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반도체가 아니라 소년이다. 소년의 나이는 열일곱.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밑으로 어린 동생이 둘 있었다. 그날은 아버지와 콩밭을 매고 있었다. “마을 이장과 면사무소에서 나온 사람, 그리고 다른 네 명 정도가 밭에 있는 우리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마을 이장이 아무 말 없이 노란색 봉투를 아버지에게 건넸습니다.” 훗날 소년이 담담히 구술한 그날은 너무 평온해 더 슬프다. 사람들은 봉투만 전달하고 돌아갔고 아버지는 점심이나 먹자며 소년의 손을 잡고 집으로 왔다. 그러고는 옷장을 열어 하얀 목면 양복을 입히고는 말없이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겼다. 결국에 밥은 먹지도 못했다. 급히 차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소년도 아버지에게 봉투에 대해 묻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알고 있던 일이기 때문이다. 강제징용이었다. 황해도 곡산에서 콩밭을 매던 소년은 그렇게 일본 규슈의 탄광에 끌려갔다....
2019.08.11 2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