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은 그것을 말할 때 통증을 느낀다. 기억이란 게 정신에만 저장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이 과거를 불러오는 것처럼 몸도 과거를 불러온다. 그리고 정신이 그때를 증언할 때 몸도 그때처럼 아파온다.유력한 대권 후보인 안희정의 성폭행을 고발한 여성의 얼굴이 그랬다. 그는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막겠다며 대단한 용기를 낸 사람이다. 하지만 TV에 비친 그의 얼굴은 너무나 창백했고 곧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한마디씩 이어가는 증언이 마른 수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왜 곧바로 고발하지 않았는가. 왜 오랜 시간 그대로 있었는가. 그런 악의적 질문들이 성립할 수 없음을 몸이 보여주었다. 입이 말하는 것과 별개로 몸도 그때의 일을 말했다. 그가 어떤 상태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이다. 몸에 서리가 내린 듯 그는 얼어붙었음에 틀림없다. 증언할 때처럼 창백하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핏기 없이 있었을 것이다. 왜...
2018.03.11 2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