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에 따르면 1581년(선조 14년) 10월11일,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져 낮에도 캄캄하고 천둥 번개가 크게 쳤다. 닷새 뒤 임금이 이 재이(災異), 즉 기상이변에 대해 대신들을 맞아 자문했다. 영의정, 6조 판서, 한성판윤 등이 입궐했다. “천변이 비상하니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는가”라고 임금이 물었다. 조선시대에는 ‘천견설’ ‘천인감응론’이라는 이론이 있었다. 임금이 덕을 잃으면 하늘이 재이를 일으켜 꾸짖고, 인간의 행위와 하늘의 현상이 상호작용한다는 주장이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보다 자연에 기대어 사는 비중이 훨씬 높았기에 사람들이 자연현상에 더 민감했다. 그래도 임금과 신하들이 두 이론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재이가 발생하면 국정의 잠재적 위험과 문제점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곤 했다. 실제로 재이 대응책을 묻는 임금의 태도가 다소 형식적이자 호조판서 이이가 이를 지적했다.“재이는 잘 다스려진 세상과 어지러운 세상의 갈림길에 ...
2025.06.18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