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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국에서]우리가 이들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이들을 외면한다면

    한 달 전 세계여성의날(3월8일) 때 일이다. 여성의 지위와 권리 향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 세계에 울려퍼질 때 미국에서는 한 성전환 여성이 투옥됐다. 그는 한때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일지와 국무부 기밀문서를 언론에 공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유명인사였다. 바로 첼시 매닝이다. 그 일로 매닝은 35년형을 선고받았다. 7년반 넘게 투옥된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퇴임 이틀 전 사면돼 석방됐다. 자유의 몸이 된 지 2년3개월 만의 재투옥이지만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대다수의 언론과 시민들이 침묵한 탓이다. 투옥 죄목은 법정모독. 그는 자신의 자료를 공개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에 대한 조사차 제4연방항소법원 대배심에 출석했다. 그는 증언을 거부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대배심이 비밀로 진행된다는 점, 이미 군사법정에서 모든 것을 공개했다는 점이다. 하루 22시간씩 28일간 독방에서 지내온 매닝은 지난 4일 일반 감방으로 옮겨졌다. 그가 증언하지 않으면 대배심 절차를...

    2019.04.11 21:04

  • [편집국에서]문재인 정부의 ‘4월’
    문재인 정부의 ‘4월’

    선거는 집권세력이 드물게 ‘날것’ 그대로의 민심을 만나는 통로다. 민심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권력도 선거만큼은 피해갈 수 없다. 4·3 보궐선거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여권 지지층의 마음이다. 단순히 선거 결과로 나타난 패배가 아니다. 경남 통영·고성에서 자유한국당 후보가 받은 표는 4만7000여표다. 지난해 지방선거 지지 표심(4만6000여표)이 고스란히 투표장을 다시 찾은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득표는 지방선거(4만6700여표)의 반토막에 가까운 2만8400여표(60.8%)에 그쳤다. 여권 지지자들은 표심을 포기하는 것으로 정치적 평가를 한 것이다. 국정 실패는 지지자들을 부끄럽게 한다.집권 3년차 봄을 지나고 있는 청와대 주변에선 “어렵다”는 말이 들린다. 4·3 보선 결과만큼 침울한 공기가 주변을 감돈다. 그간 국정 지지율 하락에도 하지 않던 토로다. “좀 도와달라”는 호소도 함께라고 한다.문재인 정부의 현 상태는 5개 정도의 이상증상으...

    2019.04.04 18:05

  • [편집국에서]김학의, 절대반지, 검사선서
    김학의, 절대반지, 검사선서

    그 검사를 만나본 적은 없다. 이름을 적어놓았던 메모지도 지금은 없어졌다. 그런데도 검사 하면 그가 생각나는 이유는 전해들은 인상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10여년 전 우연히 탄 택시의 기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낮에 한 검사에게 점심을 샀다”고 말했다. 그는 의류 제조업체의 사장이었다고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로까지 지정됐다고 하니 꽤 규모가 큰 회사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월드컵 때의 투자로 부도가 났다. 그는 전 재산을 털었지만 빚을 다 갚지 못했고, 고소를 당해 그 검사를 만나게 됐다.검사는 조사가 끝나던 날 “300만원 있느냐”며 “그 돈만 갚으면 모든 문제가 끝난다”고 했다. 그에게는 300만원도 없었다. 검사는 “내가 빌려줄 테니 나중에 갚으라”며 300만원을 빌려줬다고 한다. 그는 검사에게 받은 300만원으로 채권자들과의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돈이 생길 때마다 10만원, 20만원씩 갚아나간 그는 내가 택시를 탄 그날 검...

    2019.03.28 20:36

  • [편집국에서]뒤쪽이 진실이다
    뒤쪽이 진실이다

    “…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내게 왔다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었음을 얼마나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었으니! (…) 뒤쪽이 진실이다! ….” 오래 지니고 있는 책 <뒷모습>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2002년 출간되었으니 어느 새 17년 묵은 책,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진집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저명한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와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가 공동 작업으로 펴냈다. 국내에는 불문학자 김화영이 옮겨 현대문학에서 출간했다.에두아르 부바는 일상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남녀노소 50여명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그런데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가 등을 보이고 있다. 뒷모습이 핵심이다. 곰 인형을 등에 업은 소녀, 키스하는 남녀, 소를 앞세우고 쟁기를 메...

    2019.03.21 21:02

  • [편집국에서]김정은, 워싱턴 갈까
    김정은, 워싱턴 갈까

    1987년 12월7일, 옛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고르비)가 처음 미국 땅을 밟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서명하기 위해서였다. 옛 소련 지도자로서는 세 번째 방문이었다. 레이건과의 세 번째 회담이기도 했다. INF 조약 서명은 군축과 냉전 종식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라이트는 다른 데 있었다. 마지막 날 미국인으로부터 받은 환대였다. 백악관에서 차를 타고 가던 고르비는 차를 세우고 군중들에게 다가갔다. 백악관 산책으로 불리는 고르비의 돌발행동에 경호원들은 경악했지만 미국은 고르비 열풍에 사로잡혔다. 고르비 인기는 회담 닷새 뒤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서 증명됐다. 고르비에게 우호적 인상을 받은 미국인은 65%였다. 61%를 기록한 레이건보다 더 많았다. 1년2개월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1986년 10월, 두 정상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두 번째 만났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어떠한 합의는 물론 기자회견...

    2019.03.07 20:35

  • [편집국에서]인생은 늦게 동참하는 자를 벌하리라
    인생은 늦게 동참하는 자를 벌하리라

    “분단 시기 동독과 서독 국민들이 경험한 ‘우리는 하나’라는 깊은 연대감은 국제적 상황이 통일에 대한 가망이 없어 보이는 시기에도 끊어지지 않았다.”통일독일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의 회고록 <우리는 이렇게 통일했다> 서문의 한 부분이다. 때로 역사는 ‘희망’과 ‘낙관’의 힘으로 전진한다. 그의 ‘기억’은 격변 속에 있는 한반도 운명에도 의미심장하다. 북·미 정상의 하노이 담판은 28일 안타까움으로 막을 내렸다. ‘하노이선언’으로 명명될 공동서명식도 하지 못한 채 후일을 기약하고 두 정상은 헤어졌다. 지난해 6월12일 역사적인 싱가포르선언 이후 261일 만의 만남이었지만, 악마가 숨은 디테일은 끝내 넘어서지 못한 셈이다. 반세기 넘게 일상적 전쟁의 불안이 배회하던 한반도 운명이 변화하는 길 위에는 다시 구름이 드리우게 됐다.하노이 담판 결과만큼이나 이로 인해 닥칠 우리 사회와 정치의 모습이 우려스럽다. 북·미 회담을 앞두고 “역사적 대전환”에 대...

    2019.02.28 20:21

  • [편집국에서]송파 세 모녀, 우공이산
    송파 세 모녀, 우공이산

    경제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유명했던 고 정운영씨(1944~2005)를 나는 교수로 기억한다. 큰 키에 중후한 목소리, 조리 있는 말솜씨. “결혼은 하셨나요”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제가 결혼도 못했을 것처럼 보이나요”라고 유머로 답하던 여유까지. 30여년 전 강의실에서 본 그는 카리스마가 넘쳤다.한국의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던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무슨 얘기를 했을까. 요즘의 상황이 답답해 인터넷을 찾아보는데 그가 1988년 8월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이 눈에 띄었다. ‘성장, 안정, 복지…그래서?’라는 제목이다. “우산 장수와 나막신 장수에게 각기 딸을 시집보낸 부모가 가지는 걱정, 그것은 경제정책의 입안자들이 지닌 고민의 내용을 아주 잘 설명해 준다. 우산과 나막신을 파는 데 고루 이로운 날씨가 없듯이, 한 사회의 모든 계층에 두루 유익한 경제정책이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대기업도 좋고, 노동자도 좋은 정책이 있으면 세상에 다툼이 ...

    2019.02.21 20:34

  • [편집국에서]불균형 방치하면 ‘한국판 트럼프’ 나온다
    불균형 방치하면 ‘한국판 트럼프’ 나온다

    엊그제 공시된 전국 표준지 50만 필지 가격은 불균형을 재확인할 수 있는 지표였다. 서울 충무로 1가 화장품 매장 ‘네이처리퍼블릭’ 땅값이 ㎡당 1억8300만원으로 16년 연속 공시가격 최고를 기록했다. 단순 비교를 하기는 무리지만 전남 진도군 조도면 임야가 ㎡당 210원으로 가장 낮았다. 전체적으로 전년보다 평균 9.42% 올랐다. 비싼 땅일수록 상승률이 높았는데,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재산세와 부동산세 등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많이 올라 세금을 더 내게 됐다고 불평하는 땅부자가 있을 테고, 자산가치가 오르지 않아 불만인 땅 소유주도 있을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참고자료로 내놓은 표준지 평균가격으로 한국의 땅값 전체를 추산해봤다. 시·도별 평균가격에 해당 시·도 면적을 곱한 뒤 현실화율 64.8%를 적용한 결과 전국 1만7636㎢의 시가총액은 9760조9101억원이다. 내년에는 경 단위로 올라갈 게 확실하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1800조...

    2019.02.14 20:39

  • [편집국에서]‘2·8 독립선언’에 대한 100년 만의 응답
    ‘2·8 독립선언’에 대한 100년 만의 응답

    ‘모든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천만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을 이루기를 선언하노라.’ 꼭 100년 전인 1919년 2월8일 일본의 한인 유학생들이 발표한 ‘2·8독립선언’의 선언서 첫 문장이다. 청년학생들은 조선청년독립단 이름으로 일제의 수도 한복판에서 ‘우리 겨레의 정당한 요구에 일본이 불응한다면 영원한 혈전(血戰)’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아가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위에 새 국가를 건설’하고 ‘문화와 정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우리 겨레는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문화에 공헌’할 것이라고 밝혔다. 2·8독립선언은 ‘3·1독립선언’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앞서 만주·러시아의 독립운동가 39명이 중국 땅에서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의 뜻을 계승한 것이자 향후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최팔용·송계백 등은 일제 경찰의 ‘요시찰 인물’이었음에도 당시 ‘3대 독립선언’의 하나인 2·8독립선언을 결행했다. 그만큼 독립과 새...

    2019.02.07 20:47

  • [편집국에서]트럼프는 왜 ‘스타워스’를 쏘아올렸을까
    트럼프는 왜 ‘스타워스’를 쏘아올렸을까

    미국 대통령 레이건과 트럼프는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역대 1, 2위 고령 대통령이다. 또 워싱턴 정치와는 거리가 먼 아웃사이더 출신이다. 특히 트럼프는 선출직 경험이 없는 첫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돼서도 옛 직업의 엔터테인먼트 능력을 활용한다는 점도 같다. 하나 더 든다면 두 사람 모두 핵전쟁 두려움에 사로잡혀왔다는 점일 게다. 레이건이 옛 소련과의 핵전쟁 공포에 시달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나온 게 ‘스타워스’로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이다. ‘우주에 탐지와 요격을 위한 센서와 무기를 배치해 적의 미사일을 발사 후 상승단계에서 파괴한다’는 계획은 매혹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고, 기술적으로 실현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레이건의 구상은 옛 소련의 붕괴로 중단됐다. 하지만 그의 후임자들은 스타워스 유혹에서 못 벗어났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시작해 8년 주기로 발표되는 핵태세점검보고서(NPR)는 그 방증이다. 이들은 우...

    2019.01.2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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