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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국에서]설날 아침에 일어났으면 하는 일들
    설날 아침에 일어났으면 하는 일들

    하필 설 연휴 첫날 아침 칼럼이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봐도 도무지 ‘설’ ‘명절’이란 단어가 떠나지 않는다. 때가 주는 위압감에 꼼짝없이 갇혀 버렸다. 하지만 우리 명절엔 스토리가 없다.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엔 이야기들도 많은데. ‘설날은 까치인가…’라는 실없는 농담만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래서 물었다. ‘이번 설날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냐’고. 상상으로라도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했다.“숨겨둔 부모님 유산이 갑자기 발견됐으면…” 하는 예상 못한 농담에 당황하기도 했다. 그 정도는 돼야 ‘설날의 기적’인가. 장난스러운 이야기들이 주로 오갔지만, 마음에 가시처럼 걸리는 바람들도 있었다.“혼자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장소는 “휴양지”라고 했다. 여기서 핵심은 ‘혼자’다. 그는 30대 기혼 여성이다. 또 다른 20대 여성도 “아침에 눈을 떴는데 파리였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떠나고 싶다’에 스민 한숨의 무게가 묵직했다.그래서 또...

    2020.01.23 19:25

  • [편집국에서]세상과 소통하는 작은 벨소리를 위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작은 벨소리를 위하여

    작은 놋그릇을 살짝 친 듯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 아이들은 이 소리에 귀를 쫑긋하고 학교를 찾아와 배우고 또 배웠으리라. 흰 지팡이가 땅의 감각을 알려주었다면 작은 벨소리는 공기를 통해 방향도 일러주고 안전하게 찻길도 건너게 해주었을 것이다. 빛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소리는 빛과 같다. 9일 이른 아침에도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자리한 국립 서울맹학교 정문에서는 벨소리가 작게 울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리는 소리는 모르고 지나칠 수 있을 만큼 작았다. 주변인들을 배려한 일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의 크기였다. 서울맹학교 관계자는 “마침 오늘 겨울방학식과 졸업식이 열린다”고 말했다. 참 다행이다. 서울맹학교에서 500m가량 떨어진 청와대 사랑채 부근에서는 80일 넘게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집회의 자유’는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다. 문제는 확성기와 마이크를 동원한 극심한 소음이다. 이날도 사랑채 부근 인도에는 천막농성장이 늘어서 있었다. 이 ...

    2020.01.09 20:54

  • [편집국에서]‘평당 1억원’ 초래한 죄
    ‘평당 1억원’ 초래한 죄

    시중은행 재테크팀장의 개인적인 재테크 요령을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대부분 40대 초반이었던 그들은 또래에 비해 자산이 많은 편이었다. 공통적으로 자산의 상당 부분은 집이었다. 사고팔기를 반복하며 많게는 세 채까지 보유한 이도 있었다. 한국인에게 집은 사는 곳이라기보다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더 크다. 하지만 그들은 “개인의 구체적인 주테크는 소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서울 강남 아파트는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다. 네이버 부동산 통계를 보면, 2012년 말 7억2000만원이었던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전용면적 76.79㎡)는 지난달 20억원 안팎으로 올랐다. 7년 새 178% 뛰었는데, 지난해에만 5억원 폭등해 “미쳤다”는 소리가 나왔다. 누군가는 노후준비 잘했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지도 모르겠다.지난해 월평균 가구 근로소득은 2012년(393만8267원)에 비해 25% 늘어난 493만6859원이었다. 7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모아도 4억원이 채 안된다. 일...

    2020.01.02 20:37

  • [편집국에서]북·미의 체면 살리기
    북·미의 체면 살리기

    북·미는 서로 원하는 바를 알 것이다. 지난 10월 스웨덴 만남 이후 북한은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내놓으라고 하고, ‘일단 만나자’는 미국의 요청에 묵묵부답이다. 북한은 새해에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단계를 밟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연말 시한을 거론하고 ‘새로운 길’을 공론화했다. 최고지도자의 체면이 있으니 뭐라도 할 것이다. 두 차례 ‘중대한 시험’ 실시,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 표현 등으로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모종의 조치를 연상하도록 했다. 김정은은 이달 초 백두산에 다녀온 뒤 말을 아끼며 신년사 내용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2년간 북·미 비핵화 대화를 이끌어온 핵심 키플레이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김정은의 ‘새로운 길’도 트럼프의 대응 방향에 따라 전개되는 양상이 달라진다. 한반도 정세는 트럼프의 상황 인식과 결정이 주요 변수인 셈이다. 내년에 트럼프의 가장 큰 목표는 대선 승리다. 국내 정치적 상황과 지지자 여론, 대선 캠...

    2019.12.26 20:53

  • [편집국에서]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내 경우는 ‘도시이민 1.5세대’라 할 수 있겠다.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에 일터를 잡은 부모님들은 ‘이민 첫 세대’다. 한 번도 제대로 농촌의 삶을 산 적은 없다. 도시에서 태어났고, 고교까지 학창 시절도 그곳에서 보냈다. 서울에선 모두 “시골” 취급받는 대구지만. 그럼에도 ‘2세대’가 아닌 것은 ‘기억 유전자’ 한쪽에 또렷한 그곳의 감각들 때문이다. 부모님을 따라 봄이면 감자를 캐고 모를 심고, 가을이면 나락을 베고 털던 기억들. 그럴 때면 온몸은 흙투성이가 되거나 나락 쭉정이로 까끌까끌했다. 닭을 잡겠다고 키를 나무막대기로 받쳐놓고 눈이 빠져라 기다리기도 했다. 상점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시골본가가 ‘구판장’을 할 차례라도 되면 과자 먹을 생각에 갈 날을 꼽기도 했다.그에 비하면 그런 감성이 ‘1도’ 없는 우리 아이들은 세대를 건너뛰어 바로 ‘이민 3세대’가 될 것이다. 이쯤되면 이민의 의미는 없다. 그냥 도시사람이다. 이처럼 세대마다 급변하는 ‘도농 유전형’은 산...

    2019.12.19 20:51

  • [편집국에서]편향된 인간
    편향된 인간

    퇴근길 지하철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들면 좋겠지만 요즘은 자꾸 휴대폰으로 유튜브 채널을 보게 된다. 잠깐 본다는 것이 30~40분은 정말 후딱 간다. 그런데 옆사람이 보면 어쩌나 가끔 민망해질 때가 있다. 첫 화면에서부터 ‘저탄고지의 진실’ ‘중년 뱃살’ ‘엽떡 매운맛 먹방’ ‘심쿵주의 아기시바견’ 등이 줄줄이 추천돼 뜨기 때문이다. ‘친절한 알고리즘씨’가 내가 지난 시간 즐겨 봤던 것을 근거로 비슷한 내용의 콘텐츠만을 골라 보여주는 것이다.유튜브 채널뿐 아니다.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는 “소비자가 10대 소녀이든, 70대 할머니이든 상관없이 그들의 취향을 타기팅해 맞춤형 콘텐츠를 완벽하게 추천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한다. 나의 취향에서 벗어나 색다른 콘텐츠를 보려면 그만큼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콘텐츠는 갈수록 다양해지는데 막상 한 가지(성향)에만 노출되니 아이러니다.콘텐츠가 취향에 머물지 않고 정파성을 띠는 경우라면 어떨까. 보수 성향...

    2019.12.05 20:38

  • [편집국에서]홀대받는 한국의 40대
    홀대받는 한국의 40대

    한국인 평균연령은 42.1세, 근로자 가구 가장은 49.5세이다. 생애 첫 주택을 마련하는 시기는 43.3세이다. 보통 취업 후 점차 증가하는 소득은 40대 후반에 정점을 찍는다. 소득 수준이 중간인 2·3분위 가구 가구주 평균연령은 40대 후반이다. 40대는 내집마련과 자녀 학자금 등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시기이다. 생애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는 40대이다. 그들이 흔들리고 있다. 40대 취업자 수가 지난 10월 기준 48개월 연속 감소했다. 2017년 11월부터 만 4년간 지속돼온 현상이다. 4년 새 40대 고용률은 1.3%포인트 하락한 78.5%였다.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기는 하지만, 40대 고용률만 마이너스였다. 같은 기간 40대 취업자는 43만6300명 줄었다. 20만2600명 감소한 30대의 두 배를 웃돈다. 반면 60세 이상은 121만1000명, 20대는 15만6600명 늘었다.최근의 고용불안에 대해 정부는 “인구·산업구조 변화에서 오는 진통...

    2019.11.28 20:59

  • [편집국에서]살얼음판을 걷게 될 한·미
    살얼음판을 걷게 될 한·미

    두 개의 한·미 현안,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굴러가고 있다. 극적 반전이 없을 경우 오늘 자정 종료되는 GSOMIA에는 미국의 동북아 안보 구상이 결부돼 있다. 방위비 분담금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익 우선’ 동맹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 두 사안이 고약하게 얽히고 있다. 우선 이번 한·미 당국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 상황은 유례가 없다. 미국이 1년 만에 5배인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를 늘려달라는데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40~50%를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억달러는 주한미군이 다 쓰지도 못할 비용이다. 미국의 태도는 맡겨놓은 돈 찾아가겠다는 듯 고압적이고 무례하다.‘50억달러’ 요구의 시작은 트럼프 대통령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4월 “우리가 50억달러를 잃고 있는 한 나라”라며 “부자 나라”를 지목했다. 누가 봐도 한국이었다. 어떤 근거로, 누구 말을 듣고 50억달러가 그의 뇌리에 입력됐...

    2019.11.21 21:17

  • [편집국에서]“문재인 아저씨는 왜…”
    “문재인 아저씨는 왜…”

    ‘수능’ 날이다. 1년에 한 차례 잠시 대한민국이 멈춰 서는 날이다. 꼭 1년 전 큰아이 수능 날, 종착점의 설렘은 고작 한 움큼, 두려움과 간절함으로 어깨에 멘 가방을 추스르며 돌아서던 뒷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30여년 전 고3 시절 밤마다 주방 한구석에 물 한 그릇을 떠놓으시던 어머니 모습도 겹쳐졌다.이처럼 한국에서 입시는 집안의 큰일이다. 모두가 초조해하고 간절해진다. 그 하루에 세상이 결판이라도 날 것처럼….“아빠! 문재인 아저씨 왜 그래?” 며칠 전 둘째가 불쑥 던진 말이다. 평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정시 확대’만큼은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문제의 그 2022학년도 입시생이다. 수시와 정시 갈림길에 선 고1 교실이 꽤나 설왕설래하는 모양이다. 단순히 제도 변화를 불안해하는 게 아니었다. 따라붙은 말은 “강남 학원 애들만 좋은 일이란 걸 몰라”였다.“많은 학생들은 ‘정시 100% 반영’, ‘학생부종합전형 ...

    2019.11.14 20:59

  • [편집국에서]펭수님 한 수 가르쳐주세요
    펭수님 한 수 가르쳐주세요

    석 달 전 경향신문 편집국에는 소통 에디터 직책이 새로 생겼다. 지면과 관련해서는 오피니언팀, 토요판팀 구성원들과 콘텐츠 내용과 편집을 두고 의견을 나누며 돕는 역할을 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그간 해온 일이니 더 어려움이랄 것은 없다. 그런데 직책명에서 알 수 있듯 ‘소통’이 문제다. 안으로는 편집국 구성원들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히 되도록 돕고, 밖으로는 독자들과 소통의 길을 열어야 한다. 독자들도, 편집국 구성원들도 연령대가 다양하고 각자의 상황에 따라 관심사가 다르니 희망 사항과 불만 또한 천차만별일 것이다. 독자들의 가려운 곳, 아픈 곳을 잘 파악해 반영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막상 쉽지 않다. 최우선의 과제이므로 연구 중이다. (경향신문이 독자와 만나 의견을 나누고 좋은 콘텐츠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 저에게 연락주세요!)소통이란 무엇인가, 소통을 위한 자세는 어떠해야 하나? 한창 고민이 깊...

    2019.10.3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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