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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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두율 칼럼]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30여년 전의 일이다. 1988년 12월, ‘내재적’ 북한연구 방법을 제기한 ‘북한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나의 짧은 글은 많은 논쟁을 낳았다. 이를 계기로 해서 북한연구에 활력도 생겼지만 일부에서는 단순히 북한체제를 옹호하는 이론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소련이 해체되었고 중국에서도 톈안먼 사태가 발생, 지구적 범위에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완전 승리를 구가하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담론이 풍미하는 분위기 속에서 내재적 연구 방법은 대상이 바로 북한이었기에 예외적인 주장이라고 볼 수 있었다. 사회주의 대국이 해체되거나, 아니면 극심한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작고 낙후한 북한이 결코 더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처럼 되었다. 단지 그 시기가 언제 올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북한에 대한 이러한 수준의 이해를 보여준 구체적인 실례가 바로 1994년 10월에 체결된 북·미 간의 제네바 협약 때 클린턴 행정부의 협상...
  • [송두율 칼럼]트럼프의 유산

    트럼프의 유산

    지난 1월6일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건물 안팎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태를 두고 거의 매일 엄청난 양의 논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의 대부분은 사태의 발단은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가 이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그의 지지자를 선동한 데 있다고 본다. 13일 하원에서 통과된 그의 탄핵 사유도 내란 선동이었다.이번 사태를 전하는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두 장면을 동시에 떠올렸다. 하나는 1981년 2월23일 새 총리를 선출하는 스페인의 국회의사당에 일단의 무장 경찰이 난입했던 장면이다. 1976년에 사망한 독재자 프랑코의 추종세력인 이들에 대한 군 통수권자인 후안 칼로스 1세의 단호한 거부로 사태는 수습되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무장경찰이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자리에 앉아 여유 있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공산당 당수 산티아고 카릴리오의 모습이었다. 일생을 파시스트와 싸웠던 그이기에 그들의 위협 앞에서도 담담했다. 다른 하나는 비극적이었지만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1...
  • [송두율 칼럼]코로나 거울

    코로나 거울

    ‘잃어버린 1년’이라는 말이 나도는 이 한 해의 끝자락에 우리는 와 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올해 봄에 있었던 1차 록다운에 이어 성탄절과 연말을 코앞에 두고 유럽 곳곳에서 2차 록다운이 시작되고 있다. 내가 반세기 넘게 살았던 독일은 물론, 1년 전에 이주해서 사는 포르투갈도 그렇다. 한국의 사정은 이보다 낫다고 하지만 낙관만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오랫동안 과도한 소비문화와 결합한 축제지만 기독교 문화권에서 성탄절이 지니는 특수한 의미를 생각할 때 록다운의 충격은 역시 작지 않다. 가톨릭의 전통이 강한 포르투갈에서 성탄절은 가족과 친지가 만나는 일 년 중 가장 귀하게 여기는 축제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놓칠세라 노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코로나 무료검진을 받기 위해서 보건소 앞에 줄을 선다. <전염병과 사회>의 저자 프랭크 스노든은 전염병은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를 통해 우리는 장래를 어둡게도, 밝게도 볼 수 있다는 점...
  • [송두율 칼럼]11월 단상

    11월 단상

    11월의 설악산 단풍을 담은 사진을 받아보았다. 독일에선 볼 수 없는 자연이 빚어낸 화려한 색조다. 독일의 11월은 비, 바람 그리고 어두움이 가득 찬 시간의 시작이다. 뛰어난 토목기사이자 시인인 하인리히 자이델은 시 ‘11월’에서 “이런 달을 정말 칭찬해야 한다/ 아무도 이처럼 날뛰지 않는다/ 아무도 이처럼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다/ 게다가 햇살도 없이/ 아무도 이처럼 구름 속에서 시끄럽게 굴지 않는다/ 아무도 이처럼 폭풍으로 으스스하게 만들지 않는다/ 모든 것을 얼마나 축축하게 만드는지/ 그렇다, 정말 굉장하다”라고 독일의 11월 날씨를 저주했다. 작년 여름 포르투갈의 따뜻한 해변마을로 이주하기 전까지 아침 운동 때 나는 거의 매일 이 시인이 누워있는 공동묘지 옆을 지났다. 힘을 잃어가는 햇살이 젖은 땅 위에 뒹구는 낙엽 위에 외롭게 서 있는 나무들을 위로하는 11월은 죽은 자의 영혼을 기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독일에선 ‘만성절’, 전몰 장병과 희생자를 기리는 ‘국민...
  • [송두율 칼럼]‘좋은 사람’은 어디에

    ‘좋은 사람’은 어디에

    많은 전문가가 이미 예견했던 것처럼 유럽은 가을로 접어들면서 다시 코로나19 위기로 치닫고 있다. 백신이나 확실한 치료 방법이 없는 상황은 올해 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동안 방역수칙의 준수나 방역행정의 개선 등으로 위기에 대처한 경험은 있으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위기의 장기화에 따른 누적된 피로감은 종종 사회적 불만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코로나 위기 관리는 흡사 정치의 모든 것처럼 되었고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코로나가 창궐하는 지역이나 국가에서 오는 여행객의 이동을 제한하는 조치는 유럽 통합이라는 오래된 희망마저 어둡게 만든다. 유럽이 냉전기를 포함한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이렇게 이동과 이주의 자유가 심하게 제한당한 적이 없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상황을 일변시켰다.한편에서는 코로나 위기에도 불구하고 ‘지구화’로 표현되는 일련의 현상 가운데 정보를 포함한 시장경제적인 상호의존성의 고도화는 지속할 것으로 내다본다....
  • [송두율 칼럼]음모론의 시대

    음모론의 시대

    지금 유럽은 코로나19와의 힘겨운 전쟁 중에 이에 못지않은, 또 다른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바로 음모론과의 싸움이다. 유럽연합은 웹사이트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가짜 정보와의 싸움이라는 페이지를 설정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사실과 거짓을 어떻게 구별하며 온라인 매체에 떠다니는 각종 음모설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은 반드시 그 배후의 비밀스러운 힘으로 조직된다고 믿는 음모론은 우선 세계를 선과 악의 세계로 가려서 본다. 이어서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악의 화신으로 지목하고 이를 집중 공격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계 지배를 꿈꾸는 중국이 우한에 있는 한 실험실에서 의도적으로 배양해 세계에 퍼뜨렸다거나 빌 게이츠가 자신이 개발한 코로나 백신을 통해 전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게 지금 나도는 대표적 음모설이다.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각종 음모론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사회가 혼란에 휩싸여 미래에 대한 전망이 ...
  • [송두율 칼럼]믿음과 앎

    믿음과 앎

    유럽에서는 지금 코로나19 확산 경고등이 다시 켜졌다. 나름대로 위기관리를 잘해왔던 독일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여름 휴가철을 보내면서 많은 사람이 긴장을 풀고 방역수칙을 잘 지키지 않는 데 원인이 있다.코로나19 사태 대응에서 지금까지 모범적인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한국의 최근 상황에 관한 보도나 논평도 눈에 띈다. 특히 ‘신천지교회’나 ‘사랑제일교회’와 같은 일부 개신교가 원인이 된 코로나19 확산에 관심을 보인다. 집단감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주일 대면예배를 꼭 보아야 한다는 한국교회 안팎의 복잡한 사정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진단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각종 음모설이 난무한다. 빌 게이츠가 코로나19 칩을 개발해 많은 사람에게 이식,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거나 코로나19가 중국이 세계제패를 위해 개발한 생물무기라는 등 음모론의 끝이 없다. 사랑제일교회도 질병관리본부가 과학적으로 검증 안 된 방식으로 누적확진자를 집계, 국민의 눈과 귀를 속...
  • [송두율 칼럼]수치심의 역설

    수치심의 역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크고 작은 수치심을 경험한다.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하는 집단의 잘못 때문에 발생하는 불행한 정서다. 이는 그러나 죄책감과는 다르다. 수치심은 행위자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아 밖으로 나오기 힘든 데 반하여 죄책감은 용서를 비는 것처럼 행위자의 밖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심리상담에서는 수치심이 있는 곳에 죄책감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행위자가 적극적으로 자기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한다. 너새니얼 호손의 잘 알려진 소설 <주홍글씨>가 있다. 여주인공 프린은 간통죄로 인해 가슴에 주홍글씨 A를 항상 달고 살아야만 했지만 이를 감수하고 강인한 여성으로 거듭난다. 청교도 목사 딤스데일은 그가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지녔던 주홍글씨 A를 공개하면서 자신이 바로 간통의 장본인임을 고백하고 죽는다. 프린과 딤스데일의 주홍글씨는 같지만 프린의 것은 죄책감, 딤스데일의 그것은 수치심의 상징이다. 이처럼 죄책감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 [송두율 칼럼]정치와 언어

    정치와 언어

    ‘막말 정치인’을 다음 국회에서는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컸던 선거는 이미 끝났지만 국회는 아직도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거대여당을 만들어준 ‘민의’를 내세우며, 야당은 ‘의회독재’라는 논거로 대치상황을 각각 정당화한다. 남북 간에도 그 어느 때보다 비난과 증오를 담은 거친 언어가 오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6·15’ 20주년을 맞아 내보낸 담화문을 “본말은 간데없고 책임회피를 위한 변명과 오그랑수(속임수)를 범벅해놓은 화려한 미사여구”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한 북의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담화문은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협치를 통해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고 남북이 대화를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과 글이 이렇게 어지러워진 것은 물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정보 매체의 다양화와 사회관계망의 확충은 정치적 공론의 장을 과거보다 훨씬 넓히지만 동시에 양산되는 저질...
  • [송두율 칼럼]비관과 낙관 사이에서

    비관과 낙관 사이에서

    코로나19 사태로 불안한 나날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백인 경찰관들에 의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살해사건은 미국 전역의 격렬한 시위로 이어졌다. 열악한 생활조건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희생자 비율이 백인의 그것보다 월등히 높은 흑인들의 불만은 1968년 4월 인권운동지도자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로 인해 폭발했던 인종분규 이래 가장 큰 분출구를 찾았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얼마 전 베를린 지하철에서 한국 유학생 부부가 당한 사례처럼 코로나19 위기와 인종주의가 섞여 내는 파열음은 이제 유럽 여러 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은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난 이 세계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지에 대한 질문을 낳고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대체로 두 가지 유형이다. 하나는 우리가 지금까지 영위했던 삶의 형식과는 앞으로 과감하게 단절해야만 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우리 삶은 인류사에서 그래도 최선의 상태라는 반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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