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내리는 수요일 오후 약수동을 걸었다. 1950년대 후반 그곳에서 살기 시작하여 1970년대 말 그 동네를 떠났으니, 나는 약수동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셈이다. 남쪽으로는 한강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남산이 지척의 거리에 있는 약수동은 그 시절 나의 원초적 감수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국의 도시 파리에서 살았던 17년을 제외한다면 줄곧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추억의 공간을 다시 찾아갈 수 있었지만, 나는 늘 그곳을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거나 지하철을 타고 통과했을 뿐 아무 할 일 없이 무작정 걸어 본 적은 없었다.지하철 3호선 약수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면 약수동 로터리가 나온다. 그곳에 한참 멈추어 서서 50여년 전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어린 시절 나에게 약수동 로터리는 매일 학교로 가는 통학로였으며 심심하면 장충단공원으로 놀러가는 통행로이기도 했다. 로터리에서 청구동으로 내려가는...
2016.12.22 2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