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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김호기 칼럼
  • [김호기 칼럼]40대를 생각한다
    40대를 생각한다

    지난주 한 토론회에서 우리나라 40대의 사회학에 대해 발표했다. 40대를 어떻게 부를까를 놓고 내가 선택한 이름은 ‘낀낀세대’다. ‘낀낀’에는 86세대와 2030세대 사이에 놓인, 앞과 뒤가 다 막혀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낀낀세대는 20대였을 때 ‘X세대’라 불렸다. X세대는 작가 더글러스 쿠플랜드의 소설 <X세대>에서 유래했다. ‘X’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앞선 냉전세대나 히피세대와는 다른, 그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였다. 이들은 기성세대와 구별되는 탈권위적 의식을 갖고 있었고, 소비문화에 익숙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성을 중시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이 세대를 ‘자유의 아이들’이라고 이름 짓기도 했다.우리 사회에서 X세대의 다른 이름은 ‘신세대’였다. 지금 마흔을 넘긴 이들은 1990년대 초·중반 뜨거웠던 신세대 논쟁을 기억할 것이다. 논쟁의 불을 댕긴 것은 1993년 미메시스가 발표한 책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였다. 그 부...

    2019.09.03 20:50

  • [김호기 칼럼]광복절 74돌을 맞이하며
    광복절 74돌을 맞이하며

    세계화 담론이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당시 정부는 세계화를 국정 과제로 적극 추진했다. 세계화는 국가 간 교류가 증대함으로써 국가 간 관계가 새로운 변화를 겪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 간 교류의 양적 증대가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였다면, 그 관계의 질적 변형은 세계화(globalization)로 명명됐다. 세계화 현상을 ‘인터내셔널리제이션’이 아니라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세계화를 지탱해온 양 축은 정보혁명과 신자유주의였다. 정보혁명이 24시간 투자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금융자본이 세계경제를 주도하게 했다면, 신자유주의는 자유화·탈규제·민영화를 내세워 ‘미국식 자본주의’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강제하게 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말한 ‘보수의 시대’란 1980년대부터 열린 이 신자유주의 시대 또는 세계화 시대를 함의한다.세계화 시대에 제동을 건 ...

    2019.08.13 20:35

  • [김호기 칼럼]최인훈을 기억하며
    최인훈을 기억하며

    얼마 전 뜻밖의 모임에 초대 받았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최인훈 선생의 1주기 모임에 와서 추모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최인훈 전집>을 펴낸 문학과지성사의 부탁이었다. 청소년 때부터 존경해온 선생을 추모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뜻깊은 일이었지만 문학을 잘 모르는 사회학 연구자이기에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선생의 가족이 추모사를 요청했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게 됐다. “아내가 물컵을 찾아 내게 주면서 말했다. / ‘저더러 애들 데리고 왔다 가라시는군요.’ /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신다. / ‘응 그러시는군. 일부러 내가 올 건 없고, 오겠거든 애들 데리고 당신을 보내라는군.’ ”소설 <화두>의 마지막 장면이다. 미국에 계신 선생의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통화를 마친 다음 선생과 아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선생의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라 손주들을 보고 싶어 하신다. 이 장면을 소설의 마지막에 놓아둔 까닭은 뭘까. 그 답변은 <화두>...

    2019.07.23 20:54

  • [김호기 칼럼]‘절반의 모더니티’로서의 한국 사회
    ‘절반의 모더니티’로서의 한국 사회

    최근 흥미로운 사회의식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아니 안타깝고 서늘한 자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V)’가 그것이다. 이 연구보고서는 계층갈등, 젠더갈등, 세대갈등, 공공갈등을 중심으로 사회갈등과 사회통합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보고서에서 나의 시선을 특히 끈 내용은 두 가지다. 먼저 타인 신뢰에 관한 것이다. 조사 문항은 ‘내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에 대한 ‘동의’와 ‘반대’로 이뤄져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의(‘매우 동의’와 ‘약간 동의’)는 63.15%이고, 반대(‘매우 반대’와 ‘약간 반대’)는 13.25%다. 이어 나를 이용할 가능성에 대한 인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조사 문항은 ‘만일 조심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용하려 들 것이다’에 대한 동의와 반대로 구성돼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의는 54.24%이고, 반대는 16.22%다.이런 조사 결과가 새로운 것은 아...

    2019.07.02 20:55

  • [김호기 칼럼]‘1984’ 출간 70년, 조지 오웰을 기억해야 할 이유
    ‘1984’ 출간 70년, 조지 오웰을 기억해야 할 이유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긴밀히 연관돼 있다. 인문학 가운데 철학과 역사학은 정치학·경제학·사회학 등 사회과학의 기초를 이뤄왔다. 그러면 문학은 사회과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문학 가운데 사회과학에 영감과 통찰을 안겨준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1984>를 들고 싶다. 특히 <1984>는 사회학·정치학·신문방송학 등에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오웰은 이 소설에서 당대 현실을 해부한다. 그가 겨냥한 것은 파시즘과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 비판이다. 둘째, 오웰은 미래 사회를 전망한다. 그가 우려한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감시사회로서의 미래다. 오웰이 예견한 것은 디스토피아 세계다. 권력에 의한 감시와 통제라는 우울하고 섬뜩한 오웰의 경고는 정보사회에 대한 선구적인 통찰을 이뤄왔다. 널리 알려졌듯 <198...

    2019.06.11 20:35

  • [김호기 칼럼]가족을 생각한다
    가족을 생각한다

    지난해 2월 말부터 올해 5월 초까지 한국일보에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라는 기획을 매주 연재했다.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서부터 현재까지 우리 지성사를 돌아보려는 게 그 의도였다. 60명의 지식인들이 그 대상이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다룬 이들은 시인·소설가·평론가를 포함한 문학가들이었다. 문학가들이 다룬 주제들은 그렇다면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 민족과 역사와 사회가 일차적인 관심사였다. 그런데 이 못지않게 우리 문학가들의 시선을 끈 주제는 가족이었다. 60명 중 한 사람인 박완서의 소설 <엄마의 말뚝>은 대표적인 사례였다.“이사간 날, 첫날 밤 세 식구가 나란히 누운 자리에서 엄마는 감개무량한 듯이 말했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밖이긴 하지만….’” 셋방살이를 끝내고 서울 현저동 꼭대기에 집을 장만해 이사한 날 밤 장면이다. 말뚝이 뜻하는 바는 세상의 거센 바람 속에서 식구들을 지켜줄 든든한 ...

    2019.05.21 20:37

  • [김호기 칼럼]우리 시대를 생각한다
    우리 시대를 생각한다

    내가 공부하는 사회학은 ‘제3의 사회과학’이라 불린다. 근대 사회과학의 역사에서 정치학, 경제학에 이어 세 번째로 체계화됐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정치·경제를 제외한 계급·조직·세대·문화 등을 연구 영역으로 삼는다. 동시에 사회학이 다른 사회과학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정치, 경제, 문화를 포괄하는 전체사회를 분석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정치학, 경제학과 비교해 사회학이 때때로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사회학의 이런 태생적 특징에서 기인한다. 사회 전체의 변화를 조망하는 게 사회학의 과제라면, 사회학의 시각에서는 2010년대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몇 달 남아 있지 않은 이 2010년대를 후대의 역사가들은 예상하건대 대침체 이후 암중모색기였다고 부를 가능성이 높다. 대침체란 2008년 금융위기를 지칭한다. 금융위기가 1980년대 이후 공고화된 신자유주의 질서를 해체시키기 시작한 이래, 특히 서구사회에서 지난 10년은 새로운 질서로 가는 변화와 혁신, 그리고 그 이면을 이루는 ...

    2019.04.30 20:35

  • [김호기 칼럼]임시의정원 100주년을 기념하며
    임시의정원 100주년을 기념하며

    4월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만든 조직이 ‘임시의정원’이었다. 임시의정원은 1919년 4월10일 중국 상하이에서 출범했다. 의장에는 이동녕이, 부의장에는 손정도가 선출됐다. 임시의정원은 다음날인 11일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란 임시헌장 제1조는 널리 알려진 구절이다. 임시헌장 제2조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해 이를 통치함”으로 돼 있다. 이 규정은 임시의정원이 오늘날 국회가 맡은 역할인 입법 기능과 행정부의 견제 및 균형 기능을 갖고 있음을 알려준다. 임시헌장 제10조는 “임시정부는 국토 회복 후 만 1년 내에 국회를 소집함”으로 규정돼 있다. 독립을 이루면 정식으로 국회가 될 것이기에 임시의정원에 ‘임시’라는 말을 붙인 것이다.임시의정원이 기여했던 중요한 일들 가운데 하나는 ‘대...

    2019.04.09 20:36

  • [김호기 칼럼]한 시민 사상가에 대한 기억
    한 시민 사상가에 대한 기억

    대학에 입학한 것은 1979년 봄이었다. 유신체제가 종막을 향해 가던 시절이었다. 사회학과가 지금은 사회과학대학에 있지만 그때는 문과대학에 속해 있었다. 당시 널리 알려진 문과대학 교수는 세 사람이었다. 국문학과 박두진 교수, 사학과 김동길 교수, 철학과 김형석 교수였다. 세 교수 가운데 내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이는 김형석이었다. 그는 고교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인 <고독이라는 병>과 <영원과 사랑의 대화>의 저자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대개 그러하듯, 대학에 입학해 사회과학을 배우기 전에는 제도와 구조보단 개인과 실존을 중시한다. 유신독재의 그늘이 짙었던 1970년대 중·후반, 그 그늘을 만들었던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등장과 작동 방식에 대한 사회과학 지식이 부족했던 10대 후반인 내게 고독, 사랑, 영원과 같은 어휘들은 우울한 시대적 분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개인적 위안을 안겨줬다. 그땐 몰랐지만 구조적 강압이 클수록 자아는 추상의 개념들로 쌓아올린...

    2019.03.19 20:36

  • [김호기 칼럼]대한민국 미래 100년을 꿈꾸며
    대한민국 미래 100년을 꿈꾸며

    어느 나라든 모더니티 역사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친 역사적 전환점이 있기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1776년 ‘건국’이 그러하다면, 프랑스의 경우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그런 위상을 가진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이런 역사적 전환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갖는 사건은 1919년 3·1운동일 것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서 물론 한 사건이 모든 것을 좌우하진 않는다. 3·1운동 이전에 동학농민혁명, 만민공동회, 광무개혁, 의병투쟁 등 역사적 분수령들이 존재했다. 이런 대내적 사건들이 누적되어 변화된 국제 환경 아래서 분출한 것이 바로 3·1운동이었다. 우리 모더니티 역사에서 3·1운동이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3·1운동과 그 결과로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우리나라가 제국(帝國)에서 민국(民國)으로,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통에서 현대로의 일대 전환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감회가 남다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19.02.2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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