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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와 현실] 경주인의 역습
    경주인의 역습

    주위를 둘러보면, 돈 버는 데 뛰어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둘은 꼭 있다. 안정된 직업에 주식 대박, 그리고 부동산 투자까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흔한 성공 신화 중 하나다. 1804년 한양에 살았던 홍응경도 그랬다. 그는 국가 제사를 관장했던 봉상시 소속 숙수(조리사)였다. 요즘과 같은 ‘셰프’의 인기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당시 평민들과 비교할 때 매우 안정된 자리였다. 게다가 그는 지역에서 올라온 관원들에게 집을 세주어 꽤 짭짤한 수입도 올리고 있었다. 그런 그가 근래에 충청도 수영(수군 군영)의 경주인(京主人) 자리까지 꿰찼다. 수군절도사 윤이동이 800냥 주고 산 경주인 자리를 그가 매년 쌀 20섬을 내는 조건으로 받아온 것이다. 정말 수완 좋은 사람이었다.(출전: 노상추, <노상추일기>) 경주인, 혹은 경저리(京邸吏)로도 불리는 이 직책은 지방 관청에서 한양에 배치한 일종의 연락 담당자였다. 이들이 근무하던 곳을 경저(京邸) 혹은 경재소(京在所)라고...

    2023.05.25 03:00

  • [역사와 현실] 인재와 다양성
    인재와 다양성

    얼마 전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하나를 보았다. 2022년 10월에 있었던 어느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영상이었다. 질문하는 국회의원이나, 답변하는 후보자 모두 맑고 진지해 보였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그 얼마 전에 있었던 신임 법관들의 출신 배경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질문자에 따르면 김앤장 출신 신임 법관 비율은 2022년 전체 임관자 135명 중 14.1%였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 로펌은 오랫동안 대한민국 1위 로펌으로, 고위공직자들이 임명될 때마다 그들이 높은 급료를 받았던 전 직장으로 자주 소환되는 곳이다. 그것만도 주목할 일이지만, 더 주의를 끄는 것은 김앤장 출신 비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2019년 6%, 2020년 7%이던 것이 2021년엔 12%로 급증했다.신임 법관들의 거주 지역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2021년 전체 157명 중 85%인 134명이 수도권에 거주했다. 이는 2019년 71%, 2020년 77%에서 늘어난 숫...

    2023.05.18 03:00

  • [역사와 현실] 일본 민중운동의 이면
    일본 민중운동의 이면

    일본 메이지 정권은 수립 후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메이지 유신을 주도했던 사무라이층은 특권을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고, 헌정 실시를 요구하는 자유민권운동은 권력 분점을 요구했다. 도전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민중의 반발도 위협적이었다. 농민을 비롯한 민중은 정부의 근대화정책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른바 ‘신정반대 잇키(新政反對一揆)’다. 잇키는 농민 소요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장구한 세월 동안 음력 절기에 맞춰 농사일을 하던 이들에게 양력 실시는 뜬금없는 일이었다. 전통적인 축일(祝日)을 무시하고 제정된 기원절(紀元節·초대 천황 진무의 즉위일), 천장절(天長節·천황 생일) 같은 국경일은 생경했다. 농사일과 집안일을 도와야 할 아이들이 갑자기 학교라는 곳에 의무적으로 가야 한다고 하니, 기막힐 노릇이었다. 1870년대에 전체 학교의 10분의 1인 2000개가 민중에 의해 파괴됐다. 취학률은 지역에 따라 25~50%에 그쳤다. 더구나 소요 과정에서 농민들이 자기들보다 더 아래...

    2023.05.11 03:00

  • [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2조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2조

    개강을 앞두고 아는 선생님이 챗GPT의 위험성을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샘플을 만들었다. 챗GPT로 보고서를 작성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분은 먼저 ‘대전의 고려시대 유적을 알려달라’는 질문을 넣어 보았다. 그랬더니 성심당이 고려시대 유적이라며 1895년에 창건된 조선 후기 교육 기관이자 독립 운동의 중심지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튀김 소보로가 유명한 빵집 성심당? 더구나 고려시대 유적을 물었는데, 1895년 조선 후기라니? 한 달여 후 이분이 챗GPT에 같은 질문을 다시 넣었다. 그랬더니 훨씬 정교하고 유려한 설명이 나왔다. ‘고려시대 중반인 12세기에 건립된, 차를 마시는 전각’이라는 것이다. 1895년 같은 엉뚱한 시대를 들이대지도 않는 데다 이 ‘차를 마시는 전각’의 구조가 어쩌고저쩌고, 근대의 개발로 훼손이 어쩌고저쩌고하는 서사까지, 아주 유려하기 그지없었다. 이게 빵집 성심당과는 다른 것이냐고 물으니 다르다고 하며 주소까지 댔고, 근거 자료가 뭐냐고 물으니...

    2023.05.04 03:00

  • [역사와 현실] 소송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소송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1739년 음력 3월2일 오후, 젊은 최흥원은 문중의 소송 문제로 내키지 않는 걸음을 관아로 옮겼다. 소송 자체를 꺼리는 문화 탓에 다툼의 이유와 내용에 대한 직접적 기록은 없지만, 칠곡 수령과 대화한 내용을 보면 문중 내 재산 분할 문제가 조상의 무함(誣陷)으로까지 비화된 듯했다. 쉽게 풀기 힘든 소송이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칠곡 수령은 판결보다 문중 내 합의를 주문했고, 이를 통해 소송은 비교적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관아에서는 이를 증명하는 관문을 작성했고, 최흥원은 선조 이름이 담긴 문서가 관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 급한 걸음을 했다.관문을 받아들고 관아를 나가려는 최흥원을 수령이 잠시 불러 세웠다. 그는 지역에서 최흥원과 그의 문중이 가진 위상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조심스럽지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소송 내용이야 합의가 끝났으므로 재론할 내용이 없지만, 모범이 되어야 할 문중이 소송까지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을 전해왔다. 선대에 ...

    2023.04.27 03:00

  • [역사와 현실] 도를 아십니까
    도를 아십니까

    길을 걷다가 얼굴이 맑아 보인다느니 복이 있어 보인다느니 하며 다가서는 사람을 만난 경험을 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표정으로 멈춰 서면, 자신들이 마음공부를 한다느니 도를 닦는다느니 하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코로나19 기간을 포함한 수년 동안에는 없었지만, 나 역시 몇 차례 그런 경험을 했다. 차마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하고 잠시 그들 이야기를 듣다가 손사래를 치며 자리를 떠났었다.‘마음공부’나 ‘도를 닦는다’는 말이 오늘날 희화화된 감이 있지만, 사실 이 말은 매우 진지하고 역사적인 의미를 지녔다. ‘마음공부’는 심학(心學)이고, ‘도를 닦는다’는 말은 도학(道學)을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통 시대를 연구하는 인문학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전문 사전 중 하나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도학을 주자학의 별칭이라 말하며 긴 설명을 제시한다. 심학에 대한 설명도 긴데, 결론만 말하면 주자학 이후의 양명학, 혹은 그와 가까운 성격을...

    2023.04.20 03:00

  • [역사와 현실] 한국인의 ‘정치과잉’
    한국인의 ‘정치과잉’

    4월10일 아침, 유력 일간지에서 놀라운 1면 톱기사를 봤다. ‘정부 심판 vs 거야 심판, 집권 2년 중간평가 총선’이라는 제목이다. ‘4·10 총선 1년 앞으로’라는 부제가 보였다. 참 대단하다. 1년 남은 총선 기사가 1면 톱에 오를 나라는 아마도 한국뿐일 거다. 나도 역사학 분야 중에서 정치사를 전공하고 있고, 정치기사도 탐독하는 편이지만 이 기사에는 놀라고 말았다. 정말 한국인들은 선거 하고 싶어서 2000년 동안 어떻게 참고 지냈나 하는 생각이 든다.한국인의 ‘정치과잉’이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술자리 등 사석에서 정치얘기는 고정메뉴다. 최근 들어 진영논리가 강화되는 바람에 “거, 정치얘기는 하지 맙시다” 하며 서로 눈치 보는 분위기가 생겼지만, 같은 진영끼리 모이는 자리에서는 여지없다.해당 기사를 보고 놀란 맘을 달래고 있던 차에 페친 박재항님의 포스팅을 보고 말았다. 그분이 자주 들르는 목욕탕에서 어느 날 60대 중반 남성이 혼잣말로 계속 정치 욕을 ...

    2023.04.13 03:00

  • [역사와 현실] 과거의 망령은 꺼져라
    과거의 망령은 꺼져라

    얼마 전 30세 전에 아이 셋을 낳으면 군을 면제해주겠다는 논의 때문에 세상이 시끌시끌했다. “이제 남자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 줄 몰랐다”는 재치 있는 비꼼부터 “돈 많은 집이나 가능할 것”이라거나 “군 면제 받겠다고 아이를 입양했다가 파양하는 사건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미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결혼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나오고, 아파트 한 채 분양받아보겠다고 아이를 입양했다가 파양하는 사건도 있는 나라에서 모두 생길 법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비관적 전망을 떠나 나는 이 아이디어가 섬뜩했다. 20세기 전반 군국주의와 전체주의의 망령이 휩쓸던 때의 사고방식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20세기 전반, 젊은 남성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으로 규정되었다. 여성은 어머니로서 아들이 전장에서 ‘멸사봉공’하더라도 담대하게 행동할 것이 요구되었고, 아내로서는 “낳아라 불려라, 국가를 위하여!”라는 슬로건 아래 최대한 많이 아이 낳기를 장려 ‘당했다’. 그리고...

    2023.04.06 03:00

  • [역사와 현실] 1896년, 예천회맹(會盟)
    1896년, 예천회맹(會盟)

    127년 전인 1896년 음력 2월9일. 경상도의 작은 고을 예천(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이 의병들의 열기로 뜨거워졌다. 7일부터 호좌의진(湖左義陣) 대표 서상렬과 소속 의병 150여명이 선두에서 행진했고, 그 뒤를 안동의(병)진·순흥의진·봉화의진이 함께했다. 8일과 9일에는 예안의진과 영주의진, 풍기의진이 속속 도착하면서, 500명이 넘는 지역 의병들이 예천에 모였다. 예천회맹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김정섭, <일록>/박한광 외, <저상일월>).영남을 대표하는 안동의진은 250여명이나 되는 대표단을 파견했다. 이들은 기호학 계열의 호좌의진과 서먹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당시 권세연을 대장으로 하는 안동의진은 안동부를 점령한 후 의성 수령 이관영을 효수하여 그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유인석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 역시 제천을 비롯한 충북과 강원 영서 지역 10여개 고을을 장악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었다. 영남과 기호를 대표하...

    2023.03.30 03:00

  • [역사와 현실] ‘학폭’에 대해서
    ‘학폭’에 대해서

    우연이겠지만,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와 한 유력한 변호사와 그 아들의 과거 학폭 문제가 연일 화제이다. ‘학폭’ 문제가 드라마와 현실에서 동시에 사람들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회 현상으로서의 학폭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필자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한 세대 전에는 오늘날 말하는 학폭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거나, 극히 적었다. 학폭은 한국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사회 현상이다.고대 그리스에서는 세상이 ‘원자’나 ‘수’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선 시대 사람들은 전혀 다른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이 ‘인간관계’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것은 3강5륜이라고 생각했다. 5륜의 인간관계는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친구 사이를 말한다. 3강은 5륜 중에서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부인의 관계를 더 강조한다. 3강(綱)의 ‘강’은 ‘벼리’를 뜻하는데, 국어사전에 “그물코를 꿴 굵은 줄...

    2023.03.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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