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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의 쓸모
어른의 뼈는 남녀 구분 없이 206개다. 한쪽 손에는 27개의 뼈가 있다. 잠시 손바닥을 펴보자. 엄지를 뺀 나머지 네 손가락에서 12개의 마디를 볼 수 있다. 각 마디가 하나의 뼈다. 여기에 엄지의 마디 2개를 합치면 손가락뼈는 모두 14개다. 손바닥에 든 손허리뼈는 5개로 각 손가락에 하나씩 배당된다. 팔과 연결되는 부위인 손목에는 8개의 뼈가 있다. 발에는 26개의 뼈가 들어 있다. 발목뼈가 하나 적기 때문이다. 두 손과 두 발을 다 합치면 106개로 전체 뼈의 절반이 넘는다. 많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 사촌보다 더 넓은 중추신경계 영역이 손, 특히 엄지손가락을 제어하는 데 관여한다. 사람 엄지손가락의 가장 큰 특징은 회전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엄지는 다른 모든 손가락과 가장 넓게 마주칠 수 있다. 물건을 감싸거나 포도알을 쥐는 데 이상적인 구조다. 자세한 역사와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아마 손의 구조도 더 정교하게 바뀌었을 것이다. 엄... -
나무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
아, 계수나무다. 길을 걷다 무심결에 혼잣말이 나왔다. 걸음을 멈춰서 보니 잎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인 벚나무 잎과 부드러운 심장 모양인 계수나무 잎이 떨어져 섞여 있다. 가을인가 보다. 그런데 계수나무 잎이 사뭇 창백하다. 광합성을 끝낸 식물은 대개 잎에 붉고 노란 색소를 머금은 채 한 해를 마감한다. 고개를 들어 본 나뭇잎은 단풍이 들어간다기보다 말라비틀어져 떨어질 순간을 기다리는 듯하다. 처연하다. 다들 지난여름 고생했다, 또 혼잣말이다.맥문동의 열매가 비췻빛에서 검은빛으로 색을 바꿔 영롱한 자태를 뽐낸다. 그렇지만 그 열매는 드문드문 열려 찾아보기 어렵다. 단풍이나 열매 모두 지난 시절 광합성의 결과물이다. 계수나무의 창백한 잎과 드물게 달린 맥문동 열매는 광합성의 모자란 생산성을 반영할 뿐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덕에 얼마 전의 더위가 언제 일이더냐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돌이켜보면 올여름은 길고 정말 더웠다. 더위는 식물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우선 겉모... -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세상에는 결코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생물학적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그들과 관련된 몇 가지 사항도 그대로 내 것이 된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염색체 두 묶음, 사방이 온통 누런 논으로 둘러싸인 집도 고스란히 나를 규정하는 환경이 된다. 그곳이 한반도 남쪽의 어디라는 사실도 바뀌지 않는다.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다세포 생명체가 활보하는 지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구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저 거기 살고 있을 뿐이다. 지구인 모두는 대기권에 둘러싸인 지구공동체의 일원이다. 예외는 없다. 2023년은 평균 기온이 기준보다 1.5도 높았다. 참고로 말하면 19세기 후반 50년의 평균 기온이 기준이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2024년의 6~8월 평균 기온은 25.6도로 평년보다 1.9도 높았다. 숫자로만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서 반사된 이글거리는 적외선이나 그늘 하... -
밥 먹듯 운동하자
호젓한 산길에서 집채만 한 개를 만나면 우리 몸은 어떻게 반응할까. 도망칠 태세를 갖추거나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뭐가 있는지 눈을 부라리며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은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기에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콩팥 위 부신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것이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서둘러 근육에 혈액을 보내야 한다. 당장이라도 수축과 이완을 거듭할 근육에 산소와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엔 당질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스트레스 반응 체계를 가동해 유기체의 적응 능력이 향상되는 일은 인간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동물에서 일관되게 발견된다.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30분쯤 뒤에 최고치에 도달한 호르몬 수치는 1시간 정도가 지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물론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진 후에 그렇다는 말이다.그러나 동물 대부분은 긴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적응 방식을 진화시키지는 못했다.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여서 장기간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대처 방식에 따... -
잠도 자고 살도 빼자
요즘처럼 밤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자주 잠에서 깬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멍하니 어둠을 응시할 때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고 일어나면 키가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해부학 논문을 보면 침대에 들기 전보다 아침에 15㎜ 정도 더 크다. 우리 몸 중심인 척추가 중력을 덜 받아서 그럴 것이라 짐작하지만 사실 밤에 무방비로 누워서 자는 동물은 인간 말고는 없다. 자는 곳이 안전하지 않거나 가늘게 코를 고는 식구들이 옆에 없다면 저렇게 터무니없이 방심한 채로 잠들지는 못할 것이다. 선교사로 가족과 함께 아마존에 들어간 대니얼 에버렛이 쓴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를 보면 잠을 편히 자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시카고대학 크리스틴 크누트손은 1960년 당시 8시간에서 8.9시간을 자던 미국인들이 1995년에는 7시간, 2004년에는 6시간보다 적게 잔다고 국립수면재단의 통계자료를 소개했다. 아마 한국인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전하게 잠... -
저 바다의 기억
입담 좋은 저술가 빌 브라이슨은 책 <바디>에서 인간의 몸이 59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중 수소와 산소, 탄소, 질소, 칼슘과 인 등 6가지가 전체 원소의 99%를 점유한다. 무게로만 따지면 산소가 60%를 넘는다. 자연계에서 가장 가벼운 축에 속하는 산소와 수소 기체가 만나 무거운 액체인 물을 만들고 그 물이 우리 몸의 60% 넘게 차지하기 때문에 숫자로만 따지면 수소가 압도적으로 많다. 미량 원소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수소가 3억7500만개라고 치면 철은 2680개, 코발트는 1개, 요오드는 14개 존재한다. 하지만 숫자가 적다고 해서 이들 미량 원소를 무시할 수는 없다. 실제 인간의 체중을 고려하면 요오드의 양은 약 20㎎에 이르고 수도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화약 재료인 초석을 제조하느라 해초를 쓰던 프랑스 과학자 베르나르 쿠르투아는 재 때문에 구리 솥이 빨리 부식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태울 때 보랏빛이 도는 해초의 재를 분석하던 ... -
굶어야 커지는 것
살이 찌는 것과 늙는 일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까? 있다. 지난 5월 나고야 의과대학 나카무라 박사 연구팀은 나이가 들면서 시상하부 신경의 섬모 길이가 짧아지고 살이 찔 가능성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세포 대사’에 발표했다. 신경세포 표면에 곶처럼 튀어나온 섬모는 길이가 줄면 포만 신호가 와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 섬모가 짧아지면서 포만 신호 수용체가 정박할 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험에 따르면 위와 장에서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도 이 수용체 단백질이 없는 쥐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쉽게 심각한 비만에 이른다.누구나 알듯이 몸에 필요한 양보다 자주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하지만 우리 몸은 쉽게 살이 찌지는 않는다. 먹는 양이 늘수록 기초대사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죄수를 대상으로 매일 먹는 양을 2배로 늘린 실험에서 얻은 결과다. 기초대사량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조차 우리 몸이 기본적으로 쓰는 에너지양을 뜻한다. 심장을 움직이고 열을 내는 데 ... -
남녀의 다름을 아는 일
‘두발잡이’ 인간의 진화적 본성은 걷는 쪽일까, 아니면 뛰는 쪽일까? 잘 모른다. 그러나 그 어느 포유동물보다 훌륭한 냉장용 땀샘을 진화시킨 인간은 오래 걸을 수 있다. 과거 시험에 응시하고자 길을 나선 선비는 하루 100리를 걸었다고 한다. 약 40㎞다. 현대 인간은 많은 시간을 앉아 지낸다. 그러다 불현듯 한 치도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러닝머신 위에서 쳇바퀴 돌 듯 뛰면서 땀을 흘리고 만족스러워한다.야생에 사는 그 어떤 동물도 따로 시간을 내 운동하진 않는다. 우리 조상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므로 운동은 인간 역사의 최근 발명품일 수밖에 없다. 좌식 생활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 운동하면 우리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우리 몸에서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기관인 근육을 주로 쓰는 운동을 하면 근육의 미토콘드리아 양이 늘어난다.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 생산 공장이니 당연한 결과이다. 아마 산소를 들이켜는 폐의 용량도 커질 것이다. 근육에 공급할 혈액의 양도 늘어야 하므로... -
심장 늙은이, 간 늙은이
‘사람은 세 번 늙는다.’ 인터넷에서 본 2019년 기사이다. “언제?”라고 물으며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매혹적인 제목이다. 스탠퍼드 대학 위스-코레이 연구진은 그 나이를 명토 박듯 말했다. 궁금한가? 34, 60세 그리고 78세이다. 이 숫자를 두고 곰곰이 생각하면 질병으로 보든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현상으로 보든 노화는 단순히 나이에 따른 직선형 변화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해보다 34세 즈음에 많이 늙는다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도대체 이 숫자들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조직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노화는 여러 질환의 일차적 위험 요인이며 비가역적이다.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젊은 쥐의 혈액을 늙은 쥐에게 주고 노화가 역전되는 듯한 현상을 목격한 일부 과학자들은 항노화 치료법을 암중모색하기도 하지만 아직 노화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위스-코레이는 다양한 나이대 사람의 혈장 단백질을 분석했다. 세포와 혈장 단백질로 구성된 혈액은 여러... -
공룡 발아래 잠든 숲속의 공주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지칭개와 꽃다지가 일제히 솟구치는 걸 보면 말이다. 봄날 낮 시간은 점점 길어질 것이다. 반대로 밤은 짧아진다. 자고 깨는 시간을 관장하는 일주기 시계가 빛의 장단에 맞춰졌다면 인간은 겨울보다 여름에 좀 적게 자도 괜찮을까?불규칙한 수면 유형을 보인 환자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답은 ‘그렇다’이다. 독일 베를린 수면클리닉 연구 책임자인 디터 쿤츠는 188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수면 시간을 조사했다. 참가자들은 6월보다 12월에 잠을 한 시간 더 잤다. 먹고 싸고 자는 인간의 여러 생리 현상이 어둠과 빛 리듬에 따라 진화해, 겨울 아침 일찍 일어나 밖이 어둑하면 우리 뇌는 ‘어두워서 할 일이 없으니 굳이 이불 밖으로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면 문제가 없는 사람도 봄이 한창인 4, 5월에 적게 자고 겨울에 30분 넘게 더 자는 걸 보면 수면 시간에 계절성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