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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와 현실]기술과 돌봄, 정조의 능행
    기술과 돌봄, 정조의 능행

    “농장다리 아래 그늘이 진 데가 있었어. 한여름이면 노인네들이 거기 모여서 시조창을 하면서 노닥노닥했지. 거기에 제방이 있는데, 내가 그걸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걸 참 좋아했다.” 아버지가 문득 풀어놓은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다. “하루는 내가 거길 기어 올라가다 떨어진 거야. 그랬더니 한 노인네가 허리춤에서 주섬주섬 환약 같은 걸 꺼내서 먹여줬다. 아마도 청심환 아니었나 싶어.” 아버지의 이야기 마무리는 약간 씁쓸했다. “요즘 같으면 어디 그렇게 돌봐줬겠냐? 그 시절엔 그래도 그런 정이 있었다.”아버지를 보내드리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자동 결제가 될 것이니 돈 내실 필요가 없다고 했다. 요즘엔 그렇게도 되냐며 감탄하시더니, 택시 잡기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셨다. 조부모님 납골당 공원에는 택시가 잘 들어오지 않아서, 갈 때 아예 택시와 흥정을 해서 참배하고 나오는 시간 동안 대기를 해달라고 하는데, 요즘에는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앱을 깔면 된다는데, 내...

    2025.09.24 21:13

  • [역사와 현실]코드 인사와 승진의 논리
    코드 인사와 승진의 논리

    1796년 음력 7월21일자 <노상추 일기>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 있다. 노상추가 거쳤던 삭주부사 자리에 음관(蔭官)인 온양군수 변위진이 제수되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작은 군현이나 변방에선 과거 합격 없이 조상 음덕으로 관직을 받는 음관이 배치되는 사례가 간혹 있지만, 당상관인 부사 자리에 음관을 발탁한 일은 이례적이었다. 게다가 노상추의 불쾌함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변위진은 병마절도사 백동준의 후실 처남으로, 무과 합격 없이 병마절도사 후광에 힘입어 ‘선전관에 천거’(이를 줄여 ‘선천’이라고 불렀다)된 이른바 남항천(南行薦) 출신이기 때문이었다.선천은 왕을 시위하는 선전관을 미리 천거해 두는 제도인데, 무과는 워낙 많은 인원을 선발하다 보니 고위직 무관이 되려면 반드시 선천을 거쳐야 했다. 그런데 변위진은 가문 후광으로 천거된 남항천 출신이어서, 쉰이 넘도록 관직을 얻지 못하다가 음관 부장으로 겨우 6품에 올라 온양군수가 되었다. 이처럼 서출인 데다 남항천 ...

    2025.09.17 20:44

  • [역사와 현실]평택 미군기지의 지정학
    평택 미군기지의 지정학

    음력 660년 6월18일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대규모 함선들을 이끌고 중국 산둥성 라이저우시를 출발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배 1900척이 동원되었다. <삼국사기>는 “많은 배들이 꼬리를 물고 1000리를 이어 흐름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제를 함락시키기 위한 당나라의 13만 병력과 신라의 5만 병력 간 연합작전이 시작되었다.당나라 군대는 서해를 건너 3일 뒤에 덕물도에 도착했다. 덕물도는 오늘날의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도다. 라이저우시에서 덕적도까지 직선 해상 항로로 올 수는 없었다. 라이저우시→장산곶→교동도→강화도→덕적도→당은포 코스가 당시 당나라와 신라를 연결하는 항해 루트였다. 황해도 장산곶은 한반도에서 육지로는 가장 서쪽에 있다. 남쪽으로 10여㎞ 떨어진 곳에 백령도가 있다. 산둥반도 끝에서 장산곶까지는 직선거리로 190㎞가 살짝 넘는다. 중국과 한반도의 최단거리다. 중국 출발지에서 장산곶, 장산곶에서 덕적도까지 해상으...

    2025.09.10 20:46

  • [역사와 현실]스프레차투라, 천재의 기술
    스프레차투라, 천재의 기술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천재들의 시대였다. 조토와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천재적 예술가들이 그토록 짧은 시기에 집중적으로 배출된 것은 기적과도 같다. 그런데 관점을 바꿔보자. 당대에 배출된 것이 천재라기보다 천재의 개념이라고. 르네상스 시대에 천재의 개념이 나타났고, 이 개념이 그들에게 붙여진 것이라고 말이다.사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예술의 개념도 얼추 그 시대에 등장했는데, 예술의 어원인 이탈리아어 ‘아르테’(arte)는 본래 기예나 기술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 점에서 예술가의 조상은 직종의 기능을 보유한 장인으로서, 어쩌면 이탈리아 장인 문화야말로 현대 예술이 뻗어 나온 뿌리인 셈이다.르네상스 이탈리아는 현대적인 순수 예술의 개념이 싹튼 비옥한 토양이었다. 그림은 손이 아니라 머리로 그린다는 미켈란젤로의 확신은 새로운 개념의 등장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예술가의 자부심도 덩달아 치솟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

    2025.09.03 20:54

  • [역사와 현실]외환위기와 한국학의 전산화
    외환위기와 한국학의 전산화

    1997년 말 대한민국을 강타한 외환위기를 기억할 것이다. 이 위기의 시대, 정부가 주도한 정보통신 분야 지원은 2000년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었다. 특히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균질하고 빠른 인터넷망은 현재 한국의 인상을 만드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느린 인터넷이나 와이파이망에 분노하는 밈, 외국인이 한국의 빠르고 편리한 정보통신망에 감탄하는 장면 같은 것은 이제 진부할 정도다.이 시대 정보통신 분야의 지원은 한국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처음에는 일자리를 잃은 이들을 위해 마련된 공공근로사업 형태로 학계에 자잘한 일거리가 떨어졌다. 그러다 1999년 장기적인 계획에 따른 본격적인 일감이 만들어졌다. 정부에서 고급 정보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기치 아래 ‘한국역사통합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을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이는 고문헌과 고지도, 근현대 발간된 자료 등 한국학 제반 분야의 자료를 전산화하겠다는 사업이었다. 고문헌의 한자를 ...

    2025.08.27 20:44

  • [역사와 현실]기록 앞에 설 부역자들
    기록 앞에 설 부역자들

    1634년 음력 5월, <광해군일기> 편수가 끝났다. 1633년 12월 <광해군일기> 중초본이 완성됐고, 이를 기반으로 이듬해 5월 정초본이 마무리됐다. 반정으로 폐위된 왕이기 때문에 ‘실록’이 아닌 ‘일기’로 명명됐지만, ‘실록’이든 ‘일기’든 사초(史草)로만 존재했던 조각의 기억들이 체계적인 기록이 됐다.기억이 기록이 되면, 기록 대상이 된 인물들은 역사의 판단 앞에 서기 마련이다. 그 17년 전인 1617년 겨울, 이영구 등 당시 70여명의 과거 합격자 행적도 역사의 판단 앞에 섰다. 조선시대 과거 합격은 개인 노력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보면 국왕이 내린 가장 큰 은혜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합격자 발표가 이뤄지면, 합격자들은 국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를 담은 사은례(謝恩禮)를 행했다. 사은례의 핵심은 왕과 왕비, 그리고 왕실 큰어른인 대비를 향한 배례였다. 감사와 충성의 의미를 담는 행사였기에 국왕만큼이나 왕실의 큰어른에 대한 ...

    2025.08.20 20:39

  • [역사와 현실]조선시대 인물 평가
    조선시대 인물 평가

    사람들은 조선왕조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로 조선시대의 치열한 당파 싸움, 즉 당쟁을 든다. 그런데 지금의 여당과 야당을 보면 달리 생각해야 할 듯하다. 여당과 야당의 다툼이 조선시대 당쟁보다 덜하지 않다. 그런데, 권력을 두고 대립하는 정치집단 사이에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인들 갈등과 다툼이 없겠는가? 국익보다 당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아도 흔한 일이다. 모두의 이익보다는 내 이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전두환의 제5공화국 몰락 후 40년 안 되는 기간 동안 많은 정당이 등장했다. 여당과 야당 중심세력의 특성이 유지되면서도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를 전후로 민심의 향배에 따라 정당들이 출몰했다. 조선은 왕조국가였다. 그 때문에 국민이 아닌 국왕 마음을 얻는 사람 뒤에 사람들이 모였고 정치세력이 형성됐다.널리 알려진 대로 선조 때 당파로는 서인과 동인이 처음 성립되었고, 점차 세력을 얻은 동인이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졌다. 서인, 북인, 남인...

    2025.08.13 21:15

  • [역사와 현실]벨라 피구라, 아름다움 향한 열정
    벨라 피구라, 아름다움 향한 열정

    이탈리아어에 ‘벨라 피구라’(bella figura)란 말이 있다. ‘아름다운 모습’이란 뜻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탈리아인의 남다른 열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려는 이탈리아인들의 미적 취향은 유명하고, 이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명품을 탄생시킨 원천일지 모른다. 바짓단과 양말 사이 맨살을 보이지 말라는 금기를 지키거나 무심하게 흘러내린 한 올의 머리카락을 연출하는 세심함이 ‘벨라 피구라’의 앙증맞은 디테일들이다.얼핏 ‘벨라 피구라’는 내면보다 표면에 집착하는 피상적 태도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종종 가식과 위선, 외모지상주의로 오해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오해에도 개의치 않고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베페 세베르니니는 책을 겉표지로, 정치인을 미소로, 자동차를 디자인으로, 사람을 직책으로 판단하는 것이 이탈리아인들의 방식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한다. 그는 ‘벨라 피구라’를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특성으로 설명하는데, 천국이 되기엔 너무 무질서하고 지...

    2025.08.06 21:02

  • [역사와 현실]강무장과 생태계
    강무장과 생태계

    강원도 철원은 조선 초에 강무장으로 쓰인 적이 있다. ‘강무(講武)’란 ‘무예를 강습한다’는 뜻으로 군사훈련 전반을 의미한다. 조선에서는 사냥 의례를 강무, 진법훈련 의례는 대열(大閱)이라고 했다. 사냥 문화는 몽골의 영향으로 고려 후기에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조선 건국 후에도 이어져 태조나 태종도 꽤 사냥을 즐겼다. 그러나 국왕의 유희나 측근 정치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태종은 이를 반박하고 ‘강무’라는 정규 군사 의례로 정비했다. 짐승을 잡아 종묘에 천신해 보본(報本·근본에 보답한다)을 실천하고, 백성들의 농사를 망치는 해로운 짐승을 제거한다는 공익을 명분으로 제시했다.태종은 본격적인 강무장으로 철원을 선호했다. 다른 곳들은 토질도 질퍽질퍽하고 골짜기가 험해서 짐승 쫓기에 불편한데, 철원은 땅이 평탄해서 말 달리며 짐승 쫓기에 편리하고 토질이 비옥해 매년 풍년이 드니 말먹이로 쓸 꼴을 대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종대에는 여러 강무장을 네 ...

    2025.07.30 20:49

  • [역사와 현실]가좌책의 역설
    가좌책의 역설

    신임 대구 판관 이성진은 관아에 항명했다는 이유로, 대구부 면임(面任)들과 백성 대표 300여명을 매질했다. 한 번에 모두를 처벌할 수 없어서, 1761년 음력 6월 말부터 3번에 걸쳐 이를 시행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대구 판관이 대구부 전체 백성들을 매질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는데, 그 이유는 가좌책 때문이었다.가좌책은 지역 내 모든 백성의 집과 사람, 재산들을 속속들이 기록한 일종의 호적이다. 호구와 개인 소득까지 국가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현대 관점에서 보면, 군현 지방관이 별도로 이러한 자료를 만드는 게 이상할 수 있다. 조선 역시 세금과 역(役)을 부과하기 위한 기초자료 확보를 위해 3년 단위로 호적을 작성했다. 지방관들은 이 일의 실무자들이었으니, 제대로 호적을 작성했다면 별도의 가좌책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그런데 당시 지방관들이 조정에 보고하는 호구는 지역의 실제 상황과 크게 차이가 있었다. 군현 내 모든 사람의 수를 가감 없이 보고하면 지역에...

    2025.07.2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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