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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 [역사와 현실]나아감과 물러섬의 도리
    나아감과 물러섬의 도리

    “나는 일찍이 우리나라 선비들 가운데 약간이라도 도의를 사모했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세속적 우환에 걸리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소이다. (중략) 그들이 미진했던 점은 다름이 아니라 학문이 지극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너무 높여 처신한 데 있고, 시의(時宜)도 헤아리지 못하면서 세상을 경륜(經綸)하는 데 용감했기 때문이오.”(<퇴계선생문집>, 권16, ‘기명언에게 답함’) 1559년, 이황이 나아감과 물러남의 도리를 묻는 33세의 젊은 기대승에게 답한 편지의 일부이다. 기대승은 한 해 전 이미 대과에 합격했지만, 스스로 관직에 나아감과 물러섬의 도리에 어둡다고 생각하여 이황에게 그 처신을 물어왔던 터였다.유학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25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전승되면서 복잡한 이론으로 분화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본래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자기 수양(수기)을 통해 개인의 도덕적 인격을 완성하고, 사람들을 다스려(치인)...

    2024.04.24 20:48

  • [역사와 현실]언론과 미디어
    언론과 미디어

    언론기관의 역사를 말한다면 서양보다 한국이나 중국이 훨씬 앞선다. 서양에서는 17, 18세기 신흥 시민계급과 함께 언론기관이 등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도 이미 고려 시대에 정부 조직 안에 언론기관이 존재했다. 특히 조선왕조는 고려 시대보다 더욱 체계적으로 언론 기능을 발전시켰다. 국가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면 민간에서든 정부 안에서든 권력과 국정을 감시하는 언론이 필요했다.오늘날 언론사 기자의 일을 맡은 조선 시대 정부 기관으로 사헌부와 사간원, 춘추관과 예문관을 들 수 있다. 사헌부와 사간원 관원을 언관(言官)이라 했는데, 국왕과 관리들을 말로 비판하는 일을 했다. 예문관과 춘추관은 임금과 관리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했고, 그 기록을 모아 정리했다. 그 결과물이 <조선왕조실록>이다.예문관과 춘추관은 똑같이 ‘국사(國事)’를 기록하는 일을 했지만 그 구체적 업무와 편제는 달랐다. 가장 큰 특징은 춘추관 관원 모두 다른 관직이 있는 겸직이...

    2024.04.17 21:55

  • [역사와 현실]점진적 방법으로 이뤄진 변혁
    점진적 방법으로 이뤄진 변혁

    4년간 각국 혁명사가들과 진행한 ‘혁명비교연구’의 출판이 이뤄진다(2023년 1월19일자 본 칼럼 ‘한국혁명’ 참조).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던 원고를 고치고 결론을 새로 쓰다 보니 ‘점진적 대변혁’이란 메이지유신의 특징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중국과 조선이 일찌감치 군현제로 전환한 데 반해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까지 봉건제로 남아 있었다. 도쿠가와 시대 대다수 지식인들은 봉건제가 좋은 제도라며 일본 예찬 소재로 삼았다. 19세기 중반 서양의 위협 앞에서 중앙집권을 해야 할 필요가 대두하자, 그들은 일본도 봉건제에서 군현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낯선 서양 정치사상을 수입해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보단 봉건제-군현제라는, 동아시아에서 장구한 세월 그 장단점이 논의된 낯익은 정치제도에 관한 토의를 정치체제 변혁의 단서로 삼은 것이다. 민두기의 연구에 따르면 19세기 후반 청에서도 의회제 도입과 지방분권을 논의하면서, 그것은 현행 군현제에 봉건제를 가미하는 것이라는 논법...

    2024.04.10 21:58

  • [역사와 현실]왕건의 유언과 ‘공심’
    왕건의 유언과 ‘공심’

    태조 왕건은 고려의 다른 국왕과는 위상이 완전히 다르다. 시조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고려 400여년 동안 반신반인 정도로 숭배를 받던 존재라 그렇다. 예를 들어 고려의 양대 축제라는 연등회와 팔관회는 태조 왕건에게 고하는 것으로 의례를 시작한다. 수도인 개경만이 아니라 지방 곳곳에 그 초상을 모신 진전이 있었고, 전쟁이나 지방의 반란 진압 같은 큰일이 있을 때면 이러한 진전에서 일이 잘되기를 기원하곤 했다. 왕건으로 이어지는 왕실 조상의 혈통도 신비화되었다. 건국 설화에는 당대 유행한 온갖 요소를 다 집어넣었다. 그래서 태조의 조상 중에는 산신도 있고, 명궁수도 있으며, 오줌 꿈을 꾼 할머니, 심지어 당나라 황제와 용왕의 딸도 있다. 또 도선만이 아니라 팔원이라는 풍수사까지 그 집과 그 고을의 풍수를 봐주며 왕업의 개창을 예언했다. 궁예처럼 미륵이라고 하지만 않았을 뿐 나머지 유행하던 요소는 다 넣었고, 고려 왕실은 용손을 자처했다. 왕권이 위태로울 때면 이런 혈통적 신비함...

    2024.04.03 20:24

  • [역사와 현실]당파와 도덕적 책임의 범위
    당파와 도덕적 책임의 범위

    1796년 음력 2월13일, 정조의 최측근인 좌의정 채제공이 파직되었다. 세손 시절부터 함께 동고동락한 채제공이었지만, 정조의 결단은 추상같았다. 발단은 영릉(英陵·세종대왕의 능) 별검 이주석에 대한 어사의 보고였다. 이 보고에 따르면 이주석과 그의 동료 이주명의 죄는 심각했다. 특히 두드러진 죄는 우금령(牛禁令·소 도축 금지령)을 어긴 일이었다. 조선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소 도축을 법으로 금했는데, 그에 더해 한 해 전인 1795년에는 이를 강조한 왕명이 별도로 내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이주석은 능졸들이 영릉 내에서 소를 사적으로 도축하는 것을 허락했으니, 문제가 컸다.게다가 어사의 보고에 따르면, 이주석은 영릉 인근 마을에 사는 과부를 불법으로 결박해서 밤새 숯 보관 창고에 가둔 일도 있었다. 영릉에 갇혔던 과부와 그녀 오빠의 호소로 이 일이 밝혀졌는데, 그들 말에 따르면 이주석은 수절하려는 과부를 강제로 능군(陵軍)인 김강정과 동거하게 만들려고 이러한 일을 벌...

    2024.03.27 22:08

  • [역사와 현실]1565년 유생 상소와 야당 공천투표
    1565년 유생 상소와 야당 공천투표

    1565년 4월, 20년간 최고권력을 행사했던 문정왕후가 사망했다. 그 직후 시작되어 그해 10월까지 이어진 지방 유생들의 전국적 상소는 조선의 정치 및 언론 지형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그 양상은 작금의 한국 정치 및 언론 상황에 기시감을 준다.조선은 고려 말 토지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건국되었다. 이 때문에 조선의 정치는 처음부터 공적 이념성을 강하게 띠었다. 이것은 현실 권력 못지않게 ‘공론(公論)’을 중시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조정에서 공론을 담당하는 사헌부와 사간원 관원을 통칭하는 언관(言官)이 존중되었다. 그런데 언관이 처음부터 실제로 강력한 발언권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시작했어도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실제로 구현되지는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조선의 공론 중시 지향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성종대(1457~1494)에 언관이 공론을 담당하는 주체로 확립되었고 조정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했다. 조선이 건국되...

    2024.03.20 19:59

  • [역사와 현실]역사가는 시시포스의 운명
    역사가는 시시포스의 운명

    이번 학기, 뜻하지 않게 <역사공부의 기초>라는 강의를 맡게 되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딱딱한 제목의 과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원래 <사학개론>이었던 과목에 저런 타이틀이 붙었다. 랑케, 크로체, 콜링우드, 역사에서의 주관과 객관, 사회와 역사가…. 뭐 이런 역사철학과 서양사학사에 관한 것이니, 지금까지 서양사 교수들이 담당해왔는데, 어찌어찌하다 내 몫이 되었다.해서 그 유명한 E H 카(1892~1982)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각 잡고 읽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하도 여러 사람이 인용해(아마 다 읽고 인용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조금은 진부해진 그 구절로 잘 알려진 책 말이다. 저 인용구의 전모는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facts)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김택현 역 <역사란 무엇인가> 46쪽)다. 사실과 해석 사이에서 역사가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를 설...

    2024.03.13 22:04

  • [역사와 현실]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6조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6조

    대학원 시절에 금석문 강독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고대사 전공은 아니지만 대학원에서는 학부 때와는 달리 무엇을 새로 배우게 될지 궁금했다. 과연 학부 때와는 수준이 달랐다. 판독문을 준비해서 강독하는 것까지는 그렇게 다르진 않았지만, 교수님이 소장하고 계신 탁본을 직접 보면서 재판독을 해보거나 새로운 추정을 해보는 점이 색달랐다. 논란 많던 광개토왕릉비 역시 여러 탁본을 비교하고, 한 소장 기관에 가서 그 거대한 탁본을 펼쳐놓고 문제 구절을 판독해보기도 했다. 탁본 같은 예스러운 자료를 직접 만지고 보면서 공부를 하면, 잊어버린 감각이 자극을 받는다. 역사를 전공하면서는 도리어 무뎌진 소싯적의 호고적 취향과 덕후적 기질 같은 것 말이다.금석문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가 많다. 그 정체를 몰라 빨래판이나 대장간의 다듬잇돌로 방치됐던 비석이랄지, 보상금 문제로 집에서 나온 비석을 감춰버린 얘기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내력 때문에 손상된 비석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안 그...

    2024.03.06 20:15

  • [역사와 현실]하늘의 변화가 말하는 것
    하늘의 변화가 말하는 것

    지구온난화 때문일까? 올해 겨울은 지난 겨울들에 비해 유난히 따뜻했다. 입춘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남쪽 지방은 겨울 동안 개울과 연못에 얼음 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지난주 며칠 동안 남부 지방에 내린 비는 여름 장마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폭설이 ‘그래도 아직은 겨울이야’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올겨울 하늘이 예년과 많이 달랐던 것은 사실이다. 1737년, 울산 부사 권상일이 본 새해 정초의 하늘 역시 어지럽기는 마찬가지다. 경상도 인근 지역에서 올라온 보고뿐 아니라, 병영의 조보까지 참고해서 하늘의 변화를 살핀 결과였다. 새해 첫날, 경상도 북부 지역인 영주와 풍기에서는 무지개가 사방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무지개의 발생 원리를 알고 있는 현재도 겨울 무지개는 흔치 않으니, 조선시대에 이 무지개가 어떻게 읽혔을지 상상 가능하다. 당시 무지개는 음양의 조화가 무너졌음을 상징하는 증표였으니, 정월 초하루 무지개를 본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

    2024.02.28 19:57

  • [역사와 현실] 이원익 ‘메타인지’
    이원익 ‘메타인지’

    경기 광명시 광명역 옆 소하동에 오리 이원익 기념관이 있다. 이원익(1547~1634)의 집이었고, 그가 생을 마감한 곳이다. 오리(梧里)는 이원익의 호인데, 마을 이름이다. 오동나무가 많은 마을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조선시대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정승을 지낸 인물이다. 이원익은 선조 2년(1569) 문과 합격 후 관직 생활을 시작해서 재상급에 있었던 기간만 40년에 가까웠다. 이원익이 재상이 된 선조 중반 무렵은 우리가 이름을 아는 천재급 인물들이 군집해 있던 시기이다. 이이, 류성룡, 정철, 이산해, 이항복, 이순신 같은 사람들이다. 이 시기에 탁월한 인물들이 많아서 이미 조선시대에 ‘목릉성세’라는 말이 있었다.이원익은 영의정을 세 번이나 역임했다. 선조 때인 임진왜란 중에 처음 영의정이 되었고, 광해군의 첫 번째 영의정이었고, 인조의 첫 번째 영의정이었다. 광해군의 첫 번째 영의정이었는데, 광해군을 축출하고 집권한 인조의 첫 번째 영의정이 되었다는 것은 흥미...

    2024.02.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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