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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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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병권의 묵묵]강제징용 노동자 이흥섭
    강제징용 노동자 이흥섭

    이것은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반도체가 아니라 소년이다. 소년의 나이는 열일곱.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밑으로 어린 동생이 둘 있었다. 그날은 아버지와 콩밭을 매고 있었다. “마을 이장과 면사무소에서 나온 사람, 그리고 다른 네 명 정도가 밭에 있는 우리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마을 이장이 아무 말 없이 노란색 봉투를 아버지에게 건넸습니다.” 훗날 소년이 담담히 구술한 그날은 너무 평온해 더 슬프다. 사람들은 봉투만 전달하고 돌아갔고 아버지는 점심이나 먹자며 소년의 손을 잡고 집으로 왔다. 그러고는 옷장을 열어 하얀 목면 양복을 입히고는 말없이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겼다. 결국에 밥은 먹지도 못했다. 급히 차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소년도 아버지에게 봉투에 대해 묻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알고 있던 일이기 때문이다. 강제징용이었다. 황해도 곡산에서 콩밭을 매던 소년은 그렇게 일본 규슈의 탄광에 끌려갔다....

    2019.08.11 20:35

  • [고병권의 묵묵]문제는 등급이 아닌 장애인별 맞춤 서비스다
    문제는 등급이 아닌 장애인별 맞춤 서비스다

    7월1일, 서초동에서 잠수교를 거쳐 서울역까지 행진하는 사람들의 손에는 풍선이 들려 있었다. 몇 사람이나 알아보았을까. 그것은 개선 행렬이었다. 지난 30여년의 싸움을 이겨낸 사람들. 1988년 11월부터 실시된 장애등급제가 마침내 폐지되었다. 이날 한 운동가는 한국 장애인 운동의 역사는 7월1일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했다. 7월1일은 그만큼 중요한 날이다. 하지만 그날의 행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장애인을 보지는 못했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무려 1842일의 농성도 불사했던 사람들인데 어깨를 들썩이기는커녕 토닥이는 말들이 많았다. ‘그래도 우리가 조금은 해낸 거야.’ 행진은 저녁 무렵 끝났다. 서울역 광장에서 몇몇은 승리를 자축하겠다며 소리를 질렀고 몇몇은 악대를 따라다니며 어설프게나마 춤을 추었다. 그러나 곧이어 모두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그날 밤 사회보장위원회 건물 앞에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요구하는 1박2일의 노숙 농성에 들어갈 참이었다. 경찰이...

    2019.07.14 20:36

  • [고병권의 묵묵]구차한 고통의 언어
    구차한 고통의 언어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이 말에는 우리가 앓는 두 겹의 고통이 들어 있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상처로 인한 생리적 고통만이 아니라 그런 상처를 가졌다는 사실로 인한 해석적 고통도 앓는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의 고통과는 다른 고통을 사람들의 시선에서 느끼고, 장애인은 손상된 몸이 주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사람들의 편견에서 느낀다. 몸의 멍에 더해 마음의 멍이 생기는 것이다. 흔히 고통은 나눌 수 없다고 한다. 치통처럼 간단한 것조차 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저마다 자신이 앓던 치통을 떠올려볼 뿐이다. 그래도 생리적 고통은 해석적 고통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해석적 고통의 경우, 특히 그 고통이 자신이 사회적 척도에 부합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생겨난 경우, 고통의 호소는 부적합한 존재로서 자신을 확증하는 것처럼 느껴져 더 고통스럽다. 상대방은 내 호소를 내가 비정상적이고 뭔가 부족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로 받아...

    2019.06.16 20:46

  • [고병권의 묵묵]용서를 구하며
    용서를 구하며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를 용서해야 하는가. 전두환 일당이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내게 떠올랐던 물음이다. ‘5·18 민중항쟁’에 대한 망언이 넘쳐나던 올해는 특히 그랬다.모두가 아는 것처럼 전두환은 군사반란과 내란,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뉘우친 적이 없다. 범죄에 대한 사법적 추궁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일련의 과정을 ‘근거 없는 술책’이라며 비난했다. 2년 전 펴낸 회고록에도 속죄는 없었다. 진실에 대한 개인적 고백인 회고록을 그는 속죄보다는 자기정당화에 활용했다. 오히려 고해성사하듯 헬기 사격의 진실을 증언했던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의 부인이 그를 가리켜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속죄는 고사하고 피해자를 모욕하며 호의호식하는 학살자. 그러나 그는 법적으로는 용서받은 자이다. 대법원 판결 8개월 만에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통해 내란, 살인 등의 무시무시...

    2019.05.19 20:45

  • [고병권의 묵묵]죽음의 설교자들
    죽음의 설교자들

    지난 3월28일 법원은 병원에서 잠든 아들의 목을 졸라 죽인 어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사건 내용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죽인 어머니에게 고작 집행유예형이라니. 그런데 그 아들이 중증장애인이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피살자에서 살인자에게로 옮겨간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실제로 사건 내막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짐작하는 ‘오죽했으면’이 맞다. 죽은 아들은 41세였는데 세 살 때 자폐 판정을 받았다. 초보적인 수준의 언어소통만 가능했으며 나이 들어서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 20세가 넘어서는 증세가 심해져서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매번 소란을 일으켜 입원 연장이 거부되었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그날’도 아들이 소리를 질러대고 주먹으로 벽을 두드려서 진정제를 투약했다고 한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어머니는 아들 상태가 호전될 기미도 없고 자신에게 더 이상 돌볼 기력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

    2019.04.21 20:45

  • [고병권의 묵묵]이주민을 추모하는 토착민의 춤
    이주민을 추모하는 토착민의 춤

    지난 15일 호주 출신의 한 백인 남성이 뉴질랜드의 이슬람 사원에 총격을 가해 50명을 살해하고 그 장면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계했다. 말 그대로 ‘테러 라이브’였다. 사냥을 하듯 혹은 게임을 하듯 그는 사람들을 죽였다. 무려 74쪽 이르는 선언문도 내보냈다. 선언문에서 그는 무고한 아이들까지 죽이는 이유도 적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백인 아이들의 자리를 다 차지할 테니 후손들을 위해 미래의 적을 미리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무지 행동이나 말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변호인에 따르면 그는 침착하고 심지어 ‘상당히 명쾌해’ 보인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이 변호인조차 필요 없다며 해임시켰다. 법정에서 직접 신념을 설파할 모양이다.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당연히 이 연설을 세상에 알리지 않을 것이다. 총리는 테러범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같은 행동은 드물지만 신념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2019.03.24 20:48

  • [고병권의 묵묵]함석헌이 겪은 3·1운동
    함석헌이 겪은 3·1운동

    올해로 3·1운동 100주년이다. 솔직히 내가 3·1운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국사책과 참고서에서 보았던 정보 이상은 아니어서 아무리 늘려 잡아도 몇 쪽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시험대비용 연표 속에 넣어 외운 것들이라 납골당 유골처럼 가지런히 죽어 있다. 내게는 1894년의 청일전쟁, 1905년의 을사조약, 1910년의 경술국치 하는 식으로 1919년의 3·1운동인 것이다. 인물들도 그렇다. 아이들이 단어장처럼 외워 부르는 ‘역사는 흐른다’의 노랫말처럼 “삼십삼인 손병희, 만세만세 류관순”일 뿐이다. 이런 내게 3·1운동에 대해 완전히 다른 인상을 심어준 글이 있다. 몇 년 전 우연히 읽은 함석헌의 글 ‘고난의 의미’다. 글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교회에서 행한 강연을 녹취해 정리한 것이다. “제가 지내봤던 삼일절 얘기나 조금 하겠습니다.” 글머리에서 깜짝 놀랐다. ‘제가 지내봤던’이라는 말 때문이다. 나는 한 번도 ‘내가 겪은 3·1운동’을 들어본 적이 없다.“저는 삼...

    2019.02.24 20:51

  • [고병권의 묵묵]여기 사람이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이 말은 정확히 십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참혹한 사건의 이름표다. 용산참사. 이 네 글자를 보거나 들으면 내게는 자동으로 한 남자가 떠오른다. 그는 불타는 망루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펄쩍펄쩍 뛰었고 다시 난간을 손바닥으로 치다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주저앉았다. 이제껏 나는 그렇게 슬픈 몸짓을 본 적이 없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사람을 본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시민도 아니고, 식당 주인도 아니고, 철거민도 아니고, 시위대도 아닌, 맨손, 맨얼굴 같은 ‘맨사람’ 말이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사람에게는 ‘사람’이라는 원초적 사실 하나만 남는다. 아무런 울타리나 보호막이 없을 때, 소위 인권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은 맨사람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망루에서 타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사실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은 불이 나기 전부터 거의 맨사람이었다. 이들은 서울에 뉴타운 광풍이 몰아치고...

    2019.01.20 20:29

  • [고병권의 묵묵]보이지 않게 일하다 사라져버린 사람
    보이지 않게 일하다 사라져버린 사람

    “시골 저택에 사는 부인에게 ‘함께 사는 분이 없어요?’라고 물어본다고 가정하세. 질문을 받은 부인은 ‘하인 한 명, 마부 세 명, 하녀 한 명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을 걸세. 비록 하녀가 방 안에 있고 하인이 바로 뒤에 있다 해도 말이야. 그 부인은 아마 이렇게 답하겠지. ‘네, 함께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무도 없다’가 이 사건에서의 ‘아무도 없다’일세. 하지만 어떤 의사가 전염병을 조사하면서 ‘함께 지내는 분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이 부인은 하녀와 하인,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을 기억해낼 걸세.” 길버트 체스터턴의 추리소설 <보이지 않는 남자>에서 브라운 신부가 한 말이다. 범인이 예고한 살인을 저질렀는데도 입구를 감시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지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범인은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 우편배달부였다. 체스터턴은 무언가를 숨...

    2018.12.23 20:32

  • [고병권의 묵묵]열두 친구 이야기
    열두 친구 이야기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공부하는 내게는 열두 친구가 있다. 1월의 명학은 며칠 전 노들에서 환갑잔치를 열었다. 학교에는 가 본 적 없지만 올해로 25년이 된 노들을 25년간 다녔다. 노들과 연을 맺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챙겨간 것은 한 조각의 시간이지만 그에게는 온전한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노들의 깃발도 언제나 그의 품으로만 파고든다. 지금도 사람들은 거리에서 노들을 찾을 때마다 깃발의 둥지인 그를 찾는다. 노들에서 공부해서 좋고, 밥 먹어서 좋고, 투쟁해서 좋다는 이 사람은 언제나 자기를 이렇게 소개한다. “김명학, 노들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2월의 경남은 지적장애인이다. 복도 벽을 타고 오는 노랫소리가 언제나 그녀보다 조금 일찍 등교한다. 행사 때 음악이 나오면 그녀는 친구를 맞이하듯 뛰쳐나가 춤을 춘다. 노들에서 글자를 하나씩 익히고 있다. “야학 오기 전에 이름은 썼어요. 근데 글자들은 너무 많아요. 배워도 배워도 새로운 글자가 계속 나와요. 아는 글자는 반가운...

    2018.11.2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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