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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 [편집국에서]거대 여당의 존재감을 보여라
    거대 여당의 존재감을 보여라

    지나가면 잡을 수 없는 것. 시간이 그렇다. 특히 정치 영역에서 타이밍은 필수적이다. 속도가 필요할 때도 있다.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문제만 봐도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총선을 9일 앞두고 모든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3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재난지원금 계획을 발표하고, ‘소득 하위 70% 지급’으로 구체화된 지 엿새 뒤다. 건강보험료 기준 소득 상위 30%를 뺀 70%에게 주는 것이 재난지원금이란 취지에서 적절하지 않고, 70% 경계선에 있는 이들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지적이 나온 터였다. 민주당은 격전지를 돌면서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켜주면 100% 국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드리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은 ‘180석 압승’으로 끝난 총선 다음날에도 이를 재확인했다. 집권여당이 총선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약속 이행이 발빠르게 진행될 것 같았다.이쯤 되면...

    2020.04.23 20:52

  • [편집국에서]‘세계관’을 소비한다
    ‘세계관’을 소비한다

    과거 ‘세계관’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이 기묘한 세상 속에서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를 궁구하기 위해선 필연적 질문이었다. 그것은 백과사전의 ‘철학·사회학적 세계관’을 의미했다. 바지 뒷주머니에 꽂힌 타임지처럼 한 세대의 고급스러운 유행과도 같았다. 이 세계의 진로와 같은 거대담론과 이어져야 했기에 하나의 구호이기도 했다. 부쩍 ‘세계관’이란 단어가 주변을 헤집는다. 내 기억 속 코드와는 다른 이질감에 낯섦마저 느낀다. 마치 편견을 비추는 거울 같아서 가시에 손톱 밑을 찔린 것처럼 놀란다.“영화나 연극, 스핀오프 드라마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지금처럼 <킹덤>의 세계관을 어느 정도 뻗어나가다가, 갑자기 훅 시대를 점프해도 재밌지 않을까요?”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김은희 작가 인터뷰다. 드라마와 세계관이라니…. 이 좀비서사극을 홀린 듯 정주행하면서 한 번도 떠올려보지 못한 단어였다. 즉자적으로 소비하는 대중문화 상품은 세계...

    2020.04.16 20:40

  • [편집국에서]‘큰 정부’ 성공의 조건
    ‘큰 정부’ 성공의 조건

    “정부가 땅을 파서 지폐를 묻을지언정 손을 놓고 있어선 안된다. 사업가가 돈을 파내려고 노동자를 고용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소비가 늘 것이니 말이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풀어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위기 탈출에 기여했던 경제학자 케인스의 말이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위기를 맞아 각국 정부들은 케인스의 말을 따르듯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미적대지 말고 최대한 빨리 많은 돈을 풀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충고이기도 하다. 마치 국가가 코로나19 재앙에서 시민을 건져줄 구세주가 된 것 같다. 시민들은 위기 앞에서 정부에 기댈 수밖에 없고 한국처럼 중앙집권적 전통이 강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 대신 큰 정부 시대가 도래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이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건전 재정의 전통’을 중시하는 예산 공무원들을 보자. ‘곳간 지킴이’로 불리는 이들은 오랫동안 정치권의 무분별한 예산 증액 요구, 지역구 챙기기...

    2020.04.09 20:56

  • [편집국에서]희한한 선거는 그만
    희한한 선거는 그만

    꼼수, 반칙, 편법, 후안무치, 요지경, 도박판, 개싸움…. 21대 총선 공천 과정을 특징짓는 단어들은 험악하다. 물론 ‘진박 감별사’가 설치던 4년 전 총선 공천도 난장판이란 소리를 들었고, 그 앞선 총선도 시끄럽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희한한 선거가 있었을까 싶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현역 의원의 불출마, 중진 의원의 용퇴 선언이 혁신으로 얘기되기도 했지만 스쳐지나가는 일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다. 그 중심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있다. 여야가 공직선거법을 주무르는 과정에서 누더기가 됐다.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 장벽을 낮춰 국회의 다양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만큼은 분명했다. 그러나 거대 정당들은 허점을 공략했다. 비례대표 전담 위성정당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선거법 개정에 반대한 미래통합당이 비례정당 창당을 선언했을 때는 설마 했지만 눈앞의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거대 정당은 기득권의 일부라도 소수정당에 떼어주기는커녕, 한 석...

    2020.03.26 21:26

  • [편집국에서]조금은 틀려도 괜찮지 않나
    조금은 틀려도 괜찮지 않나

    요즘 난해한 학술용어 가운데 ‘유행어’를 하나 고르라면 단연 ‘확증편향’일 것이다. 학자들이나 조금씩 쓰던 것이 지금은 웬만한 정치분석 글은 물론 일반인들 입에서도 심심찮게 튀어나온다. 지난해 ‘조국 정국’에서 증폭된 뒤 ‘코로나19’와 4·15 총선 국면을 타고 폭발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보호구역을 벗어나 일상으로 침투한 이 말은 ‘정치적 의견의 양극화’와 동의어 정도로 변이되어 말 그대로 ‘창궐’ 중이다. 흥미로운 건 ‘확증편향’이 또 다른 ‘확증편향’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이다. 확증편향 속에 있는 이들은 마음속 그 바이러스를 좀체 알아채지 못한다. 오직 진영 건너편의 확증편향만을 본다. 그 점에서 ‘내로남불’과 불가분이다. 그 결과 가짜뉴스가 쉽게 맹신되고, ‘정치적 프레임’의 선동효과는 극대화된다. ‘확증편향’은 우리 사회 분열과 병든 공론의 상징어처럼 됐다.‘-빠’ 현상과 이에 대한 태도들이 단적인 사례다. ‘조국수호당’은 확증편향으로 무장한 정치적 ...

    2020.03.19 20:45

  • [편집국에서]고통의 부조
    고통의 부조

    대구에 사는 외가 쪽 친척 한 분이 돌아가셨다. 잔잔한 미소와 사투리가 섞인 다정한 음성이 지금도 느껴지는 것만 같은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는 왕래도 소식도 잘 나누질 못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후 안부 전화를 드렸다가 뜻밖의 부고를 접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은 아니셨다. 상주는 코로나19로 더 정신이 없어 장례를 치른 후에라도 연락한다는 것이 하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스크를 구하러 나가던 참이라고 했다. 바빠하는 그에게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주면 좋겠다고 하고선 나 역시 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곳의 경황없음과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다. 코로나19로 상황이 심각해지지 않았다면 안부 인사는 더 늦어졌을지 모른다. 부고도 더 한참 후에나 알게 됐을 것이다. 다정했던 친척분의 부재의 슬픔을 느끼면서 고통의 시간에, 그동안 가려져 있던 고통들이 마치 부조물처럼 더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후 안타까운 사...

    2020.03.05 20:56

  • [편집국에서]중국이 아니라 우리 문제다
    중국이 아니라 우리 문제다

    “야야, 여기는 엉망이다.” 엊그제 경상북도에 있는 고향집 인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또 발생했다길래 통화한 어머니의 첫마디다. 주변 식당들이 문을 닫았고, 웬만해선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동네 분위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머니는 통화를 끝낼 즈음 “마스크는 꼭 쓰고 다녀라”라고 신신당부했다. 출퇴근길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열에 아홉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 회의 때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얼굴을 반쯤 가리고 얘기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 확진자와 2m 내에서 접촉한 사람을 ‘접촉자’로 분류한다. 마스크는 그 거리를 좁히는 방법이다. 불편하지만 자신을 보호하고, 주변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기본적 예방수칙임을 이해한다.감염병 위기 경보가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됐지만 국가 방역체계의 부족함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고, 무엇보다 의료현장에서 장비와 인력이 달린다. 코로나1...

    2020.02.27 21:10

  • [편집국에서]‘불편’해질 용기가 있는가
    ‘불편’해질 용기가 있는가

    한 세기 전인 20세기 초만 해도 인류의 가장 큰 사망원인은 ‘감염병’이었다. 1900년 의학통계를 보면 사망원인 1·2·3이 ‘폐렴과 독감’ ‘결핵’ ‘설사’ 같은 것이었다. 전체 사망원인의 절반을 차지했다(<바디>, 빌 브라이슨). ‘현대의학’을 구원한 페니실린이 등장하기 전(페니실린의 발견은 1928년, 대량생산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이니 인류는 세균과 바이러스들에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튼튼한 몸을 믿거나, 감염되지 않길 기도하는 게 전부였다. 정체도, 대책도 알 수 없는 그 작은 것들은 인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 ‘무지의 공포’는 ‘재앙’의 서막이었다. 무지의 정반대편에 인간의 ‘용기’가 존재한다. 때로 그것은 ‘희생’이라는 극적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를 통해 인류는 진보했다. 실상 감염병과의 싸움은 무수한 희생과 인간 용기의 위대함을 증거하는 과정이었다. 독일 기생충학자 테어로어 빌하르츠는 주혈흡충증을 알기 위해 자신의 배에 유충을 붙여 간으로 ...

    2020.02.20 20:32

  • [편집국에서]‘시골가족’ 밥상이 부럽다면
    ‘시골가족’ 밥상이 부럽다면

    “엄마, 캐릭터 뺏겼어! 엄마랑 비슷한 사람이 ‘엄마’로 나오는 유튜브 있어.” “뭔데?”얘기를 듣고 찾아보니 채널 ‘시골가족’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 알게 됐는데 보는 재미가 짭짤하다. 밥상에 둘러앉아 가족들이 밥을 먹는 것이 전부인 평범한 영상이다. 무뚝뚝해 보이는 아버지와 엄마, 그 사이에 다정한 미소를 띠며 얘기하는 자녀가 번갈아 등장한다. 온 가족이 한꺼번에 나올 때는 드물고 어느 날은 아버지와 두 딸만, 엄마와 딸 그리고 아들이 나오는 식이다. 굳이 장르를 구별하자면 가족 먹방이다. 하지만 이 채널을 보고 있으면 왠지 편안하고 따뜻해진다. 덩달아 느긋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혼자 웃는다.영상에서 보이는 아버지와 엄마는 과묵한 편이다. 원래 말수가 적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동영상 촬영이 부담되고 긴장된 때문일지 모른다. 딸이 “맛있냐”고 물으면 엄마는 어쩌다 “응” 하고 대답할 뿐 대체로 식사에 매우 집중한다. “음음~ 맛있어” 하며 좋아...

    2020.02.06 20:53

  • [편집국에서]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빚어낼 색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빚어낼 색깔

    영국이 31일 오후 11시(현지시간) ‘드디어’ 유럽연합(EU)을 탈퇴한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를 결정한 지 3년7개월 만이다. 2015년 5월 총선에서 과반을 얻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보수층 일각의 EU 탈퇴 주장을 정리하겠다며 공약한 국민투표의 결과가 EU 탈퇴로 나타나면서 혼란은 시작됐다. 보수당과 정치권은 ‘이러려고 국민투표한 것이 아닌데’라고 당혹해했지만 화살은 이미 떠났다. 민심을 읽지 못한 오만과 오판이었고, ‘무모한 도박’이었다. 영국 내부도, EU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극심한 혼돈에 빠졌지만 더 헤맨 것은 의회였다. 현대 의회민주주의의 효시라던 영국 정치는 보수당과 노동당이 극한으로 대립했지만 무기력의 끝을 보여줬다. 총리가 두 번 바뀌고, 조기총선을 두 번 치르고서야 EU 탈퇴의 문을 열게 됐다. 지금 총리인 보리스 존슨이 강경한 브렉시트론자이지만 EU 탈퇴의 불쏘시개가 된 것은 영국독립당 대표 나이절 패라지였다...

    2020.01.3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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