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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국에서] 이낙연과 이재명의 시소게임
    이낙연과 이재명의 시소게임

    어릴 적 놀이터에 가면 시소는 마지막 놀이기구였다. 그네나 미끄럼틀에서 친구들과 놀고 나면 어느새 키가 한 뼘은 자란 느낌이었지만 시소는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 올라 타지 않으면 온종일 저 홀로 기울어 있는 처연함 때문일까, 시소는 도통 친근해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게임을 해야 하는 놀이기구였고, 게임인 이상 시소에선 피 말리는 승부를 벌여야 한다는 압박도 들곤 했다. 그러다 보니 시소게임은 내 의지가 통하지 않았다. 덩치 큰 친구와 한 편이 되면 무게 중심이 우리 쪽에 기울어 이길 것 같았는데, 막상 시소 위에 앉으면 예상은 빗나갔다. 우리 편보다 덩치가 작은 상대편이 몸을 젖히거나 전략적으로 자리를 배치하면 곧장 땅바닥에 엉덩이를 찧곤 했으니. 시소게임은 이처럼 나의 최선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상대편의 기습 전략이 희비를 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인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의 경쟁은 시소게임을 닮았다. 지난 1년간 두 사람은 접전과 상승, ...

    2021.02.26 03:00

  • [편집국에서] 이번 설도 괜찮았습니다
    이번 설도 괜찮았습니다

    지난가을 추석만 해도 달랐다. 처음 맞닥뜨린 ‘코로나 명절’에 당황했지만 그래도 ‘이번만 뭐…’ 하는 생각들이었다. 다음 설을 기약하며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하지만 이번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태 연속 낯선 명절 풍경에 어리둥절하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언제쯤이나…’ 하는 막막함마저 생긴다. 미니멀라이프가 소소한 유행이라고 하지만 모든 것이 왜소해졌다. ‘5인’이란 장벽 앞에서 대가족의 명절 전통은 공동화됐다. 가족들은 오히려 나뉘었다. 부모는 자녀들을 두고 자신의 부모를 찾았고,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손주들의 부재를 또 아쉬워만 했다. 음복하고 나눌 가족이 준 만큼 명절 음식의 풍성함도 이전 같지 않다.실망과 울화가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방역수칙을 지키는 데는 마음을 모았다. 지금은 그게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경북 칠곡의 석담 이윤우 선생 종갓집은 30명이던 제관을 4명으로 줄였다고 한다. 농담으로만 하던 ‘스마트폰 세배’ ‘줌 세배...

    2021.02.19 03:00

  • [편집국에서] 영어사전에서 ‘재벌’이란 단어가 사라지는 날
    영어사전에서 ‘재벌’이란 단어가 사라지는 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대표적 한글 경제용어가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등재돼 있는 ‘Chaebol’(재벌)이다. 학벌, 군벌, 문벌, 족벌, 파벌 등의 표현에서 보듯 ‘벌’자가 주는 어감은 그리 좋지 않다. 철저한 가족 승계, 선단식 경영, 재벌 패밀리들의 결속 등 한국 재벌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기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단어가 됐을 것이다.한국 재벌이 이런 부정적 특성을 벗어던지려면 가야 할 길이 멀지만 3~4세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근래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LG전자가 적자에 시달리던 스마트폰 사업 철수 가능성을 스스로 밝힌 것은 파격적이다. 과거 재벌들이 부실 사업·계열사를 질질 끌고 다니다 벼랑 끝으로 몰린 사례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결단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핵심 미래사업에 주력하는 모습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로보틱스와 도심항공모빌리티, 차량공유 등 오롯이 모빌리티 사업에 올인하는 데서도 볼...

    2021.02.05 03:00

  • [편집국에서] 청와대 정치, 두려워하게 해달라
    청와대 정치, 두려워하게 해달라

    “결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 것, 그것이 권력이다.”(한나 아렌트)연초 청와대가 탈정치를 구상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청와대는 강하게 부인하지도, 구체적으로 반박하지도 않았다. 단지 “검토한 바 없다” “정책으로 승부하겠다”고만 했다. 언론의 넘겨짚기라 해도, 설혹 사실이라 해도 공개적으로 회자돼선 안 될 말이다. 청와대 탈정치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 포기 선언이다. 대통령은 시대가 요구하는 모든 가치의 총화이자 국정의 최종 책임자다. 그런데도 이 중요한 역할을 놓겠다는 것 아닌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군림하겠다는 선포다. 권력의 정당한 위임이 정치라면, 정책은 가장 중요한 정치다. 그런데도 정책을 정치와 분리하는 발상은 입헌군주제 왕처럼 권위는 누리되 시민들 삶에는 관심 없다는 고백에 가깝다. 어떤 경우든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물론 여러 징후는 있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사태부터 추·윤 갈등까지 1년 넘는 시간 동안 문 대통령은...

    2021.01.15 03:00

  • [편집국에서] ‘시간’보다 강한 것은…
    ‘시간’보다 강한 것은…

    그래도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 건 해가 바뀔 무렵이다. 한 해의 끝에 몰려 인사를 해야 할 이들에게 서둘러 문자나 톡을 보내고 있노라면, 참 많은 이들의 지지와 격려 속에서 하루하루를 헤쳐가고 있구나 느낀다.평소 잘 보지는 못해도 늘 관계 속에 있던 이들, 크건 작건 도움을 줬던 이들, 마음속에 언덕으로 있는 이들. 나중엔 힘들어 살짝 요령을 부릴 마음이 들 만큼 적지 않은 수의 ‘그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을 보면서 “헛살지는 않았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더 위안하기도 한다.밀린 숙제 하듯 한 해 인사를 했음을 고백하고 나니 민망한 마음도 든다. 그래도 진심만은 그 속에 제대로 있다. 변명하자면 그저 조금 게을렀을 뿐이다. 아무리 짧아도 모두에게 하나하나 눈을 맞추듯 인사를 담으려 했다. 이상한 포즈의 사진에 글귀를 적은 연하장 돌리듯 하지는 않았다. 문구를 만들어 놓고 계속 ‘복붙’하지도 않는다. 짧더라도 마음속 그의 이야기를 꼭 담았다.그...

    2021.01.08 03:00

  • [편집국에서] 신축년 한국 경제, 대통령의 덕목
    신축년 한국 경제, 대통령의 덕목

    2020년 한국 사회는 분열의 해, 대립의 해였다. 데이터에 근거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경제현안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동산, 재벌개혁,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주요 이슈마다 진보와 보수는 극렬 대립했다. 남이 뭐라하든 갈 길을 가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준 집권세력에 책임이 있든, 시대정신은 외면한 채 냉소와 조롱으로 정쟁을 일삼은 세력에 책임이 있든 결국 남은 건 신뢰의 상실과 상처다.주택가격 급등에 신음하는 시민,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절망하는 청년,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영업자까지 민초의 삶은 나아질 수 있을까. 코로나19 사태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대담하고 창의적인 정책들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지루한 공방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경제구조에 파급력이 큰 사안을 두고 여야, 정부와 재벌, 재벌과 노동계, 시민들 사이에 이견이 발생하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끝없는 ...

    2021.01.01 03:00

  • [편집국에서] ‘추·윤 싸움’ 그 비극적 관람
    ‘추·윤 싸움’ 그 비극적 관람

    검찰개혁이란 역에 내렸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운명인 양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내린 곳이 종착역인지 환승역인지 모르겠다. 종착역이라면 출구가 있어야 할 테고, 환승역이라면 막차가 와야 할 텐데. 출구는 찾을 수 없고,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이 검찰개혁이란 이름으로 전개된 지 1년이 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다른 세상이 펼쳐질까. 불행히도 그럴 것 같진 않다. 이날부터 윤 총장 징계 절차가 시작됐다. 윤 총장이 징계를 받든 피하든 검찰개혁은 이미 궤도를 이탈했다. 검찰개혁이 검찰 굴복으로, 가장 위험한 권력인 검찰의 수장이 순교자로 둔갑했다. 남은 건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승패뿐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헤겔의 언급에 덧붙인 말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가 떠오른다. 화해하기 힘든 격렬한 ‘신들의 전쟁’은 지금도 비극과 희극을 반복하며 질주하고 있다. ...

    2020.12.11 03:00

  • [편집국에서] ‘글’이 더 귀해졌으면 싶다
    ‘글’이 더 귀해졌으면 싶다

    해마다 이맘때면 신문사 문화부는 낯선 전화벨 소리로 화들짝 깨곤 한다. 신춘문예 마감철이면 쏟아지는 걱정과 간절함을 담은 전화들 때문이다. 위세가 줄었다고 해도 해마다 1000편이 넘는 시·소설들이 신문사 문을 두드린다. 신춘문예를 통해 ‘글’은 표현을 넘어 어떤 통과의 문으로 기능한다. 수화기 너머 떠듬떠듬 건너오는 목소리들을 듣다보면 놀라움과 함께 ‘짠’한 마음이 들곤 한다.글을 다룬 지 스물다섯 해를 꼬박 채워간다. 그럼에도 아직 글을 한 줄이라도 쓸라치면 체기라도 든 듯 가슴부터 답답하다. 무수한 작가들의 넋두리를 보며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도대체 글을 쓰는 건 왜 그렇게 힘겹고 어려울까. 그리고 ‘글의 힘’은 뭘까.글은 일단 불친절하고 냉정하다. 한번도 글이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 적은 없다. 머리칼 사이로 양손을 넣고 커서만 깜박이던 화면을 노려보던 게 한두 번인가. 어쩌다 글줄 몇 마디가 머릿속을 총알처럼 스쳐갈 때는 왜 매번 버스 안이나 침대처럼 엉...

    2020.12.04 03:00

  • [편집국에서] ‘경제부총리 잔혹사’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경제부총리 잔혹사’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문재인 정부 경제부총리들은 역대 부총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수난’을 많이 겪었다. 청와대나 여당 인사들과 마찰을 빚은 뒤 사의를 표명하면 대통령이 이를 반려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갈등으로 결국 낙마했다. 이런 점이 반면교사 역할을 하면서 2년 전 등장한 홍남기 현 부총리의 위상은 초반 탄탄해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당과 엇박자가 나면서 권위가 떨어졌다. 청와대와 내각, 여당 간 치열한 토론과 견제는 양질의 정책 생산을 위해 필수적이다. 각각의 편견이 시정되고 시야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목소리가 중구난방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곤란해진다. 특히 경제수장인 부총리의 말이 수시로 뒤집힌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신뢰는 추락하고 정책수용자들이 부총리의 말을 무게감 있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도를 넘은 정책난맥상에 보통 시민들조차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

    2020.11.27 03:00

  • [편집국에서] “내가 말하고 있잖아요, 더불어민주당”
    “내가 말하고 있잖아요, 더불어민주당”

    2020년 미국의 선택이 조 바이든으로 굳어지고 있다. 차악을 선택한 결과라 해도 미국 대선은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명백한 심판이다. 트럼프는 우파 포퓰리즘을 부활시키며 ‘21세기 히틀러’로 불렸다. 지금도 대선 결과 불복 선언을 서슴지 않고, 코로나19로 베트남전쟁 사망자보다 많은 수의 자국민이 죽어도 중국 탓만 하고 있다. 물론 바이든이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다 해서 세계 질서가 순식간에 합리적으로 변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 덜 나쁜 권력을 고르는 게 정치의 속성이라면 세상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만은 막은 정도는 되겠다.바이든은 위기 때마다 “한 인간의 묘비에 적힐 평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가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의 깃발을 꽂기 전 빠뜨리면 안 될 서사를 추가하고 싶다. 미국의 46대 대통령은 흑인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했고, 그가 30년 전 여성폭력방지법을 만들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인종·계급 문제가 최우선 모순인 미국에서 ...

    2020.11.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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