된다. “매번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면 힘들지 않아?” 그는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함께’의 상태가 되면, 누구든 ...

    2024.09.04 20:46

  • [문화와 삶]화내는 여자, 싸우는 여자, 사랑하는 여자
    화내는 여자, 싸우는 여자, 사랑하는 여자

    밤길을 조심해야 한다. 묻지마 범죄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화장실을 이용할 때 조심해야 한다. 몰카에 찍힐 수도 있으니까. 연애상대를 신중히 골라야 한다. 이별을 고했다가 살해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한다는 사실이 티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페미’로 낙인찍혀 조리돌림당할지도 모르니까. 여성혐오 범죄의 빈도를 과장하는 것 같은가. 최근 한 달로 아주 좁게 범위를 제한해도 지금 조심해야 한다고 열거한 일들의 실제 사례를 기사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조심해야 할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SNS에 올린 사진이나 증명사진이 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불법 합성물(딥페이크) 성범죄에 악용될 수 있으니까. 딥페이크를 이용해 불법으로 제작한 성착취물을 유포하는 일명 ‘지인 능욕방’이 최근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성의 사진을 보내면 음란물을 합성해주는 텔레그램 채널의 가입자가 무려 22만여명이라고 한다.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학교 명단에 포함된 학교는 100개 이상이며, ...

    2024.08.28 20:46

  • [문화와 삶]스님 우리 만나요
    스님 우리 만나요

    이것은 엄마가 부처님오신날에 부처님을 뵙고 온 이야기다. 아빠는 나이 50을 목전에 두고 엄마와 이혼했다. 그리고 스님이 됐다. 할머니는 종종 전화를 걸어왔다. “에미야, 아쉬울 것 있냐. 너도 절에 가서 공양주로 일해라.” 나는 헛웃음이 나왔지만 엄마는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이후로도 쭉 무교였고 절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대신 시골로 내려갔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구름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사는 대신 딱 엄마 혼자 살기 좋은 집을 지었다. 안방 구석엔 셋이 찍은 가족사진을 걸었다.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컬러링으로 삼았다.엄마는 아빠를 생각했다. 딸이 바락바락 대들 때, 인터넷으로 서류를 떼야 할 때, 교통사고가 났을 때. 바로 말끔한 민머리의 뒤통수가 떠올랐다. 자려고 누울 때나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반질반질한 염주를, 동그란 목탁을, 길게 내려온 귓불을 떠올렸다.엄마는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다. 부처님오신날의 일이었다. 그날은 공휴일이었고, 부처...

    2024.08.21 20:51

  • [문화와 삶]낙태가 죄라면
    낙태가 죄라면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 낙태죄 폐지 운동의 오랜 구호다.임신중지는 개인의 신체, 그 신체가 놓인 가족 구성, 함께 임신을 한 남성과의 관계, 출산 후 양육 환경과 모자녀가 처할 사회적 상황 등 연속적인 시간 속에 놓여 있는 관계적 사건이다. 그런데 국가가 이를 무시하고 단편적인 행위에 집중하여 그에 ‘범죄’라는 낙인을 찍는다면, 그건 국가의 문제라는 의미였다.대한민국에서 낙태죄가 사라진 지 5년이 지났지만, 국가는 여전히 임신중지를 ‘죄’로 다루는 듯하다. 최근 벌어진 사건은 이런 심증을 확인시켜준다. 20대 여성 A씨가 36주차 태아를 낙태하는 과정을 담은 브이로그를 SNS에 올리면서 한국사회가 발칵 뒤집힌 뒤, 보건복지부가 경찰에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결국 A씨와 병원장이 형사입건됐다. 죄목은 살인이었다.복지부는 2021년 판례를 참고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임신중지 시술로 산 채로 태어난 34주 태아를 살해한 의사에게 살인 혐의...

    2024.08.1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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