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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와 현실] 장시경 모반사건
    장시경 모반사건

    1800년 음력 6월, 정조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영남을 좌절에 빠뜨렸다. 1792년 윤4월 영남은 만명 이상이 연명한 사도세자 신원 상소를 올렸고, 그 이후 6년여 만에 영남은 중앙 정계에서 일정 정도 자신들의 입지를 만들고 있었다. 근 100여년 만에 영남을 향한 왕의 따뜻한 시선을 체감하고 있었지만, 다시 노론 벽파가 자기 정권을 강화하는 과정을 눈 뜨고 지켜봐야 하는 시기가 닥쳐오고 있었다. 슬픔을 빌미로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지만, 불안한 상황이기는 했다. 그러던 음력 8월24일, 영남을 절망에 빠뜨린 소문이 퍼졌다. 인동부(지금의 경북 선산군 인동면 일대)에서 모반이 일어났다는 소문이었다. 주모자는 장시경으로, 17세기 영남 유림을 대표했던 장현광의 후손이었다. 소식에 따르면 장시경 형제는 국상을 빌미로 50여명의 병력을 일으켜 수령을 결박한 후, 병마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인동부 수령이 응하지 않자, 그를 관문 밖에 묶어 두고 상주 진영으로 진군했다고 했다. 이 소식...

    2023.10.11 20:48

  • [역사와 현실] 번아웃과 수신
    번아웃과 수신

    취업 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2016년에 직장인의 79.4%가 번아웃 증후군을 겪은 경험이 있다(경향신문 2016년 4월14일 보도). 취업 포털 사람인도 같은 해 조사 결과 직장인의 88.6%가 번아웃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019년에 이루어진 잡코리아의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95.1%까지 높아졌다. 우리나라 직장인 대부분이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경험한 일은 개인적이지 않다. 그것은 사회적 현상이고, 따라서 상응하는 사회적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사회적 원인은 길든 짧든 역사적 원인을 갖는다.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직장인의 휴가 일수가 짧고, 그마저 다 쓰지 못하는 나라다. 2016년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프랑스나 스페인처럼 연간 30일 유급휴가를 모두 사용하는 나라는 물론이고 우리와 비슷한 일본과 비교해도 차이가 있다. 일본은 연간 20일 휴가에 10일을 사용했는데, 한국은 15일 휴가에 8일을 사용했다고 한다. 일본은 ‘과로...

    2023.10.04 20:27

  • [역사와 현실] 김대건과 요시다 쇼인
    김대건과 요시다 쇼인

    지난 주말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스물두번째 편지>를 봤다. 김대건이 프랑스인 신부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통해 그의 삶과 시대를 조명한 작품이었다. 내 머릿속에 김대건의 존재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올해 3월 서울대 역사학부 답사로 그의 생가가 있는 충남 내포 솔뫼 성지에 갔을 때였다. 이곳은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와 내지에 포구를 형성하고 있어 서울은 물론 중국과도 왕래가 쉬웠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천주교가 번성했는데, 김대건 가문은 증조부, 종조부, 부친, 그리고 본인까지 4대가 순교했다.1836년 프랑스 선교사 피에르 모방은 김대건·최양업·최방제 등 3명의 조선 소년들을 유학생으로 선발했다. 이들은 중국을 거쳐 마카오로 가 신학, 라틴어, 프랑스어, 서양철학 등을 배우다가 마카오 정세가 심상치 않자 마닐라로 건너갔다. 이 와중에 최방제는 병사했고, 조선에서는 김대건의 아버지 김제준과 모방 신부가 순교했다(기해박해). 같은 시기 철저한 쇄국정책을 펴고 있던 ...

    2023.09.27 18:33

  • [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4조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4조

    얼마 전 우연히 육군사관학교 앞을 지나다 놀라운 조형물 하나를 보았다. 거대한 황금색의 신라 화랑 동상이었다. 신라 화랑을 계승한다는 걸 내세우기에 육사가 있는 곳을 화랑대라고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문 앞에 이렇게 거대한 동상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알고 보니 육사는 정문 이름도 화랑문이요, 연병장도 화랑연병장이며, 기숙사는 화랑관, 복지시설도 화랑회관이었다. 동상만 해도 정문 앞만이 아니라, 도서관 앞에도, 연병장 앞에도 있다. 심지어 1년에 한 번 여는 문예전의 이름도 화랑문예전이다. 그러나 과연 신라 화랑이 우리 육사가 계승한다고 이렇게나 내세울 만한 존재일까? 이들은 같은 민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상대로 동족상잔의 전쟁을 벌인 전쟁광 집단이 아닌가? 대가야 전투에서 돌격대를 자처한 사다함이나 백제의 계백을 질리게 한 관창 같은 화랑은 일제 가미카제의 시원은 아닐까? 더구나 사다함은 그 사상도 몹시 의심스럽다. 임금이 준 노비를 풀어준 것을 보면, 지나친 평등의식...

    2023.09.20 22:57

  • [역사와 현실] 권력의 횡포 대하는 그들의 방법
    권력의 횡포 대하는 그들의 방법

    종3품 도호부사인 갑산(현 함경남도 갑산군 일대)부사도 상급기관 횡포는 답답했던 모양이다. 1789년 음력 7월23일 갑산부에서 가까운 진동진 만호 노상추가 갑산부사로부터 받은 편지를 보면, 얼마나 심경을 털어놓을 데가 없으면 노상추에게까지 이러한 편지를 보냈을까 싶다. 갑산부는 국경을 접하고 있어, 함경도 병영 영장(營將)의 지휘를 받았다. 당시 갑산부에서 올리는 공물도 병영에서 관할했는데, 이번 갑산부 공물 진상에 문제가 있었던 듯했다. 일과를 마친 후 노상추가 서둘러 갑산부사를 찾은 이유였다.(출전 <노상추일기>) 이야기는 약 열흘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은 지역별로 공물을 왕에게 진상했는데, 갑산부에 부과된 공물은 녹용이었다. 무관들이 다스리는 지역이므로 사냥을 염두에 둔 처사였겠지만, 그렇다고 백성들이 사슴을 사냥해서 녹용을 진상할 수는 없었다. 결국 조정에서 필요 개수를 정하면 병영에서 각 고을에 이를 나눠 부담시켰고, 각 고을에서는 약재 채취를 ...

    2023.09.13 20:13

  • [역사와 현실] 왕의 DNA와 세조의 훈계
    왕의 DNA와 세조의 훈계

    얼마 전 교육부 5급 사무관이 자신의 초등학교 아이의 교사에게 보낸 편지가 논란이 되었다. 편지에서 그는 자기 아이가 ‘왕의 DNA’를 가졌다며 9개 요구사항을 나열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조선시대 세조 역시 어린 세자에게 10개 항목의 가르침을 남겼다. ‘<훈사> 10장’이 그것이다. ‘훈사’란 훈계의 말이다. 세조 사후에 즉위한 예종이 그 세자이고 당시 8세였다. 말 그대로 ‘왕의 DNA’를 가진 아이였다.<세조실록>에 훈사의 내용이 요약돼 나온다. 서문에 이어서 각 장마다 제목을 붙여 그에 대한 해설이 뒤따른다. 서문은 이렇다. “부모가 너를 위해 교육시킬 것을 생각한 것이 한 가지가 아니다. 네가 외로운 몸으로 장차 종묘사직을 맡으면 사람과 하늘이 애처롭고 가엾게 여길 것이다. 나의 뜻을 본받도록 해라. 나는 어려움을 당했지만 너는 태평한 때를 만나야 한다. 일이란 세상에 따라 변한다. 만일 네가 나의 선례에 구애된다면 네모난 나무를 둥근 구멍에 ...

    2023.09.06 20:22

  • [역사와 현실] 감옥과 너무 친한 한국 사회
    감옥과 너무 친한 한국 사회

    지난 주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머그샷(범인식별용 사진)을 찍은 게 화제가 됐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을 통틀어 형사 기소를 당한 것도, 이런 사진이 찍힌 것도 처음이라고 한다. 지폐와 동전에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를 점점이 박아놓은 미국인들인 만큼 충격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나저나 역대 45명의 대통령 중 구속이나 투옥은 고사하고 형사 기소를 당한 것도 처음이라니, 현직 포함 13명의 대통령 중 3분의 2 이상이 감옥 신세를 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인으로선 신기한 느낌이다. 일본은 어떨까? 일왕이야 사법처리는커녕 비판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존재니 논외로 치고 내각총리대신, 즉 총리를 살펴보자. 1948년 아시다 히토시(芦田均) 총리가 쇼와전공사건(昭和電工事件)으로, 1976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가 록히드 사건으로 기소된 적은 있으나 감옥신세는 면했다. 1885년 내각제도 창설 이래 지금까지 64명의 총리 중 옥살이를 한 이는 떠오르...

    2023.08.30 20:21

  • [역사와 현실] 이럴 줄 몰랐다
    이럴 줄 몰랐다

    바야흐로 1990년대. 베를린 장벽 붕괴를 시작으로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하나둘 무너졌다. 빨갱이 국가 중공과 수교도 했고 그 무렵 해외여행도 완전 자유화됐다. 대학가에는 ‘해외 배낭여행’이란 이름의 여행상품 광고가 곳곳에 붙었고, ‘어학연수’란 것도 유행했다. 아직도 촌스러운 구석이 없진 않았지만 세계화의 흐름을 빠르게 좇아가고 있다는 느낌의 시대였다.그런 어느 날, 지도교수님을 찾아뵀다. 학부 때인지 석사과정 때인지도 까물까물한 꼬마 시절, 무슨 심부름 때문이었다. 그때 누군가 교수님 방문을 노크하며 들어왔다. 일본 T대의 한국사 교수님이, 사전 약속은 없었으나 한국 방문 김에 인사드리겠다고 온 것이었다. T대 교수님이라니, 당연히 자리를 비켜드려야겠다고 생각하던 터, 예상치 않게 지도교수님께서 “지금 학생이랑 상담 중이니 다음에 들러달라”며 문전 박대를 하시는 게 아닌가! 나 같은 학생이 뭐라고 T대 교수님을 박대하시나 싶은 데다, 그 교수님이 가신 후 내게 ...

    2023.08.23 20:11

  • [역사와 현실] 40년 만의 광복
    40년 만의 광복

    1945년 8월15일 광복은 형식적으로 35년 전인 1910년 8월22일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을 무효화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일병합조약이 가능했던 이유는 1905년 11월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을사늑약은 문장만 보면 ‘대한제국이 부강해질 때까지’ 대한제국을 ‘보호’하기 위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이 갖는다는 조약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을사늑약 체결 다음해인 1906년 음력 6월26일, 최익현과 그의 제자 임병찬은 서울 명동 일본군 사령부 재판정에 서 있었다. ‘일본에 의해 규정된 죄’에 대한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해 연말, 을사늑약 소식을 받아 든 최익현은 분연히 <청토오적소(請討五賊疎)>를 올렸다. 을사조약 체결에 가담한 5명의 역적을 처단하라는 상소였지만, 핵심 내용은 을사늑약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최익현뿐만 아니라, 전국의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상소를 올렸지만, 더 이상 상소가 통할 시점이 아니...

    2023.08.16 20:16

  • [역사와 현실] 여행
    여행

    휴가철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여행하기 힘들었던 지난 수년간에 비해서 올해는 많은 사람들이 국내외 여행을 하고 있다. 우리 삶과 일상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은 대부분 한 개인의 생애보다 훨씬 더 긴 역사를 갖는다. 그것들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우리가 사망한 후에도 계속된다. ‘여행’도 그중 하나이다.우리는 전통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여행과 무관한 삶을 살았으리라 지레짐작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들 역시 처한 형편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여행했다. 조선시대에 쓰였고 지금까지 전해지는 많은 여행일기가 그 증거이다. 대부분 한자로 기록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여행기 필자 대다수는 양반이다. 하지만 양반이라 해도 대개는 자기 동네에서나 알아주는 한가한 시골양반들이 대부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쁘면 여행하기 어렵다.선호된 여행지는 다양했다. 고려의 수도 개성, 조선의 수도 한양은 각광받는 여행지였다. 오늘날 우리가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를 방문하듯이 당...

    2023.08.0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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