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칼럼]‘나의 시대’를 생각한다](http://img.khan.co.kr/news/c/300x200/2021/06/22/l_2021062201002549900219531.jpg)
칼럼에서 주어를 ‘우리’가 아닌 ‘나’로 쓰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이다. 당시 서구 개인주의 물결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모호하다. 나는 분명하다. 나의 욕망·이익·가치를 선행하는 건 없다. ‘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한다. 너무도 당연한 이 논리가 철학에서는 자명한 이치다.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그 대표 담론이다. 그런데 내가 공부하는 사회학에서 ‘나’, 다시 말해 ‘개인’을 새롭게 발견한 것은 1980년대였다. 선구자는 울리히 벡이다. 벡은 <위험사회>에서 ‘개인으로서의 나’를 주목했다. 개인적 차원에서 위험사회론의 핵심은 ‘인지적 주권’의 위협이다. 위험사회의 도래는 이제 개인에게 자기 삶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해가야 하는 과제를 안겼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일까. 개인으로서의 내가 자유롭지, 행복하지 않은데, 사회라는 공동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벡이 말하는 ‘자유의 아이들’은 그렇게 등장했다.철학자들이 오래전 발견했던 것을...
2021.06.22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