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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의 우회도로
  • [백승찬의 우회도로]밀양의 신학, 버닝의 유물론
    밀양의 신학, 버닝의 유물론

    *영화 <버닝>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이창동의 두 전작은 모호하고 풍성했다. <밀양>(2007)에는 유괴살해 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등장한다. 어머니는 용기를 내 감옥에 갇힌 가해자를 찾아가지만, 가해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미 하나님에게 용서받았다”고 말한다. ‘용서의 주체는 신인가 인간인가’라는 질문이 전도연, 송강호라는 걸출한 배우들에 의해 정교하게 제시됐다. <시>(2010)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할머니의 외손자는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성폭행 사건에 연루됐고, 피해 학생은 자살했다. 할머니는 외손자가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비극을 외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죄인이 죄를 뉘우치지 않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탐구됐다.지난주 끝난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찬사받은 이창동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버닝>은 다르다. 앞선 작품들보다 감정적으로 격렬하고...

    2018.05.22 17:01

  • [백승찬의 우회도로]스필버그가 숨겨둔 교훈
    스필버그가 숨겨둔 교훈

    스티븐 스필버그(72)의 신작을 한 달 간격으로 보며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했다. 좋은 영화는 영화관을 벗어난다. 극장을 나선 뒤에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화두를 준다는 점에서 스필버그는 거장이다. 2월 개봉한 <더 포스트>는 1971년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뉴욕타임스가 미 국방부의 비밀문서인 ‘펜타곤 페이퍼’에 관한 특종을 터뜨린다. 이 보고서에는 트루먼에서 존슨에 이르기까지 4명의 대통령들이 베트남전에 대한 진실을 감추려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쟁사를 자처하는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 벤은 어떻게든 낙종을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사망한 남편의 뒤를 이어 워싱턴포스트 사주가 된 캐서린의 입장은 다르다. 캐서린은 정부와의 관계, 주식시장 상장, 회사의 장기적인 생존, 게다가 오랜 친구인 맥나마라 전 국방부 장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쉬운 선택은 뉴욕타임스와 ‘펜타곤 페이퍼’를 최초 보도한 기자의 이야기를 뒤따르는 것이다...

    2018.04.03 20:48

  • [백승찬의 우회도로]입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
    입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

    보수성향 방송인인 폭스뉴스의 로라 잉그램은 NBA 선수 르브론 제임스가 못마땅했나 보다. 덩치 큰 흑인 농구 선수가 도널드 트럼프의 가치관과 정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판하는 모습을 참아주기 힘들었던 것 같다. 잉그램은 방송에서 제임스의 말이 문법에 맞지 않고 지적이지도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입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 제임스는 스타답게 반응했다. “전 입 닥치고 드리블만 하진 않을 겁니다. 전 이 사회와 청소년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거든요. 그녀 덕분에 좀 더 각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 이름이 뭔지 모르겠지만 고맙네요.”르브론 제임스는 스테펀 커리와 함께 현재 NBA를 대표하는 선수다. NBA 정규리그 MVP를 네 차례 차지했고, 올림픽에도 출전해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제임스가 고향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떠나 마이애미 히트로 옮긴다고 발표한 텔레비전 쇼가 75분간 생중계될 정도였다. 하지만 슈퍼스타이자 갑부인 제임스조차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인종문제에서...

    2018.02.20 21:00

  • [백승찬의 우회도로]진은숙의 ‘아르스 노바’와 반달리즘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와 반달리즘

    ‘아르스 노바’는 누군가에겐 음악이라기보다는 소음이었을 것이다. ‘공포의 시간’ ‘귀를 찢는 불협화음’ ‘극도로 난해하고 괴상하고 광적’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라틴어로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의 아르스 노바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006년부터 선보인 현대음악 프로젝트다. 아르스 노바는 현대음악 연주회와 젊은 작곡가를 대상으로 한 마스터클래스로 구성된다. 대중은 낯익은 배우가 나오는 영화, 언젠가 들어본 듯한 장르의 음악, 익숙한 줄거리의 소설을 좋아한다. 필요한 것은 아주 작은 변이와 새로움뿐이다. ‘새로운 예술’은 그 모든 익숙함에 도전한다. 천연덕스럽게 규율을 위반하고 관습을 비웃는다. 그래서 당대에는 격렬한 저항과 오해에 직면한다. 하지만 새로운 예술은 주저하지 않는다. 옛 규칙이 파괴된 자리에 새 규칙을 정초하려 든다. 새로운 예술은 많은 경우 실패하지만 아주 가끔 성공해 불멸의 작품으로 남는다. 서두 두 번째 문장의 세 가지 표현은 각각 베토벤 교향곡 9번, 쇼팽...

    2018.01.09 20:55

  • [백승찬의 우회도로]스타워즈와 포스 민주주의
    스타워즈와 포스 민주주의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생각해보면 전 세계에 강력한 팬덤을 만들어낸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1977~1983)은 대단히 봉건적인 영화였다. 고아 소년 루크 스카이워커는 은하계 외딴 행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악한 황제가 평화로운 공화국을 무너뜨리며 은하계가 요동친다. 제국군의 손에 큰아버지, 큰어머니를 잃은 루크는 은둔한 제다이 기사 오비완 케노비에게 수련을 받으며 복수를 꿈꾼다. 그리고 자신이 강력한 ‘포스’의 소유자임을 깨닫는다.‘포스’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지배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흔한 인사말이 “포스가 당신과 함께하기를”(May the Force be with you)이다. 포스는 동양의 기(氣) 개념과 유사하다. 포스를 사용하면 지적, 물리적 능력을 모두 증진시킬 수 있으며, 때로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초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

    2017.12.19 21:16

  • [백승찬의 우회도로]신춘문예 필요한가
    신춘문예 필요한가

    여러 언론사의 문학담당 기자들에게 4분기는 바쁜 시기다. 노벨문학상과 신춘문예 때문이다. 수상자를 예측할 수 없는 데다 오후 8시쯤 발표돼 마감이 쉽지 않은 노벨문학상이 단 하루의 급박함을 요구한다면, 신춘문예에는 두세 달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신춘문예는 일단 심사위원 선정이 중요하다. 신춘문예 응모작은 수가 많고 수준이 천차만별이기에, 예심 심사위원에겐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작품을 읽고 판별할 능력이 필요하다. 예심을 거친 작품들은 본심 심사위원에게 건네진다. 본심 심사위원은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 신인의 등용문이라는 신춘문예 특성상 향후의 발전 가능성까지 가늠할 안목을 가져야 한다. 게다가 심사위원 역시 꾸준히 좋은 글을 발표해 동시대 문학의 흐름에 대한 ‘감각’이 살아있음을 증명해야 하며, 문단 안팎에서 도덕적 권위까지 인정받아야 한다. 심사위원 선정에 주최 측의 정무적 감각과 정치적 의지가 은연중 포함된다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올해 경향신문은 심사위원의 성별, 세...

    2017.11.21 21:20

  • [백승찬의 우회도로]명길과 상헌의 ‘리스펙트’
    명길과 상헌의 ‘리스펙트’

    요즘 힙합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특유의 허세, 자랑, 취향 등을 뜻하는 ‘스왜그’이겠지만, 내게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단어는 존경, 존중을 뜻하는 ‘리스펙트’다. 음악평론가 강일권은 힙합에서의 ‘리스펙트’가 특정인의 인격, 행위, 업적에 대한 존경, 나 이외 다른 사람의 가치와 고유성을 인정하는 존중의 두 가지 뜻을 지닌다고 본다. 예를 들어 홍서범은 ‘한국 최초의 랩’이라 할 수 있는 ‘김삿갓’(1989)을 발표해서 존중받을 만하지만, 그가 이후 한국 힙합에 미친 영향이 크지 않고 오늘날 듣기엔 조금 촌스럽다는 점에서 존경하지 않을 수 있다. 힙합의 리스펙트란 이처럼 오묘하고 복잡한 개념이지만,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인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영화 <남한산성>을 보면서 선조들의 리스펙트를 느꼈다. 신흥대국 청의 대군이 남한산성 앞에 진을 친 채 기세를 올리고 있다. 좁은 성안의 신하들은 인조를 가운데 두고 갑론을박한다. 그 중심에는 최명길과 김상헌이 있다. 청과의 ...

    2017.10.24 20:59

  • [백승찬의 우회도로]이백, 두보, 그리고 최영미
    이백, 두보, 그리고 최영미

    이백은 시선(詩仙)이다. 신선은 인간 세상에 무심하다. 아래는 ‘월하독작(月下獨酌)’의 일부다.“꽃밭 가운데서 한 병 술을/ 친한 이 없이 홀로 마신다/ 술잔 들어 밝은 달 맞이하고/ 그림자 바라보니 셋이 되었다.”이백은 술을 마신다. 술벗은 달과 자신의 그림자뿐이다. 이백의 독작은 외롭다기보다는 고즈넉하다. 이런 시를 읽으면 여럿이 어울리는 술자리에서 도주해 고요한 가을밤 옥상에 올라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맥주라도 한 캔 따고 싶다.이백은 관직에 나갔으나, 나라나 가문이 아니라 개인의 명예를 위하는 마음이 컸다. 현종 황제 역시 이백을 실무에 능한 관료가 아니라 음풍농월하는 도사에 가깝게 대우했다. 장안에서도 이백은 늘 술에 취해 있었다. 시를 지어 올리라는 명을 받았을 때 양쪽의 부축을 받고서야 붓을 드는 일이 잦았다. 결국 천자는 속세에 어울리지 않는 이백에게 “산으로 돌아가라”고 명했다. 이백은 그렇게 평생 떠돌며 살았다. 반란에 연루돼 투옥됐다가 유형...

    2017.09.19 20:51

  • [백승찬의 우회도로]창조적 오해
    창조적 오해

    올해 첫 ‘1000만 영화’가 된 <택시운전사>의 마지막 장면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관객이 많을 것 같다. 택시운전사 만섭은 독일기자 힌츠페터를 손님으로 태우고 1980년 광주의 참상을 목격했다. 세월이 흘러 머리가 조금 희끗해진 만섭은 여전히 사람 좋은 표정으로 택시 운전대를 잡고 있다. 손님이 두고 내린 신문에서 힌츠페터가 제2회 송건호언론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본 만섭은 “자네도 많이 늙었네”라고 혼잣말한다. 그때 한 손님이 택시에 오른다. 만섭이 목적지를 묻자 손님은 답한다. “광화문으로 갑시다.” 서울의 그 많은 장소 중에 왜 하필 광화문인가. 지난겨울의 탄핵 정국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광화문이라는 장소의 상징성을 충분히 의식할 만하다. 1980년 광주와 2016년 광화문의 연관성을 해석하는 평론도 나올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킨 주권자의 의지, 직접민주주의의 힘은 1980년 광주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2017.08.22 21:13

  • [백승찬의 우회도로]‘택시운전사’에는 있고 ‘덩케르크’에는 없는 것
    ‘택시운전사’에는 있고 ‘덩케르크’에는 없는 것

    여름 극장가에 선보이는 <택시운전사>에는 있고, <덩케르크>에는 없는 것이 무엇일까. <택시운전사>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한국영화다. 독일 기자를 태우고 광주에 간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만섭의 이야기를 그렸다. 생각지도 못한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택시운전사는 시민으로서의 상식, 택시기사로서의 소임을 다해 독일 기자와 광주 시민을 돕는다. <덩케르크>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여만명 연합군의 철수 작전을 그린 영화다. 나치 독일군의 포성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연합군은 민간 선박까지 동원해 필사의 퇴각 작전을 벌인다. <택시운전사> 속 군인들은 광주의 상황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도록 갖은 방법을 쓴다. 광주에 들고 나는 모든 차량을 검문하고, 언론을 철저히 단속한다. 기백 있는 지역 기자들이 윤전기를 돌려보려 하지만, 타협적인 동료들에 의해 제압당한다. 군...

    2017.07.2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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