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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칼럼
  • [김호기 칼럼]사회적 가치의 재발견
    사회적 가치의 재발견

    지난 몇 년간 가장 좋아하고 존경해온 사회이론가는 유태인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다. 바우만은 국내에 널리 알려진 반면, 세넷은 큰 관심을 끌진 못했다. 내가 세넷을 주목하게 된 것은 그의 문제작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이 책의 원제목은 ‘인간성의 부식(The Corrosion of Character)’이다. 세넷이 분석한 것은 신자유주의 아래에서의 직업과 인간성의 변화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유연성은 개인 직업 선택의 유연성을 강제하고, 이 유연성의 증대가 인간성의 침식을 가져왔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인간성이란 스스로를, 동시에 타자를 존중하는 태도와 가치를 뜻한다. 이를 위해선 자아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에 대한 연대가 요구된다. 문제는 1980년대 이후 지구적 영향력을 강화해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개인의 삶을 표류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공동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전쟁터로 전환시켜 버렸다는 데 ...

    2018.03.27 21:02

  • [김호기 칼럼]100세 시대의 개막
    100세 시대의 개막

    일주일에 하루는 산행을 간다. 자주 가는 곳은 가평 53산이다.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을 필두로 명지산, 연인산, 운악산, 유명산 등 가평에는 좋은 산들이 많다. 땀 흘리며 능선에 올라 정상을 향해 걸으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다. 가평 53산을 찾아가면서 발견한 것은 산행 중 만나는 이들이 주로 어르신들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변화했음을 가평 53산 산행에서 실감하는 셈이다.광복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명은 빠르게 늘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남자의 기대수명(출생아가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연수)은 79.3세이고, 여자는 85.4세다. 기대여명(특정 연령자가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연수)의 경우, 60세를 기준으로 볼 때 남자는 82.5세이며, 여자는 87.2세다. 환갑을 맞이한 이들이 평균 20년 이상은 더 살 수 있다는 통계다.문제는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게 반가운 일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대수명이 ...

    2018.03.06 21:26

  • [김호기 칼럼]대침체 이후의 포퓰리즘
    대침체 이후의 포퓰리즘

    젊은 시절 독일에서 공부한 탓인지 서유럽 정치에 관심이 적지 않다. 당장 3월4일 치러질 이탈리아 총선에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五星)운동’이 집권에 성공할 것인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최근 오성운동은 30%에 육박하는, 단일 정당으론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오성운동이 다른 정당과의 연대를 거부하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선 우파 연립정부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주목할 것은 포퓰리즘이 2008년 금융위기라는 ‘대침체’ 이후 서구 정치변동을 이끌어온 핵심 동력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과 ‘샌더스 현상’,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전진하는 공화국’,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영국의 ‘독립당’,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덴마크의 ‘국민당’, 노르웨이의 ‘진보당’, 그리스의 ‘시리자’, 그리고 스페인의 ‘포데모스’에 이르기까지 포퓰리즘이 서구 정치사회는 물론 시민사회를 뒤흔들어 왔다.포퓰리즘을 특징짓는 현상은 두 가지...

    2018.02.13 21:05

  • [김호기 칼럼]청년세대의 내면세계
    청년세대의 내면세계

    사회 분석에서 세대는 유용한 동시에 애매한 변수다. 유용성은 세대 변수의 설명력에서 주어진다. 세대 투표와 세대 갈등, 청년 문화와 실버 경제 등이 보여주듯 세대는 분명 사회변화를 이끄는 동인이다. 하지만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이념 또는 계층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 세대 변수의 애매성은 여기서 비롯된다.눈치 빠른 독자들은 내가 왜 세대 문제를 꺼냈는지 간파했을 듯하다. 새해 들어 단연 주목받는 이슈는 청년세대다. 가상통화, 평창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등 정부 정책에 대한 20대의 비판 여론이 높다. 가상통화 대책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동계올림픽에 대한 청년세대의 반응에 정부는 물론 기성세대는 상당히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기성세대는 청년세대를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50대인 나 역시 이들의 내면세계를 잘 알고 있진 못하다. 다만 20대를 가르치는 게 직업이기에 그들을 가까이 관찰할 수 있었다. 이들의 집합적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비교적 접...

    2018.01.23 20:48

  • [김호기 칼럼]적폐청산, 그 다의성과 필요성
    적폐청산, 그 다의성과 필요성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말의 하나는 적폐청산이다. 적폐청산은 대선 과정에서 뜨거운 쟁점을 이뤘다. 5월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이를 100대 국정과제의 첫 번째로 삼았다. 적폐청산에 담긴 사전적 의미는 누적된 폐단을 깨끗이 씻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적폐의 동의어는 앙시앵 레짐, 즉 낡은 체제다. 낡은 체제를 청산하라는 것은 박근혜 정부를 조기 퇴진시킨 촛불시민혁명의 가장 중요한 요구의 하나였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출범한 정부인 만큼 낡은 질서를 혁파하는 적폐청산은 새 정부의 당연한 과제였다.정부의 적폐청산에 국민 다수는 호응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적폐에 담긴 다의성(多義性)이다. 국민들이 파악하는 적폐의 대상은 제도·관행·가치·문화·인물 등 다양하다. 예컨대, 천민자본주의(제도), 갑질(관행), 권위주의(가치), 가부장주의(문화), 최순실(인물) 등이 그 목록을 이뤘다. 좀 더 넓게 보면 청...

    2018.01.02 20:51

  • [김호기 칼럼]보수주의 2.0
    보수주의 2.0

    올해 한국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가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보수의 위기라는 게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시작된 보수의 위기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민주화 시대 30년을 돌아보면 보수가 늘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자민련의 존재에서 볼 수 있듯 보수는 나뉘어 있기도 했고, 2004년 탄핵 사태처럼 정치적 위기를 겪은 적도 있었다. 문제는 현재 보수가 직면한 위기가 앞선 위기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자민련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이 보수 주류로서의 안정적 지지를 유지했고, 2004년 총선의 경우에도 진보에 맞설 교두보를 확보했다. 누구는 여소야대라는 정치 지형을 주목해 보수의 위기가 일시적 현상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현재 보수는 과거와는 다른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다.그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2004년 상황과 비교할 때 보수의 구심을 이룰 확실한 리더가 눈에 띄지 않는다. 2004년 당시에는 ...

    2017.12.12 20:51

  • [김호기 칼럼]외환위기 이후의 ‘망탈리테’
    외환위기 이후의 ‘망탈리테’

    “각각의 시대는 심성적으로 자신의 우주를 만든다.” 프랑스 역사학자 뤼시앵 페브르의 <16세기의 무신앙 문제> ‘머리말’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심성(心性)이 ‘망탈리테(mentalites)’다. 망탈리테란 특정한 시대에 개인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의식 및 무의식을 지칭한다. 지적인 것은 물론 정서적인 것을 망라한 태도와 정조가 망탈리테를 이룬다.내가 망탈리테를 주목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망탈리테는 논리적 사유와 정서적 감정을 포괄한다. 망탈리테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개인의 삶을 강제하는 시대적 구속에 대한 심층적 독해를 가능하게 한다. 둘째, 바로 이 점에서 망탈리테는 ‘시대정신(Zeitgeist)’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시대정신이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을 말한다. 현재를 이루는 양축이 사회 제도와 집단 심성이라면, 이 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어렵다.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를...

    2017.11.21 14:12

  • [김호기 칼럼]촛불혁명, 회고와 전망
    촛불혁명, 회고와 전망

    촛불혁명이 일어난 지 1년이 됐다. 현재의 시점에서 이 혁명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를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사회학 연구자의 시각에서 살펴보고 싶다.촛불혁명에 대한 가장 온당한 평가로 나는 독일 에베르트재단이 촛불혁명에 참여한 우리나라 국민을 올해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들고 싶다. 에베르트재단은 “민주적 참여권의 평화적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는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다. 대한민국 국민의 촛불집회가 이 중요한 사실을 전 세계 시민들에게 각인시켜 줬다”고 말했다.에베르트재단이 적절히 지적했듯, 촛불을 관통하는 정신은 민주적 참여권과 생동하는 민주주의다. 지난해 수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파괴한 국정농단 세력을 심판하려는 적극적 참여와 정당한 저항의 권리 표출이었다. 이 당연한 권리의 행사는 ‘인민(demos)의 지배(kratia)’라는 민주주의(democracy) 본래의...

    2017.10.31 15:31

  • [김호기 칼럼]전쟁은 안된다
    전쟁은 안된다

    21세기에 들어와 올해만큼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의 시간’과 ‘분단체제의 시간’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나날은 없는 듯하다. 민주화의 시간에서 보면 지난해 가을에 일어난 촛불시민혁명은 문재인 정부라는 세 번째 진보적 정권을 출범시켰다. 분단체제의 시간에서 보면 올해 들어 북·미 간 갈등의 고조는 한반도 평화는 물론 동북아 정세를 크게 요동치게 하고 있다. 두 시간이 이렇게 충돌하면서 남북관계가 다른 모든 이슈들을 압도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이러한 국면에서 많은 국민의 의식에 저류(低流)하는 것은 무력감과 불안감이다. 외국 언론들은 태평한 우리 사회를 기이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이는 외부의 피상적 관찰이다. ‘분노와 화염’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 하나의 수단’ ‘국가 핵무력 건설의 역사적 대업’ 등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이 무시무시한 말폭탄들을 주고받고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르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우발적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지는데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뾰족한...

    2017.10.10 20:50

  • [김호기 칼럼]97년체제를 넘어서
    97년체제를 넘어서

    올해는 1987년 6월항쟁 30년과 1997년 외환위기 20년이 된다. 여러 매체들에서 6월항쟁 30년을 기리는 기획이 제법 진행됐지만, 외환위기 20년을 돌아보는 기획은 드문 편이었다. 외환위기가 1997년 10월 이후에 본격화됐기 때문에 다음 달부터 외환위기 20년을 평가하는 기획들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외환위기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넓고 깊었다. 6월항쟁이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면,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가져왔다. 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사회모델은 흔히 ‘97년체제’라 불린다. 체제(regime)란 경제와 사회가 조응된 관계를 말하며, 특히 물적 기반인 축적체제를 중시한다. 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외환위기를 계기로 하여 우리 사회는 정부가 발전을 선도하는 ‘전통적 발전국가’의 61년체제에서 발전국가의 요소와 신자유주의의 요소가 혼합된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인 97년체제로 변화했다.97년체제가 갖는 주요 특징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신자유주의 발전전...

    2017.09.12 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