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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와 현실] 도쿠가와 막부 멸망은 ‘오오쿠’로부터
    도쿠가와 막부 멸망은 ‘오오쿠’로부터

    도쿠가와 막부 에도성(江戶城)의 메인 빌딩(혼마루고텐, 本丸御殿)은 신하들이 정무를 보는 오모테무키(表向), 쇼군(將軍)의 집무실인 나카오쿠(仲奧), 그리고 쇼군의 정처와 후궁들이 거주하는 오오쿠(大奧)로 나뉘어 있었다. 오모테무키, 나카오쿠의 면적을 합쳐도 4688평이었던 데 비해, 오오쿠는 6310평이었다. 안 그래도 사치스러웠던 오오쿠는 9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1773~1841) 재임기에 더욱 호화로워졌다. 보통 쇼군은 7·8명 정도의 측실을 두었는데 이 사람은 약 40명을 두었다. 그중에 정실(미다이 도코로, 御台所)을 포함해 17명의 여인에게서 자녀 55명을 낳았다. 측실이 많아지니 자연히 부속인원과 경비도 한층 늘어, 많을 때는 오오쿠 인...

    2023.12.20 14:46

  • [역사와 현실] 김장과 낙천성
    김장과 낙천성

    김치를 좋아한다. 김치찌개에 김치볶음밥을 놓고서도 깍두기를 곁들여 먹는 사람이다. 김장을 할 때면 6가지 이상을 담그고, 밥상에는 늘 3종 이상의 김치가 올라오던 집 출신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형제들은 나 정도는 아닌 걸 보면 그냥 타고나길 그런 것 같기도 하다.애정의 정도에 비해 담그는 데는 재주가 없다. 할 줄 모르니 친정에서 김장을 할 때도 채칼로 무채 썰기라든가 대야 옮기기, 양념 붓기 같은 단순 작업밖에 못했다. 그러나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딱 한 가지 재주를 갖고 있으니, 바로 간을 기가 막히게 본다는 것이다. 익었을 때 맛있을 정도를 가늠할 줄 아는 미각 말이다. 맛을 보고 싱겁다 짜다 운운하며 이러저러 지휘를 하면, 어른들이 투덜대곤 하셨다. 제 손으로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입만 살았다고. 그러나 어찌하리. 어른들 입맛은 둔해진 것을.이렇듯 김치를 좋아하지만 사정이 생겨 10여년 전부터는 친정과 시집에서 담근 김치를 얻어먹을 수 ...

    2023.12.13 20:20

  • [역사와 현실] 진상의 역설
    진상의 역설

    비교적 오래된 이야기지만, 청어는 한때 우리네 겨울 밥상을 풍성하게 만든 대표 생선이었다. 오죽 흔했으면 청어로 과메기를 만들 정도였을까 싶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이제는 꽁치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날이 쌀쌀해지면 살에 기름기가 올라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보니, 겨울이 되면 조선시대 왕의 밥상에도 생청어가 빠지지 않았던 듯하다. 이 시기 동해와 남해 일부를 관할했던 경상감사 진상품 가운데 하나가 청어였던 이유이다.272년 전인 1751년 음력 10월18일, 경상감사 조재호는 시름에 빠져 있었다. 매월 음력 보름(15일)이면 끝냈어야 할 진상이 3일이 지나도록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탓이었다. 다른 물품들은 품질과 수량 점검을 거쳐 진상 준비를 모두 마쳤지만, 아직 생청어가 봉입되지 않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음력 10월 초부터 가능한 모든 장비와 인력을 동원하여 청어잡이에 나서도록 독려했지만, 그해 유난히 따뜻했던 바닷물로 인해 청어가 잡히지 않은 탓이었다. 송구함으로...

    2023.12.06 20:43

  • [역사와 현실] 늙어가는 대한민국
    늙어가는 대한민국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44세이고, 대한민국 사람들을 나이 순서로 세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연령을 의미하는 중위 연령은 이보다 한 살 많은 45세이다. 그런데 2002년 한국인의 중위 연령은 31.8세였다. 20년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위 연령이 13년 정도 높아진 것이다. 아마도 출산율은 낮아지고 평균수명은 증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 전체 수준에서 나타난 변화라는 면에서 대단히 급격하다.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대체로 주변의 환경변화를 수용하는 정도가 떨어진다. 사람들은 10대, 20대에 얻은 경험, 가치관, 문화 속에서 이후 생애를 살아간다. 30세 이후에 생활방식이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일본이 한국보다 사회의 디지털화 수용 정도가 전반적으로 늦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 이유를 일본이 한국보다 사회 고령화 상황을 일찍 맞은 것에서 찾는 견해가 있다. 일리가 있다.사회의 노화가 사회 구성원의...

    2023.11.29 20:22

  • [역사와 현실] 평화는 전쟁의 ‘브레이크 타임?’
    평화는 전쟁의 ‘브레이크 타임?’

    지난 금요일부터 3일에 걸쳐 한·일 역사가 23회째 회의가 서울대에서 있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후 모임이 만들어진 이래 올해가 23회째다. 한·일관계의 파탄, 코로나19 등 난관을 뚫고 어렵사리 23년째 계속해 오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제는 <역사에서의 전쟁과 문명>이었다.<서양 과학기술문명의 야누스적 두 얼굴-양차 세계대전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내주 교수는 3500년에 걸친 인류문명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불과 268년이었다는 통계를 소개하며 얘기를 시작했다. 정말 그렇다면 평화란 다음 전쟁을 기다리는 동안 잠깐의 휴식일 뿐인 셈이다. 참 무서운 얘기다. 이 통계의 당부(當否)는 차치하고라도 인류가 부지런히도 전쟁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수명과 생활수준의 향상에 획기적으로 기여했지만, 불행히도 전쟁 사상자의 수를 늘리는 데에도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대포, 기관총, 핵무...

    2023.11.22 20:33

  • [역사와 현실]영웅은 없다
    영웅은 없다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가끔 유튜브 문화유산채널의 K-ASMR 국가무형문화재 시리즈를 찾아서 본다. 그렇게 찾은 동영상 중 하나가 명주짜기였다. 베틀에서 달가닥달가닥 명주 짜는 소리를 기대하며 튼 동영상은 바로 내 예상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베틀에 앉아 천을 짜는 첫 화면은 맛보기였을 뿐이고, 본격적인 내용은 누에를 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뽕잎을 먹으며 누에가 성장해 고치를 짓는 장면부터 시작하더니, 인간의 온갖 작업이 이어졌다. 여럿이 모여 고치를 다듬고는 삶아서 실을 뽑아 물레에 걸어 실뭉치를 만든다. 그 후엔 서로 붙은 실을 분리하는 실째기 작업이 이어진다. 째기를 마친 실은 걸어서 말리고 가닥별로 실뭉치를 만든다. 아직도 끝이 아니다! 한 필의 길이로 실의 길이를 맞추는 베날기 작업, 그다음엔 그 실을 펼쳐 풀을 먹이고 말리는 베메기 작업이 이어진다. 베메기 작업을 하려면 한 필 길이의 실을 늘어놓을 넓은 공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여럿이 달라...

    2023.11.15 20:20

  • 잡고 싶은 정치인 되기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이후, 정국은 총선을 향한 빠른 레이스가 시작된 모양새다. 쏟아지는 여론조사 결과와 난무하는 정치공학적 담론들로 머리가 어지러운 것을 보면, 총선을 향한 여당과 야당의 고민 역시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오가는 담론들 속에 정작 정치의 본래 목적과 그것이 지향해야 할 원론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듯하다. 너무 당연해서, 그래서 논의할 필요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새겨볼 필요조차 없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1637년 음력 9월9일, 예안현(현 경북 안동시 예안면 지역)은 현감 이경항의 갑작스러운 사직 통보로 술렁였다. 3개월 전 불명예스럽게 파직된 전임 현감 김경후의 뒤를 이어, 그가 부임한 지 불과 2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경항은 전임 현감들이 현의 크고 작은 일들을 아전들에게 일임한 후 그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현 행정이 파탄나는 사례들을 많이 보았다. 현의 사무를 엄격히 관리하고, 현에 속한 아전들과 관속들을 강하게...

    2023.11.08 20:23

  • [역사와 현실] 이념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이념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조선왕조는 태조 이성계부터 마지막 순종까지 27대 518년 동안 이어졌다. 세계적으로 봐도 드물게 오래 지속된 왕조이다. 하지만 그 국왕 권력이 순조롭게만 이어지지는 않았다. 두 번의 반정(反正)이 있었다.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1506)과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1623)이 그것이다. 중종은 연산군의 이복동생이었고, 인조는 광해군의 조카였다. 조선 왕실의 연속성은 이어졌지만, 지금 관점에서 보면 두 반정이 정치 쿠데타인 것은 분명하다.16세기 초반에 일어난 중종반정과 임진왜란 뒤 17세기 전반에 일어난 인조반정은 반정이라는 이름은 같아도 그 성격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는 100여년 동안 진행된 조선왕조 내부의 정치적, 사상적,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기에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종반정은 그 앞뒤로 나타난 양상이 매우 이념적이었던 반면에, 인조반정은 그렇지 않았다. 정치세력 간 갈등은 있었지만 그것이 이념적 차원으로 심하게 돌출되지는 않았다.재위 중에 연산군은 “...

    2023.11.01 20:53

  • [역사와 현실] 새로운 한국 근대사상을 꿈꾸며
    새로운 한국 근대사상을 꿈꾸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연구팀의 팀 티칭에 나도 한자리 끼게 된 것이었다. 사학과가 아닌 학생들과 하는 수업은 항상 즐겁다(물론 사학과 수업이 재미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역사학도들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던지는 아이디어와 질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대, 자연대 등 이과생들은 특히 그렇고 사회대 학생들의 반응도 늘 신선하다. 역사학도들(역사학자 포함)은 뭔가 특유의 시각, 문제의식 심지어는 공통의 표정이 있다. 그게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집단사고(group thinking)로 경직화할 우려가 있다. 역사학도들은 다른 전공,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을 널리 접해보는 게 좋다.얘기가 처음부터 옆길로 샜다. 다시 돌리자. 학생들에게는 논문 두 편(김종학 ‘조일수호조규는 포함외교의 산물이었는가?’·홍종욱 ‘3·1운동과 비식민지화’)을 미리 읽어오라고 했다. 이 논문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근대사상(近代史像)에 균열...

    2023.10.25 20:21

  • [역사와 현실] 분서갱유의 카르텔
    분서갱유의 카르텔

    2000년대 초반 일이다. 개성공단으로 남북 협력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모 방송국에서 개성을 직접 방문해 그 역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다. 마침 내가 속한 연구 모임이 고려 개경을 연구하고 있었기에, 방송국에 여러 자문과 함께 북한 측 연구자 ㅈ씨를 만나서 연구 이야기를 들으라고 조언했다. ㅈ씨는 해방 후 개경 성곽 전체를 직접 조사하여 논문을 발표한 유일한 분이었다.촬영을 마치고 온 방송국팀이 전한 북한의 환경은 열악했다. 수시로 정전이 되는 바람에 촬영이 자주 중단됐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추천한 ㅈ씨는 자신의 박사논문 원고를 보자기에 싸 갖고 올 정도로 촬영을 적극 도왔다고 했다. 그 얘기에 모두 귀가 번쩍 뜨였으나, 그 논문을 구해볼 순 없었다. 보자기 원고가 유일본이었기 때문이다. “복사라도 해서 갖고 오시죠?” 한마디 했다가 나는 바로 깨달았다. 카메라 전기도 끊기는 마당에 어디서 복사를 해오나. 인문학 분야도 21세기의 연구는 종이, 펜만이 아니라, 전...

    2023.10.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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