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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듯 운동하자
호젓한 산길에서 집채만 한 개를 만나면 우리 몸은 어떻게 반응할까. 도망칠 태세를 갖추거나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뭐가 있는지 눈을 부라리며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은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기에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콩팥 위 부신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것이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서둘러 근육에 혈액을 보내야 한다. 당장이라도 수축과 이완을 거듭할 근육에 산소와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엔 당질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스트레스 반응 체계를 가동해 유기체의 적응 능력이 향상되는 일은 인간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동물에서 일관되게 발견된다.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30분쯤 뒤에 최고치에 도달한 호르몬 수치는 1시간 정도가 지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물론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진 후에 그렇다는 말이다.그러나 동물 대부분은 긴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적응 방식을 진화시키지는 못했다.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여서 장기간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대처 방식에 따... -
잠도 자고 살도 빼자
요즘처럼 밤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자주 잠에서 깬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멍하니 어둠을 응시할 때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고 일어나면 키가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해부학 논문을 보면 침대에 들기 전보다 아침에 15㎜ 정도 더 크다. 우리 몸 중심인 척추가 중력을 덜 받아서 그럴 것이라 짐작하지만 사실 밤에 무방비로 누워서 자는 동물은 인간 말고는 없다. 자는 곳이 안전하지 않거나 가늘게 코를 고는 식구들이 옆에 없다면 저렇게 터무니없이 방심한 채로 잠들지는 못할 것이다. 선교사로 가족과 함께 아마존에 들어간 대니얼 에버렛이 쓴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를 보면 잠을 편히 자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시카고대학 크리스틴 크누트손은 1960년 당시 8시간에서 8.9시간을 자던 미국인들이 1995년에는 7시간, 2004년에는 6시간보다 적게 잔다고 국립수면재단의 통계자료를 소개했다. 아마 한국인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전하게 잠... -
저 바다의 기억
입담 좋은 저술가 빌 브라이슨은 책 <바디>에서 인간의 몸이 59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중 수소와 산소, 탄소, 질소, 칼슘과 인 등 6가지가 전체 원소의 99%를 점유한다. 무게로만 따지면 산소가 60%를 넘는다. 자연계에서 가장 가벼운 축에 속하는 산소와 수소 기체가 만나 무거운 액체인 물을 만들고 그 물이 우리 몸의 60% 넘게 차지하기 때문에 숫자로만 따지면 수소가 압도적으로 많다. 미량 원소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수소가 3억7500만개라고 치면 철은 2680개, 코발트는 1개, 요오드는 14개 존재한다. 하지만 숫자가 적다고 해서 이들 미량 원소를 무시할 수는 없다. 실제 인간의 체중을 고려하면 요오드의 양은 약 20㎎에 이르고 수도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화약 재료인 초석을 제조하느라 해초를 쓰던 프랑스 과학자 베르나르 쿠르투아는 재 때문에 구리 솥이 빨리 부식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태울 때 보랏빛이 도는 해초의 재를 분석하던 ... -
굶어야 커지는 것
살이 찌는 것과 늙는 일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까? 있다. 지난 5월 나고야 의과대학 나카무라 박사 연구팀은 나이가 들면서 시상하부 신경의 섬모 길이가 짧아지고 살이 찔 가능성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세포 대사’에 발표했다. 신경세포 표면에 곶처럼 튀어나온 섬모는 길이가 줄면 포만 신호가 와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 섬모가 짧아지면서 포만 신호 수용체가 정박할 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험에 따르면 위와 장에서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도 이 수용체 단백질이 없는 쥐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쉽게 심각한 비만에 이른다.누구나 알듯이 몸에 필요한 양보다 자주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하지만 우리 몸은 쉽게 살이 찌지는 않는다. 먹는 양이 늘수록 기초대사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죄수를 대상으로 매일 먹는 양을 2배로 늘린 실험에서 얻은 결과다. 기초대사량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조차 우리 몸이 기본적으로 쓰는 에너지양을 뜻한다. 심장을 움직이고 열을 내는 데 ... -
남녀의 다름을 아는 일
‘두발잡이’ 인간의 진화적 본성은 걷는 쪽일까, 아니면 뛰는 쪽일까? 잘 모른다. 그러나 그 어느 포유동물보다 훌륭한 냉장용 땀샘을 진화시킨 인간은 오래 걸을 수 있다. 과거 시험에 응시하고자 길을 나선 선비는 하루 100리를 걸었다고 한다. 약 40㎞다. 현대 인간은 많은 시간을 앉아 지낸다. 그러다 불현듯 한 치도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러닝머신 위에서 쳇바퀴 돌 듯 뛰면서 땀을 흘리고 만족스러워한다.야생에 사는 그 어떤 동물도 따로 시간을 내 운동하진 않는다. 우리 조상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므로 운동은 인간 역사의 최근 발명품일 수밖에 없다. 좌식 생활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 운동하면 우리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우리 몸에서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기관인 근육을 주로 쓰는 운동을 하면 근육의 미토콘드리아 양이 늘어난다.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 생산 공장이니 당연한 결과이다. 아마 산소를 들이켜는 폐의 용량도 커질 것이다. 근육에 공급할 혈액의 양도 늘어야 하므로... -
심장 늙은이, 간 늙은이
‘사람은 세 번 늙는다.’ 인터넷에서 본 2019년 기사이다. “언제?”라고 물으며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매혹적인 제목이다. 스탠퍼드 대학 위스-코레이 연구진은 그 나이를 명토 박듯 말했다. 궁금한가? 34, 60세 그리고 78세이다. 이 숫자를 두고 곰곰이 생각하면 질병으로 보든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현상으로 보든 노화는 단순히 나이에 따른 직선형 변화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해보다 34세 즈음에 많이 늙는다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도대체 이 숫자들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조직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노화는 여러 질환의 일차적 위험 요인이며 비가역적이다.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젊은 쥐의 혈액을 늙은 쥐에게 주고 노화가 역전되는 듯한 현상을 목격한 일부 과학자들은 항노화 치료법을 암중모색하기도 하지만 아직 노화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위스-코레이는 다양한 나이대 사람의 혈장 단백질을 분석했다. 세포와 혈장 단백질로 구성된 혈액은 여러... -
공룡 발아래 잠든 숲속의 공주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지칭개와 꽃다지가 일제히 솟구치는 걸 보면 말이다. 봄날 낮 시간은 점점 길어질 것이다. 반대로 밤은 짧아진다. 자고 깨는 시간을 관장하는 일주기 시계가 빛의 장단에 맞춰졌다면 인간은 겨울보다 여름에 좀 적게 자도 괜찮을까?불규칙한 수면 유형을 보인 환자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답은 ‘그렇다’이다. 독일 베를린 수면클리닉 연구 책임자인 디터 쿤츠는 188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수면 시간을 조사했다. 참가자들은 6월보다 12월에 잠을 한 시간 더 잤다. 먹고 싸고 자는 인간의 여러 생리 현상이 어둠과 빛 리듬에 따라 진화해, 겨울 아침 일찍 일어나 밖이 어둑하면 우리 뇌는 ‘어두워서 할 일이 없으니 굳이 이불 밖으로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면 문제가 없는 사람도 봄이 한창인 4, 5월에 적게 자고 겨울에 30분 넘게 더 자는 걸 보면 수면 시간에 계절성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은 다... -
봄은 붉다
괄목상대(刮目相對). 이 나이가 되어도 눈을 부릅뜨고 볼 일이 생긴다. 한 보름 전, 설 즈음이다. 빌딩 옆이라 빛을 조금은 손해 보는 터에 자리한 매화나무 가지가 문득 붉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에서 본 매화나무 삐죽한 우듬지는 과연 자줏빛으로 붉었다. 다른 나무도 그런가 살펴보았다. 아침저녁 나절 오가는 길목에서 부러 들여다본 나뭇가지도 붉은 게 제법 많았다. 이른 봄 전령사인 산수유도, 남천의 가지도 붉었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붉은 기운이 가지 끝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꽃도 잎도 없는 겨울 끝자락 나뭇가지는 왜 그리 붉을까? 소나무 가지에 달린 솔방울을 보면 한 해 세월이 또렷이 보인다. 가지 끝 솔방울은 몽글몽글하고 작지만 한 마디 아래 솔방울은 좀 더 크고 단단하다. 그러나 입을 다물고 있다. 그보다 더 아래 솔방울은 입을 열고 씨를 떨군 상태다. 그러므로 솔방울 씨앗이 익는 데 적어도 2년은 걸리는 셈이다. 지금 활엽수는 어떨까?... -
자작나무의 신비한 ‘겨울나기 전략’
하늘로 올라간 무게 있는 것들은 으레 아래로 내려오게 마련이다. 바닷물, 강물도 마찬가지라서 지난날 대기로 올라간 수증기가 올겨울 자주 눈으로 비로 찾아온다. 겨울 평균 기온은 올랐다지만 오히려 추운 날은 더 춥다. 삼한사온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기후를 예측하기는 어려워졌다. 반짝 기온이 올라 개나리꽃이 피었대도 겨울잠 자는 동물들이 성급하게 기지개를 켜면 안 된다. 야생 동물은 촘촘한 털 매무새를 추스르며 추위를 버티지만 밑동에 켜켜이 눈 쌓인 나무들은 어떻게 겨울을 나는 것일까? 평안북도 출신 백석은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라며 백화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나도 몇년 전 백두산 가는 길목에서 아름드리 자작나무숲을 본 적이 있다. 아랫도리 날씬한 미인송 숲을 지나서였다. 허옇고 종잇장처럼 얇은 껍질을 두른 자작나무는 아름다운 겨울나무다. 북극의 백곰처럼 추위에 잘 적응한 식물인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날이 짧아지면 식물은 광합성 장치의 가동을 멈... -
술 취한 장 미생물
망년회 대신 송년회라는 말이 대세다. 이름이야 어찌 됐든 그 자리에 술이 빠지는 일은 드물다. 술은 ‘위(胃)에서 천천히 흡수되고 소장에서 빠르게 흡수되어 몸 전체에 널리 분포하는’ 수용성 화합물이다. 생리학자들은 빈속에 농도가 20~30%인 술을 마실 때 알코올의 흡수가 가장 빠르다고 말한다. 술을 마시고 약 1시간 뒤면 혈중 알코올의 양이 최댓값에 이른다. 그다음에는 그 양이 일정하게 줄어든다. 간(肝)에서 알코올을 꾸준히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혈액에서 전부 빠져나가기 전까지 알코올이 온몸에 퍼져 있다. 화학적으로 알코올은 물과 비슷하기에 수용성이 떨어지는 지방 조직에는 덜 쌓인다. 체중에 맞게 양을 조정하더라도 피하조직이 풍부한 여성은 상대적으로 혈액과 조직에 알코올 농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태반을 지나 태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탓에 여성은 술 마시는 일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 90%가 넘는 알코올은 간에서 대사된다. 나머지는 오줌이나 땀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