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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정수복의 도시를 걷다
  • [정수복의 도시를 걷다]약수동을 걸으며 서울의 변화를 생각한다
    약수동을 걸으며 서울의 변화를 생각한다

    겨울비가 내리는 수요일 오후 약수동을 걸었다. 1950년대 후반 그곳에서 살기 시작하여 1970년대 말 그 동네를 떠났으니, 나는 약수동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셈이다. 남쪽으로는 한강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남산이 지척의 거리에 있는 약수동은 그 시절 나의 원초적 감수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국의 도시 파리에서 살았던 17년을 제외한다면 줄곧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추억의 공간을 다시 찾아갈 수 있었지만, 나는 늘 그곳을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거나 지하철을 타고 통과했을 뿐 아무 할 일 없이 무작정 걸어 본 적은 없었다.지하철 3호선 약수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면 약수동 로터리가 나온다. 그곳에 한참 멈추어 서서 50여년 전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어린 시절 나에게 약수동 로터리는 매일 학교로 가는 통학로였으며 심심하면 장충단공원으로 놀러가는 통행로이기도 했다. 로터리에서 청구동으로 내려가는...

    2016.12.22 21:04

  • [정수복의 도시를 걷다]목포를 걸으며 식민지 근대를 생각한다
    목포를 걸으며 식민지 근대를 생각한다

    강연 초청을 받아 1박2일로 전남 목포에 다녀왔다. 신안비치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하루 종일 목포 시내를 걸어 다녔다. 아침에 호텔을 나와 유달산을 바라보았다. 흐르는 구름이 암벽을 드러낸 유달산의 봉우리들을 스치며 지나가고 있었다. 발걸음은 무작정 유달산을 향했다. 단풍이 든 산 중턱에 정자가 보였고 그곳으로 인도하는 산책로로 들어섰다. 정자에 도달하니 병풍처럼 길게 펼쳐진 고하도가 보였다. 식민지 시기에 일본인들은 그 섬에서 면화를 대량으로 재배하여 내지로 송출했다. 목포와 해남을 연결하는 목포대교 위로 크고 작은 자동차들이 장난감처럼 지나갔다. 멀리 암태도가 보였다. 그곳은 일제강점기에 유명한 소작쟁의가 일어났던 섬이다. 마음 같아서는 유달산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가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도로로 걸어내려 왔다. 오른쪽으로는 바닷가, 왼쪽으로는 유달산을 벗 삼아 걸었다. 간간이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바위에 세워진 인어상과 목포 개항...

    2016.12.01 20:46

  • [정수복의 도시를 걷다]청와대 부근을 걸으며 대통령을 생각한다
    청와대 부근을 걸으며 대통령을 생각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하늘은 뿌옇다. 10월28일 오후 광화문을 바라보며 세종로를 걸어 올라갔다. 광화문을 지나 효자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뒹굴었다. 평소 경복궁 주변을 걷다보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몸이 상쾌해지곤 했다. 북악산과 인왕산의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날은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웠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내 마음은 분노와 처절함 사이를 오갔다.대림미술관 골목으로 들어갔다. 미술관 담벽에는 전시 중인 닉 나이트의 사진 위에 “나는 그 누구도 다른 이들이 만든 잣대에 자신의 삶을 맞춰 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인생관이 적혀 있다. 다시 효자로로 빠져나와 조금 걷다보니 건너편에 영추문이 보였다. 경복궁의 서문이다. 몇 걸음 더 걸어가니 진화랑이 나왔다. 승효상을 비롯한 여섯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열두 집의 거주 풍경’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화랑 입구 바닥에는 양...

    2016.11.10 21:20

  • [정수복의 도시를 걷다]호반의 도시 춘천을 걸으며
    호반의 도시 춘천을 걸으며

    가을이 왔다. 며칠 전 호반의 도시 춘천에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춘천을 알게 된 것은 1970년대다. 그 시절 번잡하고 혼탁한 서울을 벗어나 맑고 깨끗한 장소가 그리울 때면 친구들과 함께 청량리역에서 경춘선을 타거나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경춘가도를 달리는 버스에 오르곤 했다. 나는 1980년대의 춘천은 알지 못한다. 그 시절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 나는 다시 춘천을 찾게 되었다. 내가 없던 10년 동안 서울에서 춘천 가는 길에는 많은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났고 도로에는 차들이 넘쳤다. 내 마음 속에 그리던 1970년대의 춘천 가는 길은 더 이상 없었다. 그래도 의암호는 의구했고 중도유원지의 완만한 언덕에 자리 잡은 ‘강원 어린이회관’에서 바라보던 호수의 풍경은 내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었다. 서울의 대학로 마로니에극장과 샘터사 건물을 연상시키는 벽돌로 지은 나지막하게 펼쳐진 이 회관은 작고한 건축가 김수근의 ...

    2016.10.13 21:42

  • [정수복의 도시를 걷다]이태원이라는 이름의 외국을 거닐다
    이태원이라는 이름의 외국을 거닐다

    가을이 왔지만 아직 덥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아프가니스탄 황금문화전과 최순우가 사랑한 우리 문화재들을 둘러보고 나서 이태원으로 갔다. 대낮의 이태원은 밤의 열기를 뒤로 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어린 시절 약수동에 살 때 큰길가에 미군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카키색의 버스가 멈추면 봉투 같은 모자를 쓴 키가 큰 미군들이 내리곤 했다. 그때 나는 그 버스가 어디서 오는지를 몰랐다. 용산에 거대한 미군기지가 있고 거기서 출발한 버스가 이태원을 지나고 버티고개를 넘어 약수동을 거쳐 신당동으로 내려간다는 걸 안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청년 시절 논현동에 살 때 내가 타고 다니던 버스는 이태원과 붙어있는 한남동을 지나다녔다. 지금 잠원동에 사는 내가 강북으로 가기 위해 143번 버스를 타면 나를 실은 버스는 반포대교를 넘어 용산구청 앞을 지나 이태원 입구를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까 이태원은 늘 나와 가까이 있지만 직접 접촉은 하지 않은 동네다.이태원 하면 내 머릿...

    2016.09.22 20:52

  • [정수복의 도시를 걷다]나의 동아시아 항구도시 순례기
    나의 동아시아 항구도시 순례기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시원한 바다가 그리운 계절이다. 지난달 30일에서 8월7일까지 환경재단의 초청으로 ‘피스앤그린보트’를 타고 부산을 떠나 상하이, 오키나와, 나가사키, 후쿠오카를 다녀왔다. 항구를 떠난 배가 긴 항해를 마치고 육지에 접근할 때면 항구도시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뱃머리 갑판에서 점차 가까워지는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면서 내 가슴은 기대로 가득 찬다. 고층건물들이 그리는 스카이라인, 항만에 정박한 배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하역장치들, 성냥갑처럼 보이는 자동차들,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점차 확대되어 실물에 가까운 크기로 다가온다. 뱃고동이 울리고 선원들은 뱃머리의 닻줄을 풀어 배를 항구에 정박시킨다. 배에서 빠져나와 땅 위에 발을 디딜 때 나는 안도감을 느낀다. 나는 새삼 내가 뭍에 길들여진 도시인임을 깨닫는다.7월30일 아침. 3만5000t의 거대한 배가 부산항을 출발해 다음날 아침 상하이에 도착했다. 세계 곳곳에서 출발한 물건을 실어나...

    2016.08.18 21:25

  • [정수복의 도시를 걷다]서울을 걸으며 서울 사람 되는 법
    서울을 걸으며 서울 사람 되는 법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여름다운 여름 날씨다. 이럴 때는 도서관에 가서 책 속으로 잠수하면 더위는 사라지고 만다. 서초동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이 휴관하는 둘째, 넷째 월요일이면 나는 북촌에 있는 정독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난 월요일 오후, 안국역에서 내렸다. 계단을 걸어 올라와 1번 출구로 나오니 햇살이 쨍쨍했다. 곧바로 정면에 종로경찰서가 나타났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6·25전쟁 당시 그곳으로 끌려간 이후 종적이 묘연해진 한 남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그의 생사 여부도 모르고 있다. 나는 머리를 흔들며 풍문여고 담장을 끼고 윤보선길로 들어선다. 담에는 담배 냄새가 교실로 스며들어오니까 제발 흡연을 금해 달라는 여고생들의 호소문이 붙어 있다. 몇 걸음 안 가서 ‘개성공단상회’라는 간판을 단 의류상점이 나온다. 지금은 폐쇄된 개성공단의 공장들에서 만든 의류들이 전시되어 있다. 상점 2층에 올라가면 풍문여고 운동장이 보인다. 윤보선길 양편에는 카페...

    2016.07.14 21:15

  • [정수복의 도시를 걷다]한낮의 서울역 풍경
    한낮의 서울역 풍경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이럴 때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장소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땡볕이 내리쪼이는 어느 날 오후 나는 서울역 부근을 배회했다. 오후 3시35분. 지하철 계단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니 한낮의 열기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유리와 강철로 지은 서울역 신청사와 함께 머리에 녹색 돔 지붕을 얹은 구청사가 보였다. 맞은편에는 대우빌딩에서 서울스퀘어로 이름을 바꾼 거대한 성벽 같은 건물이 남산을 가리고 있고 그 옆에는 남대문경찰서 건물이 보였다. 경찰서 꼭대기에는 “폭력 없는 행복한 학교”라는 구호가 쓰여 있는 노란색 버스 모양의 공익 광고판이 설치되어 있다. 역도 선수처럼 그 버스를 치켜들고 있는 건장한 경찰의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행자를 위한 공원으로 만드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횡단보도를 건너 서울역 광장 쪽으로 향하자 이내 길바닥에서 화장실 냄새가 풍겼고 여기저기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노숙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강력한 스피커에서...

    2016.06.23 20:43

  • [정수복의 도시를 걷다]신림동 고시촌의 밤
    신림동 고시촌의 밤

    벌써 5월의 끝자락이다. 입시생이나 재수생 못지않게 고시생들에게도 5월의 나른함은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흔들리게 하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과거 조선시대 양반 자제들은 세속의 유혹을 벗어나 과거 준비에 전념하기 위해 책을 싸들고 산속의 조용한 절을 찾았다. 그런 관습은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도 계속되어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법시험, 외무고시, 행정고시와 같은 고급공무원이 되기 위한 시험 준비를 위해 조용한 산사의 작은 방에서 젊음을 불살랐다. 그런데 1980년대 무렵부터 서울대 가까이 위치한 신림동 주변에 고시촌이 형성되면서 전국의 고시 준비생들이 절 대신에 고시원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사실 서울대 캠퍼스가 도심을 떠나 관악산 자락으로 이전하지 않았더라면 신림동에 고시촌이 형성될 이유가 없었다. 고시촌 주변은 원래 지방에서 올라온 서울대생들이 방을 빌려 자취를 하거나 하숙을 하던 동네였다. 그러다가 점차 고시촌으로 변모했다. 서울대가 들어오기 이전 완만한 언덕이던 ...

    2016.05.26 20:51

  • [정수복의 도시를 걷다]파리에 숨어 있는 한국의 흔적
    파리에 숨어 있는 한국의 흔적

    푸른 오월이다. 파리의 하늘은 맑고 햇빛은 찬란하다. 가로수들의 연둣빛 잎사귀들이 미풍에 흔들리고 있다. 파리는 단지 프랑스의 수도가 아니라 세계 문화의 수도이다. 세계 각국의 작가와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그곳으로 모여들어 새로운 문화와 사상과 이론을 창조한다. 작년 가을과 올해 초에 일어난 테러사건으로 다소 분위기가 위축되었다고 하지만 파리에서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 만한 전시와 문화행사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퐁피두센터에서는 폴 클레전이 열리고 있고, 오랑주리에서는 아폴리네르전이 열리고 있으며, 오르세미술관에서는 두아니에 루소전이 열리고 있고, 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아메리카의 수많은 원시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케브랑리박물관은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특별전을 열고 있다. 발자크가 “파리는 수심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대양”이라고 말했지만 파리는 가히 세계 문화예술의 ‘거대한 저수지’이기도 하다.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를 대신해 뉴욕이 세계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2016.05.05 2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