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찬의 우회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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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찬의 우회도로]새 시대의 새 클래식 영상

    새 시대의 새 클래식

    영국의 권위있는 영화 전문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1952년부터 10년에 한 번씩 평론가, 프로그래머, 학자들의 투표를 통해 ‘역대 최고의 영화’ 100편을 선정하고 있다.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1941)이 1962년부터 2002년까지 5회에 걸쳐 1위를 하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이 2012년 1위에 선정됐다. 작고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를 두고 “수많은 ‘최고의 영화’ 리스트 중에서도 대부분의 진지한 영화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리스트”라고 표현했다.최근 공개된 2022년 투표 결과는 이변이었다. 벨기에 감독 샹탈 아커만(1950~2015)이 25세 때 연출한 <잔 딜망, 코메르스가 23번지 브뤼셀 1080>(1975)이 여성이 연출한 영화로는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전 7번의 리스트에선 여성 감독의 영화가 10위권 내에 든 적도 없었다. <현기증>과 <시민 케인>은 ...
  • [백승찬의 우회도로] 이찬혁을 응원한다

    이찬혁을 응원한다

    1997년 2월15일 MBC <인기가요 BEST 50>에서 밴드 삐삐롱스타킹은 한국 방송 역사상 손꼽히는 사고이자 대중음악 역사상 기억될 만한 이벤트를 만들었다. ‘바보버스’를 부르면서 보컬 고구마가 카메라에 손가락욕을 했고, 기타리스트 박현준은 침을 뱉었다. MBC는 곧바로 이들을 출연정지시켰지만, 밴드가 곧 해산했기에 출연정지 조치는 별 의미가 없었다. 멤버들은 각자 다른 밴드를 결성하거나 영화음악을 작곡하며 유유히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유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 있는 가사(“잘난 척 하지마 똑바로 살아봐 첨으로 돌아가 단추를 풀어봐 … 주위를 둘러봐 빗자루 한마리 쓰레기 두마리 짜증날 것 같아요”), 경기 들린 듯한 무대 매너는 이날의 사고가 ‘의도된 파국’이었음을 암시한다. 지금보다 연예계에 미치는 지상파 방송사의 권력이 훨씬 강한 시절이었다. 이 3인조 펑크 밴드는 그 권력 핵심부의 내파를 시도했던 것이다. 25년 전 삐삐롱스타킹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건 ...
  • [백승찬의 우회도로] 문화와 정치

    문화와 정치

    경기도를 대표하는 복합예술공간인 경기아트센터의 사장 자리는 9개월째 공석이다. 최근 새 사장 공모가 마감됐으나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된다 해도 최종 임용은 11월에나 가능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시절 임용됐던 전임 사장이 올해 1월 이재명 대선 캠프 합류를 위해 임기를 마치지 않은 채 떠났고, 도지사 공백기와 대선이 맞물려 새 사장을 뽑지 못했다. 경기아트센터는 지난해 대략 짜두었던 공연 프로그램을 올 한 해 큰 무리 없이 소화했다. 하지만 대내외적으로 기관을 대표하고 조직을 혁신하며 새 비전을 제시하는 수장의 역할은 ‘직무대행 체제’로서는 해내기 어렵다. 잘해봐야 ‘현상 유지’다. 인물은 교체됐지만 당적은 같은 지자체장을 맞이한 경기아트센터는 사정이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자체장의 당적이 바뀐 곳에서는 조직 자체가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강릉국제영화제,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그렇다. 강릉과 강원도는 지자체장 당적이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뀌었다. 교체된 단체장은 전...
  • [백승찬의 우회도로] ‘헌트’의 겸손과 자긍심

    ‘헌트’의 겸손과 자긍심

    10일 개봉해 300만 관객을 넘기며 선전 중인 <헌트>(사진)는 1983년을 배경으로 한다. <헌트>는 당시 독재 정권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았던 안기부의 해외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의 대결을 다룬다. 조직 내 북한 스파이 ‘동림’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둘이 서로를 의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헌트>에는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이 뒤섞여 있다. 안기부 요원, 북한 간첩, 민주화운동하는 대학생 등이 등장하지만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없다. 실제 인물이 아니면서도 모두 당대 시민들이 할 법한 행동 양식을 보인다. 안기부 요원들은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면서도 조직 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정치’에도 열심이다. 전 안기부장은 직원들을 닦달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한다고 착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딴주머니를 차고 착복하는 인물이다. 새 안기부장은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직원들의 충성심과 직무능력을 은근히 시험한다. 운동권...
  • [백승찬의 우회도로]문화의 국적

    문화의 국적

    “이제 산 자는 잠에 들고” “죽은 자 눈 뜨는 때” “깊은 물로부터, 타는 불로부터” “젖은 대지로부터, 탁한 대기 속에서” “무언가 떨어져 나온다. 어릿어릿 희뜩희뜩!”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햄릿> 도입부에서 유랑극단 배우 1~4가 말하는 대사다.이 연극이 인상적이어서 셰익스피어의 원작 희곡 첫 페이지를 넘긴다면 허탕이다. <햄릿>은 이렇게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출가 이해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16년 처음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의 극본은 현재 한국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극작가로 꼽히는 배삼식이 썼다. 유랑극단 배우 역은 박정자·손숙·윤석화·손봉숙 등 베테랑 배우가 연기했다. 네 배우 연기 경력을 합치면 210년이다. 권성덕·전무송·정동환·김성녀 등 원로 배우들도 단역으로 힘을 보탰다. 16세기 영국 극작가가 창조한 캐릭터와 줄거리를 차용하되,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연극을 지탱해온 배우들과 탁월한 연출·극...
  • [백승찬의 우회도로] ‘앉은뱅이책상’에서 ‘좌식 책상’으로

    ‘앉은뱅이책상’에서 ‘좌식 책상’으로

    영화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PC)이란 표현을 처음 들은 건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998)에서였다. 음흉한 사립탐정 팻은 주인공 테드로부터 고교시절 여자친구 메리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메리가 마음에 든 팻은 직접 그녀에게 접근하기로 마음먹는다. 팻은 메리의 관심사를 미리 알아낸 후 우연을 가장해 대화 기회를 만든다. 팻이 “전 저능아(retards)하고 일해요”라고 말하자, 지적장애인 오빠가 있는 메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politically incorrect) 표현 같은데요”라고 답한다. 팻은 “내가 누구와 일하든 참견할 사람은 없어요”라고 말하며 얼버무린다. 이른바 ‘화장실 유머’로 가득한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보긴 어렵다. 옛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 사립탐정을 고용해 뒷조사를 한다는 설정부터 미심쩍다. 당시에나 요즘이나 이 영화는 재밌지만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하긴 어려운 ‘길티 플레저’에 가깝다....
  • [백승찬의 우회도로] 멀티버스와 한 번뿐인 삶

    멀티버스와 한 번뿐인 삶

    지난 주말 찾은 극장은 모처럼 관객으로 붐볐다. 팝콘을 사려는 사람들 줄이 20~30m는 늘어서 있어 ‘저러다가 상영 시간에 늦겠다’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어린이날 징검다리 연휴, 팝콘 취식 허용에다 엔데믹 분위기까지 겹쳐 생긴 일이다. 물론 핵심은 콘텐츠다.지난 4일 개봉한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터 스트레인지2’)는 1주일 만에 381만 관객을 모았다. 관객 755만명을 모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된 또 다른 마블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이후 최고 성적이다.<닥터 스트레인지2>는 2016년 나온 영화의 속편이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4기에 속한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멀티버스(다중우주)를 이동할 수 있는 소녀 아메리카 차베즈를 만나고, 차베즈의 능력을 빼앗으려는 악당을 물리치려는 과정을 담았다. 간략한 줄거리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닥터 스트레인...
  • [백승찬의 우회도로] 내가 아카데미 회원이라면

    내가 아카데미 회원이라면

    내가 오스카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이라면, 영화 만들기와 보기의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 일본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 ‘소신 투표’할지, 서부극 역사에서 돌출된 지위를 획득한 <파워 오브 도그>에 ‘추종 투표’할지 끝까지 고민했을 것이다. 실제 아카데미 회원들의 선택은 달랐다. 지난주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유력한 후보들을 제치고 작품상을 받은 것은 <코다>였다. <코다>는 엄마, 아빠, 오빠가 농인인 가족에서 성장한 청인 소녀 루비의 이야기를 그렸다. 루비는 우연히 들어간 합창단에서 노래 재능을 발견하고 음대 진학을 권유받는다. 가족은 루비 없이는 세상과 소통하기 어렵다. 루비는 꿈을 찾아 떠날지, 가족 곁에 머물지 고민한다. 작품의 완성도만을 놓고 봤을 때 <코다>가 <파워 오브 도그>나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 빼어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
  • [백승찬의 우회도로] 푸틴의 논리, 우크라이나의 이야기

    푸틴의 논리, 우크라이나의 이야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압도적인 군사력의 러시아가 조기에 전쟁을 끝내리라는 예상은 빗나가는 중이다. 초조해진 러시아가 조금 더 과격한 수단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침공 3일 전인 지난달 21일 55분간의 TV 연설에서 침공의 논리를 설명했다. 그는 상세한 통계와 함께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부채탕감 의무를 떠안으면서도 독립한 국가들에 경제적 지원을 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반러시아 행보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냉전 시절 소련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소련 붕괴 이후 약속을 어기고 러시아 쪽으로 동진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러시아는 나토와 국경을 맞대는 모양새가 된다. 푸틴은 이를 두고 “목구멍에 칼을 들이댄다”고 표현했다. 푸틴이 논리를 댔을 때 우크라이나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작은 우크라이나가 강대국 러시아의 ...
  • [백승찬의 우회도로] ‘드라이브 마이 카’를 1.5배속으로 본다면

    ‘드라이브 마이 카’를 1.5배속으로 본다면

    2019년 넷플릭스가 영상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테스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창작자들이 비판을 쏟아냈다.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의 감독 저드 애퍼타우는 “내가 아는 모든 감독과 창작자에게 연락해 같이 싸우자고 말하게 하지 말아달라. (…) 영상을 애초 의도된 대로 볼 수 있게 내버려두라”고 말했다. <브레이킹 배드>의 배우 에런 폴은 “속도조절 기능은 넷플릭스가 다른 사람의 예술을 장악하고 파괴할 권한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감독 피터 램지는 “가장 게으르고 취향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이 설계돼야 하는가”라고 물었다.이듬해 넷플릭스는 속도조절 기능을 정식으로 도입했다. 넷플릭스는 자막을 천천히 보기 원하는 청각장애인, 빠른 속도로 듣는 데 익숙한 시각장애인을 위해 도입한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는 “창작자들의 우려를 염두에 둬 재생속도의 범위를 제한했다”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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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6.8의 대지진이 일어난 중국에서의 구호 활동 필리핀에서 열린 검은 나사렛의 종교 행렬 대만 해군의 군사 훈련 안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프랑스를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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