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오창익의 인권수첩
  • [오창익의 인권수첩]살아남은 사람들의 몫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

    세밑에 이목이 쏠린 곳은 국회였다. 유치원 3법은 어찌되는지, 김용균씨의 참담한 죽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있을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호소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기준을 확립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여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하고 증진하자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세계 최악의 산업재해 국가가 거듭날 계기를 만들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만약 이 법이 개정되어 산업재해 사망이 줄어든다면, 그건 온전히 김용균과 어머니 덕분이다. 그동안 산업재해를 줄이려는 노력은 그저 무의미한 구호에만 그치곤 했다. 노동자가 알아서 조심하라는 투였다. 안전모를 꼭 쓰고 각종 안전장비도 잘 챙겨서 산업재해를 피해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을 하청·재하청 업체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만 돌리는 위험의 외주화가 ...

    2018.12.27 21:01

  • [오창익의 인권수첩]KT 통신대란과 배부른 집안싸움
    KT 통신대란과 배부른 집안싸움

    “세월호 사건을 우려먹은 이번 정부가 한 게 뭐가 있나.” 국회의원 최연혜의 말이다. KT 통신대란을 꼬집은 말이다. “국가기간시설은 전시나 테러의 1순위 대상이고, 특히 북한의 1순위 타격 대상” 같은 말도 덧붙였다. 이렇게 세월호에다 북한 테러까지 들먹이면 그 말을 경청하긴 쉽지 않다. 꼭 언어의 품격을 따지자는 건 아니다. 자유한국당 사람들이 갑자기 교양인이 되어 한 놈만 팬다는 천박한 이야기를 멀리하고, ‘야지·겐세이·뿜빠이’ 같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비판할 자격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각종 범죄를 주도하거나 방조한 잘못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의 의정활동도 신뢰할 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 여전히 사립유치원을 감싸고, 예산심사에선 ‘비정’하기만 했다.최연혜만 해도 그렇다. 지금은 우파 정당에 몸담고 있지만, 시작은 달랐다. 자유한국당의 어법을 빌리면 좌파의 돈으로 독일 유학을 다녀왔다....

    2018.11.29 20:58

  • [오창익의 인권수첩]경계를 넘어
    경계를 넘어

    국가가 단순히 안보와 치안만을 담당하는 시대는 진작 끝났다. 이젠 국민의 삶 구석구석에 국가의 역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헌법도 국가운영의 틀을 제시한다는 차원보다는 국민의 삶의 원리를 규정한다는 의미로 거듭나고 있다. 독재시절에는 그저 대통령을 몇 번이나 할 수 있다거나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하겠다는 독재자의 의지만 담긴 것처럼 여겨졌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70조는 다만 하나의 기준을 제시할 뿐이다. 국가는 헌법 전문에서 다짐하는 것처럼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기 위한 가장 구체적이며 실효성 있는 기구다. 어쩌면 유일한 대안이며 안전장치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많은 문제가 국가의 역할과 닿아 있다. 아파트 값이 폭등하면 곧바로 국가, 구체적으로는 국가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는 집권세력에게 비난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일상이 힘...

    2018.11.01 20:52

  • [오창익의 인권수첩]혐오범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혐오범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축구해설자 이영표는 아내가 분만할 때 ‘주님이 주신 고통’을 느끼라며 무통주사를 거부했단다. 똑똑해 보이는 사람이 왜 유아적 신앙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르겠다. 성서를 잘못 읽은 탓이고, 전형적인 신앙의 왜곡이다. 그래도 이영표는 아내에게 출산의 고통을 강요하지는 않았단다. 폭력이나 위협도 없었고, 다만 권유했을 뿐이고 아내도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단다. 부부 사이의 일이니 어쩌면 남이 뭐라 할 영역이 아닐 수도 있다. 아내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진짜 심각한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차별을 조장하고 혐오를 선동하는 사람들이다. 극단적 혐오세력의 뿌리가 보수 개신교에 닿아 있다는 최근 보도들은 충격적이다. ‘에스더 기도운동’은 그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공허한 구호에 멈추지 않았다. 북한, 이슬람, 동성애라는 구체적인 적을 상정해놓고, 끊임없는 공격을 감행했다. 차별과 혐오를 일삼았고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공장 역할을 했다. 민주개혁세력에...

    2018.10.04 21:10

  • [오창익의 인권수첩]여군의 자리는 어디인가?
    여군의 자리는 어디인가?

    2015년 7월. 경북 영천역에서 여성의 치마 속을 불법촬영하던 남성이 붙잡혔다. 현행범이었다. 범인은 육군 대위, 육군 3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들을 가르치는 교수다. 한국 육사에다 미국 육사까지 나온 ‘인재’였다. 이런 경우 일벌백계가 답이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평등 교육,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을 강화했어야 했다. 하지만 3사관학교는 거꾸로 움직였다. 조직, 더 정확하게는 조직의 책임자인 지휘관의 앞날을 걱정했다. 이들에게 급선무는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피해자와의 합의가 중요했다. 사건을 감추고 파장을 줄이는 게 관심의 전부였다. 일을 도맡은 사람은 범죄자 대위의 직속상관인 대령이었다. 피해자와의 합의가 급한데, 이런 일에는 여성이 나서는 게 제격이라며 소령 계급의 여성 장교에게 이 일을 맡겼다. 가해자의 친누나 행세를 하면서 피해자와 합의하라는 거다. 상관의 명령에는 절대 복종해야 하는 군대지만, 그건 전...

    2018.09.06 20:36

  • [오창익의 인권수첩]오늘도 조용한 국가인권위원회
    오늘도 조용한 국가인권위원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시민참여형 개혁기구는 경찰청이 만든 경찰개혁위원회였다. 새 정부 출범부터 경찰개혁위원회 출범까지 달포밖에 걸리지 않았다. 구성도 남달랐다. 위원들은 모두 외부 인사였다. 경찰관이나 전직 경찰관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고위직 경찰관들은 갑자기 낯빛을 바꿔 개혁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처구니없고 속은 쓰렸지만, 그것도 촛불의 성과라 여기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개혁성과였다. 경찰개혁위원회는 모두 30건의 개혁안을 발표했는데, 다행히 어지간한 개혁안은 두루 담아냈다. 2005년 남영동 보안분실(예전의 대공분실) 폐쇄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던 전국 각지의 보안분실들이 모두 폐쇄된다. 서울만 해도 홍제동, 옥인동, 신정동, 장안동, 신촌 등지에 보안분실이 있다. 정권 차원에서 눈여겨보는 시국사범들이 경찰서가 아닌 분위기부터 살벌한 보안분실에서 잔뜩 위축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이상한 일은 앞으론 없게 되었다. 정보분실도...

    2018.08.09 20:31

  • [오창익의 인권수첩]보편적 인권은 그가 누구인지 따로 묻지 않아야 한다
    보편적 인권은 그가 누구인지 따로 묻지 않아야 한다

    둘째 딸의 갑질이 시작이었다. 회의 자리에서 유리컵을 던지고 막말을 했단다. 범죄 혐의는 특수폭행이다. 다음은 엄마였다. 딸보다는 혐의가 많았다. 공사현장 작업자, 운전기사 등에게 폭행과 폭언을 했단다.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했다는 혐의도 있었다. 세 번째로 아빠가 수사 대상이 되었다. ‘가장’의 존재감인지 이번엔 좀 더 죄질이 무거워 보였다. 횡령, 배임, 탈세 등이었다. 첫딸은 땅콩회항을 일으켰고, 아들은 아빠가 주인 노릇하는 대학에 부정 편입학까지 했단다. ‘범죄 가족’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죄질이 얼마나 나쁜지는 살펴봐야겠지만, 가족 모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좀 따져봐야 할 일이다. 특히 엄마에게는 폭행 등으로 한 번, 가사도우미 문제로 한 번, 합해서 검찰이 두 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모두 네 번의 영장 청구가 있었고, 결론은 모두 기각이었다. 얼핏 보면 조씨 일가에...

    2018.07.12 21:06

  • [오창익의 인권수첩]판사,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
    판사,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역대급’이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을 심판하자는 민심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 한국당 등의 참패로 이어졌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그래도 대구·경북은 지켰다고 자위할지 모르나 대구·경북 지역의 균열도 만만치 않다. 이대로라면, 어디서든 발붙일 수 없다는 것이 민심을 통해 정확히 드러났다. 그동안 한국당, 바른미래당 등의 야당들은 그야말로 딴 세상 사람들 같았다. 역사적인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폄훼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개혁마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민심을 거스르며 자기들만의 성에 갇혀 살았던 셈인데, 그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지방선거 결과가 알려주고 있다.한국당 같은 민심의 무풍지대가 한둘이 아니다. 제 밥그릇만은 절대 내놓지 못하겠다며 저항하는 검찰이 그렇고, 요즘엔 법원의 모습이 꼭 그렇다. 발단은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라는 자기들만의 숙원사업을 놓고 박근혜 정부와 어떻게 내통했는지 조금씩 밝혀지면서부터였다. 박근...

    2018.06.14 20:48

  • [오창익의 인권수첩]금감원장 인사 사태가 남긴 교훈
    금감원장 인사 사태가 남긴 교훈

    대통령이 임명한 금융감독원장이 단박에 날아갔다. 임기 3년은커녕, 역대 최단기 재임기록을 남겼다. 피감기관의 돈이나 정치자금으로 부적절한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자신이 책임 맡은 연구소에 5000만원을 ‘셀프 후원’했다는 시비 때문이다. 잠깐 금융감독원장이었던 김기식은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게다가 의정활동도 남달랐다. 그런 평가를 받는 사람의 행보치고는 실망스러운 대목이 한둘 아니다. 피감기관의 돈에 기대 해외여행을 꼭 갔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국회의 관행이라면 그런 관행을 깨트리는 데 시민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의 역할이 있었을 거다. 시민들이 모아 준 정치자금을 국회의원 임기 말에 무슨 땡처리하듯 급하게 써야 했던 까닭도 모르겠다. 그 돈을 왜 자기가 일하는 연구소에 기부했는지 등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아무튼 김기식은 국회의원 시절의 돈 문제 때문에 물러났다. 금융개혁의 적임자가 안타깝게 낙마했는지, 아니면 애초부터 맞지 않는 감투를 쓰려다 실패한 일인...

    2018.04.19 20:49

  • [오창익의 인권수첩]개헌, 그리고 국민
    개헌, 그리고 국민

    1987년은 격동의 시절이었다. 박종철에서 직선제 대통령 선거까지, 세상은 빠르게 변했지만 시대의 요구는 명확했다. 이젠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보자, 앞으로 나가자는 거였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고 헌법 개정이 이뤄졌다. 5년 단임제 개헌은 1노 3김의 셈법이 맞아떨어진 타협의 산물이었다. 한 번씩은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안전장치라고들 했다. 결국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순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1987년 헌법을 그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세상이 너무 뜨거웠다. 제6공화국 헌법은 그 뜨거운 열기를 담고 세상에 나왔다. 기본권 조항은 훨씬 더 탄탄해졌고, 헌법재판소 설립으로 헌법 수호 기능은 강화되었다. 잘 만든 헌법이었지만, 헌법 개정 과정에서 주권자의 몫은 없었다. 주권자의 역할은 단지 국민투표에서 그쳤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민주주의였던 셈이다.많은 사람들은 헌법을 그저 권력구조에 대한 기준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 이...

    2018.03.22 2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