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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 [역사와 현실]척결의 불가능성
    척결의 불가능성

    1361년(공민왕 10) 겨울, 홍건적이 쳐들어왔다. 수도 개경까지 함락될 처지가 되자, 공민왕과 관료들은 다급히 피란했다. 임금이 성의 동문을 나설 때, 개경 사람들도 앞다투어 빠져나갔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챙기지 않았다. 늙은이와 어린이가 길바닥에 엎어지고 자빠지며 깔리고 짓밟혔으나 아무도 구원하지 않았다. 비명과 울음소리가 가득한 아수라장 속에서 국왕은 물론이고 비빈들까지 말을 타고 허덕대며 소백산맥을 넘어 안동까지 피란했다. 이듬해 정월 수복될 때까지, 개경에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홍건적은 사람을 잡아먹고 임산부의 젖을 잘라 구워 먹었다. 정월의 전투는 또 얼마나 치열했던지. 눈비가 몰아치는 속에 동틀 녘부터 해 질 녘까지 전투를 하고서야 성을 수복할 수 있었다. 홍건적의 침입은 개경에 엄청난 상흔을 남겼다. 개선한 장수들도 남아나지 못했다. 장수 사이의 분란으로 대장이 살해당했고, 대장을 살해한 장수들도 처형당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돌아볼 ...

    2024.12.11 20:38

  • 성현 말씀보다 더 가까운 몽둥이

    봄가을이 되면 지역 향교는 좋은 날을 골라 춘추 대제를 거행했다. 공자를 비롯한 유교 대표 성현들을 대상으로 그 지역 수령 등 양반과 유생들이 참여하는 큰 행사였다. 지역 수령이 국가 권력을 대표하여 제사를 주재했고, 지역 권력(향권)을 대표하는 양반과 유생들이 이를 주관했다. 당연히 춘추 대제에서 제관을 맡거나 주관하는 일은 향권을 상징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다 보니 향권의 향배가 명확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제사 주관을 두고 다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1824년 가을, 안동향교가 그랬다.당파의 측면에서 안동은 영남 남인의 메카였지만, 중앙 정계에서 퇴출된 지 100년이 넘는 시간은 영남 선비들의 당색도 바꾸었다. 유일한 자기 성취가 관직 진출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당색으로 관직이 막혀 있었으니 그들의 전향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게다가 안동은 기호 노론에서 수령이 파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수령들은 전향한 기호 노론들에게 향교의 향권을 맡겨 향전(鄕戰)을 부...

    2024.12.04 20:52

  • [역사와 현실]시국선언과 만인소
    시국선언과 만인소

    지난 10월 말 인천대 김철홍 교수가 ‘퇴직 교원 정부 포상 미신청자 확인서’를 냈다는 뉴스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 정부가 주는 근정훈장을 받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무릇 훈장이나 포상을 함에는 받는 사람도 자격이 있어야 하지만, 그 상을 수여하는 사람도 충분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즈음 가천대를 시작으로 대학의 교수와 연구자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지역 단위의 선언도 이어졌다. 제주 지역 대학교수 70여명, 전북권 교수·연구자 125명, 그리고 29개 대학·2개 연구소·독립연구자 등 652명을 아우르는 부산·울산·경남 지역 교수·연구자들도 시국선언을 했다.사람의 행동방식 대부분에는 역사적 배경과 기원이 있다. 시국선언을 한 이들의 행동은 생물학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심지어 우리 삶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논리인 ‘자본주의’에서 비롯되지도 않았다. 그것은 우리나라에 자본주의나 민주주의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 시대로부터 온 것이...

    2024.11.27 21:00

  • [역사와 현실]사과의 정치학
    사과의 정치학

    어쩌다 보니 막부의 마지막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에 대해 자주 쓰게 된다. 그에 대한 사료를 읽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요즘 워낙 정국이 어수선하다 보니 대정봉환(大政奉還)-왕정복고(王政復古) 쿠데타로 이어진 정치 위기와 그 극복의 과정이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해서다.1867년 11월9일 요시노부는 교토에 있던 각 번(藩)의 중신들을 니조성(二條城)으로 불러 모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이래 약 270년간 행사해온 대권을 천황에게 돌려준다고 선언했다(대정봉환). 페리의 위협 아래 단행된 개항(1854)으로 촉발된 정정불안은 이미 극에 달했고, 막부는 수습 능력이 없어 보였다. 여론은 막부의 용단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은 자는 드문 법, 실현될 거라 기대하는 자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쇼군 요시노부가 정권이양을 전격 발표한 것이다. 여론은 환호했고, 정적이던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長州藩)은 당황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튿...

    2024.11.20 20:14

  • [역사와 현실]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9조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9조

    학부 1학년, 학문의 세계란 것이 새롭고 신기해 보이기만 하던 때, 교수님이 학술대회가 무엇인지, 어떤 분위기인지 설명하면서 재밌는 일화 몇 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한번은 어떤 연구자가 이방원 일파에게 정몽주가 맞아 죽은 장소가 개성의 선죽교가 아니라고 했다가 청중에게 거센 항의를 받았단다. 선죽교에는 정몽주의 핏자국이 남아 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뭔가 그 충절을 의심하는 듯이 들린 걸까. 또 어떤 연구자는 유명한 조선시대 학자를 존칭을 붙이지 않은 채 호가 아니라 이름으로 불렀다가 청중의 격한 항의를 했다고 한다. 말로만 항의한 것이 아니라 물건을 투척했다는 소문도 있었단다. 모두 그 역사적 인물에 너무나도 몰입한 나머지 조금의 비판이나 다른 이야기도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다.학생들이 깔깔대고 다 웃고 나자 교수님이 지긋이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논문 쓸 때는 존칭 같은 것은 쓰지 않습니다. 중립적으로 이름만 그대로 쓰는 겁니다.” 그러하다...

    2024.11.13 20:00

  • 자연재해마저도 수령의 책임

    유난히 오락가락하는 가을 날씨가 농민들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한창 붉게 물들어가야 할 사과가 며칠 비로 인해 푸르게 변했다는 소리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조금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작년에 비해 배추값은 여전히 고공행진이고, 쪽파김치라도 담그려 집어든 쪽파 한 단 가격이 작년 이맘때의 두 배도 더 되는 듯하다. 농업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조선에 비해 매우 낮은 시대지만, 시골에 사는 나는 추수기 날씨마저 불안불안하다.나라경제 대부분을 농업에 의지했던 1581년 음력 9월, 예안 고을(현 경북 안동시 예안면 일대) 상황은 더 엄혹했다. 당시 예안 고을 대표적인 양반 가운데 한 명인 금난수의 기록에 따르면, 고을 사정은 이만저만 심각한 게 아니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백성들 입장에서는 가을이 그나마 가장 사정이 좋을 때였다. 그러나 1581년은 유난히 자연재해가 많아, 가을에도 곡식 한 자락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마치 3~4월 보릿고개를 연상케 할 정...

    2024.11.06 20:12

  • [역사와 현실]영조의 개혁
    영조의 개혁

    새 차도 몇 년 타면 고칠 곳이 생긴다. 관리를 잘하면 그 시기를 좀 늦출 수 있지만, 결국 수리할 곳이 늘어난다. 사회를 구성하는 제도들도 다르지 않다. 어떤 제도나 특정한 시점의 사회적 필요와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다. 세월이 흘러 필요와 조건이 달라지면 그 제도는 처음처럼 효율적이지 않게 되고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을 일으킨다. 자동차처럼 제도도 고쳐가며 쓰든지 폐기해야 한다.영조는 세금 개혁인 균역법을 실시했지만 그것만 했던 것은 아니다. 재위 17년째인 1741년에 관료제도 개혁 ‘이조낭선이혁절목(吏曹郞選釐革節目)’을 반포했다. 절목(節目)이란 법률, 혹은 규정이다. 이조(吏曹)는 이조, 병조, 형조 등 6조의 이조를 말한다. 낭선(郞選)은 ‘낭관(郎官)의 선발’을 말하고 이혁(釐革)은 개혁한다는 뜻이다. 법령의 명칭을 풀이하면, ‘이조 낭관의 선발 제도를 개혁하는 법령’이라는 뜻이다.이조 낭관은 정5품 정랑과 정6품 좌랑의 통칭이다. 조선 왕조는 문관이 무관보다...

    2024.10.30 21:01

  • [역사와 현실]역지사지의 달인이 되자
    역지사지의 달인이 되자

    입시철이 다가온다. 사학과를 지망한 학생들에게 “왜 역사공부를 하려고 하나요?”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 다는 아니지만 이렇게 답하는 학생이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는 선봉에 서고 싶습니다.” 거대야당이 추진하려고 한다는 역사왜곡처벌법에 이 학생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또 이렇게 답하는 학생들도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해서 역사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불변의 역사적 진리를 탐구하고 싶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역사의 정의를 세우고 싶습니다”. 이들의 표정은 자못 비장하며, 어조는 확신에 차 있다.바로 이 ‘확신’이 문제다. 이 학생들의 발언, 표정, 어조는 사학(史學)이 아니라 종교 혹은 경학(經學)에 어울리는 것들이다. 내 주변 교수님들 중 부인에게 이끌려 교회에 나가는 분들이 간혹 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 설교에 논리의 비약과 사실인지 의심되는 점들이 보여 집중이 안 된다고 푸념하곤 한다. 교회는 믿어서 가는 것...

    2024.10.23 20:33

  • [역사와 현실]고독(蠱毒)이라는 저주
    고독(蠱毒)이라는 저주

    외롭다는 뜻의 ‘고독’이 아니다. 배 속 벌레 고 자와 독약이라고 할 때의 독 자를 합쳐 ‘고독’이라고 불리는 저주다. 글자 생김으로 뜻을 따져보면 고(蠱) 자는 그릇(皿)에 담긴 벌레를 의미하니, 고독은 이를 이용한 저주를 뜻한다. 저주의 방법은 이러하다. 항아리 안에 여러 종류의 독충이나 파충류를 한데 모아 봉한 다음 그 안에서 서로를 잡아먹게 한다. 다음 해에 개봉을 했을 때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한 마리를 태워 가루로 만든다. 이 가루를 저주하고 싶은 사람의 음식이나 술에 넣으면, 그 사람이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혹은 이 항아리에서 혼자 살아남은 생물을 ‘고’라 하는데, 신을 섬기듯이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 음식에 독을 방출한다고도 한다. 고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동물은 매우 다양했다. 뱀을 써서 만들면 사고, 고양이를 쓰면 묘고, 개를 쓰면 견고라고 했다. 중국 고대부터 전해진 이 고독은 조선시대에는 사면령 대상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잔혹한 저주로 여겨졌다.고독...

    2024.10.16 21:21

  • [역사와 현실]심기 보호의 결말
    심기 보호의 결말

    가을이 깊어지면서, 왕의 일정도 덩달아 바빠졌다. 왕이 직접 선대 왕의 능을 찾아 제사 지내는 행차 때문인데, 조선의 22번째 왕인 정조에게는 제사 지내야 할 능도 많았다. 정조는 능행차를 통해 자기 왕통의 정당성과 권위를 백성들에게 드러내고 싶어 했다.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왕의 권위가 드러날 정도의 대가(大駕) 행렬을 만들려 했던 정조로 인해, 왕을 시위해야 하는 문무 관료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1785년 음력 9월4일은 가까운 창릉과 명릉, 서칠릉, 경릉, 홍릉을 하루 만에 돌아야 하는 일정이었다.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속도감 있는 행차가 이루어져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시위부대뿐 아니라 수행하는 신료들과 각 관서의 하급 관료들까지 어느 하나 어긋남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 이 바쁜 일정이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왕의 행차가 궁을 나와 모화관에 이르렀을 때 형조 소속 하급 관리들이 떼지어 왕의 대가 행렬을 침범했다. 대가 뒤쪽의 계속되는 소란에 정조는 결국 ...

    2024.10.0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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