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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와 현실] 조선자강의 아쉬움
    조선자강의 아쉬움

    1876년 1월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같은 메이지유신의 원훈들이 사절단을 이끌고 강화도에 왔다. 강화도조약은 그로부터 단 16일 만에 체결되었다. 한국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이 조약이 매우 불평등한 것이며, 여기서부터 일본의 침략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꽤 다르다.1868년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왕정복고가 되었음을 알려왔다. 조선은 그 외교문서에 ‘황(皇)’처럼 중국 황제만이 쓸 수 있는 글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령을 거절했다. 당시의 급박한 국제정세를 생각하면 사소한 문제로 서로 타협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8년씩이나. 지금도 중국과 달리 한국 매스컴은 천황을 일왕이라고 쓴다. 조선이 외교를 거절하자 일본에서는 모멸을 당했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정한론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를 철부지 모험주의로 여기는 세력도 있었다. 이 둘이 사생결단으로 맞붙은 게 1873년 겨울의 ‘정한론 정변’이다. 비정한론파가 가까스로 이겼다. 그러니 이들은 ...

    2023.03.16 03:00

  • [역사와 현실] 역사를 바꾼 책이라니
    역사를 바꾼 책이라니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독서진흥을 위해 각계 전문가 11인을 모아 야심차게 ‘역사를 바꾼 책’ 100권을 선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사를 바꾼 책’이라니, 역사학자로서 귀가 솔깃했다. 그런데 선정 위원 명단을 보고서는 일차로 갸웃하게 됐다. ‘역사를 바꾼’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는데 정작 선정 위원에는 역사 전공자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도서 목록을 보자 더욱 당황스러웠다. 이 책들이 ‘역사를 바꾼’ 책이라고?우선 여기서 말하는 역사가 누구의, 혹은 무엇의 역사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계사를 의미하는 것인지, 한국사를 의미하는 것인지, 누구의 역사인지 말이다. 이건 어떻게 합의로 해결한다 쳐도 ‘바꾼’이라는 표현은 합의가 쉽지 않다. 역사학자들은 이 ‘바꾼’의 정의에 민감하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무엇이 바뀌지 않았는지, 언제를 질적 변화가 일어난 시기로 볼 것인지 등을 놓고 고민하는 게 직업이기 때문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 교...

    2023.03.09 03:00

  • [역사와 현실] 소와 소고기, 그 다름에 대해
    소와 소고기, 그 다름에 대해

    1745년 음력 2월8일 저녁 즈음, 계집종 초점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최흥원을 찾았다. (출전: 최흥원, <역중일기 曆中日記>) 최흥원을 보고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난 듯했다. 이날 아침 초점은 최흥원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다. 그녀 남편의 집 짓는 현장에서 무거운 목재를 옮기기 위해 사람과 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평소 초점의 성실함과 그녀 남편의 착한 성정을 알고 있던 최흥원은 흔쾌히 남자 종 몇 명과 소를 내주었다. 그런데 일을 마친 소를 돌려주려 가던 길에, 소가 발을 헛디뎠다. 금방 회복될 같았던 소는 결국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허리를 다친 듯했다. 소 한 마리의 가격도 큰 문제였지만, 소 한 마리가 아쉬운 농번기가 다가오고 있으니 보통 일은 아니었다. 초점은 송구스러워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그러나 이미 노동력을 잃은 소를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성실했던 초점을 생각하면 그녀를 타박만...

    2023.03.02 03:00

  • [역사와 현실] 소학계
    소학계

    “강응정이 젊은 날 성균관에서 유학할 때 서울의 준수한 선비들과 더불어 옛날 주자(朱子)가 했던 대로 향약을 만들고 혹 매달 초하루에 <소학>을 강론했다. 그때 뽑혀서 함께한 사람들은 모두 당시의 명사들이었다. 김용석, 신종호, 박연, 손효조, 정경조, 권주, 정석형, 강백진, 김윤제 등은 그중 뛰어난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다 기록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들을 좋아하지 않던 자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혹은 ‘소학계’ 혹은 ‘효자계’라 지목했고, 공자(孔子), 사성(四聖), 십철(十哲)이라 놀리고 비웃었다. 강응정은 시골에서 불우하게 지내며 늙도록 과거를 보지 않다가 후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시골 향교의 보조 선생이 되었다.”위 내용은 남효온이 1480년대 말에 쓴 <사우명행록>의 강응정에 대한 기록이다. <사우명행록>이란 ‘스승이자 벗이던 이들의 이름과 활동’이라는 뜻이다. 남효온이 자신과 어울렸거나 전해 들은 사람들 중 55인의 이름과 활동을, 한 ...

    2023.02.23 03:00

  • [역사와 현실] 불친절해진 일본인
    불친절해진 일본인

    “구리다… 구려.” 생맥주를 들이켜던 아들이 말했다. 장소는 도쿄 유라쿠초(有樂町) 야타이 거리. 우리로 치면 포장마차 타운이다. 가게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보고 내뱉은 말이었다. “뭐가 구려?” “저 자막요, 아….” 어린 놈이 한숨은. 예능프로그램인 모양인데 주먹만 한 자막이 붉은 글씨로 떴다 사라졌다 했다. “저 옆에 저것들은 또 뭐예요?” 보니 밑에 자막만 있는 게 아니라 좌우측 상단에 프로그램과 출연자 이름 등도 덕지덕지 붙어 있다. “아까 그거랑 똑같잖아요.” “뭐랑?” 아키하바라와 이케부쿠로 애니메이션 거리를 둘러보고 온 참이었다. “그 건물들에 붙어 있는 간판들하고….” 그러고 보니 ‘빗쿠카메라(ビックカメラ)’ ‘초특가!(超特價!)’ 어쩌고 하는, 쌀 가마니만 한 알록달록 간판들하고 텔레비전 화면이 닮았다. 유년시절을 빠삐, 아톰, 마린 보이 같은 만화(물론 당시엔 일본 만화인 줄 몰랐다)를 보며 컸고, 우리 PD들이 일본 프로그램을 그대로 베낀다는 말을 수없이...

    2023.02.16 03:00

  • [역사와 현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1조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1조

    역사 공부라고 하면 연표나 사건을 열심히 외우는 것을 상상한다. 혹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에 지금 나의 감정과 상상을 더하며 한껏 몰입하는 것이 역사책을 잘 읽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냥 외우고 맘껏 상상하기만으로는 역사를 잘못 이해할 위험이 있다. 글자를 읽는다고 글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역사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해를 위한 문해력이 필요한데, 나는 그걸 ‘역사 리터러시’라고 지칭해보려고 한다. 오늘은 그 규칙 제1조 “우리는 옛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를 이야기해보겠다.<옷소매 붉은 끝동>은 작년에 꽤 인기를 끈 사극이다. 정조와 후궁인 의빈 성씨 이야기를 그려낸 이 드라마는 특히 여성적 시각이 살아 있다고 호평을 받았다. 공식 소개글에서는 의빈 성씨를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라고 설명하며, 후궁보다 궁녀로 남길 원한 주체적 여성이었다고 강조했다. 여성 시청자들은 후궁이 된 의빈 성씨가...

    2023.02.09 03:00

  • [역사와 현실] 담 너머 민심도 읽지 않는 조정
    담 너머 민심도 읽지 않는 조정

    1633년 음력 1월8일, 예안현(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사는 시골 선비 김령은 정초부터 서울 소식에 신경이 곤두섰다. 지난 연말 서울을 다녀온 김우익의 말에 따르면, 서울은 금세 전쟁이 일어나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의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봉화 현감 이구가 전해 준 서울 상황도 그랬다. 그는 서울에 사는 아들 이척연이 남쪽에 사는 장인에게 말과 사람을 급히 보내달라 요청했다면서, 성급한 아들의 처신에 혀를 찼다. 서울 민심이 급하긴 급한 모양이었다. (출전: 김령, <계암일록>) 김령의 궁금증을 해소해 준 것은 예안 현감이 보내 준 조보였다. 후금(1636년 청나라로 개창)을 달래기 위해 파견된 회답사(回答使) 신득연이 압록강 근처에서 입국을 거부당했기 때문이었다. 외교 문제였다. 1627년 후금 침략으로 발발한 정묘호란은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는 것으로 겨우 끝났다. 조선은 명나라를 사대(事大)하면서, 동시에 후금을...

    2023.02.02 03:00

  • [역사와 현실] 개혁과 기득권
    개혁과 기득권

    올해는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75년 되는 해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75년 되었던 해는 1467년, 세조 13년이다. 이해 5월에 ‘이시애 난’이 일어났다. 세조는 다음 해인 1468년 9월에 사망한다. ‘이시애 난’은 세조 정권의 권력구조를 마지막으로 뒤흔든 사건이다. 세종에 이어 즉위한 문종은 불과 2년3개월 만에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11세 외아들 단종이 즉위했다. 그런데 이미 세종 말년부터 수양대군은 왕실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자주 그가 상대했다. 세종은 노환 중이었고, 세자 문종은 자주 아팠기 때문이다. 1452년 문종이 죽고 단종이 즉위하자 일종의 권력 공백 상태가 되었다. 결국 다음 해 1453년에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권력을 획득했다. 흥미롭게도 당시에는 수양대군의 유혈 쿠데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그가 권력을 획득했을 뿐 왕의 자리까지 차지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수양대군은 2년 뒤, 조카 단종을 밀어내고 ...

    2023.01.26 03:00

  • [역사와 현실] 한국혁명
    한국혁명

    이달 초 혁명비교연구회에서 주최한 학회 참석차 도쿄에 다녀왔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일본, 이란, 아랍, 미국 등 8개 지역에서 벌어진 혁명을 비교하는 모임으로 다양한 국적의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학회에 참가하면서 내게는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문제의식이 하나 있었다. 왜 ‘한국혁명’은 없는가? 메이지유신은 1868년에 일어났으니 한 150년쯤 됐는데, 150년 전의 조선(대원군 치하)과 지금 한국의 변화 정도를 비교하면, 일본은 물론이고 다른 어떤 나라도 명함 내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1860년대 이전 일본을 지배했던 유력가문 상당수는 지금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데, 한국은 지배층에서 거의 사라졌다. 오늘날 한국의 정계, 관계, 재계를 주름잡는 집안들은 죄다 신흥가문들이다. 이런 폭의 변화를 혁명이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 부를 수 있을까. ‘혁명’이 없었던 건 아니다. ‘동학농민혁명’에서 ‘4·19혁명’ ‘5·16혁명’ ‘촛불...

    2023.01.19 03:00

  • [역사와 현실] 역사가는 과거와 어떻게 대화?
    역사가는 과거와 어떻게 대화?

    10년에 걸쳐 박사논문을 쓰고 뵌 친척 어른이 이런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당신은 역사학은 학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다 나온 사료 가지고 똑같은 소리 하는 게 무슨 학문이냐는 말씀이었다. 그러면서 역사학은 사회적 효용이 없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효용’ 같은 단어를 좋아하는 전공을 하신 분이었다. E H 카의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같은 유명한 말만 곱씹어봤어도 역사학자가 똑같은 소리를 한다는 얘기는 안 하실 텐데 싶었지만, 어떻게 보면 역사학자가 하는 일을 잘 알지 못해서 하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역사학자가 과거와 끊임없는 대화를 한다는 건, 현재의 경험을 통해 과거 사료를 발견하고 해석하며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이러다 보면 똑같은 사료가 역사가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도 한다. 경복궁 근정전의 이름 지은 내력을 풀이한 정도전의 글이 나에게 그러했다.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게으르면 망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로 시작하는 이 ...

    2023.01.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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