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교착상태라는 게 있다. 양군의 전력이 엇비슷해 조금의 진전도, 변동도 없는 상황을 뜻한다. 1차 세계대전이 그런 경우였다. 서부 전선에서 독일군의 초기 돌격이 저지된 후 양군은 참호를 파고 대치하며 교착상태에 빠졌다. 정치에도 그런 교착상태가 있다. 즉 세력 A와 세력 B가 투쟁할 때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한 채 둘 다 탈진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세력은 도돌이표처럼 각자의 주장만 무한 반복하며 출구나 타협책을 전혀 찾지 못한다. 이에 국민들은 정쟁에만 몰두할 뿐 삶을 돌보지 않는 정치에 염증과 무관심을 내보이며 불만과 좌절감을 쌓아나간다.역사에서 교착상태는 기성 헤게모니가 붕괴한 결과로 나타난다. 여기서 헤게모니란 강제적 지배가 아닌 자발적 동의에 기초한 지도력이고, 이 지도력은 자신의 생각을 ‘상식’으로 제시해 자연스럽게 지배하는 힘이다. 그런 헤게모니 역량이 소진되면 위기가 온다. 미국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이탈리아...
2025.10.01 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