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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GO 발언대]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 ‘제국’은 없다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 ‘제국’은 없다

    지난 7월 김민석 국무총리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제국적 사고다. … 우리는 제국을 해본 적이 없다. 늘 식민주의만 했다. … 공격적인 관점을 가질 때가 됐다”는 발언은 작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제국적 사고’라는 도발적인 주장은 일종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임지현)에 사로잡힌 피해자 지위에서 벗어나 질서를 주도하는 주체로 서야 한다는 원대한 포부로 선해됐다.사실 식민통치를 겪은 우리 공동체는 ‘다시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부국과 강병을 이루어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담론에 취약하다. 피해자 서사는 언제든 지배자 서사로 전환될 수 있다. 진보와 보수가 화해 불가능한 적대관계인 듯 싸우지만, 우리 역사에서 주류 정치세력들은 공히 후발국가로서 추격을 통한 근대의 달성, 즉 제1세계로의 편입을 목표로 해왔다. “군사력 5위, 경제력 10위권 선진 민주국가로 우뚝 섰다”는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발언이 이를 대변한다. 트럼프의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MAGA 제국...

    2025.11.02 20:14

  • [NGO 발언대]빈민을 없애면 빈곤이 사라질까
    빈민을 없애면 빈곤이 사라질까

    홍합에 쌀을 넣고 쪄낸 미디예 돌마는 튀르키예 길거리 명물이다. 의자에 널빤지를 얹고, 반질반질한 홍합과 레몬을 한 무더기 쌓아둔 노점은 이스탄불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식당에서도 팔지만, 진짜 맛은 길 위에서 난다. 몇개째인지 모를 미디예 돌마를 먹던 중, 등 뒤에서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났다. 노점상은 순식간에 좌판을 해체해 들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나는 홍합을 문 채 거리에 얼어붙었다. 먹고살기 위한 자리가 법의 눈을 피해 달아나야 하는 현실. 그 장면이 서울의 어느 새벽과 닮았다.지난 9월, 서울 광진구청은 건대 입구의 명물이던 노점거리를 철거했다. 거리를 지나는 이들이 떡볶이로 배를 채우고, 줄 서서 타로 점괘를 보고, 기념일이면 꽃다발을 만들어가던 곳이다. 새벽 3시, 철거용역과 공무원 350명이 노점박스를 뜯었다. 법적으로 금지된 심야 집행이었다. 계고도 없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노점상들은 지게차를 가로막고, 포장마차를 붙잡았다. 노점상들...

    2025.10.26 19:53

  • [NGO 발언대]장식된 청년, 배제된 목소리
    장식된 청년, 배제된 목소리

    사기꾼들이 상대를 속일 때 가장 먼저 꺼내는 무기는 ‘칭찬’이다. “이런 좋은 집은 드물어요, 안목이 있으시네요.” “선생님이시니까 원가에 드릴게요.” 결함이 있는 상품일수록 말은 달콤해진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화려한 말로 허점을 감춘다.요즘 우리 사회가 청년을 다루는 방식이 이와 비슷해 보일 때가 있다. 지난달 전국 곳곳에서 열린 ‘청년의날’ 행사를 돌아보면 더욱더 그렇다. 지자체와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청년에게 공감하고 위로한다” “청년들의 정책 토론 배틀을 유심히 경청했다” “의사결정 자리에 청년을 앉혔다”고 자랑했다. 위로, 응원, 경청, 존중. 어느 하나 문제 될 단어는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외치던 10여년 전보다 훨씬 세련돼 보인다. 하지만 그 말들이 쏟아지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말’ 리스트를 정해놓기라도 한 듯 모두가 똑같은 문장을 읊는다.문제는 추앙이 지나치면 본질이 가려진다는 점이다. 애당초 위로받을 일이...

    2025.10.19 20:37

  • [NGO 발언대]학교에서 무지개길을 찾을 때까지
    학교에서 무지개길을 찾을 때까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고민하는 10대 청소년 성소수자로서, 누구와 상담하면 좋을지 챗GPT에 물어보았다. 챗GPT는 먼저 정체성에 대한 탐색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며 위로해 주었고, 학교에서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아보라는 조언과 함께 학교 상담(보건)교사를 추천했다. 띵동은 믿을 수 있는 친구나 어른 다음으로 소개되었다.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한 것이었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뿐 아니라 마음까지 살펴주는 듯했다. 마치 띵동 상담 기록을 엿보는 느낌이었다.2009년 11월, 학교에서 동성애 혐오에 기반한 집단 괴롭힘으로 고통받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2014년 2월 부산고등법원은 파기환송심에서 학교 측의 괴롭힘 방지 의무 위반 책임은 인정했지만, 학생의 자살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비록 아쉬운 판결이었지만, 재판부는 담임교사가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도,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상담교사에게 ...

    2025.10.12 21:51

  • [NGO 발언대]사법개혁은 가장 탈정치화된 논쟁으로
    사법개혁은 가장 탈정치화된 논쟁으로

    혁명보다 개혁이 어렵다고들 한다. 우리는 항구적인 불안정을 초래할 혁명을 억제하고 합의한 규칙 내 경쟁을 택했다. 그것은 인치 대신 법의 지배, 대표의 민주적 경쟁과 선출(수직적 통제), 국가권력 간 수평적 분할과 견제(삼권분립) 같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일방의 의지로만 바꾸는 건 어렵다. 우리 공동체는 전무 아니면 전부와도 같은 정치 대신 일시적인 후퇴를 감안하더라도 전체 공동체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의 안정적인 진보에 합의한 것이다.윤석열도 개혁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그는 설득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의지대로 실현하고자 했다. 혁명과도 같았던 ‘결단’은 우리의 취약한 정치 구조가 내란을 막아낼 수도 있지만 내란을 획책할 수도 있는 ‘내란 사태의 구조적 준비 상태’(홍성태)라는 것을 드러냈다. 내란이 남긴 교훈은 우리 정치 구조의 한계를 배경으로 언제든 규칙을 허무는 혁명과도 같은 항구적 불안정이 법의 이름으로 가능하다는 것...

    2025.09.28 21:35

  • [NGO 발언대]쨍 하고 해 뜰 집
    쨍 하고 해 뜰 집

    볕이 잘 들어 양동(陽洞)이라 불린 동네가 있다. 서울 남산 언덕배기. 전후 판잣집이 즐비했고, 불이 나 전소되면 다시 집을 지어 올리던 질긴 주민들이 있었다. 성매매 집결지와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세방, 가난한 가족들의 집이 있던 곳은 이제 빌딩 숲속 쪽방촌이 됐다. 여름엔 사방 빌딩에서 나오는 열기에 찜통이고, 겨울엔 양동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그늘진다.2019년, 쪽방을 헐고 빌딩을 짓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주민들은 불안했지만 어디서도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 무렵 인근 시장엔 ‘후암동에 쪽방촌 웬 말이냐, 절대 반대’ 현수막이 걸렸다. 주민들을 근처 고시원과 상가로 흩어 이주시킨다는 계획 때문이었다. 정작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다.천덕꾸러기를 만든 건 법이었다. 한국의 정비법은 기묘하다. 업무용 빌딩을 지으면, 그 땅에 세입자가 살아도 임대주택을 지을 의무가 없다. 수백 명이던 주민은 법의 언어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더 많은 개발이...

    2025.09.21 21:25

  • [NGO 발언대]숫자보다 시선을 담는 청년주거 정책을 기대하며
    숫자보다 시선을 담는 청년주거 정책을 기대하며

    새 정부 출범 후 첫 ‘청년의날’인 오는 20일 전후로 종합 청년 정책이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주거 대책만큼은 기대를 하기 어렵다. 지난 7일 공개된 ‘주택공급 확대방안’ 등 정부 부처 중심의 논의에서 드러난 ‘청년 주거’ 대책은 지난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낡은 해법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다.그간의 청년 주거 정책은 단순히 집을 몇채 더 짓겠다는 실속 없는 선언 중심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저출생·고령화,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고립·안전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청년주택 몇만 가구, 기숙사 몇채” 등 단순한 숫자 중심의 처방을 내놓는다.정책이 납작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청년의 일상에서 시작하는 ‘시선’이 없기 때문이다. 청년 주거의 현실은 인공지능(AI) 기술만큼 빠르게 바뀐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영끌’이 화두였지만, 이제는 ‘전세사기’가 가장 큰 위협이 됐다. 부모와 함께 살다 결혼 후 아파트를 마련한 ...

    2025.09.14 21:23

  • [NGO 발언대]국가인권위원회의 비겁함
    국가인권위원회의 비겁함

    “인권위에 대한 행정소송이 제기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결정의 지연에 대해 신청인께 송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특별심사를 앞둔 국가인권위원회가 ‘변희수재단’ 법인 설립 심사에 대한 질의에 안타깝고 송구하다고 답변했다. 1년4개월 넘게 법인 설립 허가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허탈하고 어이없는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안창호 인권위원장이 평소 가지고 있던 소신대로 성소수자 혐오에 기반한 의도적인 방해였다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한 답변이었을 것이다.지난 9월4일, 서울행정법원에서 변희수재단이 제기한 ‘법인 설립 허가 절차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소송을 제기한 지 7개월 만이다. 인권위는 서면 답변서를 제출하는 것도 차일피일 미루다 변론기일 이틀 전 제출했고, 증명자료엔 인권위 상임위원·비상임위원 선출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었다는 뉴스 기사를 그대로 붙여넣었다. 총 9쪽 분량의 답변서 중 4쪽이 뉴스 기사일 정도...

    2025.09.07 21:25

  • [NGO 발언대]스마트폰 금지와 정치의 실패
    스마트폰 금지와 정치의 실패

    학생들의 스마트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교사의 지도·통제(교육권) 강화와 학생의 스마트 기기 과의존 예방(학습권)이 입법 취지라고 한다.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듯 이 법은 학생들의 스마트 기기 사용을 교사들이 ‘통제’하기 힘든 현실을 반영한다. 이는 즉각 학교공동체와 교실의 현실, 인권을 둘러싼 논란을 낳는다.학교는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자 다양한 구성원들이 관계를 맺는 하나의 사회이기도 하다. 또한 주체들 간 논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고 바깥의 정치적·사회적 관계를 반영하는 정치적 공간이다. 이곳은 오랫동안 권위주의적 윤리 규범에 따라 운영되었지만 ‘민주화’의 영향은 교실 안으로도 이어져 ‘학생인권’과 같은 대항규범이 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문제의식과 유사하게 기존의 질서를 대체하는 제도(조례나 법)들은 제대로 기능하거나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학교는 ‘계몽’의 공간이자 진영의 전장이 되었고 교권과 인권...

    2025.08.31 21:34

  • [NGO 발언대]위장된 기준중위소득
    위장된 기준중위소득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이 발표되었다. ‘기본적 삶을 위한 안전망 강화’의 세부 내용 가운데 하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선정 기준 상향이다. 현재 생계급여는 기준중위소득의 32% 이하일 때 신청할 수 있는데, 이 생계급여의 선정 기준을 2030년까지 35%로 높여 보다 많은 이들을 제도로 포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가난한 가족이 주검으로 발견되는 비극이 이어지고, 그때마다 복지제도는 땜질식 쇄신을 내놓는다. 1%, 2%라는 수치가 담고 있는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지금 논의에서 놓치고 있는 핵심은 무엇인가. 선정 기준 상향이 분명 필요하지만, 그 근본에는 ‘기준중위소득’ 자체에 도사린 함정을 바로잡는 일이 있다.생계급여 현실화를 논하려면 먼저 기준중위소득 현실화가 전제돼야 한다. 기준중위소득은 국민의 소득을 일렬로 세워 중간값을 산출해 매년 결정된다. 소득, 고용, 의료, 사회서비스 등 사회보장제도 전반의 기준이 되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2025.08.2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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