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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와 삶]매일매일 탐구 생활
    매일매일 탐구 생활

    초등학교 다닐 적에 ‘탐구 생활’이라는 학습 교재가 있었다. 보통 방학하는 날에 받았는데, ‘탐구 생활’의 빈칸을 채우는 일은 일기 쓰기만큼 어려웠다. 커다란 원에 하루치 시간표를 그려 넣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미루지 않는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절히 깨닫기도 했다. 그걸 깨달은 게 개학 전날인 게 문제였다. 당시엔 신문 말고 지난 날씨를 알 길이 없었기에 일기를 몰아 쓸 때면 늘 진땀이 났다.여름방학 시기라 ‘탐구 생활’이 떠올랐지만, 국어사전을 펼쳐 탐구의 뜻을 찾아보고 나니 생각이 길어졌다. 먼저 첫 번째 탐구. 탐구(探求)는 찾을 탐 자, 구할 구 자가 결합한 데서 유추할 수 있듯, “필요한 것을 조사하여 찾아내거나 얻어냄”이란 뜻이다. 찾기와 얻기가 아닌, 찾아내기와 얻어내기다. ‘내다’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스스로 힘으로 끝내 이루어짐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탐구에 실패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두 번째 탐구. 탐구(探究)는 찾을 탐 자, 연구할...

    2024.08.07 20:48

  • [문화와 삶]지연의 미학
    지연의 미학

    뉴욕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다녀왔다.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이 광활한 미술관에는 세계 각국의 유물과 예술품이 모여 있는데 그 수만 약 300만점에 달한다고 한다. 로댕의 조각, 이집트 벽화, 고흐와 한국 화가 박수근의 그림 등 다양한 예술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미술관을 관람한 친구가 물었다. “오늘 본 것 중에 어떤 게 가장 예술적이었어?” 나는 평소에도 좋아했던 모네의 루앙 대성당 그림이라고 대답하려 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림을 마주했을 때, 그 아우라에 잠식되었던 순간이 무척이나 황홀했기 때문이다. 햇빛에 따라 달라지는 성당의 모습을 그린 연작이지만, 결국엔 빛의 일렁임만 화폭에 남은 것 같은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더 예술적이라 느꼈던 순간을 말하게 되었다. 휴대폰 카메라로 1초면 찍을 수 있을 조각상 앞에 이젤을 놓고서 불편해 보이는 간이의자에 몸을 욱여넣은 채 조각상을 따라 그리고 있던 화가들. 인내심을 가...

    2024.07.31 20:48

  • [문화와 삶]미래를 구원하는 사람
    미래를 구원하는 사람

    엄마가 생활보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매일 작은 경차를 타고 시골의 좁은 길을 따라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찾아간다. 그중엔 일주일에 한두 번, 엄마가 찾아가는 것이 사람과의 유일한 접촉인 사람들도 있다. 요양원에 입원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은 것은 아니니 그나마 상황이 나은 사람들이다. 엄마는 그들의 냉장고에 반찬은 있는지, 보일러가 고장나지는 않았는지, 집 안이 어지럽지는 않은지 생활 전반을 살핀다. 그리고 마주 앉아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아침은 드셨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걱정거리는 없는지 묻는다. 한 할머니는 생활이 유독 궁핍했다.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은 연락이 두절됐다. 모아놓은 돈도 받을 수 있는 연금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끼니를 챙길 돈도 없어 몸이 여위었다. 빈궁한 생활이 창피해 밖을 더 나가지 않게 됐다. 엄마는 그 할머니의 생활을 유심히 지켜보고, 사정을 듣다 몇 가지를 떠올렸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 ...

    2024.07.24 20:39

  • [문화와 삶]흉가 체험장이 된 몽키하우스
    흉가 체험장이 된 몽키하우스

    “국내 흉가 몽키하우스 방문기.” 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의 제목이다. 이외에도 ‘몽키하우스’로 검색하면 흉가 체험 영상을 여럿 보게 된다. 영상의 형식들은 대체로 비슷하다. 야밤에 건물을 찾아가 카메라 시점으로 여기저기 탐색하는 와중 카메라가 갑자기 꺼지거나 출처를 알 수 없는 발자국 등이 나타나는 식이다. 때로는 무속인이 출연해 “원환귀”와 마주치기도 한다. 몽키하우스의 이런 ‘오락적 기능’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해봤다.몽키하우스는 동두천에 있는 낙검자 수용소의 다른 이름이다. 1960~1970년대 대한민국 정부는 미군에게 안정적으로 ‘위안’을 제공하기 위해 미군 주둔지마다 기지촌을 조성했다. 기지촌 운영의 핵심 장치는 성병관리였다. 미군의 자유로운 성매매를 보장하기 위해 한국 여자들은 ‘깨끗하게’ 관리되어야 했다.낙검자 수용소는 이 관리가 어떻게 국가 주도하에 강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기지촌 여성들, 즉 미군 ‘위안부’들에게 어떤 폭력이 행해졌는지...

    2024.07.17 20:43

  • [문화와 삶]귀담아듣는 일은 장하다
    귀담아듣는 일은 장하다

    오랫동안 진행하던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의 마지막 녹음을 마쳤다. ‘마지막’과 ‘마치다’는 둘 다 끝을 암시하는 단어인데, 이 둘이 함께 있으니 비로소 끝났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6년 하고도 3개월이었다. 실감난다고 썼으나 아마도 시간이 좀 흐른 뒤에야 마침표가 선명해질 것 같다. 27년간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면서 결국에는 눈물을 참지 못했던 최화정님이 얼핏 떠올랐다. 그는 절대 울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나 “너무너무 수고했고 너무너무 장하다. 내가 늘 칭찬하잖아. 무슨 일을 오래 한다는 건 너무 장하고, 너는 장인이야. 훌륭하다”라는 윤여정님의 음성 편지를 듣고 오열을 참지 못했다.마지막 방송에 임하기 전까지도 나는 내 마음의 추가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시원섭섭함일까, 아쉬움일까, 그것도 아니면 노여움일까. 마지막 녹음날에는 청취자 사연을 소개했는데, 개중에는 미안하다는 말이 유독 많았다. 왜 미안해할까, 미안해야 하...

    2024.07.10 20:46

  • [문화와 삶]죽음을 업은 삶
    죽음을 업은 삶

    지난달에 발간된 시집 <천국어 사전>(타이피스트, 2024)의 추천사를 썼다. 저자인 조성래 시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채로, 시집 파일을 넘겨받았다. 어느 봄날, 나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종이에 인쇄된 그의 시편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의 고향이기도 한 ‘창원’이 제목인 시가 눈에 띄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시에는 ‘어머니’가 누워 계신 병원의 구체적인 이름도 등장하는데, 그곳은 공교롭게도 내가 태어난 병원이었다. 엄마가 종종 내게 들려주었던 환한 이야기의 배경, 거기서 화자의 어머니는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울다가 또 잠시 뒤에는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웃어 보인다. 죽어갈 어머니와 그의 예견된 죽음을 생각하며 울고 있는 사람, 축복처럼 불어든 생에 놀라 울음을 터뜨렸을 사람과 나를 낳고 기진한 엄마가 한 공...

    2024.07.03 20:51

  • [문화와 삶]오천 원만 주면 키스해주는 놈
    오천 원만 주면 키스해주는 놈

    인터넷 소설 <오천 원만 주면 키스해주는 놈>의 주인공은 학교 옥상에서 단돈 5000원에 ‘키스장사’를 하는 남고생 은서현이다. 소설이 연재된 2006년 기준 최저시급은 3100원이었으니 은서현은 시급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에 자신의 키스를 판 것이다.현재 물가를 적용하면 은서현의 키스 서비스 가격은 회당 1만5000원이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1만5000원만 주면 키스를 해주는 놈이 있는데 그 가격이 과연 적절한 것 같으냐고. 엄마는 나를 몇 차례나 무시하다가 겨우 대답을 해주었다. “그게 무슨 장사야. 시급은 왜 따지고 앉아 있어.” 나는 똑같은 질문을 챗GPT에게도 해봤다. 챗GPT는 시원스럽게 답을 했다. ‘남자 고등학생이 회당 1만5000원에 키스를 판매하는 행위는 윤리적, 법적, 사회적, 정서적 측면에서 모두 부정적인 결과를 만듭니다.’한때 나는 ‘청첩장만 주면 결혼식에 와주는 놈’이었다. 취직을 한 후 나는 ‘멀쩡한 나’를 만드는 데 온 정신...

    2024.06.26 20:37

  • [문화와 삶]학살이 돈이 되는 세계
    학살이 돈이 되는 세계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뼈만 남은 유대인, 사악한 나치, 혹은 단 한 명의 유대인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적인’ 독일인 쉰들러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유대인 강제수용소 바로 옆에 위치한 나치 친위대 관사에서 자신이 꿈꿔온 중산층 정상 가족을 이루고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회스 가족의 일상을 보여준다. 영화 속 회스 가족의 가장인 루돌프 회스는 실존 인물이다. 4년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소장으로 일하면서 100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했고, 전후에 전범 재판을 통해 교수형을 당했다.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누렸던 “낙원과도 같은 삶”은 정확하게 나치의 유대인 학살 덕분에 가능했다. ‘인종청소’라는 정치적 명분 뒤에 놓여 있던 현실적 이유 중 하나는 유대인 재산 약탈이었다. 그 재산에는 유대인이 사용하던 치약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대인의 모든 것을 싹싹 긁어다 ...

    2024.06.19 20:43

  • [문화와 삶]요리와 글쓰기
    요리와 글쓰기

    “오밤중에 뭘 또 만들어?” 방문을 열고 나오며 형이 묻는다. 별도리가 없다는 듯 씩 웃고 만다. 도마 위에는 토막 난 애호박과 양파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오늘도 글이 잘 안 풀린 거야?” 형이 다시 묻는다. 나는 여전히 웃고 있다. 곧바로 들기름을 두르고 프라이팬 위에서 지지고 볶는 시간이 이어진다. 다진 마늘을 듬뿍 넣고 새우젓을 넣어 간을 맞춘다. 이윽고 완성된 애호박볶음 위에 통깨를 솔솔 뿌린다. 오밤중에 뭘 또 만드는 시간이 끝났다. 시계를 보니 고작 20분 정도가 지났다.원고가 잘 안 풀리거나 다 쓴 원고가 영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요리에 돌입한다. 요즘 들어 요리하는 횟수가 부쩍 늘어난 것을 보니 헛웃음이 난다. 글쓰기 실력이 늘어야 하는데 요리 실력만 향상되고 있다. 20분 만에 내일의 밑반찬이 생겼다는 뿌듯함도 잠시, 오늘 하루도 공쳤다는 슬픔이 찾아온다. 글쓰기는 왜 매번 어려울까. 앉은자리에서 뚝딱 완성되는 기적은 평생 일어나지 않을 셈인가. 그럼에도...

    2024.06.12 20:36

  • [문화와 삶]공간에 머무는 기억
    공간에 머무는 기억

    학교 축제에 가수 ‘뉴진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들뜬 마음으로 졸업한 동기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학부를 졸업한 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녔고, 이제는 여기에서 강의를 한다. 그러니까 스무 살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같은 캠퍼스를 수없이 오간 셈이다. 친구들은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장소에 매여 사는 나를 ‘지박령’이라고 놀리곤 한다.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동기들은 이곳저곳을 둘러보고는 새삼 옛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나는 머무르는 사람이라 그런 걸까? 익숙한 교정을 거닐 때 딱히 새로운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저 얇은 반죽이 겹겹이 쌓인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캠퍼스의 공간마다 여러 기억이 층층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원래 뭐가 있었더라?” 묻는 친구에게 “계단이 있었는데 에스컬레이터가 생겼지”라고 큰 감흥 없이 대답해 주었다. “여기서 우리 밤샘 공부하고 컵라면 먹었잖아, 여기가 우리 넷이 처음 후배들 밥 사준 곳이고.” 내가 덤덤히 일러줄 때마다 친구들은...

    2024.06.0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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