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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와 현실] 아! 1898년
    아! 1898년

    1898년은 한국근대사의 분수령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 발발로 일본이 세운 갑오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근대적 정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일본의 통제하에 있었고, 너무 서두른 탓에 민심을 얻지 못했다. 삼국간섭으로 일본세력이 쇠퇴하고 고종이 아관파천을 해버리자 단박에 무너졌다. 고종은 러시아에 의지하려고 했지만, 독립협회에 집결한 개화파들은 그 러시아마저 밀어내고자 했다. 러시아가 절영도 조차와 군대 주둔을 계획하자 독립협회는 종로에 초유의 대중 집회를 조직했다(1898·3·10). 여기에는 서울시민의 17분의 1인 1만여명이 운집했다정부는 다음날 러시아의 군사교관과 재정고문 철수를 약속했다. 갑오개혁이 이런 대중적 기반 위에서 전개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운 일이다. 조선에서 함께 물러난 일본과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주권과 완전한 독립을 확인하고 대한제국이 군사교관이나 재정고문을 초빙하더라도 양국이 서로 동의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도록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니시-로젠협정)....

    2023.08.02 20:16

  • [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3조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3조

    코로나19 전, 꽤 오랜 기간 구에서 운영하는 체육시설에서 매트 필라테스를 했다. 집에서 가깝지, 가격도 싸지, 시설과 프로그램도 얼마나 다양한지! 동네 사람들 모두 애용하던 곳이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곳에 오래 머무셨다. 셔틀버스를 타고 와서는 운동 조금 하고 목욕 길게 하고 여기저기 의자에 앉아 오래 담소를 나누시곤 했다. 특히 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로비를 좀처럼 안 떠나셨다.내가 다닌 매트 필라테스는 할머니들이 많았다. 거울과 가까운 맨 앞 가운데는 선생님 자리이고, 그 앞으로 비껴가며 네 줄 정도 회원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수업 시간 전 선생님 자리에 공용 매트 하나를 누군가 깔고, 각자 공용 매트 혹은 개인 매트를 갖고 와 자리를 잡는 방식이었다. 각 줄과 위치는 나름의 메시지가 있다. 맨 앞줄과 둘째 줄은 운동에 자신이 있거나 오래 했거나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이른바 ‘고인물’이라고 하는 터줏대감들이...

    2023.07.27 03:00

  • [역사와 현실] 1605년 안동 대홍수
    1605년 안동 대홍수

    1605년 음력 7월, 예안 고을(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일대)은 열흘 가까이 내린 비로 마을 형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안동부 관아를 비롯하여 안동 상징인 영호루와 여강서원마저 떠내려갔으니, 약 20킬로미터 정도 상류에 위치한 예안 지역이야 말해 무엇할까 싶다. 당시 이 홍수는 낙동강을 따라 안동과 선산, 경주까지 물바다를 만들었고, <실록> 기록에 따르면 “둥둥 떠다니는 시체가 부지기수”였다. 안동 풍천면 구담 지역 강가에 ‘밀려 나온’ 시신만 40구가 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지는 짐작하기도 어렵다.(출전: 김령, <계암일록>) 특히 예안 고을을 지나는 낙동강 상류는 분천(汾川)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큰물 분(汾)’자가 하천 이름일 정도였으니, 물살 빠르기와 돌아나가는 모양새가 얼마나 거센지 짐작할 만하다. 이러한 물이 강원도에서부터 폭우를 만나 덩치를 키웠으니, 경상도 북부 지역의 피해는 가늠하기 힘...

    2023.07.20 03:00

  • [역사와 현실] 세종이 문필가를 키운 까닭은
    세종이 문필가를 키운 까닭은

    서울에서도 고가 아파트들이 몰려 있는 서울 ‘압구정’동은 본래 조선 시대 유명한 인물인 한명회가 지은 정자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 정자 이름을 지은 이는 한명회 자신도 아니고 당대 조선 사람도 아닌 명나라의 예겸(倪謙)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명나라에서도 문필로 이름 높았던 인물이다.세종이 사망한 해인 1450년에 명나라 한림원 시강 벼슬에 있던 예겸이 조선에 사신으로 왔다. 처음에 예겸은 자신의 시 짓는 솜씨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조선에 와서 처음 지은 시를 본 후 조선 관리들은 한편으로 안도했고, 다른 한편으로 무시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것은 오판이었다.당시 조선에서는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면, 한강에 배를 띄우고 그 위에서 파티를 벌였다. 겉으로는 질탕한 유흥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치열한 외교의 장에 가까웠다. 기본적으로 지식인이자 문필가였던 전통시대 중국 사신과 조선의 관리는 각자 자기 나라를 대표해서 시를 통해 글재주를 겨루...

    2023.07.13 03:00

  • [역사와 현실] 전라도 천년사 ‘논쟁’
    전라도 천년사 ‘논쟁’

    <전라도 천년사> 논쟁이 뜨겁다. <전라도 천년사>는 2018년부터 5년간 광주시, 전라남도, 전라북도가 213명의 필진을 모아 24억원을 들여 전 34권으로 편찬한 책이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총집결해 진행해온 작업으로 그에 대해 학계에서 문제 삼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학계 바깥에서 논쟁이 시작되었다. 사실 ‘논쟁’은 아니다. 논쟁이란 모름지기 공통의 룰에 기반하여 팩트와 논리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그런데 이 ‘논쟁’은 그런 성격의 다툼이 아니다. 팩트의 오류와 논리의 허점을 아무리 지적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자기 얘기만 반복한다. 이런 무의미한 다툼이 공공기관의 토론회나 심지어는 TV토론회에서 멀쩡하게 전개된다. 유튜브로 잠깐 들여다보니 <전라도 천년사>를 집필한 학자들이 상대 측 패널들을 향해 성심성의껏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보면서도 화가 나던데 용케도 점잖은 태도를 잃지 않고 ‘토론’에 임하고들 계셨다. 경의를 표하며 위로의 말씀을...

    2023.07.06 03:00

  • [역사와 현실] 와칸다 포에버?
    와칸다 포에버?

    <블랙 팬서>를 봤을 때 일이다. 마블 영화는 챙겨보던 시절이기도 하고, 첫 아프리카계 영웅도 등장하지, 부산도 나온다지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 많았다. 더구나 고양잇과 계열의 영웅이 아닌가! 고양잇과로 변신하는 영웅은 무조건 옳다.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는 당황스러웠다. 물론 영화는 재밌게 보았다. 액션도, 무기도 멋있었고, 여장군과 전사들도 다 매력적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와칸다 왕국’은 도대체 뭔가 하는 의문이 들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첨단 과학기술을 갖춘 부유한 국가라는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부족 연맹체 같다. 블랙 팬서가 되는 계승자는 바로 국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왕위 계승 때 주변 부족들이 모여 벌이는 싸움 의례를 통과해야 한다. 부계 혈통으로 바로 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싸워서 이기기까지 해야 하고. 저 동네의 왕위 계승 원리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우리나라의 건국 설화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저 동네는 아직 사로6촌인가? 아니지, ...

    2023.06.29 03:00

  • [역사와 현실] 안 하느니만 못한 일
    안 하느니만 못한 일

    1778년 음력 4월29일, 선산에 사는 노상추는 화가 많이 났다. 문동마을 큰집 종 점발이 헐레벌떡 달려와 “도둑이 들었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큰집 옷들을 모두 훔쳐 갔다고 하니, 적지 않은 피해였다. 근 한 달 동안 조카며느리 초상으로 정신없었던 노상추는 도둑의 행태가 얄밉기 그지없었다. 상복을 입기 위해 벗어 두었던 옷까지 모두 도둑맞았으니 말이다.(출전: 노상추, <노상추일기>)우선 큰집 상황을 확인한 후, 노상추는 상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둑 잡는 일을 상주진에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지방 수령이 아니라, 군 조직인 진영(鎭營)에 이 일을 맡기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한양의 경우 도둑만 전문으로 잡는 포도청이 있었지만, 지역에는 이러한 기관이 없었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 큰 도둑이 발생하면 토포사를 파견하거나 그 지역 방어를 책임진 진영에서 토벌을 맡았다. 단순 절도야 지방 수령 담당이지만, 조선 시대 도둑은 떼 지어 강도와 약탈을 일삼는 경우가 ...

    2023.06.22 03:00

  • [역사와 현실] 정암 조광조 행장
    정암 조광조 행장

    좌절된 이상을 되돌아보는 일은 늘 비감하다. 64세의 퇴계 이황이 38세에 죽은 정암 조광조를 위해 쓴 행장도 그렇다. 행장은 망자의 생애를 정리하고 평가한 조선시대 글쓰기 형식이다. 이황은 많은 고관과 지인들에게 비석과 행장 글을 요구받았지만 대부분 거절했다. 평생 7개의 행장만을 썼는데, 그중 개인적 인연 없이 쓴 행장은 2개뿐이다. 그 하나가 조광조의 행장인데, 그가 젊은 이황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준다. 조광조는 이황보다 18세 연상이고, 사화로 조광조가 죽은 해에 이황은 19세였다.“선생(조광조)이 활동했던 시기에는 선한 무리로 함께 선발되어 임금의 우대를 받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이 서로 협력해서 사업을 일으키니, 사람들은 바람에 움직이듯 휩쓸렸다. 그런데 너무 조급히 효과를 보려 했고, 하는 일에 날카로움이 너무 드러났는가 하면 장황하고 과격했다. 또한 젊고 일 만들기 좋아해서, 유리한 기회를 노려 시세에 영합하는 분란을 부추긴 자들이 그 사...

    2023.06.15 03:00

  • [역사와 현실] 동아시아의 반공주의
    동아시아의 반공주의

    이승만은 자신이 하와이에서 발행하던 ‘태평양잡지’에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이라는 글을 게재했다(1923년 3월호). 당시는 공산주의 혁명으로 세워진 소련이 전 세계 피압박 민족의 희망으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조선의 많은 독립운동가, 지식인들도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소련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은 공산주의 비판을 감행한 것이다. 그는 먼저 양반, 상놈 하는 신분제가 없어진 자리를 자본가-노동자 간의 빈부격차가 대신해버린 세태를 비판하며, 공산주의의 평등 주장을 일단 평가했다. 그러나 재산을 나눠 갖게 되면 소수의 부지런한 사람이 다수의 게으른 사람을 먹여 살리게 될 것이고, 자본가를 없애버리면 혁신과 진보는 중지될 것이며, 보통 사람의 학식을 높여 지식인과 대등하게 만들어야지 지식인을 아예 없애자는 것은 안 될 말이다 등의 이유를 대며 공산주의의 부당성을 갈파했다.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미국이 일을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

    2023.06.08 03:00

  • [역사와 현실] 역사의 무게
    역사의 무게

    역사학 논문의 형식을 익히게 하려고 수업 때 간단한 글쓰기 과제를 내준다. 첨삭 지도를 해서 돌려주면 학생들이 고쳐 오는 것을 몇 번 반복하는 과제다. 빨간 펜을 들고 학생들이 제출한 글을 보노라면 한숨이 나온다. 글쓰기 첨삭 지도를 해본 분들은 다 알 것이다. 이게 얼마나 시간과 힘이 많이 드는 일인지. 더구나 학부생이 제출하는 글은 얼마나 ‘야생적’인지.손목도 아픈데 빨간 펜 질을 한참 하다 보면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게 있다. ‘나는 한 번도 이런 첨삭 지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논문의 내용에 대해 지적을 받은 적은 많아도 글쓰기를 가지고서는 세심한 지도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저 ‘이런 표현은 일본어 문투다’라든가, ‘이런 건 한문 번역투니 풀어 써라’ ‘수동태형 문장은 영어식 표현이니 좋지 않다’는 정도의 얘기가 다였던 것 같다. 그래서 또래끼리 모이면 이런다. “우리가 언제 글쓰기를 각 잡고 배워본 적이 있나. 어깨너머로 익혔지....

    2023.06.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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