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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 [역사와 현실]마키아벨리의 미소
    마키아벨리의 미소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다. 그의 초상화 중 마키아벨리 직후 세대의 화가인 산티 디 티토가 그린 것이 유명하다. 이 초상화에서 마키아벨리는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데, 이 미소가 일품이다.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의 미소만큼이나 마키아벨리의 미소도 헤아리기 힘든 내면의 깊이와 미묘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 미소의 의미는 필경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르게 파악될 것이다.마키아벨리는 이른바 ‘마키아벨리주의’의 창시자로 간주된다. 그의 정치사상은 통상 권모술수의 정치로 해석된다. 그런 맥락에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주장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거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로 거칠게 요약되곤 한다. 이런 해석에서 보자면, 마키아벨리의 미소는 ‘찬웃음’이다. 즉 마키아벨리의 미소는 자신의 권력과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정적을 잔인하게 제거하고 국민을 태연하게 기만하는 냉혈한 정치인의 냉소적 웃음이다. 그러나...

    2025.05.14 20:12

  • [역사와 현실]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저질 선비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저질 선비

    1973년, 경상북도 어느 지역의 새마을지도자가 새마을연수원장에게 항의 편지를 보냈다. 자기 지역의 모 지도자가 거짓 실적으로 포상을 받았다고 고발하는 편지였다. 사실관계보다도 나는 그 편지의 한 문장이 흥미로웠다. 원장에게 이 문제를 청와대에 보고해 달라며 “선생님의 애국은 바로 각하에게 직언하는 것이라고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라고 한 부분이다. 이는 신하의 충(忠)을 임금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바른길로 이끄는 간쟁이라고 보던 그 인식의 연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 문득 500여년 전 정창손과 세종의 대화를 떠올렸다.1444년(세종 26년),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한 일군의 집현전 관리들은 훈민정음 제작이 부당하다고 상소했다. 세종은 이 중 정창손의 말을 특히 문제 삼았다. “삼강행실을 반포해도 충신·효자·열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그 자질 여하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라 한 발언이었다. 이전에 세종은 “삼강행실을 번역해서 반포하...

    2025.05.07 20:21

  • [역사와 현실]이념 사회와 선명성의 정치
    이념 사회와 선명성의 정치

    1808년 여름, 송흠선이 전주 들판에서 참수됐고 그 목은 저자에 걸렸다. 굳이 송시열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대부에게는 과한 처벌이었다. 서원에 배향된 송시열 위패를 훼손했다는 게 이유였다. 집권 세력인 노론의 관점에서 볼 때, 송시열 성인화에 매진해도 못마땅할 후손이 위패까지 훼손했으니 용서가 되지 않았던 듯했다. 이듬해인 1809년 음력 4월1일, 조정에서는 다시 송시열의 후손 송능상의 이름이 거론됐다. 송능상은 송시열의 증손자로, 지역에서 학덕을 인정받아 ‘유일’(遺逸·관직에 나가지 않는 은거한 선비)로 불렸던 인물이다. 이미 고인이 된 지 50년도 더 되었지만, 윤우대를 비롯한 사부학당 유생들은 선현을 깎아내리고 모욕했다는 이유로 송능상을 탄핵했다. 그의 문집 <운평집>에 주자 정론과 다른 입장이 들어 있다는 게 이유였다. 정확한 내용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예(禮)에 대한 해석이 문제가 된 듯했다.유학에서 ...

    2025.04.30 20:50

  • [역사와 현실]탄핵에 대한 두 의문
    탄핵에 대한 두 의문

    1980년 전두환에 이어 2024년 12월3일 현직 대통령이 44년여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판결로, 이것이 불러온 위태로운 상황은 일단락됐다. 그동안 수많은 시민이 거리와 광장에서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인터넷과 TV를 통해 재판을 지켜보며 애태운 끝에 나온 결과다. 상황은 국면을 바꿔 이어지고 있고, 현실이 정상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이 전체 상황은 형사재판을 통해 검토될 것이고 이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은 그것을 반추하겠지만, 그것과 다소 다른 차원의 의문도 생겨났다.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과 심정적으로 그에 동조했던 측과 내란에 반대한 측은 서로 답을 얻지 못한 의문을 갖게 됐다. 한쪽은 쿠데타가 왜 실패했는지를, 다른 쪽은 왜 쿠데타를 일으켰는지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최고 권력자가 현직에 있으면서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한 경우는 세계적으로 대단히 드물다고 한다. 최정예 부대까지 동원해 준비한...

    2025.04.23 20:25

  • [역사와 현실]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한 섬뜩함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한 섬뜩함

    이탈리아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재미있는 장면이 잠깐 지나간다. 주인공 두 명이 시골길을 가다 물을 얻으려고 농가에 들른다. 미국인 친구가 벽에 걸린 그 옛날 독재자 무솔리니의 초상화를 보고 몹시 놀라워한다. 그러자 이탈리아 친구가 ‘쿨’하게 대꾸한다. “여기 이탈리아잖아.”1945년 이탈리아 파시즘이 패망하면서 무솔리니가 최후를 맞이하고 역사의 단죄를 받았건만, 그로부터 무려 40여년이 지난 후에도 독재자의 초상화가 버젓이 걸려 있는 모습은 정녕 놀랍다.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할까? 단순히 한적한 농촌의 고립무원 때문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고, 아니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특성으로 설명해볼 법도 하다.그러나 역사의 지속이라는 시각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파시즘이 패망했다고는 하나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지지자가 무솔리니의 시신을 가져간 사건은 기괴하다 못해 공포스럽...

    2025.04.16 20:15

  • [역사와 현실]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10조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10조

    1930년 조선총독부는 ‘조선국세조사보고’라는 통계자료를 낸다. 조선의 형편을 조사한 보고서란 뜻이다. 이는 전국의 문맹률 조사치가 담긴 제대로 된 첫 조사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시기 문맹률은 얼마나 됐을까?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어든 한글이든 아무것도 읽고 쓸 수 없는 문맹자가 78%(남자 64%, 여자 92%)에 달했다고 한다. 즉 인구의 80%가 문자를 전혀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역별·계층별 편차를 고려하면 더욱 심각해진다. 지주층의 취학률이 70%일 때 자작·소작농의 취학률은 1.5%밖에 안 되던 시대니 시골일수록, 못살수록 문맹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편차를 참작해본다면, 도시의 특정 계층을 제외한 여성의 문맹률은 95%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 이전 시대라고 얼마나 달랐을까. 인구의 10%도 안 되는 사람들만 문자를 알던 시대, 한글 창제 이전에는 그보다도 훨씬 더 적은 사람들만 문자를 읽고 쓸 수 있었을 것이다.새삼스럽게 이 문제를 짚는 것은 역사...

    2025.04.09 21:24

  • [역사와 현실]소나무를 위한 변명
    소나무를 위한 변명

    지난달 22일부터 열흘에 걸쳐 경상북도 5개 시군을 덮친 이번 산불은 인명 피해부터 면적에 이르기까지 역대급 산불로 기록될 듯하다. 바짝 마른 날씨에다 계절 변화에 따른 바람을 만난 불씨는 경북 북동 지역을 공포에 밀어넣는 화마로 변했다. 무엇보다 이번 화재로 희생된 30여명의 고귀한 생명과 화재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헬기 조종사의 순직은 어떤 말로도 위로하기 힘든 일이다. 천년 고찰 고운사가 불탔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회마을과 병산서원도 위태로웠다.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종종 소나무가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번 산불에서도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 불붙은 솔방울은 불을 전파하는 폭탄에 비유됐고, 송진은 산불을 키우고 화재 진압을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소나무가 절대적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산은 그래서 대형 산불 위험이 내재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활엽수의 비율을 높이고 소나무 일변도의 산림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더해지는 이유이다.재난의...

    2025.04.02 21:31

  • [역사와 현실]엘리트의 자격
    엘리트의 자격

    조선왕조의 지배층은 사대부(士大夫)였다. ‘사’는 독서인이자 지식인이고, ‘대부’는 정부 관리나 정치인이다. 사제와 기사가 지배층을 형성했던 대부분의 서구 전근대 사회와 다른 점이다. 이들 사대부 중에 일종의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들이 있다. 정치인·관리 중에 종묘에 배향된 이들과, 지식인 중에 문묘에 배향된 인물들이다. 후자가 전자보다 수도 훨씬 적고 사회적으로 더 명예스럽게 여겨졌다. 문묘는 유교를 창시한 공자의 사당이다. 성균관과 향교에 있는 문묘에 조선시대를 통틀어 모두 14인이 선정됐다.기묘사화(1519) 이후 명종 대까지 거의 50년 동안 사림은 탄압받았다. 하지만 사화가 이어지는 중에도 사림은 사회적으로 성장해 여론 주도층이 됐다. 결국 선조 즉위(1567)와 함께 정치적 힘을 회복해 조정에 다시 나왔다. 그즈음 성균관 유생들이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 네 사람의 문묘 종사(從祀)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성균관 유생은 문과 급제 전의 젊은 지식인들이었다....

    2025.03.26 21:00

  • [역사와 현실]권력자는 의존하는 자다
    권력자는 의존하는 자다

    고대 로마 제국의 쇠망사를 쓴 한 역사학자가 로마 황제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우리는 황제라고 하면 무소불위의 최고 권력자를 떠올리지만, 실상 그의 권력에는 구멍이 많이 뚫려 있었다. 황제는 이론의 여지 없는 제국의 중심이었으나 현실적으로 그의 정치적 지배력은 중심부 언저리에서만 행사됐을 뿐 먼 지방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이는 제국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황제의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중요했다.물론 황제의 법적·이데올로기적 권력은 대단해서 무엇이든 황제의 손길이 닿는 것은 적법한 것으로 권위를 인정받았다. 사정이 그러하자 지방민들은 다투어 자진해서 황제의 권위를 요청했다. 그들은 사적 행동의 정당성과 사업의 합법성을 인가받기 위해, 또 다양한 특권과 혜택을 확보하기 위해 황제의 권위가 필요했다. 로마 제국에서 중앙과 지방은 그런 식으로 유착했다. 즉 황제와 중앙정부의 권력은 지방민들의 권위에 대한 요구에서 나왔다.특히 황제의 ‘답서’ ...

    2025.03.19 21:15

  • [역사와 현실]‘똥개천’이 남긴 것
    ‘똥개천’이 남긴 것

    1984년 9월 한밤중, 아버지가 곤히 잠든 나와 형제들을 흔들어 깨웠다. 홍수가 났다며 얼른 옷 입고 대비하라고 하셨다. 며칠 동안 퍼부은 비에 동네 개천이 넘치면서 난리가 난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이때 서울에는 298.4㎜의 비가 퍼부었다. 하루 최대 강우량으로는 1904년 기상대 창설 이후 최고 기록이었다. 한강 본류는 물론 지류까지 넘치면서 서울의 피해가 극심했다.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딱 이런 때 적합한 속담이리라. 졸린 눈을 비비며 나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사람 많은 곳에 섞여 있게 될 수 있는데, 마냥 편한 옷만 입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끝에 밝은 청 셔츠에 청바지를 골랐다. 여기에 헐벗은 발은 아니라고 생각해 발목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고, 긴 머리카락은 묶을지 풀지를 고민하다 위 절반만 양 갈래로 나누어 핀을 꽂고 대기했다. 다음날 아침, 내 패션을 보신 아버지는 이런 물난리에 무슨 청바지, 무슨 양말이냐며 황당해하셨다.그 ...

    2025.03.12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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