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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 [역사와 현실]심기 보호의 결말
    심기 보호의 결말

    가을이 깊어지면서, 왕의 일정도 덩달아 바빠졌다. 왕이 직접 선대 왕의 능을 찾아 제사 지내는 행차 때문인데, 조선의 22번째 왕인 정조에게는 제사 지내야 할 능도 많았다. 정조는 능행차를 통해 자기 왕통의 정당성과 권위를 백성들에게 드러내고 싶어 했다.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왕의 권위가 드러날 정도의 대가(大駕) 행렬을 만들려 했던 정조로 인해, 왕을 시위해야 하는 문무 관료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1785년 음력 9월4일은 가까운 창릉과 명릉, 서칠릉, 경릉, 홍릉을 하루 만에 돌아야 하는 일정이었다.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속도감 있는 행차가 이루어져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시위부대뿐 아니라 수행하는 신료들과 각 관서의 하급 관료들까지 어느 하나 어긋남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 이 바쁜 일정이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왕의 행차가 궁을 나와 모화관에 이르렀을 때 형조 소속 하급 관리들이 떼지어 왕의 대가 행렬을 침범했다. 대가 뒤쪽의 계속되는 소란에 정조는 결국 ...

    2024.10.09 20:46

  • [역사와 현실]눈치라도 봐야 한다
    눈치라도 봐야 한다

    최근 국회가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을 불러 진행한 현안질의 내용이 알려지자 공분이 일고 있다. 평소 스포츠에 큰 관심은 없었기에 질의와 응답 관련 유튜브를 보고서야,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의와 응답 내용은 비단 축구협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폐쇄적 엘리트 조직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축구협회 회장과 국가대표팀 감독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근래 고조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에 특히 문제가 된 것은 국가대표팀 감독의 선출 과정이다. 한마디로 대표팀 감독 선출 과정이 오늘날 한국인들의 상식과 거리가 있었다. 신임 감독 선출 과정을 이끌던 전력강화위원장이 협회장과의 면담 후 개인 사정을 들어 사퇴한 뒤, 축구협회 정관이나 권한 위임 절차 없이 협회 소속 다른 사람이 신임 감독 선임을 주관했다. 규정된 절차에 따른 외국인 감독 지원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규정된 절차를 밟지 않은, 내야 할 서류나 자료도 제출하지 않은 사람이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다....

    2024.10.02 20:02

  • [역사와 현실]스스로 하야한 권력자
    스스로 하야한 권력자

    내가 메이지유신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신기했던 것은 마지막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의 대정봉환(大政奉還)이었다. 1867년 11월 요시노부는 정권을 천황에게 넘겨주고 쇼군직을 사임했다.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하야(下野)한 것이다. 역사에서는 자기 권력에 끝까지 집착하다가 비참하게 무너지는 일이 일반적이지 않은가.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유력했었다. 즉 사쓰마번·조슈번의 공격으로 수세에 몰린 요시노부가 선제적으로 정권을 반환해 여론을 반전시킨 후, 새로 구성될 정부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요시노부는 천황 밑에 ‘의사원(議事院)’을 만들어 그 리더가 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미심쩍은 점이 적지 않다. 대정봉환 선언이 있은 지 약 두 달 후인 12월9일 사쓰마번은 궁정쿠데타를 일으켜 요시노부를 배제한 채 신정부 수립을 선언했다(왕정복고 쿠데타). 이를 본 요시노부는 가신들의 맹렬한 반대를 뿌리치고 교토의...

    2024.09.25 20:45

  • [역사와 현실]길치와 ‘시간치’
    길치와 ‘시간치’

    나는 길치다. 하필 길눈 밝은 배우자를 만나는 바람에 사사건건 구박받는다. 하루는 길눈 밝은 배우자에 비해 내게 부족한 능력이 무엇인가 곰곰이 고찰해보았다. 일단 나는 방향감각과 거리감각이 부족하다. 한번은 ‘A건물 앞에 B건물이 있다’고 길을 설명해주었는데, 갔다 온 배우자가 투덜거렸다. 거기는 A건물 앞이 아니라 한 구역 떨어진 곳이고, 그 정도 거리는 ‘앞’이라고 설명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다음으로는 표지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정말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면, 건물이나 도로 같은 지형지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여러 차례 간 곳도 내게는 매번 새롭기만 하다.길치로서 나의 부족한 점을 고찰하다가 문득 ‘시간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개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습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어렸을 때 가까운 과거나, 먼 과거나 모두 ‘아까’라는 만능 단어 하나로 설명하곤 했다. 어제 일어난 일도 ‘아까’, 10분 전에 일어난 일도 ...

    2024.09.18 20:26

  • [역사와 현실]1796년, 효경교 붕괴 사건
    1796년, 효경교 붕괴 사건

    1796년 음력 7월 말, 20대 나이에 종2품 전라도 병마절도사에 제수된 신홍주(申鴻周)는 사은숙배를 위해 청계천을 건너야 했다. 효경교(孝經橋) 초입에 들어설 때까지, 그의 머릿속은 조금 뒤 행할 의례 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왕에게 올리는 부임 전 인사지만, 궁의 예는 혈기왕성한 젊은 무관에게는 영 익숙지 않았다. 효경교 중간에서 그를 태운 말이 그를 떨어뜨리지 않았으면, 궁에 들어갈 때까지 그 생각은 멈추지 않았을 터였다.다리를 건너던 중 갑자기 맞은편 말이 놀라 날뛰는 통에 신홍주의 말 역시 덩달아 날뛰면서, 그는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효경교는 며칠 전 큰비로 난간 일부가 유실되었는데, 하필 그곳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신홍주는 다시 다리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젊은 무관이 말에서 떨어진 것도 모자라 다리 아래로 굴렀으니, 부끄러움을 감추기 힘들었다.겨우 몸을 추스른 신홍주는 급히 금위영 장교를 불렀다. 큰비로 난간이 쓸려 내...

    2024.09.11 20:43

  • [역사와 현실]선조의 ‘왜란 공신 선정’ 유감
    선조의 ‘왜란 공신 선정’ 유감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덮을 수 없다.”지난 8월15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정부 행사와 별도로 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여기서 이종찬 광복회장이 했던 말이다. 기념사에서 그는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에 대해 광복회가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 있을 수 없다며, 한 나라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이 흔들리면 국가의 기조가 흔들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고 “자주독립을 위한 선열들의 투쟁과 헌신 그리고 그 자랑스러운 성과를 폄훼하는 일은 국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준엄하게 경고한다”고 했다.위 기사를 읽으면서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구글 이미지로 볼 수 있다. 1945년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이 환국을 위해 중국 상하이 공항에 도착한 사진이다. 중앙에 김구 선생이 있고, 오른쪽에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省齋) 이시영 선생(1869~1953)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그리고 김구 선생 앞 ...

    2024.09.04 20:39

  • [역사와 현실]권력붕괴는 내부균열에서부터
    권력붕괴는 내부균열에서부터

    도쿠가와 막부 마지막 쇼군(15대)인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에 관련된 사료를 읽다가 흥미로운 걸 봤다. 요시노부는 당시 교토에서 막부정권을 뒤엎으려는 사쓰마번(薩摩藩), 조슈번(長州藩)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그는 막부를 스스로 해체하고 쇼군(將軍) 자리에서 사임할 것을 선언하며 대권을 천황에게 바쳤다. 대정봉환(大政奉還, 1867년 음력 10월14일)이다. 그런데 약 한 달 전인 음력 9월10일 에도(江戶)의 기이번(紀伊藩) 저택에 한 통의 격문이 날아들었다.(<德川慶喜公傳> 7) 도쿠가와가 은고지사(德川家恩顧之士) 명의로 된 이 투서에는 현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히토쓰바시 요시노부(一橋慶喜)로 지칭하며 극렬히 비방하는 문장이 가득하다. 요시노부는 1년 전 히토쓰바시 가문에 양자로 갔다가 도쿠가와가로 돌아와 쇼군에 즉위했는데,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격문의 작성자는 요시노부가 조슈번을 정벌한다며 전 쇼군(14대) 도쿠가와 이에모치...

    2024.08.28 20:38

  • [역사와 현실]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0조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0조

    2023년 초, 가족여행으로 일본을 갔다. 코로나19도 웬만큼 지났다 싶어 간만에 마음먹었는데, 이것저것 준비하기도 귀찮고, 돈도 생각해야 해 가장 가까운 동네로 간 것이었다. 늘 그렇듯 일본은 쓴 돈만큼의 서비스와 질을 보장하고, 그럭저럭 익숙하면서도 또 적당히 이국적이라 즐거운 여행지다. 그렇게 3박4일의 일정을 잘 보내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을 때 사건이 발생했다. 그전까지 만나본 일본 택시 기사와는 사뭇 다르게, 이 초로의 기사는 영어로 말을 걸고 공항까지 가는 길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여행지에서 현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 사람의 이야기는 곧 이상한 쪽으로 빠졌다. 한국의 정치에 대해 논하기 시작하더니, 한국에서 일본에 요구하는 과거사 사죄가 너무 과도하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신은 전쟁 후에야 태어났는데 도대체 자신 같은 세대가 무슨 책임이 있다고 사과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2024.08.21 20:44

  • [역사와 현실]1751년, 흥해군수의 ‘고발 사주’
    1751년, 흥해군수의 ‘고발 사주’

    1751년 음력 7월,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권력형 범죄가 발생했다. 이 사건을 조사했던 경상감사 조재호는 직권으로 흥해군수 이우평을 파직하고, 그의 죄상을 조정에 보고했다. 그의 범죄행위를 감안할 때, 잠시라도 그를 공적 지위에 머물게 할 수 없었다.이 사건 발단은 전해인 1750년 음력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력 10월은 한 해 결실을 거두는 시기이다. 당연히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봄에 빌렸던 곡식을 갚아야 하는 시기, 즉 환곡의 계절이기도 했다. 물론 곡식을 갚을 수 있을 정도로 수확이 좋으면야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늘 상황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1750년 역시 예약된 흉년이었고, 백성들 입장에서는 그 어느 해보다 환곡의 부담이 컸다. 관아에서는 주어진 권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곡식을 받아내야 했고, 결국 미납자들은 속속 관아에 잡혀 올 수밖에 없었다. 서원석의 아내 잉질낭도 미납 책임을 지고 흥해군 관아에 잡혀 왔었다.잉질낭은 흥해군수 이우평의 시...

    2024.08.14 20:45

  • [역사와 현실]뒷것 김민기
    뒷것 김민기

    2024년 7월21일 김민기가 사망했다. 향년 73세다. 네이버 인물 소개에 따르면 1951년 3월에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고, 공연연출가이자 전 가수이다. 조선시대식이라면 ‘뒷것’은 호처럼 들리지만, 그렇진 않다. 하지만 오늘날 감각이라면 스스로 붙인 ‘자호(自號)’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는 무대에서 관객의 주목을 받으며 연기하고 노래하는 사람을 ‘앞것’, 그들을 키우고 무대 뒤에서 보조하는 사람을 ‘뒷것’이라 했다. 그는 뒷것들의 두목을 자임했다.김민기가 위중하다고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23년 말부터였다. 그가 과거 드물게 했던 인터뷰가 조금씩 들려왔다. 아무도 그의 죽음을 드러내 말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리라. 그의 사망 이후 유튜브에 그의 과거 인터뷰, 지인들의 회고를 담은 클립이 많이 올라온다. 인쇄매체보다 영상매체가 사람들과 더 많은 접점을 지니고 또, 신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활자와 책으로 그가 평가되리라는 예감이 ...

    2024.08.0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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