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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
  • 전체 기사 275
  • [송혁기의 책상물림]인공지능과 대결하는 시대
    인공지능과 대결하는 시대

    “인공지능과 인간이 한글 문학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대결을 펼쳤다”는 기사가 화제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한국 문학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국비로 진행하는 사업을 대상으로 한 전문가 테스트라서 관심이 더 컸다. 결과는 인공지능의 압승. 국가 예산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번역 사업 전반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만하다.그런데 테스트 대상 작품이 17세기 작가가 한문으로 쓴 <신독잠>이라는 점이 석연치 않았다. ‘잠(箴)’이라는 운문 문체로 성리학의 개념을 형상화한 내용과 표현을 현대 한국어로 살려내기란 쉽지 않다. 이를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한문 원작을 깊이 이해하는 전문가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번역의 성패를 평가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영문과 교수 16명에게 한글 원문과 영어 번역문만을 주고 번역 평가를 맡겼다는 것은 애초에 비합리적이다.예컨대 제시된 한글 작품만으로 ‘하늘’을 ‘Sky’로 옮길지 ‘Heaven’으로 옮길지 판...

    2시간 전

  • [송혁기의 책상물림]내 마음대로 안 되는 내 마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내 마음

    문득 온갖 잡념이 몰려들 때가 있다. 불길한 걱정이 꼬리를 물거나 미움과 분노가 차올라 판단력이 마비되기도 하고, 욕심이나 유혹에 휩싸여 절제력을 잃는 일도 있다. 시간을 두고 한발 물러나 보면 달리 보일 사안이 대부분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은 마음을 다스린다는 게 쉽지 않다. 내 마음인데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강릉 오죽헌에 들어가려면 자경문(自警門)을 거쳐야 한다. 이곳에서 유년을 보낸 율곡 이이가 쓴 <자경문(自警文)>에서 이름을 따왔다. 열여섯 나이에 어머니이자 선생님인 신사임당을 여읜 율곡은 시묘살이를 마치고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에 심취했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유학 공부에 힘을 쏟아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뜻을 품게 되었다. 그때 자신을 다잡고자 하는 뜻을 담은 것이 바로 이 글이다. 율곡 역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쉽지 않았던 듯, 이렇게 자신을 경계했다.“마음이란 살아있는 생물이다. 안정시킬 만한 힘을 갖추지 ...

    2026.03.03 20:07

  • [송혁기의 책상물림]춘삼월 자규루에는
    춘삼월 자규루에는

    “원통한 새 한 마리 왕궁을 나와, 푸른 산중에 그림자뿐인 외로운 신세. 밤이면 밤마다 잠들 수 없어, 한 해 또 한 해 서글픈 한 끝이 없어라. 새벽 산 남은 달에 애끓는 너의 울음, 봄 골짝에 토한 피가 붉은 꽃 되어 떨어지네. 그 슬픈 하소연을 귀먹은 하늘은 못 듣는데, 시름겨운 이 사람 귀만 어찌 이리도 밝은지.”단종이 지은 것으로 전하는 ‘자규(子規) 노래’다. 자규는 두견새로, 폐위되어 쫓겨난 촉나라 망제의 혼이 깃들어 불여귀(不如歸), 귀촉도(歸蜀道)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이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에 유배되었을 때 인근의 매죽루에 올라 읊었다는 작품이다. 이후 매죽루는 자규루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도 영월에 가면 자규루를 찾을 수 있는데, 비운의 역사와 함께 사라져 버렸던 터에 다시 자규루를 세운 것은 300년 뒤 정조 때의 일이다. 영월 부사가 촌로들이 말한 자리에 재건하려 하자 소나기가 내려 중단되었고, 그날 밤 원인 모를 화재...

    2026.02.10 19:46

  • [송혁기의 책상물림]새옹지마와 전화위복
    새옹지마와 전화위복

    불과 며칠 전 마이애미로 짧은 출장을 떠날 때만 해도, 미국 동부 지역의 눈 폭풍으로 발이 묶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플로리다 대학에서 바쁜 일정을 겨우 마친 뒤 잠시 짬을 내어 따사로운 풍경을 거닐던 오후 갑자기 휴대폰 문자가 날아왔다. 경유지인 애틀랜타 사정으로 항공권이 취소, 연기되었다는 알림이었다. 일방적으로 통보된 돌발 상황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일행 중에 단순한 실수로 서부 지역의 솔트레이크를 경유지로 발권한 분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조건이 더 안 좋아서 본래 실망했지만, 눈 폭풍에 영향받지 않고 귀국할 수 있게 되자 나머지 일행의 부러움을 샀다. 반면 귀국 일정이 부득이하게 지연된 덕분에 필자는 하루를 온전히 비워서 미국의 땅끝이라고 일컫는 키 웨스트를 방문할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흔적이 남아 있는 멋진 섬이다. 정상적으로 귀국하게 된 분이 오히려 우리를 부러워했음은 물론이다.이 글을 쓰는 지금, 필자는 17시간째 마이애미공항에 있다. 소지인 불명...

    2026.01.27 19:56

  • [송혁기의 책상물림]AI라는 호랑이의 등 위에서
    AI라는 호랑이의 등 위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발전이 눈부시다. 불과 3년 남짓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조차 숨 가쁠 정도다. 돈 안 되는 한문 번역과 인문학 연구 영역은 비교적 안전할 줄 알았고, 이전의 기계 번역이나 초창기 생성형 AI는 남은 시간이 많음을 입증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시간이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꽤 높은 수준의 번역이 제공되며, 방대한 고전 자료를 정리하는 능력은 기대를 한참 넘어섰다.물론 전문 영역에서 결과물로 사용하기에는 부족한 구석이 여전히 있지만 주변 자료를 폭넓게 파악할 때 썩 유용하다. 한국학 연구자가 영미권 학술 무대에 발신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어휘와 개념에서 문제 제기 방식까지 일일이 상의하며 글로벌 표준에 맞춘 영어 논문을 쓰는 일이 가능해졌다. 전공 분야와 관련해 AI가 학습할 양질의 데이터를 선별하고 협업을 통해 이를 기술화하는 일의 수요도 오히려 늘어났다. 이른바 AX, 인공지능 전환의 물결에 올라타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문제는 다음 세...

    2026.01.13 19:43

  • [송혁기의 책상물림]병오년을 맞으며
    병오년을 맞으며

    “내년이면 나 어릴 적 글 배우러 간 병오년/ 생애 돌아보니 가는 곳마다 초가 살림/ 화답하는 벗이라곤 어부와 나뭇꾼이지만 늘 만족한다 말하고/ 집안에 있는 거라곤 푸성귀에 거친 밥이지만 더 바랄 것 하나 없네/ 어렵고 험한 오늘을 탄식할 것 없어라/ 내 돌아갈 곳 옛사람의 글이 있으니/ 가련토다 명예와 이익을 좇는 사람들/ 종신토록 허덕여도 끝내 공허뿐인 것을.”이른바 ‘안빈낙도(安貧樂道)’, 평생 옛글만 읽으며 가난한 삶에서도 즐거움을 누리는 선비의 모습이 그려지는 시이다. 집안 살림이 어찌 되든 공자 왈 맹자 왈하는 모습이 오늘의 시야에 좋게 보이지만은 않지만, 한편으론 각박한 현실을 초탈한 여유로움에서 예스러운 멋이 느껴지기도 한다. 조선시대 어느 때, 어느 선비가 지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당시로서는 보편적인 이상을 표현했고, 그만큼 상투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이 시가 1905년 을사년 섣달 그믐날에 면암 최익현이 지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같...

    2025.12.30 19:59

  • [송혁기의 책상물림]대통령과 한자 교육
    대통령과 한자 교육

    대통령의 업무보고 생중계가 연일 화제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무 장악력을 보여줄 뿐 아니라 국민 중심의 국정운영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에, 최고 결정권자의 말이 남발되는 가운데 일부 현안의 기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기도 했고 특정인을 겨냥한 의도적 망신 주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진다.한국고전번역원장이 한자 교육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달라고 말한 대목도 눈길을 끌었다. 대통령이 엉터리 국어 사용의 문제를 언급한 것을 받아 그 원인이 한자 교육의 문제에 있다면서 제기한 요청이었다. 대통령은 단어의 깊은 의미를 알고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한자 교육이 꼭 필요함을 강조하면서도, 한자 병용이나 강제 교육을 제도로 도입하려면 엄청난 벽을 넘어야 하는데 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답변했다.우리말을 바르고 수준 높게 구사하기 위해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대체로 상식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진다. 좋은 한글 두고 어려운 한자를 교육하는 것은 ...

    2025.12.16 19:59

  • [송혁기의 책상물림]다시 한 해를 보내며
    다시 한 해를 보내며

    12월의 첫날, 올해 첫 송년회에 참석했다. 날짜는 숫자에 불과할 뿐, 해가 넘어간다 해도 반복되는 하루가 새로울 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럼에도 하루하루가 주어지는 것에 감사하며 또 한 해가 감을 아쉬워하는 것은, 그것이 영원할 수 없음을 더 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하루, 한 달 지나 또 한 해가 가니 천 날 백 날 먼 앞날을 어찌 기약하리오. 서산에 지는 해는 도주공도 살 수 없고 동해에 빠지는 썰물은 맹분도 못 돌리네. 그대는 어디에 기력을 다 썼기에 손바닥에 꽉 움켜쥔 자국 지워지지 않는가?” 조선 후기 문인 노긍이 쓴 시의 첫머리다. 최고 갑부 도주공의 재력으로도 가질 수 없고 천하장사 맹분의 힘으로도 붙들 수 없는 것이 세월이다. 하지만 마치 그것을 모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움켜쥐려고 온 힘을 쏟곤 하는 게 우리 삶이기도 하다.이 시는 명나라 문인 정선의 율시를 시제로 삼아서 과거시험 답안 형식으로 지은 것이다. 정선의 시는 인생이란 원래 ...

    2025.12.02 20:02

  • [송혁기의 책상물림]마음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마음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여전히, 질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가 중요함은 물론이지만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하다. 같은 질문에 대해 그 사람에 알맞은 답변을 각기 다르게 줄 수 있는 지혜를 지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데, 이를 잘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 공자(孔子)다.숭덕(崇德)과 변혹(辨惑)의 방법을 물었을 때도 공자는 제자마다 다른 대답을 해주었다. 훌륭한 인품을 갖춰가는 것이 숭덕이고, 그 길에서 미혹을 분별하는 것이 변혹이다. ‘내가 할 일을 먼저 하고 그로 인해 얻게 될 것은 나중에 생각하기’ ‘충신(忠信)을 주로 삼고 의(義)로 옮겨가기’. 각각 번지와 자장에게 답한 숭덕의 방법이다. 번지에겐 실천적 자세를 강조한 데 비해, 자장에겐 진심과 믿음을 다함으로써 인격을 완성해 가는 수양을 제시했다. 제자들과 오랜 관계를 맺으며 수준과 성향을 깊이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다른 대답을 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분...

    2025.11.18 21:46

  • [송혁기의 책상물림]맹상군을 다시 떠올리며
    맹상군을 다시 떠올리며

    ‘계명구도’는 천한 재주로 남을 속이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하찮아 보이는 재주도 어딘가에는 쓰일 데가 있으니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맹상군은 빈객이 수천명이었다고 전한다. 빈객은 능력을 인정해 의식주를 전적으로 제공하며 수하에 거느리는 인재 집단을 가리킨다.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참모진도 있고 행동대원을 자처하는 협객들도 포함되었다.맹상군은 어떻게 많은 인재를 모을 수 있었을까? 물론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경쟁적으로 빈객을 유치하던 당시에 더 유능한 이들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을 살 필요가 있었다. 맹상군은 식객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믿음을 주었고, 첫 면담 자리에 비서진을 숨겨두어 고향에 있는 친지들에게 실시간으로 예물을 보내게 함으로써 이를 알게 된 식객들이 저마다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여기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모은 인재들 덕분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할 수...

    2025.11.0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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