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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선거와 ‘함께 지성’
    선거와 ‘함께 지성’

    동양의 고전 <서경(書經)>에 “천시자아민시 천청자아민청(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이라는 글귀가 있다. 하늘(天)이 보는(視) 것은 우리(我) 평범한 민중(民)이 보는 것에서 비롯(自)하고, 하늘이 듣는(聽) 것도 민중이 듣는 것에서 비롯한다는 뜻이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바로 그 얘기다. 라틴어 글귀 “복스 포풀리, 복스 데이(Vox populi, Vox dei)”도 민중(populi)의 목소리(vox)가 곧 신(dei)의 목소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보고 듣는 것은 몸 밖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말하는 것은 우리 머릿속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동서양 모두 오래전부터 평범한 이들이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하늘과 신에 견줄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프랜시스 골턴이 1907년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의 제목이 ‘Vox Populi’(민중의 목소리)다. 골턴은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우생학자로 지탄받아 마땅한 나쁜 과학자지...

    2025.06.04 20:18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책으로 본 세상
    책으로 본 세상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과학책을 읽을 일이 많지만 역사나 철학책도 좋아하고, 소설에 흠뻑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많다. 직접 차를 운전하면 30분, 버스로는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갈 때는 망설임 없이 늘 버스를 탄다. 흔들리는 차에서 글을 읽어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 복을 타고났다. 책 읽으며 보낸 버스 1시간이 운전대를 잡고 보낸 30분보다 짧다. 내게 책은 순간이동 장치다.매달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 클럽을 두 곳에서 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벌써 9년째다. 몇해 전부터 이런저런 일이 늘어 좀 바빠지긴 했지만 아무리 바빠져도 내가 먼저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 모임 전에 먼저 책을 꼼꼼히 읽고 글로 요약한다. 그러고는 내 생각도 일부 보태 강연 자료를 만든다. 내가 정말 좋아해서, 힘들어도 매번 반복하는 일이다. 게다가 독서 클럽에 참여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여럿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2025.04.30 20:50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봄날의 봄볕
    봄날의 봄볕

    내가 사는 수원에는 ‘인문 공동체 책고집’이 있다. 책고집 대표 최준영 선생님은, 노력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구석진 그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인문학의 가치를 알리려 꾸준히 고집스럽게 애써온 이다. 올해 책고집은 ‘인문학 강좌, 곁과 볕’을 전국 곳곳에서 진행한다. 얼마 전 강사로 참여하는 분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글과 삶의 모습을 보며 늘 존경하던 한 분이 ‘곁과 볕’이 ‘곁과 빛’이었다면 이 자리에 오지 않으려 했다며 좌중을 웃게 만들고는, 곧 사람의 온기를 전하는 것은 빛이 아니라 볕이라는 의미 있는 얘기를 이어갔다.봄이 오고 있다. 미세먼지로 탁한 봄 하늘을 눈곱 낀 듯 아스라한 시선으로 가만히 올려본다. 밝아진 햇빛이 겨울과는 분명히 다르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고재현 교수님의 책 <빛의 핵심>에 따르면, 태양 깊은 안쪽에서 출발한 빛은 100만년의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태양 표면에 도달한다. 이곳에서 ...

    2025.03.26 21:00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통계학으로 살펴보는 음모론
    통계학으로 살펴보는 음모론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둥근 지구 사진을 보여주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증거도 이들의 강한 신념을 바꾸기 어렵다. 진화는 거짓이라는 주장도 비슷하다. 명확한 온갖 증거도 창조론자의 신념을 꺾기 어렵다. 찾을 때까지 노력하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증거 사이의 빈틈을 찾고, 그것도 어려우면 진화의 증거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선거 결과가 자신이 이전에 확신했던 것과 크게 다르니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는 주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정이 없었다는 것을 명확히 보이지 못했으니 부정이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없다는 것을 보이지 못했다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1952년 버트런드 러셀은 지구와 화성 사이에 너무 작아 어떤 망원경으로도 결코 볼 수 없는 찻주전자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소개한다. 이런 찻주전자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반증하지 못했으니 이 찻주전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마찬...

    2025.02.19 21:13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과학자도 시민이다
    과학자도 시민이다

    1. 모든 사람은 죽는다. 2. 나는 사람이다. 3. 따라서 나는 죽는다. 누구나 들어봤을 간단한 삼단논법의 예다. 다른 예도 들어보자. 1. 우리 모두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다. 2. 과학자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3. 따라서 과학자도 시민이다.우리 사회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가진다. 그중 하나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다. 시민의 부분집합으로서 과학자도 당연히 다른 이가 침해할 수 없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다. 정치적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다른 이의 의사 표현 자체를 막거나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우리는 삶의 매 순간 어떤 것이 맞고 틀린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고 나쁜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판단한다. 판단은 사실에 대한 것일 수도, 가치나 당위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손에서 놓은 돌멩이가 위가 아니라 아래로 떨어진다는 판단, 오늘 아침에 마신 우유가 유효기간을 훌...

    2025.01.08 20:46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외계 생명
    외계 생명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 광막한 우주에서 지적 생명이 우리 인류뿐이라면 이 얼마나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까?”라고 말했다. 과연 이 넓은 우주에 우리 말고 다른 지적 생명이 있을까? 현재까지 지구 밖에서 발견된 적은 없지만 많은 과학자가 생명의 출현은 우주 곳곳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믿고 있다. 이유가 있다. 지구 생명을 출현시킨 물질적 근거에 특별할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과 탄소가 중요했을 것으로 믿어지는데, 물을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뿐 아니라 탄소도 우주에 지천이기 때문이다.물이 기체 상태로만 존재할 정도로 높은 온도에서는 분자들이 빠르게 움직여 화합물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고, 물이 고체 상태로만 존재하는 낮은 온도에서는 분자들이 느려 화학반응 속도가 너무 느리게 된다. 결국 물이 수증기 또는 얼음으로만 존재하는 행성에서는 생명현상에 꼭 필요한 다양한 화학반응이 적절한 속도로 일어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중심별로부터 적절한 거리에 있는 행성에서만 생명...

    2024.12.11 20:38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노벨상을 받은 홉필드 연결망의 물리학
    노벨상을 받은 홉필드 연결망의 물리학

    물리학자 김범준의 옆집몰리학 칼럼을 읽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다시 꼼꼼히 살펴보시길. 첫 번째 ‘물리’는 옳게 적혀 있지만 두 번째는 ‘몰리’라고 잘못 적혀 있다. 그런데도 이 문장에서 전혀 오류를 눈치 못 채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낫 놓고 기역 자를 떠올리고, 몰리학을 봐도 몰리학을 떠올릴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없는 것도 볼 수 있고, 있는데도 보지 못하는 존재다. 방금 또 내가 ‘몰리학’이라고 틀리게 적었다. 혹시 눈치채신 분? 우리 뇌는 잘못된 외부 정보를 교정해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1N73LL1G3NC3 15 7H3 4B1L17Y 70 4D4P7 70 CH4NG3”라는 재밌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암호 같은 기호가 이어져 있는데도 많은 이가 “INTELLIGENCE IS THE ABILITY TO ADAPT TO CHANGE”로 읽어낼 수 있다. 적힌 내용처럼,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지성이다.옆집몰리학이나 1N73LL1G3...

    2024.11.06 20:12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과학이라는 빨간 약
    과학이라는 빨간 약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 절대적으로 무관심한 우주의 거대한 침묵 속에 둘러싸인 고독한 자신을 발견한다.” 과학자이자 철학자로서 큰 자취를 남긴 파스칼의 말이다. 우주나, 지구나, 숲이나, 탄소 배출로 기온이 계속 오르는 지구의 대기나, 인간에게 쥐뿔도 관심 없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발버둥치는 인간에게 우주는 아무런 답도 들려주지 않는다. 다른 우주도 있다. 이 우주의 한가운데에는 지구가 있고, 밤하늘을 가득 채운 반짝이는 뭇별은 우리를 중심으로 돈다. 땅을 적시는 비는 풍성한 수확을 위한 자연의 선물이고, 더운 여름 땀 흘린 농부를 위해 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아이가 착한 일 하면 산타 할아버지 선물을 받고 어른이 착하게 살면 다음 생에서 더 큰 보답으로 돌아온다. 이 우주는, 인간의 삶이 전 우주적인 의미가 있다고 끊임없이 우리 귀에 속삭인다. 큰 시련이 닥쳐 정말 힘들어도 이 또한 우주가 품은 원대한 계획의 일...

    2024.10.09 20:46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종단속도
    종단속도

    떨어지는 것 중에는 날개가 없는 것도 있지만 모든 추락하는 것에는 종단속도가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체를 떠올려보자. 장마철 500m 높이에 떠 있는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중력만이 작용한다면 우리 머리에 닿을 때의 속도는 무려 초속 100m가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껏 초속 10m 정도로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를 가진다.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다른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떨어지는 물체는 공기 중의 수많은 기체분자를 헤집으며 아래로 움직인다. 물체가 기체분자를 아래로 밀면 기체분자는 그 반작용으로 물체를 위로 민다. 결국 수많은 기체분자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공기의 저항력이 중력 반대 방향으로 물체에 작용하게 된다. 물체가 빠를수록 기체분자가 더 빠르게 더 자주 부딪쳐 저항력이 크다. 가만히 떨어뜨리면 처음에는 물체가 그리 빠르지 않아 저항력은 작고 중력은 커서 물체의 속도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 아래로 점점 빠르게 떨어지면서 저항력이 커지고, 종국에는 중력...

    2024.09.11 20:43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멈춰야 구르는 바퀴
    멈춰야 구르는 바퀴

    길가에 서서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를 본다. 직접 눈으로 보기는 어려워 믿기지 않겠지만, 빠르게 내 앞을 스쳐 지나가며 구르는 둥근 바퀴에는 매 순간 정지해 있는 딱 한 점이 존재한다. 느긋하게 굴러가는 소달구지, 빠른 자전거, 질주하는 경주용 자동차 모두 마찬가지다. 굴러가는 모든 것에는 멈춘 곳이 있다.2차원 평면에서 가장 신기하고 독특한 도형이 바로 둥근 원이다. 원 한가운데 중심에서 바라보면 원의 둥근 곡선을 이루는 모든 점은 같은 거리에 있다. 평면 위 한 점에서 도형의 어디를 봐도 모든 점이 같은 거리인 도형은 딱 원 하나뿐이다. 정삼각형은 다르다. 중심에서 바라보면 꼭짓점이 변보다 멀다. 만약 바퀴를 정삼각형 모양으로 만들면 어떨까? 정삼각형 나무판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회전축을 연결해 땅 위에서 굴려보자. 정삼각형의 한 변이 지면 위에 있을 때 회전축은 낮은 위치에 있다. 삼각형 바퀴가 굴러서 지면 위에 꼭짓점이 놓여 회전하기 시작하면 회전축은 ...

    2024.08.1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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