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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은 왜 7일일까
아침에 해 뜨고 다음날 다시 해 뜰 때까지가 하루다. 지구 어디서나 오래전부터 하루라는 시간의 길이를 이용했다. 보름달부터 다음 보름달까지 몇번의 하루가 있는지 세면 약 30이다. 대부분 문명에서 한 달의 길이가 30일 정도로 정해진 이유다. 매일 아침 어느 방향에서 해가 뜨는지 살피면 365일 정도를 주기로 해 뜨는 위치가 다시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루, 한 달, 그리고 한 해의 길이는 하늘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두 천체인 해와 달이 알려준다.또 다른 흥미로운 주기가 일주일이다. 기독교 성경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세상 만물을 6일에 걸쳐 만들어내고 다음날인 7번째 날에는 쉬었다고 적혀 있지만, 일주일이 왜 하필 7일로 구성되어야 하는지는 아무리 하늘을 관찰해도 알 수 없다. 물리학자 다카미즈 유이치의 책 <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에서 월화수목금토일의 순서로 반복되는 7일로 일주일이 정해진 재밌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구약 성경에 큰 영향... -
지속 가능하지 않은 되먹임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얘기다. 세속의 재산 얘기일 리는 없지만,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는 부익부 빈익빈이 떠오른다. 예금액이 많은 사람은 금융소득이 더해져 예금이 점점 늘고, 이자를 내지 못하면 채무자의 채무는 점점 늘어난다. 늘어나면 늘어났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음에는 더 늘고, 줄어들면 줄어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다음에는 더 주는 현상이 우리 주변에 많다. 양의 되먹임 혹은 늘어나는 되먹임이라 부르는 효과다.감염병의 확산도 늘어나는 되먹임을 보여준다. 한 사람이 매일 주변의 한 사람을 감염시킨다면, 첫날 한 명의 감염자는 이튿날에는 두 명이 된다. 이렇게 두 명으로 늘어난 감염자는 또 하루 안에 각각 한 명씩을 감염시키니, 사흘째 되는 날에는 감염자가 네 명이 되고, 나흘이 되면 여덟 명이 된다. 늘면 더 늘어나고 그래서 다음에는 더 늘어나는 전형적인 늘어나는 되... -
행복, 애쓰지 않으면 머물 수도 없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가정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돈이 없어, 병에 걸려서, 외로워서…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행복은 어쩌면 높은 산봉우리 정상, 손바닥만 한 좁은 땅 같은 곳일지 모른다. 동쪽으로 삐끗해 한 걸음 옮기면 건강을 잃는 내리막으로 접어들고, 오랜 친구 한 명을 잃는 남쪽 방향 한 걸음으로 큰 불행이 시작될 수도 있다. 행복이라는 불안정한 산꼭대기에서 저 아래 놓인 제각각 다른 수많은 불행의 골짜기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지천이다. 어느 방향으로라도 잠깐 발을 헛디디면 굴러떨어질 수 있는 한 뼘 크기 장소가 행복이 놓인 곳이다. 지금의 행복이 앞으로의 여전한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어쩔 수 없는 물리학자인 나는 톨스토이의 멋진 문장에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떠올린다. 1부터 10까지의 숫자가 적혀 있는 10장의 카드... -
마야 역법의 독특한 세계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10 천간(天干)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와 12 지지(地支)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가 함께 순서대로 되풀이하며 진행하는 방식으로 우리 선조는 해의 이름을 정했다. 지난해는 계묘년이었으니 계에서 이어지는 갑, 묘 다음의 진이 모여 올해는 갑진년이 되는 식이다. 10과 12의 최소공배수는 60이어서 갑자, 을축, 병인으로 이어지는 육십갑자는 60을 주기로 반복된다. 갑 다음은 을, 진 다음은 사여서 내년은 을사년이다. 일제가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불법적으로 박탈한 을사늑약이 120년 전이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120살까지 살면 환갑 잔치를 두 번 할 수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환갑을 축하할 기회가 딱 한 번뿐이다. 중미 마야인의 역법은 상당히 독특했다. 매일의 날짜를 표기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먼저 하브(Haab) 역법에서 1년은 20일 길이의 18개의 달에 5일을 추가하는 방식(20×18+5=365)으로 구성되어서 365일... -
겨울 외투가 두껍고 어두운 까닭
겨울이다. 두꺼운 외투로 무장하고 집을 나서니 코끝 쨍한 아침 공기가 나를 맞는다. 밤새 소복이 쌓인 눈을 뭉쳐 시린 손은 따뜻한 편의점 캔커피로 녹인다. 뜨겁고 차가운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몸으로 잘 알지만, 도대체 온도가 높고 낮은 것이 물질의 어떤 객관적인 특성에서 비롯하는지를 알게 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낸 뒤로도 거의 200년이 더 지난 다음이다. 인류는 천체의 움직임을 상당한 정확도로 예측했지만, 눈의 차가움과 커피의 따뜻함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몰랐다. 어쩌면 직관적 감각의 명확함이 물어야 할 질문을 떠올리는 것을 오히려 방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당연한 것도, 아니 오히려 당연할수록, 더 끈질기게 물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이제 우리는 온도가 더 높은 물체 안에서 물체를 구성하는 분자들이 더 활발히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체가 뜨거... -
기후위기와 인류의 미래
지난 11월2일 우리나라 전역의 날씨는 마치 초여름 같았다. 무려 30도에 가까운 낮 기온을 보여준 곳도 있었고, 그날 하루 중 최저 기온이 1907년 시작된 우리나라 기상 관측 116년 역사에서 가장 높았던 곳도 여럿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올해 전 세계 곳곳에서는 이상 고온, 홍수, 그리고 대규모 산불 등의 자연 재해가 그치지 않았다. 기온이 상승하면 숲의 나무가 머금고 있는 액체 상태의 물은 기체인 수증기로 변해 나무에서 대기로 옮겨간다. 해가 떠 온도가 높아진 한낮에 아침 이슬과 안개가 사라지는 것과 정확히 같은 원리다. 결국 대기의 기온이 높아지면 숲이 건조해져 산불 규모가 커진다. 기온 상승으로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으면, 당연히 강수량이 늘어 홍수 피해가 커지고, 당연히 에너지가 커져 태풍 피해도 커진다. 태풍, 홍수, 산불의 규모는 지구의 기온 상승과 함께 커진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다.10월23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후과... -
새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어린 시절 제비는 흔히 볼 수 있는 새였다. 친구들과 골목에서 놀다 보면 제비가 낮게 날 때가 있었다. 비가 올지 모르니 빨리 집에 가라는 동네 어른 말씀에 뜀박질을 시작하면 정말로 곧 소나기가 쏟아지고는 했다. 새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것은 오랫동안 누적된 경험으로 우리 선조가 파악한 상관관계다. 하지만 새가 낮게 날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은 아니다. 상관관계가 사실이라고 해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인 인과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노벨상 수상자 숫자와 초콜릿 소비량 사이에 상당히 강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이것도 인과관계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없는 이유가 한국인이 초콜릿을 적게 먹기 때문일 리는 없다. 새가 낮게 날아 비가 온 것도 아니고, 초콜릿 많이 먹어 노벨상 타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관관계 자체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명확히 관찰된 상관관계의 배후... -
그동안 감사했어요
2024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과학기술 분야의 R&D 예산이 16.6% 줄어들게 된다. 산업 발전에 즉각적인 도움을 주기 어려운 순수기초과학 분야의 연구는 거의 대부분 기업이 아닌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다. 예산 삭감으로 가장 먼저 큰 타격을 받을 분야가 기초과학이다.기초과학 분야 연구자가 연구계획서를 한국연구재단에 제출하면, 계획서의 내용을 심사할 같은 분야의 전문 연구자들이 심사자로 선정된다. 힉스 입자 이론 연구를 하겠다는 과제를 나와 같은 통계물리학 연구자가 제대로 심사할 수는 없다. 결국 통계물리학 분야 연구과제는 주로 통계물리학자가, 입자물리학 분야 연구과제는 주로 입자물리학자가 심사한다. 아니길 바라지만, 요즘엔 이런 것도 카르텔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심사자들은 계획서를 익명으로 평가해 지원 대상 과제 선정에 도움을 준다. 지원 대상 과제로 선정되면 매년 연구비가 소속 대학에 입금되고, 미리 제출한 예산안에 따라 증빙 서류를 갖춰 연구비가 ... -
과학은 또 이렇게 한 걸음을 이어간다
상온상압 초전도체 주장이 최근 큰 관심을 끌었다. 여러 그룹에서 시료를 제작해 실험하기도 했다. 현재 초전도체가 아닌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과학자로 살다보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놀라운 결과가 큰 관심을 끌면, 여러 연구그룹이 재현실험을 시도하고, 설명하는 이론을 제안하기도 한다. 전에 들은 농담이다. 이론물리학자는 자기 이론만 믿고, 실험물리학자는 심지어 자기 실험도 믿지 않는다는 농담이다. 농담이지만 학계에 만연한 건강한 회의(懷疑)의 풍토를 어느 정도 담고 있다. 과학자는 늘 의심하는 것이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사람들이다. 긴 세월 회의와 검증의 시간을 꿋꿋이 견딘 것들이 모여 과학의 토대가 되고, 튼튼한 바닥이 최근의 논문을 의심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방금 출판된 결과를 진실이라 믿는 과학자는 거의 없어서, “재밌군.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겠어” 정도로 받아들인다. 검토와 회의, 비판과 재현의 과정이 이어지면서, 처음 결과가 굳... -
다양한 자연현상, 동일한 자연법칙서 비롯한다
“딱 하나로 정해진 중력법칙을 따라 행성 지구가 태양 주위를 오랜 시간 공전하는 동안, 정말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이토록 아름답고 경이로운 온갖 다양한 형태의 생명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는 이렇게 내가 옮겨 본 유명한 마지막 부분이 있다. 어쩔 수 없는 물리학자인 나는, 고정된 중력법칙과 생명의 다양성이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다윈의 통찰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현상의 다양성은 자연법칙의 단순한 동일성과 함께한다. 같아도 다를 수 있다.같지만 다른 예가 많다. 풀잎 위 빗방울은 둥근 구슬로 구르고, 쏟은 물은 바닥에 넓게 퍼진다. 크고 작은 물 덩이의 다른 모습은 물리학의 에너지가 정한다. 작은 빗방울의 모습은 중력이 아닌 전기력이 정한다. 표면적이 작을수록 에너지가 더 낮아 빗방울은 둥글게 뭉쳐 구른다. 커다란 물 덩이의 모습은 전기력이 아닌 중력이 정한다. 지면에 가까울수록 에너지가 더 낮아 쏟은 물은 납작 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