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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국에서]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도대체 우열반 편성을 안 하는 이유가 뭐예요.”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섞어놓으면 학습능률이 떨어지는 건 뻔하잖아요.” “어차피 대학 갈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된 것이고, 몬가는 학생은 몬가는 기예요.” “보충수업은 어떻게 하실 거죠. 대학생 과외도 허용된 이 마당에 과외를 못할 것도 없지만요, 그래도 어디 대학생들이 선생님들만 하겠어요.” “아니 무슨 체육시간이 일주일에 세 시간이나 돼요. 애들이 피곤해 해요.” “음악, 미술은 시험과목에 없는데 빼는 게 어때요.” “점심시간 50분을 20분으로 줄이고 30분은 자율학습을 시켜주세요.” “도서관 이용은 성적순으로 해주세요.” 1989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한 장면이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성적을 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교직원들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이들의 요구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영화는 1986년 1월15일 새벽,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중학교...

    2019.07.11 20:35

  • [편집국에서]비운의 문화재들, 제자리 찾아줄 때다
    비운의 문화재들, 제자리 찾아줄 때다

    빼어난 조형미로 백제 미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는 국립부여박물관의 자랑이다. 이 향로를 보기 위해 부여를, 부여박물관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관람객이 늘자 박물관은 이 향로만을 위한 전시공간을 특별히 단장하기도 했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는 부여의 문화적 자긍심을 상징한다.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고마운 문화재다. 세계적 박물관에는 관람객들이 즐겨찾는 상징적 소장품이 있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영국박물관의 ‘로제타 스톤’이나 ‘파르테논 마블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진품을 보기 위해 해마다 수백만명이 몰려든다. 문화재만이 아니다. 이름난 현대미술품을 소장한 미술관, 아름다운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의 쇠락한 중소도시 빌바오가 구겐하임미술관으로 거듭나고, 일본의 버려진 섬이던 나오시마가 예술의 섬으로 재탄생한 것은 도시 재생, 지역 활성화 등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문화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

    2019.07.04 20:47

  • [편집국에서]트럼프와 배넌의 결합, 한번으로 족하다
    트럼프와 배넌의 결합, 한번으로 족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스티브 배넌을 여전히 필요로 하는가. 주지하다시피 배넌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당선시킨 일등공신이다. 이 질문이 떠오른 건 두 계기 때문이다. 하나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있었던 트럼프의 재선 출정식이다. 더 직접적인 건 일주일 전 영국 신문 가디언 보도다. 가디언은 트럼프가 배넌을 재선 캠프에 기용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는 야후뉴스 기자인 알렉산더 나자리언이 트럼프 재선 출정식 날에 맞춰 낸 <최고의 사람들: 트럼프 내각과 워싱턴 포위>의 내용을 미리 입수한 것에 바탕을 뒀다. 나자리언은 지난 2월 트럼프를 인터뷰했다. 트럼프는 그 자리에서 “지난 6개월 동안 배넌을 4~5차례 봤다”면서 “지금 배넌만큼 나에 대해 좋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4개월 전 이야기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배넌과 다시 한번 손을 맞잡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의문이 들 법하다. 배넌이 트럼프 재선에 중요...

    2019.06.20 20:33

  • [편집국에서]주권자의 명령
    주권자의 명령

    선거제도 개편과 의원정수 확대가 지금 정치개혁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꽉 막힌 정치에 변화를 줄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이 선거제는 지금 정치권의 가장 날카로운 논쟁점이다. 세대·지역·계층을 불문하고 균열 중인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게 있다면 “정치, 이대론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같아선 어떤 문제 해결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절감(切感) 때문이다. 정치는 지금 모든 실패와 악덕의 상징처럼 존재한다.지난달 패스트트랙 정국은 ‘동물국회’의 아수라장을 다시 불러냈다. 이후 국회는 간판만 걸린 ‘빈집’이다. 추가경정 예산안은 13일로 딱 50일째 멈춰 서 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세계경제가 모두 ‘불확실성’의 나락 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다.제1야당은 밖으로만 돌며 지지층 규합에 골몰 중이다. 여당은 ‘단독국회’를 으를 뿐 속수무책이다. 외려 야당은 “(단독국회를) 청하지 못하지만 바라는 바...

    2019.06.13 20:37

  • [편집국에서]현충일을 보내며
    현충일을 보내며

    몇년 만에 고향에 온 손자를 보며 여든 넘은 할아버지는 한숨부터 쉬었다. “사람들한테 듣자하니 네가 들어간 대학이 좋은 학교라고 하더구나. 보통 때 같으면 네가 출세하기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어지러운 것 같으니 그저 무사하기만 했으면 좋겠구나.” 1987년 여름방학 때였다. 박종철·이한열의 죽음을 보고, 6월 민주항쟁을 겪은 뒤 고향에 갔다. 평생 농사만 지은 시골 촌로인 할아버지에게도 도시의 어지러운 소식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6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할아버지에게 속마음을 들은 것은 그때가 유일했던 것 같다.할아버지는 전쟁으로 아들 둘을 잃었다. 태평양전쟁 중 일본에 간 큰아들은 타고 가던 배가 미군의 공습에 침몰하는 바람에 세상을 떠났다. 셋째 아들은 6·25전쟁 때 전사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바람은 후손의 무사함뿐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가끔 나에게 얘기했다. “네 할머니가 불쌍하다. 생때같던 자식을 둘이나 잃었으니 가슴이 얼마나 미어지겠느냐.”...

    2019.06.06 20:49

  • [편집국에서]무위당 장일순 평전을 반갑게 맞으며
    무위당 장일순 평전을 반갑게 맞으며

    이맘때 텃밭은 참 이쁘다. 저마다의 모양, 색깔로 자라나는 것들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다. 상추와 치커리, 겨자 같은 갖가지 쌈채소들은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쌈을 싸든 샐러드를 만들든 맛나다. 건강한 맛은 덤이다. 눈곱만 한 씨앗의 열무는 어느새 열무김치를 담글 만하고, 당근도 바질도 한 뼘 크기로 자리 잡았다. 완두콩과 감자도 영글어간다. 겨울을 이겨낸 부추는 잘라 먹어도 또 자라 이웃과 나눈다. 작물들이 잘 자라고, 싱싱한 먹거리가 많아지고, 마트에서 산 쌈채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맛나다고만 해서 텃밭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흙과 햇빛과 바람과 물로 씩씩하게 자라나는 그 생명의 신비로움이 아름다움의 고갱이다. 생명의 신비로움은 오감을 자극하고, 오감의 부활은 삶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땀 흘린 만큼 거둔다’ ‘땅이 스승’이라는 평범한 말에 담긴 수백가지의 뜻을 새삼 깨우친다. 씨앗을 뿌린 나 스스로가 기껍다. 그래서 텃밭은 더 이쁘다.이맘때 땅은 농부의 손길 속...

    2019.05.30 21:01

  • [편집국에서]먼로 독트린은 살아 있다
    먼로 독트린은 살아 있다

    “1800년 이후 미군은 수천 번 중남미에 개입했으며, 수십 차례 점령했다.” 미국 템플대 중남미 전문 역사학자 앨런 맥퍼슨 교수의 주장이다. 미 대외정책 비판가이자 작가인 윌리엄 블룸은 1995년 쓴 <킬링 호프>에서 1945년 이후 미국이 ‘정권 교체’를 시도한 경우가 55차례 있었다고 했다. 미 여성 평화주의 단체 ‘코드핑크’ 공동설립자 미디아 벤저민은 그 후 13차례 더 있었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정권 교체 시도는 적어도 68건이나 된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중남미 국가는 얼마나 될까. 에콰도르, 브라질, 페루,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우루과이, 칠레, 볼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자메이카, 그레나다, 수리남, 니카라과, 파라과이, 엘살바도르, 아이티, 온두라스, 베네수엘라 등 19개국이다. 전체 33개국의 절반을 넘는다. ‘중남미는 뒷마당’이라는 미국의 주장이 결코 빈말이 아닌 셈이다. 미국이 중남미를 자신의 뒷마당으로 여기는 근거가 ...

    2019.05.16 20:43

  • [편집국에서]‘독재 타도’라는 위선
    ‘독재 타도’라는 위선

    정치가 ‘성찰’을 잃어버리면 퇴행밖에 없다. 성찰은 ‘더 나아지겠다’는 의지와 노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찰은 ‘염치’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과거를 ‘객관의 거울’ 속에 넣고 미래의 교훈으로 삼는 일인 까닭이다. 자유한국당이 선거제 개편안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국회를 처음 점거한 지난달 25일 그들은 “독재 타도, 헌법 수호”를 구호로 외쳤다. 인간띠를 두르고 국회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자못 비장했다. 아수라장이었던 ‘동물국회’ 내내 그들은 여야 4당의 선거제 합의를 ‘좌파 독재’로 몰아세웠다. 그 내용의 황당함은 물론이거니와 더 큰 문제는 그들은 정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점이다.정확히 45년 전인 1974년 4월25일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으로 시작되는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터트렸다. ‘10월 유신독재’를 한창 강화하던 때였다. 8명의 무고한 시민들은 1년 뒤인 1975년 4월 형장에서 생을 마감...

    2019.05.09 20:34

  • [편집국에서]로스쿨이 보내는 신호
    로스쿨이 보내는 신호

    이것도 하나의 신호로 보인다.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 ‘변호사시험 합격률’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주최 집회에 참여했다고 한다(경향신문 4월26일자 12면). 합격률을 높이는 것을 도와주는 일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한다. 2017년 12월 일이다. 지난달에는 한 로스쿨생이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 앞에서 삭발을 했다. 그는 며칠 뒤 제56회 법의날 기념식장을 찾아가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무릎을 꿇으려 했다. 그의 요구는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화해달라는 것 하나였다.변호사시험 합격률이 40%대까지 떨어지고, 이른바 ‘오탈자’(5년·5회 제한에 걸려 변호사시험 응시기회를 박탈당한 로스쿨 졸업생)가 생기면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달 26일 제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발표됐다. 로스쿨생들의 외침 때문인지 합격률이 50.78%를 기록, 첫 시험 때의 87.15% 이후 줄곧 하락하다가 처음 반등...

    2019.05.02 20:41

  • [편집국에서]성락원, 반가움과 아쉬움으로 만나다
    성락원, 반가움과 아쉬움으로 만나다

    전국 곳곳에 옛사람들이 바위에 글을 새긴 각석들이 남아 있다. 지금에야 처벌받아 마땅한 자연환경 훼손이지만 한편으론 역사와 문화 연구에 없어선 안될 1차 사료다. 각석은 조선시대 사대부 문인들이 많이 남겼다. 시를 짓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서화는 그들이 기본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개인적으론 물론 시를 짓고 즐기는 모임인 시사(詩社), 친목도모를 위한 계회(契會)도 결성해 자연 속에서 모임을 열고 심신을 수양했다. 그러고는 그 정취를 각자하거나 기록화인 계회도로 남겼다. 권력·재력을 겸비한 사대부는 한양도성 근처에 아예 별서(별장)를 지었다. 각석과 계회도, 별서는 모두 빼어난 자연경관과 밀접하다.최근 서울 시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별서정원인 ‘성락원(城樂園)’을 둘러봤다. 그동안 특별한 경우에만 볼 수 있었던 성락원이 내년 공식개방에 앞서 처음으로 시민에게 임시개방해서다. 국가지정문화재(명승 제35호)이지만 사유지다보니 개방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왕실정원...

    2019.04.2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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