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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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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병권의 묵묵] 포획의 계절
    포획의 계절

    단속과정서 인권 보호하겠다는말은 참 허망하기 그지없다불법에 대한 이런 단속이 내게는인간이 인간에, 생명이 생명에게저지르는 거대 범죄의 일부 같다또 계절이 온 모양이다. 지난 5일 법무부는 두 달 동안 불법체류자 집중단속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법무부, 경찰청,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해양경찰청 등이 모두 나서 범정부 차원에서 합동단속을 벌인다고 한다. 몇 줄 안 되는 보도자료라서 그런지 더욱 결기가 느껴진다. 흡사 범죄와의 전쟁 선언 같다. 하지만 단속 대상은 흉악범들이 아니라 비자기간을 넘긴 외국인들이다. 불법이라고는 했지만 사법적 처벌이 아니라 행정조치의 대상들이다.불법을 단속하겠다는데 무슨 시빗거리가 되나 싶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법무부는 이번 조치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 유연한 외국인 정책의 전제는 ‘엄정한 체류질서의 확립’ ”이라는 장관의 말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했다. 집중 단속 분야도 따로 밝혀두었다. “택배·배달 등 일자리 잠식 업종”과...

    2022.10.14 03:00

  • [고병권의 묵묵] 공부하는 심정
    공부하는 심정

    장애연구자 다수는 장애인 가족사회에 대한 흥미가 아닌 염려와돌봄 주체이자 해방의 일원으로자료를 모으고 문장을 쓰는 마음그들의 마음을 꼭 껴안고 싶다당신 공부의 동력은 무엇인가. 오래전 어느 선생이 내게 물었다. 그때 호기심이라고 답했다. 처음에는 연구 대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하지만, 내가 어디까지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지켜보고 싶다고. 이런 호기심이 내 공부를 이끄는 것 같다고. 거짓은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낯 뜨거운 답변이었다. 너무 겉멋을 부렸다. 다른 새의 깃털을 제 몸에 꼽았던 이솝우화의 까마귀처럼, 남의 문구를 빌려서 내 공부의 동기를 장식했다. 사실 그것은 미셸 푸코의 말이었다. <성의 역사> 제2권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내가 그토록 끈질기게 작업에 몰두했던 것은 호기심, 그렇다 일종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을 허용해주는 그...

    2022.09.16 03:00

  • [고병권의 묵묵] 불쌍한 놈, 위험한 놈
    불쌍한 놈, 위험한 놈

    불쌍한 놈이 위험한 놈 되는 순간자선통치자가 공안통치자 돌변‘이건 뭐지’ 하고 벙찌는 일이지만두 얼굴의 통치자는 늘 이럴 위험지금 이 땅에도 징후가 농후하다새 정부가 들어선 지 100일.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바닥이다. 실망한 사람, 분노한 사람이 70%에 육박한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느낀 감정은 실망이나 분노가 아니었다. 내 감정은 당황과 황당 사이를 자주 오갔다. 얼빠진 사람처럼 “이건 뭐지?” 하고 ‘벙찌는’ 일이 많았다.이를테면 이런 장면에서 그랬다. 어느 월요일 아침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짧은 문답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발걸음을 로비 쪽으로 돌린다. 그러고는 기자들이 보는 가운데 거기 걸린 그림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작품명과 작가명도 빠짐 없이 확인한다. 모두가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작품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장애인 예술가들이 소외되지 않고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대통령의 철학이 반영된” 전시라고 한다...

    2022.08.19 03:00

  • [고병권의 묵묵] 가난한 자에 대한 섬김
    가난한 자에 대한 섬김

    내 대학 시절 해방신학은 낡아도가난한 자들에 대한 섬김은 유지이젠 사회도 대학도 오래전 개종학생이 가난한 자를 고발하는 등대학도 세상이 섬기는 신을 섬겨그 시절 대학은 많은 게 뒤집힌 곳이었다. 신입생으로 두 달을 보낸 5월 어느 날 갑자기 기온이 쑥 올라갔다. 체감으로는 한여름 같았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들었는데도 나는 긴 옷을 입었다. 서울살이를 시작할 때 고향집에서 여름옷까지 챙겨오지 않아 입을 옷이 없었다. 그러나 믿는 구석이 있었다. 학생회관 근처에는 언제나 이런저런 기금 마련을 위해 티셔츠를 판매하는 학생들이 있었다.그런데 그날은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학생회실이나 동아리방에 하나쯤 굴러다니던 반팔셔츠도 그날은 눈에 띄지 않았다. 별수 없이 학교 기념품 매장으로 가서 저렴한 걸로 하나 골랐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셔츠 앞면에 학교 로고가 너무 크게 박혀 있었다. 부끄러웠다. 입학 전에는 그 로고가 찍힌 볼펜이나 노트를 자랑하듯 선물했는...

    2022.07.22 03:00

  • [고병권의 묵묵] 상생하라
    상생하라

    길은 함께 누릴 수 있을 뿐누구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혼자서는 아무리 거대해져도함께라는 공동성이 될 수 없다이젠 사유화와 공동성 중 택해야을지OB베어. 서울 을지로3가에 있는 42년 역사의 생맥줏집. 내가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곳이고, 건물주가 가게를 내쫓아 이제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을지OB베어의 강제 철거 소식을 접하고는 설명하기 힘든 상실감이 들었다. 이상한 말이지만 손님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이 단골가게를 잃은 느낌이랄까. 심지어는 내 것이 아닌 내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강탈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도대체 이 느낌의 정체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알고 싶어 무작정 걸었다.을지로3가 뒷골목의 저녁 풍경은 스산했다. 건축자재와 공구를 파는 가게들은 몇 달 혹은 몇 해 전부터 셔터를 내렸고, 낡은 기둥에 묶인 전등들만이 사람 없는 골목을 힘겹게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한 블록을 더 들어가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 ...

    2022.06.24 03:00

  • [고병권의 묵묵] 단식과 깡통
    단식과 깡통

    46일. 인권활동가 미류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보낸 단식의 시간이다. 내일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그의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이 허기진 시간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내 눈에는 비쩍 말라가는 그가 지시등처럼 보였다. 위태로운 단식을 이어가던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위태롭게 질식의 시간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비하하는 사회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사람들. 미류의 단식은 이들의 시간을 그냥 흘러가게 둘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는 한 생명이 위험에 처함으로써 다른 생명들이 위험에 처했음을 알리는 비극적 현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차별금지법안은 2007년 처음 발의되었다. 그러나 논의는 없었다. 다만 발의되고 발의되고 발의되었을 뿐이다. 입을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15년 동안 일곱 번의 발의, 일곱 번의 가쁜 숨소리가 터져나왔을 뿐이다. 행정부가 바뀌고 의회가 바뀌고 강산이 바뀌어도 변한 건 없다. 입법자...

    2022.05.27 03:00

  • [고병권의 묵묵] 한 시설의 위대한 몰락 영상 컨텐츠
    한 시설의 위대한 몰락

    시설 정상화 아닌 몰락을 요구했다그들은 집으로, 사람으로 가는 길시민으로 가는 길을 소리쳤다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첫 장은이들의 투쟁에 의해 열렸다“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집에 있으면 짐밖에 안 되는 걸 내가 뻔히 아는데.” 지금 예순을 넘긴 규선씨는 스물일곱 살 때의 일을 선명히 기억한다. 뇌성마비장애인인 그는 어려서부터 방에서만 지냈다. 그러다가 방에서도 지낼 수 없는 때가 왔다. 어느 날 어머니가 시설 이야기를 꺼냈고 그는 받아들였다. 더 이상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1988년 석암 베데스다요양원(현 향유의집)에 입소했다. 슬프지만 평온한 이별, 그러나 극단적인 뒷이야기가 있다. 담담하게 그때를 회고하던 그는 눈물을 흘렸다. “이런 얘기는 한 번도 안 했는데… 그때 어머니하고 동반자살을 시도했어요.”이것은 규선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시설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 고향도 장애유형도 제각...

    2022.04.29 03:00

  • [고병권의 묵묵] 이런 비문명인들 같으니!
    이런 비문명인들 같으니!

    고맙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공이 크다. 스피커 큰 사람이 욕해대니 욕먹는 사람도 주목을 받는다. 그가 아니었다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가 이처럼 조명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일반단체라고 해도 지하철을 막는 방법으로 투쟁하면 실정법 위반”인데 이런 상황을 “몇 개월이나” 정치인들이 “장애인단체 시위라는 이유로 방치”해왔다고 분개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들의 시위를 “비문명적 관점”의 불법 시위라고 부르기도 했다. ‘비문명적’이라고 에둘러서 말했지만 실상은 문명사회에 안 맞는 ‘야만적’ 시위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가 말한 장애인들의 비문명적 시위와 이것을 방치한 역사는 더 오래되었다. 몇 개월이 아니라 수십년이다. 다만 이 방치는 그가 말한 의미와 달리 묵인이 아니라 무시였다. 정치인들에게 장애인들은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똑같은 요구를 내건 시위가 수십년 동안이나 계속될 수 있겠는가.2018년에도 지금...

    2022.04.01 03:00

  • [고병권의 묵묵] 죄 없는 시민은 죄가 없는가
    죄 없는 시민은 죄가 없는가

    ‘21년 50일’의 이동권 투쟁서장애인이 시민들 발목 잡았을까제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남의 인권 함부로 침해한 존재는장애인 아닌 어리석은 시민이다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50일 넘게 장애인들의 출근길 시위가 있었다. 휠체어 장애인들 여럿이 승강장 한 곳에서 줄지어 타기를 반복했다. 이로 인해 지하철의 운행이 역마다 몇 분씩, 전체로는 몇십 분씩 늦어졌다.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도 언급되었지만 SNS상에서는 시위 시작 때부터 난리가 났고 장애인 단체에는 항의와 협박 전화가 빗발쳤다.사정은 이렇다. 지난 1월 국회에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버스를 대차하거나 폐차할 때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고 국가가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게 했다. 2001년 ‘버스를 타자’며 장애인들이 뛰쳐나온 지 21년 만에 통과된 법이었다. 그런데 이 기쁜 소식은 그렇게 기쁜 소식이 아니었다. 문구와 실행 사이에 그놈의 문턱이 또 있었던 것이다. ...

    2022.03.04 03:00

  • [고병권의 묵묵] 화성의 관타나모
    화성의 관타나모

    문제적 ‘폭력의 성채’ 관타나모한국의 외국인보호소가 그렇다외국인 무한정 구금 없애려면출입국관리법 바꾸는 게 우선‘어필’에 우리 의지 보여주시라영화 <모리타니안>의 마지막 장면. “오, 나의 변호사님들!” 모하메두는 낸시와 테리를 크게 껴안는다. 그는 2001년 ‘9·11 테러’ 용의자로 체포되어 이듬해 관타나모에 수감된 이후 줄곧 거기 있었다. 한 차례의 재판도 없었다. 수년 동안의 고문만이 있었을 뿐이다.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그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마침내 2010년 석방 판결을 받았다. 모하메두가 얼마나 기뻤을지 짐작이 간다.그런데 들뜬 의뢰인과 달리 변호사들의 표정은 어둡다. 낸시가 이야기를 꺼냈다. “정부의 항소에 대응해야 해요.” “뭘 항소한다는 거죠? 우리가 이겼잖아요.” “그들은 법정에서 문제를 질질 끌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모하메두는 낸시의 말을 끊고 묻는다. “잠깐만요, 이게 얼마나 걸리죠?” 테리가...

    2022.02.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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