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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 전체 기사 457
  • 자연재해마저도 수령의 책임

    유난히 오락가락하는 가을 날씨가 농민들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한창 붉게 물들어가야 할 사과가 며칠 비로 인해 푸르게 변했다는 소리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조금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작년에 비해 배추값은 여전히 고공행진이고, 쪽파김치라도 담그려 집어든 쪽파 한 단 가격이 작년 이맘때의 두 배도 더 되는 듯하다. 농업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조선에 비해 매우 낮은 시대지만, 시골에 사는 나는 추수기 날씨마저 불안불안하다.나라경제 대부분을 농업에 의지했던 1581년 음력 9월, 예안 고을(현 경북 안동시 예안면 일대) 상황은 더 엄혹했다. 당시 예안 고을 대표적인 양반 가운데 한 명인 금난수의 기록에 따르면, 고을 사정은 이만저만 심각한 게 아니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백성들 입장에서는 가을이 그나마 가장 사정이 좋을 때였다. 그러나 1581년은 유난히 자연재해가 많아, 가을에도 곡식 한 자락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마치 3~4월 보릿고개를 연상케 할 정...

    2024.11.06 20:12

  • [역사와 현실]영조의 개혁
    영조의 개혁

    새 차도 몇 년 타면 고칠 곳이 생긴다. 관리를 잘하면 그 시기를 좀 늦출 수 있지만, 결국 수리할 곳이 늘어난다. 사회를 구성하는 제도들도 다르지 않다. 어떤 제도나 특정한 시점의 사회적 필요와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다. 세월이 흘러 필요와 조건이 달라지면 그 제도는 처음처럼 효율적이지 않게 되고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을 일으킨다. 자동차처럼 제도도 고쳐가며 쓰든지 폐기해야 한다.영조는 세금 개혁인 균역법을 실시했지만 그것만 했던 것은 아니다. 재위 17년째인 1741년에 관료제도 개혁 ‘이조낭선이혁절목(吏曹郞選釐革節目)’을 반포했다. 절목(節目)이란 법률, 혹은 규정이다. 이조(吏曹)는 이조, 병조, 형조 등 6조의 이조를 말한다. 낭선(郞選)은 ‘낭관(郎官)의 선발’을 말하고 이혁(釐革)은 개혁한다는 뜻이다. 법령의 명칭을 풀이하면, ‘이조 낭관의 선발 제도를 개혁하는 법령’이라는 뜻이다.이조 낭관은 정5품 정랑과 정6품 좌랑의 통칭이다. 조선 왕조는 문관이 무관보다...

    2024.10.30 21:01

  • [역사와 현실]역지사지의 달인이 되자
    역지사지의 달인이 되자

    입시철이 다가온다. 사학과를 지망한 학생들에게 “왜 역사공부를 하려고 하나요?”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 다는 아니지만 이렇게 답하는 학생이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는 선봉에 서고 싶습니다.” 거대야당이 추진하려고 한다는 역사왜곡처벌법에 이 학생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또 이렇게 답하는 학생들도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해서 역사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불변의 역사적 진리를 탐구하고 싶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역사의 정의를 세우고 싶습니다”. 이들의 표정은 자못 비장하며, 어조는 확신에 차 있다.바로 이 ‘확신’이 문제다. 이 학생들의 발언, 표정, 어조는 사학(史學)이 아니라 종교 혹은 경학(經學)에 어울리는 것들이다. 내 주변 교수님들 중 부인에게 이끌려 교회에 나가는 분들이 간혹 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 설교에 논리의 비약과 사실인지 의심되는 점들이 보여 집중이 안 된다고 푸념하곤 한다. 교회는 믿어서 가는 것...

    2024.10.23 20:33

  • [역사와 현실]고독(蠱毒)이라는 저주
    고독(蠱毒)이라는 저주

    외롭다는 뜻의 ‘고독’이 아니다. 배 속 벌레 고 자와 독약이라고 할 때의 독 자를 합쳐 ‘고독’이라고 불리는 저주다. 글자 생김으로 뜻을 따져보면 고(蠱) 자는 그릇(皿)에 담긴 벌레를 의미하니, 고독은 이를 이용한 저주를 뜻한다. 저주의 방법은 이러하다. 항아리 안에 여러 종류의 독충이나 파충류를 한데 모아 봉한 다음 그 안에서 서로를 잡아먹게 한다. 다음 해에 개봉을 했을 때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한 마리를 태워 가루로 만든다. 이 가루를 저주하고 싶은 사람의 음식이나 술에 넣으면, 그 사람이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혹은 이 항아리에서 혼자 살아남은 생물을 ‘고’라 하는데, 신을 섬기듯이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 음식에 독을 방출한다고도 한다. 고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동물은 매우 다양했다. 뱀을 써서 만들면 사고, 고양이를 쓰면 묘고, 개를 쓰면 견고라고 했다. 중국 고대부터 전해진 이 고독은 조선시대에는 사면령 대상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잔혹한 저주로 여겨졌다.고독...

    2024.10.16 21:21

  • [역사와 현실]심기 보호의 결말
    심기 보호의 결말

    가을이 깊어지면서, 왕의 일정도 덩달아 바빠졌다. 왕이 직접 선대 왕의 능을 찾아 제사 지내는 행차 때문인데, 조선의 22번째 왕인 정조에게는 제사 지내야 할 능도 많았다. 정조는 능행차를 통해 자기 왕통의 정당성과 권위를 백성들에게 드러내고 싶어 했다.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왕의 권위가 드러날 정도의 대가(大駕) 행렬을 만들려 했던 정조로 인해, 왕을 시위해야 하는 문무 관료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1785년 음력 9월4일은 가까운 창릉과 명릉, 서칠릉, 경릉, 홍릉을 하루 만에 돌아야 하는 일정이었다.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속도감 있는 행차가 이루어져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시위부대뿐 아니라 수행하는 신료들과 각 관서의 하급 관료들까지 어느 하나 어긋남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 이 바쁜 일정이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왕의 행차가 궁을 나와 모화관에 이르렀을 때 형조 소속 하급 관리들이 떼지어 왕의 대가 행렬을 침범했다. 대가 뒤쪽의 계속되는 소란에 정조는 결국 ...

    2024.10.09 20:46

  • [역사와 현실]눈치라도 봐야 한다
    눈치라도 봐야 한다

    최근 국회가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을 불러 진행한 현안질의 내용이 알려지자 공분이 일고 있다. 평소 스포츠에 큰 관심은 없었기에 질의와 응답 관련 유튜브를 보고서야,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의와 응답 내용은 비단 축구협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폐쇄적 엘리트 조직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축구협회 회장과 국가대표팀 감독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근래 고조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에 특히 문제가 된 것은 국가대표팀 감독의 선출 과정이다. 한마디로 대표팀 감독 선출 과정이 오늘날 한국인들의 상식과 거리가 있었다. 신임 감독 선출 과정을 이끌던 전력강화위원장이 협회장과의 면담 후 개인 사정을 들어 사퇴한 뒤, 축구협회 정관이나 권한 위임 절차 없이 협회 소속 다른 사람이 신임 감독 선임을 주관했다. 규정된 절차에 따른 외국인 감독 지원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규정된 절차를 밟지 않은, 내야 할 서류나 자료도 제출하지 않은 사람이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다....

    2024.10.02 20:02

  • [역사와 현실]스스로 하야한 권력자
    스스로 하야한 권력자

    내가 메이지유신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신기했던 것은 마지막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의 대정봉환(大政奉還)이었다. 1867년 11월 요시노부는 정권을 천황에게 넘겨주고 쇼군직을 사임했다.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하야(下野)한 것이다. 역사에서는 자기 권력에 끝까지 집착하다가 비참하게 무너지는 일이 일반적이지 않은가.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유력했었다. 즉 사쓰마번·조슈번의 공격으로 수세에 몰린 요시노부가 선제적으로 정권을 반환해 여론을 반전시킨 후, 새로 구성될 정부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요시노부는 천황 밑에 ‘의사원(議事院)’을 만들어 그 리더가 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미심쩍은 점이 적지 않다. 대정봉환 선언이 있은 지 약 두 달 후인 12월9일 사쓰마번은 궁정쿠데타를 일으켜 요시노부를 배제한 채 신정부 수립을 선언했다(왕정복고 쿠데타). 이를 본 요시노부는 가신들의 맹렬한 반대를 뿌리치고 교토의...

    2024.09.25 20:45

  • [역사와 현실]길치와 ‘시간치’
    길치와 ‘시간치’

    나는 길치다. 하필 길눈 밝은 배우자를 만나는 바람에 사사건건 구박받는다. 하루는 길눈 밝은 배우자에 비해 내게 부족한 능력이 무엇인가 곰곰이 고찰해보았다. 일단 나는 방향감각과 거리감각이 부족하다. 한번은 ‘A건물 앞에 B건물이 있다’고 길을 설명해주었는데, 갔다 온 배우자가 투덜거렸다. 거기는 A건물 앞이 아니라 한 구역 떨어진 곳이고, 그 정도 거리는 ‘앞’이라고 설명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다음으로는 표지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정말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면, 건물이나 도로 같은 지형지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여러 차례 간 곳도 내게는 매번 새롭기만 하다.길치로서 나의 부족한 점을 고찰하다가 문득 ‘시간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개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습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어렸을 때 가까운 과거나, 먼 과거나 모두 ‘아까’라는 만능 단어 하나로 설명하곤 했다. 어제 일어난 일도 ‘아까’, 10분 전에 일어난 일도 ...

    2024.09.18 20:26

  • [역사와 현실]1796년, 효경교 붕괴 사건
    1796년, 효경교 붕괴 사건

    1796년 음력 7월 말, 20대 나이에 종2품 전라도 병마절도사에 제수된 신홍주(申鴻周)는 사은숙배를 위해 청계천을 건너야 했다. 효경교(孝經橋) 초입에 들어설 때까지, 그의 머릿속은 조금 뒤 행할 의례 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왕에게 올리는 부임 전 인사지만, 궁의 예는 혈기왕성한 젊은 무관에게는 영 익숙지 않았다. 효경교 중간에서 그를 태운 말이 그를 떨어뜨리지 않았으면, 궁에 들어갈 때까지 그 생각은 멈추지 않았을 터였다.다리를 건너던 중 갑자기 맞은편 말이 놀라 날뛰는 통에 신홍주의 말 역시 덩달아 날뛰면서, 그는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효경교는 며칠 전 큰비로 난간 일부가 유실되었는데, 하필 그곳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신홍주는 다시 다리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젊은 무관이 말에서 떨어진 것도 모자라 다리 아래로 굴렀으니, 부끄러움을 감추기 힘들었다.겨우 몸을 추스른 신홍주는 급히 금위영 장교를 불렀다. 큰비로 난간이 쓸려 내...

    2024.09.11 20:43

  • [역사와 현실]선조의 ‘왜란 공신 선정’ 유감
    선조의 ‘왜란 공신 선정’ 유감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덮을 수 없다.”지난 8월15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정부 행사와 별도로 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여기서 이종찬 광복회장이 했던 말이다. 기념사에서 그는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에 대해 광복회가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 있을 수 없다며, 한 나라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이 흔들리면 국가의 기조가 흔들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고 “자주독립을 위한 선열들의 투쟁과 헌신 그리고 그 자랑스러운 성과를 폄훼하는 일은 국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준엄하게 경고한다”고 했다.위 기사를 읽으면서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구글 이미지로 볼 수 있다. 1945년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이 환국을 위해 중국 상하이 공항에 도착한 사진이다. 중앙에 김구 선생이 있고, 오른쪽에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省齋) 이시영 선생(1869~1953)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그리고 김구 선생 앞 ...

    2024.09.0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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