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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 [김호기 칼럼]‘나의 시대’를 생각한다
    ‘나의 시대’를 생각한다

    칼럼에서 주어를 ‘우리’가 아닌 ‘나’로 쓰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이다. 당시 서구 개인주의 물결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모호하다. 나는 분명하다. 나의 욕망·이익·가치를 선행하는 건 없다. ‘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한다. 너무도 당연한 이 논리가 철학에서는 자명한 이치다.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그 대표 담론이다. 그런데 내가 공부하는 사회학에서 ‘나’, 다시 말해 ‘개인’을 새롭게 발견한 것은 1980년대였다. 선구자는 울리히 벡이다. 벡은 <위험사회>에서 ‘개인으로서의 나’를 주목했다. 개인적 차원에서 위험사회론의 핵심은 ‘인지적 주권’의 위협이다. 위험사회의 도래는 이제 개인에게 자기 삶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해가야 하는 과제를 안겼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일까. 개인으로서의 내가 자유롭지, 행복하지 않은데, 사회라는 공동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벡이 말하는 ‘자유의 아이들’은 그렇게 등장했다.철학자들이 오래전 발견했던 것을...

    2021.06.22 03:00

  • [김호기 칼럼]한국 보수를 생각한다
    한국 보수를 생각한다

    나는 보수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수가 진보와 생산적으로 경쟁할 때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는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 보수는 두 차례의 혁신을 모색했다. 첫 번째, 1970년대 후반 보수는 하이에크 등의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신보수로 거듭났다. 미국 레이거노믹스와 영국 대처리즘은 대표 사례였다. 앤서니 기든스는 이 신보수를 ‘모순적 혼합물’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경제적으론 시장에서 개인의 경쟁력을 중시한 반면 정치적으론 가족 등 공동체의 보존을 중시한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모순적 성격에도 보수는 권력을 획득했고, 신보수주의 시대를 열었다. 두 번째, 2000년대 들어와 ‘제3의 길’에 맞서 보수는 울리히 벡이 말한 ‘우파적 제3의 길’을 추진했다. 제3의 길이란 영국 블레어 정부와 독일 슈뢰더 정부처럼 전통적 사회민주주의를 혁신한 기획이었다. 우파적 제3의 길이란 영국 캐머런 정부와 독일 메르켈 정부처럼 기성의 신자유주의를 혁신한 프로그램이었다. 캐머런 정...

    2021.06.01 03:00

  • [김호기 칼럼]‘가족’의 현재와 미래
    ‘가족’의 현재와 미래

    5월은 가정의달이다. 5일은 어린이날이었고, 8일은 어버이날이었다. 21일은 부부의날이다. 이 5월에는 누구나 한번쯤 가족을 돌아본다. 나의 경우 가족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이다.“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내가 기억하는 우리 세대 가족의 초상은 이처럼 시리다. 마음 아픈 풍경이 먼저 소환된다. 사회학적으로 가족이란 이채로운 존재다.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공동체다. 인간은 국가와 시장이라는 제도 속에 살아가는 동시에 가족이라는 제도 안에 터 잡고 있다. 고전적 시각에서 가족은 혼인과 출산으로 연결된, 정서적으로 더없이 친밀한 1차집단을 의미했다.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선 핵가...

    2021.05.11 03:00

  • [김호기 칼럼]4·7 재·보선과 2022년 대선
    4·7 재·보선과 2022년 대선

    4·7 재·보궐 선거가 긴 여운을 남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지난해 총선과는 반대의 결과였다. 여당 참패, 야당 압승이었다. 민심이 1년 만에 역전했다. 우리 정치는 이만큼 역동적이다. 둘째, 내년 3월9일 대선의 전초전이었다. 정치 지형이 보수 대 진보의 경쟁 국면으로 변화했다. 이 국면은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파국적 균형’의 성격을 드러낸다. 만일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또 한번 격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2주 가까이 선거 분석들이 쏟아졌다. 나 역시 선거가 치러진 주말 KBS 심야토론에 패널로 참여해 의견을 내놓았다.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에 대한 분노가 직접적 원인이었다면, ‘내로남불’이라 불리는 정부와 여당의 ‘선택적 공정’에 대한 심판이 배경적 원인을 이뤘다. 집이라는 현실적 삶의 주요 조건과 신뢰라는 정치적 행위의 기본 조건이 이중적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선거 전략이나 캠페인만으로 중도층의 이반을 만회하기란 처음부터 어려웠다....

    2021.04.20 03:00

  • [김호기 칼럼]‘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2)
    ‘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2)

    시대정신은 단수일까, 아니면 복수일까.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시대정신은 ‘나라 만들기’를 위한 경제성장의 산업화 시대정신에서 정치·사회발전의 민주화 시대정신으로 이어졌다. 민주화 시대까지 시대정신은 단수였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민주화 시대일까. 어떤 이는 민주화 시대라고 보고, 다른 이는 민주화 이후의 시대라고 파악한다. 한편에선 경제민주화 등 민주화 과제가 미완이기에 민주화 시대가 지속된다고 엄호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민주화가 갖는 유토피아적 에너지가 소진됐기에 민주화 이후 시대가 열렸다고 강변한다. 민주화 이후 시대의 명명은 세계화, 선진화, 복지국가 등 여러 개념들이 제안됐다. 세계화는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에 국민 다수가 소망하는 가치의 집약인 시대정신에 어울리는 개념이 아니다. 선진화와 복지국가는 시대정신에 부합한 개념이지만, 사회적 합의를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선진화는 보수적 시민들에게 설득력이 높았던 반면, 복지국가는 진보적 시민들에게 호...

    2021.03.30 03:00

  • [김호기 칼럼]‘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 (1)
    ‘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 (1)

    정확하게 1년 후, 2022년 3월9일에는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대선 국면이 열리는 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 대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당장 시대란 이름을 붙이는 것은 대통령 이름이다. 21세기에 들어와 노무현 시대, 이명박 시대, 박근혜 시대가 있었고, 현재는 문재인 시대가 진행되고 있다. 이 시대와 대선은 곧바로 시대정신을 생각하게 한다. 시대정신이 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비전이라면, 대선은 이 시대정신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을 이뤘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내건 시대정신은 낡은 정치 청산이었고, 2007년 이명박 후보가 내건 시대정신은 선진일류국가였다. 2012년 박근혜 후보가 내건 시대정신은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였고, 2017년 문재인 후보가 내건 시대정신은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이었다.대선 과정에서 제시된 시대정신이 물론 집권 과정에서 그대로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선진일류국가보다는 신자유주...

    2021.03.09 03:00

  • [김호기 칼럼]시인 김수영 탄생 100년을 기억하며
    시인 김수영 탄생 100년을 기억하며

    사회학을 공부해온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인은 김수영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민주화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이들은 김수영으로부터 결코 작지 않은 감성적·정신적 세례를 받았다. 바로 올해는 김수영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김수영은 1921년 11월2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김수영의 문학적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나의 전공을 넘어서는 일이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자유의 지식인’으로서의 김수영이다. 김수영은 자유주의자다. 스스로 밝혔듯 김수영은 우파나 좌파가 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의 분방한 상상력과 예민한 자의식은 부국강병을 중시하는 우파나 사회혁명을 강조하는 좌파와는 태생적으로 어울리기 어려웠다. 자신의 사회적 활동을 펼쳤던 1945년 광복에서 1960년대 후반까지 김수영은 우리 지성사에서 이채로운 존재였다. 사회학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김수영의 자유주의가 개인적 영역의 반성에 머문 게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성찰로 진화해 갔다는 점이다. “195...

    2021.02.16 03:00

  • [김호기 칼럼]통합의 두 가지 조건
    통합의 두 가지 조건

    먼저 이 칼럼은 어떤 편향을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통합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고, 그 의미를 반추해 보고 싶은 게 이 글을 쓴 이유다. 그 생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통합은 갈등과 짝하는 개념이다. 오늘날 갈등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노사갈등을 포함한 계급갈등, 이념·세대·지역갈등 그리고 인종갈등 등으로 나뉜다. 이러한 갈등들을 완화하거나 해소하는 게 바로 통합이다. 대체적으로 갈등이 심각한 나라일수록 갈등에 상응하는 통합에 대한 요구가 높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현대사회가 기본적으로 갈등사회라는 점이다. 현대사회에서 개인 및 집단의 가치와 이익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갈등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다원적 가치와 이익을 둘러싼 갈등을 적절히 조정하는 데 있으며, 통합 역시 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둘째, 근대사회에서 통합에 대한 고전적인 정치적 견해를 선보인 이는 영국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다. 정...

    2021.01.26 03:00

  • [김호기 칼럼]2021년의 시대정신
    2021년의 시대정신

    1929년 대공황에 맞서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정부가 제시한 뉴딜의 비전은 ‘3R’이다. ‘구제(Relief), 회복(Recovery), 개혁(Reform)’이 그것이다. 이 3R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선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 가운데 맨 앞에 놓인 구제는 의학적 구제와 경제적 구제로 나뉜다. 의학적 구제는 백신 보급이 관건이다. 올겨울까지 대다수 나라들이 백신 보급을 완료함으로써 2년 동안 갇혀 있던 팬데믹의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날 것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1월4일 현재 9000만명에 가까운 확진자는 올해 1억명을 훌쩍 넘길 것이고, 200만명에 육박하는 사망자 역시 300만명에 가까이 도달할 것이다. 어느 나라든 백신 보급이 신속히, 원활히 이뤄져야 할 까닭이다.경제적 구제는 경제적 회복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어느 나라든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부분은 소상공인 등 제조업과 서비스부문이다. 따라서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긴급 생활...

    2021.01.05 03:00

  • [김호기 칼럼]코로나19 팬데믹의 사회학
    코로나19 팬데믹의 사회학

    2020년 올해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60년에 태어난 내게 지구적 차원에서 이 팬데믹만큼 강렬한 사건은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도 이에 필적하진 못했다. 상점 문이 닫히고, 학교 문이 닫히고, 공공시설 문이 닫히고, 급기야는 누군가 만나고 싶다는 마음의 문까지 닫히는 것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팬데믹은 우리 인류 삶의 제도적 터전인 국가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어느 나라든 경제적 방역을 위한 ‘21세기판 뉴딜’을 소환했고, 이 뉴딜을 위한 ‘강한 정부’를 요청했다. 나아가 강한 정부는 고색창연한 민족주의를 호명했고, 이 민족주의는 글로벌 거버넌스를 무력화시켰다. 의학적 방역과 경제적 방역은 물론 통합을 위한 사회적 방역과 안전을 위한 심리적 방역까지, 이 모든 대처들에 가장 효율적인, 그리고 최후의 보루는 당연히 ‘강한 정부, 유능한 국가’일 수밖에 없었다.더하여, 팬데믹은 정치적 포...

    2020.12.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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