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역사와 현실
  • [역사와 현실]고려 왕실의 마지막 숨통
    고려 왕실의 마지막 숨통

    1389년 겨울. 이성계, 정몽주 등 아홉 명의 대신이 공양왕을 세우기로 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이 좀 미덥진 않아도 크게 거슬리는 짓은 안 할 것이라고. 그는 우유부단하고 재물 불리는 데나 관심이 있다는 것이 중평이라 임금감이 아니라는 반대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래서 더 적임자였을 수도 있다. 왕실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라는 명분에, 이성계의 사돈 집안이라는 숨은 배경까지 더했으니 이 정도면 안심할 만했다. 자신들의 개혁안을 지지해주면 더할 나위 없고, 아니더라도 허수아비 노릇만 해줘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이들의 계획이 틀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양왕은 개혁세력이 원한 구세력에 대한 탄핵을 거부하거나 최소화하고, 자기 정치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본격적인 신호는 한양 순주와 개경의 사찰 연복사 중창이었다. ‘순주’는 돌아가면서 머문다는 뜻으로 도읍을 옮긴다는 의미의 ‘천도’와는 다르다. 개경은 그대로 수도로 두되, 서경(평양)이나 남경...

    2025.02.12 21:16

  • [역사와 현실]당파의 공적 가치와 그 한계
    당파의 공적 가치와 그 한계

    “(최근 남인과 소북 등이) 서로 한패가 되고 자신의 패거리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는 일이 생기면 벌떼처럼 일어나 논란을 일삼고 있다.” 오늘 우리의 정치 상황 같지만, 이는 1709년 음력 1월4일 엄경수가 남긴 당시 조정의 상황이었다. 엄경수의 이 평가는 1708년 음력 12월13일 이윤문이 올린 강원감사 송정규 탄핵 상소 때문에 나왔다. 이 상소에 따르면, 송정규는 강원감사 직위를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취했다. 특히 그는 공물을 거둘 때, 백성들에게는 최고급 인삼을 징수하고 조정에는 낮은 품질의 인삼을 올려, 그 중간 이익을 취했다. 게다가 면포나 목화를 백성들에게서 강제로 싸게 구매한 후, 제값을 팔아 이익을 취한 정황도 있었다. 이로 인해 강원도 민심이 흉포해져 감사의 신변을 위협하기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 탄핵을 핵심 업무로 하는 사간원 헌납 이윤문이 송정규의 파직을 청한 이유였다. 그런데 이윤문의 상소 내용은 송정규와 같은 기호 소론계 관료이자 이 ...

    2025.02.05 21:11

  • [역사와 현실]중종반정과 인조반정
    중종반정과 인조반정

    우리가 알고 있는 동서양 국가들 역사의 대부분은 왕정(王政)의 역사다. 현재 세계 대다수 나라가 민주주의를 정체(政體)로 표방하지만, 개인들 내면에는 적어도 2000년 이상 이어진 왕정시대에 침전된 습관이나 감정이 여전히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길게 보아도 100년 혹은 200년 정도 지속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정치체제다. 여전히 실험하고 수정하여 개선해야 할 것이 많은 제도다. 2024년 12월3일 대통령의 일방적인 계엄 선포와 즉시 뒤따른 국회에 의한 신속한 해제 이래 지속되고 있는 정치적 긴장 상황도 그런 내용의 일부이다.중국과 한국의 전통시대 왕정은 유럽의 왕정보다 대체로 효율적이고 안정적이었다. 통치 영역의 넓이나 왕조의 지속 기간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왕조의 지속 기간에서 한국의 전통 왕조는 중국보다 장기간 유지되었다. 예컨대 중국의 마지막 두 왕조인 한족의 명나라(1368~1644)와 여진족의 청나라(1616~1912)가 각각 276년과 296년을 유지했다. 두...

    2025.01.22 21:05

  • [역사와 현실]파시즘의 두 얼굴
    파시즘의 두 얼굴

    요즘 부쩍 ‘파시즘’이란 말이 유럽과 미국에서, 또 부분적으로 한국에서도 자주 들린다. 사실 파시즘은 역사학의 난제 중 하나인데 이 문제를 푼다고 노벨상이나 필즈상이 주어질 리 없건만, 그간 수많은 연구자가 파시즘 연구에 매달리며 그 정체를 밝히려 갑론을박을 벌여왔다. 여전히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고 해법도 오리무중이지만, 파시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된 공식들은 있다. 가령 파시즘은 폭력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은 이념이자 운동이라는 것이다. 파시즘의 원조라 할 이탈리아 파시즘의 경우 파시스트들은 각종 소형 화기와 곤봉, 그리고 구토와 설사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정화’의 수단으로 간주된 피마자기름 등으로 무장하고 트럭으로 무리지어 다니며 정적과 비판자들에게 무차별 테러를 가했다.이처럼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검은 셔츠를 입고 팔을 치켜들며 로마식 경례를 하면서 폭력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는 모습은 당대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파시즘은 삽시간에 유럽 전역에 퍼져 아류들...

    2025.01.15 20:43

  • [역사와 현실]정침 이야기
    정침 이야기

    1371년(공민왕 20) 봄, 나주호장 정침은 제주로 향하는 배를 타고 있었다. 호장은 고려시대 지방의 행정을 맡아 보던 향리 중 가장 높은 직급이다. 제주로 가던 그 바닷길, 하필 왜구를 만나고 말았다. 중과부적이라며 다들 항복할 궁리만 하던 때, 정침은 극렬히 저항했다. 마침내 화살이 다 떨어져 버리자, 정침은 관복을 갖춰 입고 정좌했다가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했다.몇년 후 이곳에 정도전이 유배를 왔다. 우왕을 즉위시킨 권신 이인임이 북원과 외교를 재개하는 것을 반대하다 쫓겨난 길이었다. 공민왕의 시해, 명 사신의 살해 등으로 이어진 껄끄러운 외교 난맥을 이인임은 북원과 통교하는 것으로 돌파하려 했다. 위험천만한 선택이었기에 많은 관료들이 거세게 반대했다. 이들 모두 파직되거나 유배됐으며, 변변찮은 집안 출신인 정도전만 근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떠돌았다. 그것도 30·40대 한창나이에. 이런 연유로 머물게 된 나주에서 정침의 이야기를 들은 정도전은 <정침전>이라...

    2025.01.08 20:45

  • [역사와 현실]을사년, 을사년, 그리고 을사년
    을사년, 을사년, 그리고 을사년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음력으로 1월1일인 이달 29일 설에 을사년이 시작된다. 60갑자로 해를 세는 우리네 전통 때문에, 2025라는 숫자보다 ‘을사년’에 눈길이 더 간다. 12지(支) 가운데 유일한 상상의 동물 용이 유연함과 장수를 상징하는 뱀에게 한 해의 바통을 넘겼다. 그러나 상상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유난히 많았던 청룡의 해였던지라, 을사년은 뱀의 유연함에 기댄 문제 풀이의 해가 될 듯하다.게다가 2025년 을사년에는 근현대 을사년들이 남긴 문제들도 남아 있다. 역사 상식이 조금만 있다면, 을사라는 말 뒤에 으레 ‘늑약(勒約)’이니 ‘오적(五賊)’이니 하는 말들을 붙이게 된다. 1905년 일본 제국의 조선 침략을 위한 강제 협약, 즉 ‘늑약’이 있었고, 그에 따라 조선은 주권의 상징인 외교권이 박탈당했고 통감부가 설치되었다. 일본의 조선 강점은 1910년부터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실제 강점은 1905년 을사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런 점에서 1905년 을사년은 나라를...

    2025.01.01 20:57

  • [역사와 현실]1563년 사화 미수 사건
    1563년 사화 미수 사건

    1563년 8월17일에서 8월20일 사이에 조선 역사의 한 자락을 바꿨을지 모르는 사건이 조정에서 일어났다. 왕의 신임을 등에 업은 이조 판서 이량이 촉망받는 젊은 관료 6명을 유배 보내려다 되레 자신이 유배를 간 사건이다. 그는 이들을 귀양 보낸 후 사림의 광범한 지지를 받는 주요 인물 40여명도 제거하려는 ‘살생부’를 작성했다. 여기에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이 첫머리에 적혀 있었다.당시는 무오사화(1498년)로 시작된 사화가 이어지던 시기였다. 양심적 관리와 선비들이 죽임을 당했고 귀양을 갔다. 1545년 12세의 명종이 즉위한 후에도 사화는 이어졌고 모친 문정왕후가 권력을 전횡했다. 시간이 흘렀고 명종도 성인이 되자 자기 힘을 갖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등용한 사람이 이량이라는 인물이다. 구악이 신악으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량에 대해 사림의 반발과 저항이 거셌다. 이량도 그것을 잘 알아서 이들을 제압해야겠다 작정하고 일으킨 것이 1563년 사건이다....

    2024.12.25 20:48

  • [역사와 현실]그 겨울의 정변
    그 겨울의 정변

    게이오(慶應) 3년 12월9일(양력 1868년 1월3일), 조정 대신들이 퇴청하자 일군의 병력이 교토 궁궐의 주요 출입문을 에워쌌다. 주력 부대는 사쓰마번(薩摩藩) 병사들이었다. 전날부터 궁중에선 조슈번(長州藩) 사면 문제를 논의했다. 조슈번은 1864년 교토를 공격한 죄로 조적(朝敵·조정의 역적)이 되었다. 밤을 새운 격론 끝에 조슈번을 사면키로 결정하고 대신들은 궁궐을 나왔다. 그러나 이날 정변을 사전모의한 자들은 궁중에 그대로 머물렀다.출입문 봉쇄가 확인되자 소년 메이지 천황(15세)을 인형처럼 앉혀두고 ‘왕정복고 대호령’이 반포되었다. 조정과 막부의 주요 관직을 폐지하고 천황 밑에 총재·의정·참여라는 새로운 관직을 설치했다. 이를 역사학자들은 ‘왕정복고 쿠데타’라고 부른다. 총재에는 황족, 의정에는 황족·상급 공경과 다이묘(大名), 참여에는 하급 공경과 번사(藩士)가 임명되었다. 총재는 의례적인 직책에 불과했기 때문에 의정과 참여가 실질적 권한을 행사했는데, 당시에 이...

    2024.12.18 21:03

  • [역사와 현실]척결의 불가능성
    척결의 불가능성

    1361년(공민왕 10) 겨울, 홍건적이 쳐들어왔다. 수도 개경까지 함락될 처지가 되자, 공민왕과 관료들은 다급히 피란했다. 임금이 성의 동문을 나설 때, 개경 사람들도 앞다투어 빠져나갔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챙기지 않았다. 늙은이와 어린이가 길바닥에 엎어지고 자빠지며 깔리고 짓밟혔으나 아무도 구원하지 않았다. 비명과 울음소리가 가득한 아수라장 속에서 국왕은 물론이고 비빈들까지 말을 타고 허덕대며 소백산맥을 넘어 안동까지 피란했다. 이듬해 정월 수복될 때까지, 개경에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홍건적은 사람을 잡아먹고 임산부의 젖을 잘라 구워 먹었다. 정월의 전투는 또 얼마나 치열했던지. 눈비가 몰아치는 속에 동틀 녘부터 해 질 녘까지 전투를 하고서야 성을 수복할 수 있었다. 홍건적의 침입은 개경에 엄청난 상흔을 남겼다. 개선한 장수들도 남아나지 못했다. 장수 사이의 분란으로 대장이 살해당했고, 대장을 살해한 장수들도 처형당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돌아볼 ...

    2024.12.11 20:38

  • 성현 말씀보다 더 가까운 몽둥이

    봄가을이 되면 지역 향교는 좋은 날을 골라 춘추 대제를 거행했다. 공자를 비롯한 유교 대표 성현들을 대상으로 그 지역 수령 등 양반과 유생들이 참여하는 큰 행사였다. 지역 수령이 국가 권력을 대표하여 제사를 주재했고, 지역 권력(향권)을 대표하는 양반과 유생들이 이를 주관했다. 당연히 춘추 대제에서 제관을 맡거나 주관하는 일은 향권을 상징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다 보니 향권의 향배가 명확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제사 주관을 두고 다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1824년 가을, 안동향교가 그랬다.당파의 측면에서 안동은 영남 남인의 메카였지만, 중앙 정계에서 퇴출된 지 100년이 넘는 시간은 영남 선비들의 당색도 바꾸었다. 유일한 자기 성취가 관직 진출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당색으로 관직이 막혀 있었으니 그들의 전향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게다가 안동은 기호 노론에서 수령이 파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수령들은 전향한 기호 노론들에게 향교의 향권을 맡겨 향전(鄕戰)을 부...

    2024.12.04 20:52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