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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늙은이, 간 늙은이
‘사람은 세 번 늙는다.’ 인터넷에서 본 2019년 기사이다. “언제?”라고 물으며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매혹적인 제목이다. 스탠퍼드 대학 위스-코레이 연구진은 그 나이를 명토 박듯 말했다. 궁금한가? 34, 60세 그리고 78세이다. 이 숫자를 두고 곰곰이 생각하면 질병으로 보든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현상으로 보든 노화는 단순히 나이에 따른 직선형 변화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해보다 34세 즈음에 많이 늙는다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도대체 이 숫자들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조직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노화는 여러 질환의 일차적 위험 요인이며 비가역적이다.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젊은 쥐의 혈액을 늙은 쥐에게 주고 노화가 역전되는 듯한 현상을 목격한 일부 과학자들은 항노화 치료법을 암중모색하기도 하지만 아직 노화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위스-코레이는 다양한 나이대 사람의 혈장 단백질을 분석했다. 세포와 혈장 단백질로 구성된 혈액은 여러... -
공룡 발아래 잠든 숲속의 공주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지칭개와 꽃다지가 일제히 솟구치는 걸 보면 말이다. 봄날 낮 시간은 점점 길어질 것이다. 반대로 밤은 짧아진다. 자고 깨는 시간을 관장하는 일주기 시계가 빛의 장단에 맞춰졌다면 인간은 겨울보다 여름에 좀 적게 자도 괜찮을까?불규칙한 수면 유형을 보인 환자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답은 ‘그렇다’이다. 독일 베를린 수면클리닉 연구 책임자인 디터 쿤츠는 188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수면 시간을 조사했다. 참가자들은 6월보다 12월에 잠을 한 시간 더 잤다. 먹고 싸고 자는 인간의 여러 생리 현상이 어둠과 빛 리듬에 따라 진화해, 겨울 아침 일찍 일어나 밖이 어둑하면 우리 뇌는 ‘어두워서 할 일이 없으니 굳이 이불 밖으로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면 문제가 없는 사람도 봄이 한창인 4, 5월에 적게 자고 겨울에 30분 넘게 더 자는 걸 보면 수면 시간에 계절성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은 다... -
봄은 붉다
괄목상대(刮目相對). 이 나이가 되어도 눈을 부릅뜨고 볼 일이 생긴다. 한 보름 전, 설 즈음이다. 빌딩 옆이라 빛을 조금은 손해 보는 터에 자리한 매화나무 가지가 문득 붉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에서 본 매화나무 삐죽한 우듬지는 과연 자줏빛으로 붉었다. 다른 나무도 그런가 살펴보았다. 아침저녁 나절 오가는 길목에서 부러 들여다본 나뭇가지도 붉은 게 제법 많았다. 이른 봄 전령사인 산수유도, 남천의 가지도 붉었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붉은 기운이 가지 끝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꽃도 잎도 없는 겨울 끝자락 나뭇가지는 왜 그리 붉을까? 소나무 가지에 달린 솔방울을 보면 한 해 세월이 또렷이 보인다. 가지 끝 솔방울은 몽글몽글하고 작지만 한 마디 아래 솔방울은 좀 더 크고 단단하다. 그러나 입을 다물고 있다. 그보다 더 아래 솔방울은 입을 열고 씨를 떨군 상태다. 그러므로 솔방울 씨앗이 익는 데 적어도 2년은 걸리는 셈이다. 지금 활엽수는 어떨까?... -
자작나무의 신비한 ‘겨울나기 전략’
하늘로 올라간 무게 있는 것들은 으레 아래로 내려오게 마련이다. 바닷물, 강물도 마찬가지라서 지난날 대기로 올라간 수증기가 올겨울 자주 눈으로 비로 찾아온다. 겨울 평균 기온은 올랐다지만 오히려 추운 날은 더 춥다. 삼한사온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기후를 예측하기는 어려워졌다. 반짝 기온이 올라 개나리꽃이 피었대도 겨울잠 자는 동물들이 성급하게 기지개를 켜면 안 된다. 야생 동물은 촘촘한 털 매무새를 추스르며 추위를 버티지만 밑동에 켜켜이 눈 쌓인 나무들은 어떻게 겨울을 나는 것일까? 평안북도 출신 백석은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라며 백화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나도 몇년 전 백두산 가는 길목에서 아름드리 자작나무숲을 본 적이 있다. 아랫도리 날씬한 미인송 숲을 지나서였다. 허옇고 종잇장처럼 얇은 껍질을 두른 자작나무는 아름다운 겨울나무다. 북극의 백곰처럼 추위에 잘 적응한 식물인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날이 짧아지면 식물은 광합성 장치의 가동을 멈... -
술 취한 장 미생물
망년회 대신 송년회라는 말이 대세다. 이름이야 어찌 됐든 그 자리에 술이 빠지는 일은 드물다. 술은 ‘위(胃)에서 천천히 흡수되고 소장에서 빠르게 흡수되어 몸 전체에 널리 분포하는’ 수용성 화합물이다. 생리학자들은 빈속에 농도가 20~30%인 술을 마실 때 알코올의 흡수가 가장 빠르다고 말한다. 술을 마시고 약 1시간 뒤면 혈중 알코올의 양이 최댓값에 이른다. 그다음에는 그 양이 일정하게 줄어든다. 간(肝)에서 알코올을 꾸준히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혈액에서 전부 빠져나가기 전까지 알코올이 온몸에 퍼져 있다. 화학적으로 알코올은 물과 비슷하기에 수용성이 떨어지는 지방 조직에는 덜 쌓인다. 체중에 맞게 양을 조정하더라도 피하조직이 풍부한 여성은 상대적으로 혈액과 조직에 알코올 농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태반을 지나 태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탓에 여성은 술 마시는 일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 90%가 넘는 알코올은 간에서 대사된다. 나머지는 오줌이나 땀으로 ... -
김치를 먹는 뜻은
촌수로는 멀지만 사는 곳은 지척이라 집에 자주 들렀던 형은 복성스럽게 밥 먹기로 소문이 났었다. 보리 섞인 고봉밥을 젓가락으로 꾹꾹 누른 다음 길게 자른 김치를 똬리 틀 듯 얹고 아삭 소리 나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구경 삼아 보던 어머니는 숭늉 한 그릇 슬며시 마루턱에 가져다 두곤 했다. 소비량은 줄었다지만 여전히 밥상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김치에는 어떤 영양소가 들었을까? 농촌진흥청 자료를 보면 김치 주재료인 배추에는 단백질과 탄수화물 말고도 비타민과 무기 염류가 풍부하다. 햇볕 세례를 적게 받은 배춧속은 비타민A 함량이 높을수록 더 노란빛을 띤다. 그리고 우리 소화기관이 미처 처리하지 못하는 섬유가 배추 100g당 1g이 넘는다. 이 배추를 소금에 절여 물기를 쫙 빼면 그 비율은 더욱 커질 것이다.사람의 몸 가운데를 지나는 소화기관은 길이가 8m를 넘는다. 밥과 고기처럼 우리 입에 찰싹 붙는 음식물의 소화와 흡수는 대개 소장에서 끝난다. 소장은 긴 데다 표면적... -
생명의 무게
가을걷이가 끝난 휑한 논, 격자 꼴 따옴표로 남은 벼 그루터기에 연한 새순이 돋았다. 이울어 가는 가을볕이 뿜어내는 빛 알갱이는 지난 푸르름을 되살리기에는 충분치 않지만 짝짓기에 바쁜 하루살이 날갯짓을 북돋우기엔 모자람이 없는지 양지바른 곳에선 날것들이 사뭇 분주하다. 하루살이의 한 생애라야 고작 며칠이고 일년생 벼도 두 계절을 넘기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삶의 무게가 30년이 한 세대인 인간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처럼 벼나 하루살이에게도 부모가 있고 그 부모의 부모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그렇다. 그 부모의 위쪽 끝은 대체 어디에 머물게 될까? 정확한 시기나 모습, 그 역사는 짐작하기 쉽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생명의 대물림은 그 어떤 생명체에서도 단 한 번의 끊김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것을 잊으면 안 된다. 슬슬 과거로 걸음을 떼보자.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은 과거 어느 날 지느러미에 뼈와 근육을 단장한 어류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 -
제2의 뇌, 그 은밀한 독자성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는 변비로 죽었다. 불과 42세 나이에 엘비스는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자택의 가장 넓고 호화로운 화장실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부검해본 결과 그의 대장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발생 과정에서 대장의 일부 혹은 전부에 신경세포가 도달하지 않는 히르슈슈프룽병(Hirschspsrung’s disease) 환자는 대변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대장 연동운동에 장애가 생긴 탓이다. 대장 끄트머리에 멈춰선 대변에서 물기가 빠지면서 곧바로 변비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외 중배엽에 이어 제4배엽으로 알려진 신경 능선에서 유래한 신경세포가 식도에서 대장 끝까지 터를 잡고 암약해야 ‘먹고 싸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입에서 꿀떡 삼킨 음식물이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신경세포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음식물을 소화하고 흡수한 뒤 찌꺼기를 처리하기까지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사실상 거의... -
살아야 죽는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무척 역동적이다. 매일 약 2000억~3000억개의 세포가 죽는다. 또 그만큼의 세포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성인 몸 세포 약 40조개의 0.5%가량이 매일 교체되는 셈이다. 그렇게 얼추 200일마다 우리 몸은 새롭게 태어난다. 하지만 이 말은 절반만 옳다. 세포에 따라 수명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심장근육 세포나 1000억개에 이르는 뇌 신경세포는 수명이 상당히 길다.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은 적혈구는 120일을 살지만 1초에 200만개씩 태어나고 죽어간다. 테니스장 넓이의 소화기관 상피세포는 4~5일마다 교체된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 세포는 쉼 없이 살고 죽기를 되풀이한다. 활성 산소 탓에 단백질이나 유전자가 상처를 입어서든 발생 과정에서 손가락 사이의 갈퀴를 제거하고자 세포 스스로 죽든, 이유는 다양하지만 우리는 죽은 세포를 깔끔히 처리해야 한다. 미적거리다 죽은 세포막이 터지면 면역계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원치 않는... -
덥다, 그래도 가을이 들어선다
덥다. 2020년 기상청 보고서를 보면 지구 평균 온도는 14.88도다.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200여 관측소에서 그해 측정한 온도를 모두 참작한 결과일 것이다. 이는 지난 20세기 전체 평균보다 0.98도 높은 값이다. 올 7월3일은 남극을 포함한 전 세계 평균 온도가 17도를 넘어 역대 최곳값을 나타냈다. 평균 온도는 한 값을 가리키지만 지역에 따라 또는 같은 지역이라도 사는 거주 형태에 따라서 체감 온도는 천차만별이다.바깥 기온이 같아도 오래된 집 실내 온도는 더 높게 느껴질 수 있다. 이동식 주택이나 컨테이너, 옥탑방이나 반지하 작은 집도 상황이 나쁘기는 매한가지다. 이런 곳이 더운 이유는 복사열 탓이다. 모닥불을 피웠을 때 우리 몸에 전달되는 따뜻함의 실체가 바로 저 복사열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 형태로 복사열이 주변에 퍼진다. 단열이 잘되지 않는 옥탑방의 천장은 뜨겁다. 창문, 시멘트벽, 바닥 모두 우리를 둘러싼 표면이고 복사열로 집 안 공기를 달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