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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역사와 현실
  • [역사와 현실]서울이라는 도시
    서울이라는 도시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화제다. 센강에 배를 띄워 각국 선수단을 입장시킨 것을 비롯해, 미도(美都) 파리의 매력을 한껏 뽐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파리에 거주한 적 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파리 예찬이 한창이다. 나는 하루 스쳐 지나간 적밖에 없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을 매료시키는 도시를 가진 프랑스가 부럽다. 일본 교토(京都)에 가서도 부러워 했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세계문화유산인 건 말할 것도 없고, 헤이안(平安) 시대 이래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 지명 등이 사람들을 시간에 젖게 만든다. ‘지구상에 교토가 남아 있어 참 다행’이라 생각한 적이 많다.요통이 지병인 나는 많이 걸으려 노력한다. 다행히 다른 운동보다 걷기는 덜 싫어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걷는다. 마포에 사는데 광화문에서 약속이 있으면 걸어갈 때도 있다. 5호선 마포역에서 광화문역까지는 5㎞로 1시간20분 정도 걸린다. 그냥 걸으면 지루하다. 구한말 역사를 읽다보면 마포가 자주 등장한다. 그 시대...

    2024.07.31 20:38

  • [역사와 현실]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8조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8조

    조선 명종 2년(1547) 경연 자리에서 특진관 최연은 열셋 어린 나이의 임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도참설(예언)은 모두 근거가 없는 말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여 나라를 다스리는 데 방해가 됩니다. 우리나라도 건국 초기엔 이런 도참설로 노래를 짓기도 했으나 태종께서 ‘어디 이런 요사스러운 도참설을 숭상하겠느냐’며 없애게 하였습니다. 고려에서는 사람들이 송악산 등지에서 무당들을 데리고 제사를 지냈는데, 태종께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 지내는 제사는 신이 흠향하지 않는다며 혁파했습니다. 또 세종께서는 연말에 산천에서 지내는 치성도 혁파했으며, 성종은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는 축수재를, 중종은 불교식으로 지내는 기신재를 혁파했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 왕조의 가법이며 옛일이니 오늘날 모두 본받아야 합니다.” 중종의 아들 명종은 형인 인종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예정에 없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경연에 매진하던 시기, 경연관 최연...

    2024.07.24 20:32

  • [역사와 현실]사심으로 사심을 공격한다
    사심으로 사심을 공격한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 권력자의 핵심 권한은 인사권이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인사(人事)란 권력자-또는 권력을 이양받은 사람-가 업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자기 권한을 일정 범위 내에서 타인에게 부여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업무의 효율적 수행이라는 목적에 부합되는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특정 권한을 부여할 때, 이를 ‘합리적 인사’라고 말한다. 특히 ‘업무의 효율적 수행’이라는 인사의 목표가 국가 차원이 되면, 공적 차원에서 능력 유무를 판단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조선은 꽤 촘촘하고 체계적인 인사 시스템을 가졌다. 그리고 왕의 인사권도 가능하면 이 시스템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인사가 그렇게 이상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1627년 음력 5월11일, 정백창에 대한 인사가 그랬다. 당시 인조는 정해진 인사 시스템을 무시하고 왕의 특명으로 정백창을 이조 참의에 임명했다. 조선의 인사 시스템을 관장하는 이조의 핵심 관료를 임명하면서 ...

    2024.07.17 20:37

  • [역사와 현실]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던 나라?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던 나라?

    얼마 전 유시민 작가와 조수진 변호사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 북스’를 보았다. 흥미로운 책을 한 권 선정해 그 내용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채널이다. 이번에는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의 최근작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를 소개했다. 책은 모두 10개 주제로 이루어졌는데 나는 4장 ‘식민지 근대화론: 우리 안의 역사 논쟁’이 흥미로웠다.‘식민지 근대화론’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를 겪은 기간에 근대화되고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를 좀 연장하면 오늘날 한국은 식민지 경험 덕에 발전했고, 이 때문에 일본은 침략자지만 동시에 한국 근대화에 기여하기도 했단 결론에 이른다. 저자 박태균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체로 부정적이었다.내가 저자의 설명에 흥미를 느낀 데에는 두 가지 정도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저자가 식민지 근대화론에 비판적이기는 해도 여전히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개인적 생각이라며 임진왜...

    2024.07.10 20:41

  • [역사와 현실]나를 적진에 보내달라!
    나를 적진에 보내달라!

    미국 동인도함대 사령관 페리가 개국을 요구하자 일본은 패닉에 빠졌다. 에도 시민들의 눈길은 미토노공(水戶老公) 도쿠가와 나리아키(德川齊昭)에 쏠렸다. 그는 존왕양이의 스타 정치가였지만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번주 자리에서 내려온 인물이다. 당황한 막부는 하는 수 없이 그를 기용했다. 도쿠가와는 개국을 완강히 반대했지만, 흥미로운 주장을 펼쳤다.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대신 자신을 미국에 사절단으로 파견해달라는 것이었다. 요시다 쇼인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미국은 일본을 협박하지 말고, 이번에는 물러나라. 그러면 일본이 캘리포니아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개국을 논의하겠다’는 것이었다. 메이지 정부가 1868년 수립된 후 최대의 과제는 조선과의 수교 문제였다. 청과는 이미 조약을 맺었지만(1871) 조선은 8년 동안 국교 수립을 거절해왔다. 이와쿠라 사절단의 해외순방 중 정부 운영을 책임지게 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는 1873년 7월29일 또 한 명의 실력자 이타가키 다이스케(...

    2024.07.03 20:46

  • [역사와 현실]17년 전 이맘때
    17년 전 이맘때

    얼마 전 경기도 안성의 봉업사지에 갔다. 한데 그날 그곳이 사적으로 지정된다는 뉴스가 나와서, 사적 지정 기념 답사가 됐다고 일행과 키득대며 절터를 둘러보았다. 봉업사지에는 10세기 고려 광종대 만들어진 태조 진전, 즉 태조의 초상화나 상을 모셔놓고 제사를 드리던 곳이 있었다. 1362~1363년에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으로 안동까지 피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곳을 참배하기도 했다. 그후 언젠가부터 버려져 잊혔으나 우연히 발견된 유적을 계기로 발굴조사가 행해지며 사적으로 지정됐다.고려 광종 때 건설된 태조 진전이라 하면, 개성의 봉은사가 대표적이다. 태조상이 바로 이곳에 있던 것이다. 조선 건국 후 태조릉인 현릉에 묻혔는데, 1990년대 현릉 정비 과정에서 발견됐다. 태조상과 진전 생각을 하다 보니, 개성 만월대, 즉 고려궁성의 경령전 유적에 생각이 미쳤다. 경령전은 궁성 안에 있던 진전이다. 고려 왕실에서 꾸준히 의례를 행한 매우 중요한 장소인데, 2007~2018년 남북...

    2024.06.26 20:29

  • [역사와 현실]국방의 의무에 대한 국가의 책임
    국방의 의무에 대한 국가의 책임

    1781년 5월11일 새벽, 창경궁을 순찰하던 위장들과 부장들은 대로변 소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는 시신을 보고 혼비백산했다. 여명이 트는 이른 새벽, 흐릿한 형체만 보고 마음의 준비 없이 시신을 맞닥뜨렸던 터라, 이를 본 모든 이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새벽 댓바람부터 창경궁에 비상이 걸렸다. 궁궐 바로 앞에서 일어난 흉사였던지라, 이 일은 정조에게 바로 보고되었다.조사가 진행되었다. 사망자는 전날 창경궁 수비를 위해 입직했던 병사. 그는 함께 입직했던 동료 병사와 다투다 스스로 목을 맨 것이라 보고되었다. 큰일이 아니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병조의 보고 내용이 그랬다. 그러나 스스로 목을 맬 정도의 다툼이 ‘대등한 관계’에서, 그것도 ‘우발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기록이 없어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사망한 병사는 목숨을 버리고 싶을 만큼의 괴롭힘을 장기간 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툼’으로 쓰고 ‘괴롭힘’으로 읽어야 하는 상...

    2024.06.19 20:35

  • [역사와 현실]AI, 인문학, 역사학
    AI, 인문학, 역사학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변화가 여러 방면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AI가 그려주는 그림 때문에 웹툰 그리던 일을 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말이 들리고, 여러 나라말을 유창하게 통역하는 기능 때문에 일부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폐지했다는 뉴스도 전해진다. 챗GPT가 등장한 지 불과 1년 반이 지났을 뿐이다. 최근에 나온 더 높은 버전의 챗GPT는 미국 변호사 시험(Uniform Bar Exam)을 상위 10%로 통과했고, SAT 수학시험에서 800점 만점에 700점을 얻었단다. 인간의 총체적 지능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경제학에 장기, 중기, 단기 경제변동 이론이 있듯이, 역사학에도 시간에 관한 비슷한 이론이 있다. 페르낭 브로델(1902~1985)은 세 차원의 역사적 시간을 말했다. 기후적, 지리적, 생물학적, 정신적 구조같이 거의 변하지 않는 장기지속, 인구나 사회계층처럼 어느 정도 변동하는 구조로서의 콩종튀르(conjoncture), 마지막으로 사건 같...

    2024.06.12 20:28

  • 일본 사회는 역(役)의 체계

    지난번 칼럼(5월9일자)에서 일본 사람들이 각자 맡은 ‘야쿠’(役·역할)를 수행하며 때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는 ‘1억 총연극의 사회’에 대해 썼는데, 흥미롭게 여기는 분들이 제법 있어 부연설명하려고 한다. 야쿠를 역할로 번역했지만, 딱 들어맞는 느낌은 아니다. 역할보다는 좀 더 분명하고 엄격하다. 유학 시절 식당에 갔는데 일본인 종업원이 쟁반에 반찬을 올려 서빙을 해줬다. 한국에서의 습관이 남아 있던 나는 반찬 그릇 옮기는 걸 도와주려고 손을 뻗었다. 한국에서는 아주머니가 “학생, 이것 좀 거기다 놔줘요~”라고 하기도 하지 않나(요즘도 한국에 이런 풍경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자 아직 앳된 그는 흠칫 놀라며 “스미마센!”(죄송합니다)을 연발했다. 서빙이라는 자기의 야쿠에 손님이 개입한 데 놀랐던 것이고, 자신의 야쿠 수행에 무슨 큰 결함이라도 있었나 하고 생각한 것이다. 사장이나 종업원이 바쁜 듯하면 냉장고 안에 있는 맥주를 알아서 꺼내오는 한국인 손님을 그가 상상하기...

    2024.06.05 20:38

  • [역사와 현실]프레드릭과 샤미센
    프레드릭과 샤미센

    프레드릭은 게으른, 아니 게을러 보이는 들쥐다. 다른 들쥐 가족들이 겨울을 대비해서 식량을 모으느라 바쁘게 일할 때 프레드릭은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햇볕을 쬐거나 초록 들판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꾸벅꾸벅 졸기나 한다. 왜 일을 하지 않냐는 식구들의 타박에 겨울을 위해서 햇볕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다고 답하는 프레드릭.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을 텐데 싶다. 그러나 한겨울 동굴에서 갇혀 지내며 저축한 식량을 다 축내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모두가 지치고 우울해졌을 때, 프레드릭의 진가가 드디어 발휘된다. 프레드릭은 봄에서 가을까지 모은 햇볕을 나눠주고 색깔을 보여주며 이야기와 시를 들려주어 다른 들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준다. 칼데콧 아너상을 받은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은 바로 시인을 자임하는 이 들쥐의 이야기다.아이가 어렸을 때,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상 받은 책이라니 뭐가 좋아도 좋겠거니 하고 잡은 이 책을 읽어주다 가슴이 찡해졌다. 프레드릭이 상징하...

    2024.05.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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