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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는 실패작이다
한·일은 1965년 청구권협정에서 상호 청구권 문제를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민관공동위원회를 만들어 당시의 기록을 검토한 뒤 일본군 위안부·원폭 피해자·사할린 동포 문제 등 3가지는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강제징용이 제외된 것은 한국 정부도 이 문제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2018년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정부 공식 입장과 배치되는 이 판결은 정부를 ‘완벽한 딜레마’에 빠뜨렸다.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지만, 국가 간 협정을 뒤엎을 수도 없다.일본 기업에 배상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청구권협정의 분쟁 해결 절차인 중재위원회를 열지 않는 한 결국 ‘제3자 변제’가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피해자들도 제3자 변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윤석... -
길 잃은 일제 강제동원 해법
지난달 12일 정부가 주최한 ‘강제징용 해법 공개토론회’에서 벌어진 혼란과 소동은 이 사안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지를 보여줬다. 토론회가 아수라장이 된 것은 예상됐던 일이라 놀랍지 않다. 진짜 문제는 이런 토론회가 너무 늦게 열렸다는 데 있다.이런 토론회는 2012년 5월24일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가 항소심 판결을 뒤집고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직후부터 열렸어야 했다. 판결의 의미·문제점·파장·정부의 대응 등을 놓고 ‘혼란스러운 공론화’가 그때부터 시작됐더라면 훨씬 쉽게 국내적 합의에 도달했을 것이고 일본도 진지하게 협의에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10년 넘게 이 문제를 회피하고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대처하다가 실기했다. 역대 정부가 강제동원 배상 판결 문제를 다뤄온 과정은 ‘무능력·무책임 대일외교’의 극치다. 이명박 정부는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고 대통령 독도 방문, 일왕 발언 등으로 한·일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린 뒤 ... -
일본 안보전략 개정을 보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일본이 지난달 16일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을 채택했을 때 국내에서 즉각적으로 주목한 것은 다소 엉뚱하게도 북한 선제타격 가능성과 NSS에 담긴 독도 영유권 주장이었다. 일본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는 길이 이론적으로 열린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이지는 않다. 한·미·일 중 누구라도 북한을 공격하면 모두 전쟁에 휘말리는 구조여서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전쟁을 시작하는 일은 생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독도 영유권 주장은 이전부터 있었던 터라 기존의 대응 방식이 이미 존재한다. 일본의 개정 NSS에는 북한 선제타격 우려나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일본 방위정책 변화의 배경과 결과를 직시하지 않고 우려와 반대만 하는 것은 현명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동북아시아 안정의 기초였던 미·중 협력은 끝났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변했고 일본의 역할도 바뀌었다. 태평양전쟁 승리 이후 미국은 미·일 방위조약을 체결해 일본을 ‘냉전의 전초기지’로 삼고 평... -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이란 말은 용도가 따로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이란 말을 자주 쓴다. 최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 관련 질문에 “일방적인 현상 변경은 모든 질서와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에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답했다. 지난달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는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소개하면서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은 용인되어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도 “오늘날 국제사회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과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인권의 집단적 유린으로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현상 변경 반대’는 남중국해·대만해협 등에서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는 중국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중·러뿐 아니라 북한에도 이 말을 쓴다. 그는 지난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 지역에 무리한, 또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전혀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정치와 이념으로 왜곡된 북한인권 바로잡아야
윤석열 정부가 북한인권 문제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5년 동안 공석이었던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를 임명했고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고려해 참여하지 않았던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다시 들어가는 것을 적극 검토 중이다. 지난 2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토의에서는 탈북 여성의 인권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국정기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또 북한인권에 소극적이었던 전임 정부를 비판하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북한인권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옳은 일이다.인권은 원래 진보세력의 어젠다이지만, 한국 사회의 북한인권은 그렇지 않다. ‘북한’과 ‘인권’이 결합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북한인권이 국제적 이슈가 된 것은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던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남북화해라는 시대적 소명에 매진하고 있던 김대중 정부는 북한에 매우 예민한 문제인 인권에 말을 아꼈다. 북한과 화해·협력을 추진... -
한·미 확장억제 실행 방안 논의가 의미하는 것
한·미가 지난 16일 워싱턴에서 4년8개월 만에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를 갖고 북한의 핵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미국이 제공하는 전략자산을 더욱 확장된 규모로 적시에 한반도에 전개하기 위해 긴밀한 소통을 하기로 약속하고 EDSCG를 정례화함으로써 억제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협의의 틀을 마련한 것을 성과로 꼽고 있다. 한·미가 확장억제 실행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해 ‘플랜B’를 가동해야 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30년간의 북핵 외교는 철저히 실패했으며 북한은 이제 남한을 전술핵으로, 미국을 전략핵으로 위협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미국의 핵우산으로 북한의 핵공격을 막는다는 개념적 수준의 안보 논의는 더 이상 의미가 없고 어느 때라도 즉각 핵 대응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절차와 실행 방안을 마련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기 상황이 현실로 다가... -
무엇을 위한 ‘담대한 구상’인가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담대한 구상’은 역대 정부의 대북 제안 중 가장 적극적이고 구체적이며 가장 큰 규모의 대북 지원 계획이다. 그러나 북한이 호응할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북한의 호응을 기대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담대한 구상은 ‘비핵화 조치와 경제 지원 교환’이라는, 이미 과거에 실패한 틀을 기초로 하고 있다. 정부는 경제적 지원 외에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두고 있다고 밝혔지만, 그것이 포함돼 있다 해도 새롭지 않다. 경제 지원과 안전보장은 북핵 협상 초기부터 항상 함께 고려됐던 사안이다. 북한이 지키려는 것은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과 세습독재 체제다. 따라서 안전보장 조치를 제공해도 북한은 안심하지 않는다. 경제 지원도 정권이 유지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받아들일 수 없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국제 금융 등의 지원을 받고 중국·베트남 수준으로 개방하면 정권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환영할 처지가 아니다. 담대한 구상은 이 같... -
한·미·일 군사협력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미·중의 전략경쟁이 가속화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가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세계전략의 핵심은 동맹국들과의 연대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현상변경 세력’인 중국과 러시아에 맞서 현재의 국제질서를 지켜내는 것은 미국과 뜻을 같이하는 모든 국가들에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으므로 함께 연대해야 한다는 논리다.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한·미·일 협력은 이 같은 미국의 세계전략의 한 부분이다. 미국에 매우 우호적인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국은 한·미·일 협력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열흘 만에 한국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동성명을 남겼다. 이후 한·미·일은 다양한 형태의 3국 협의를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시켰다. 3국 정상이 한자리에서 만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두 달이 채 되지 않는다.... -
방향만 있고 좌표 없는 윤석열 정부 대외전략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일 순방은 미국이 대외전략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문제가 중국 견제임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미국의 관심은 세계 패권에 도전하고 있는 중국을 따돌리고 현재의 격차를 유지·확대하는 데 집중돼 있다. 미국은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힘을 합쳐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동의 규칙을 만들고, 현재의 질서에 현상 변경을 가하려는 중국을 배제하려 한다.바이든 대통령의 한·일 순방 직후인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조지워싱턴대 연설에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파했다. 블링컨 장관이 연설에서 핵심 요소로 강조한 것은 ‘투자(invest)·공조(align)·경쟁(compete)’이었다.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 첨단기술에 투자해야 하고, 권위주의적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 동맹·우호국들과 공조해야 하며, 중국의 부상과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1년 전 ‘대결(confrontation)·경... -
윤석열 정부 외교의 출발점은 ‘강제징용’ 해결
다음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맞닥뜨려야 하는 외교적 환경은 녹록지 않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안보·무역·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전방위적 대결 구도를 형성하면서 국제질서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대전환의 시기다. 한국 외교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윤석열 정부 앞에 놓인 수많은 외교 과제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하는 분야는 대일관계다. 현재의 국제질서와 한국 대외관계 구조 등을 감안할 때 한·일관계를 지금과 같은 상태로 두고서는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어떤 외교적 목표에도 순조롭게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하는 것을 외교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다. 한·미·일 협력을 아시아 전략의 최우선 요소로 인식하고 있는 미국과 동맹의 수준을 격상하려면 지금 같은 한·일관계로는 어렵다. 이뿐만 아니라 원칙 있는 남북관계, 한·미 동맹 강화에 따른 대중국 외교 리스크 최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