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김택근의 묵언
  • 전체 기사 89
  • [김택근의 묵언] 황희찬 어깨에 ‘생명평화’가 피었듯이
    황희찬 어깨에 ‘생명평화’가 피었듯이

    세밑이 얼어붙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주머니가 풀린 것일까. 지구가 탈이 난 게 분명하다. 지난 한 해 기후재앙으로 무수한 생명체들이 절멸했다. 종족은 사라지고, 단 한 마리만 남은 새의 마지막 울음을 들어본 적 있는가. 고독과 두려움에 몸서리쳤을, 깃털이 빠진 최후의 둥지를 본 적이 있는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다시 한 해를 흘려보내야 한다. 추억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건만 시간의 강물은 차갑기만 하다.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 것인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버린 것은 무엇인가. 지난해를 펼쳐보고 이를 다시 뭉치면 작고 남루하다. 그럼에도 초록별에서 함께 새해를 맞는 이웃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저 언 땅에 생명들이 있기에, 하늘 향해 팔 벌린 겨울나무가 있기에 봄은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 살아있기에 우리는 포기해서는 안 된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생명평화’를 얻어 보겠다고 길 위에 있었던 무리가 있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

    2022.12.31 03:00

  • [김택근의 묵언] “당신들은 왜 정치를 하는가”
    “당신들은 왜 정치를 하는가”

    12월에 들어섰다. 달력 마지막 장에는 쓸쓸함이 묻어있다. 지난 한 해의 아쉬움이 스며있다. 딱히 잡히는 것은 없고 마음만 바쁘다. 돌아보면 지구촌도, 한국도 다사다난했다. 지구의 숨은 더 가빠지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지금도 전쟁의 포연이 인류의 양심을 뒤덮고 있다. 인간이 그토록 오랫동안 갈고닦았던 이성도 실은 별것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도 불이 산을, 물이 마을을 삼키고 할퀴었다. 고운 가을밤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연말 모임이 잦다. 역병 창궐 이후 거의 3년 만에 날아온 안내 문구는 사뭇 들떠있다. 마침내, 드디어 얼굴을 보게 되었다며 살아있음을 확인하자고 한다. 동시대에 지상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함께 햇살을 쬐는 사람, 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술잔을 부딪치면 세상이 환해진다. 한 가지,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하다보니 달라진 게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정치 얘기가 줄어들었다. 또 그걸로 싸우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정치인...

    2022.12.03 03:00

  • [김택근의 묵언] 더는 악업을 짓지 말라, 당장 물러가라
    더는 악업을 짓지 말라, 당장 물러가라

    일요일 아침, 아내의 비명에 잠이 깼다. “어떡해, 어떡해.” 잠자고 있는 동안 서울 이태원에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참사가 일어났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니 숨이 막혔다. 아침을 먹다가 아내가 울었다. 같은 시간에 이 땅의 어머니들이, 젊은이들이, 산천초목이 울었을 것이다. “어떡해, 어떡해….” 걸었다. 바람이 없어도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있었다. 조붓한 산길은 낙엽에 덮여 있었다. 햇살이 붉은 잎에 군색하게 붙어 있었다.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도 고개를 숙인 채 지나갔다. 나무도 햇살도 사람도 말이 없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건만 죽은 자들이 나타났다. 그래, 그들은 어제 보았고 내일도 나타나는 우리 젊은이들 얼굴이다. 휴대폰을 꺼내 보니 누군가 전화를 했다. 윤제림 시인이었다. “전화했었네.” “네. 갑자기 형 생각이 나서요. 지난번 칼럼에 용산역 압사 썼잖아요. 형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때랑은 다르겠지만.” 시인의 목소리가 낮고 극히 건조해서 다른 사람 같았다. 대...

    2022.11.05 03:00

  • [김택근의 묵언]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가리키는 곳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가리키는 곳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진솔하다. 문체도 담백하다. 가끔 발랄하지만 이내 단정하다. 그래서 비린내도 쉰내도 나지 않는다. 빨치산 출신 아버지가 죽고 딸이 상을 치르는 3일간의 이야기이다. 아버지와 인연을 맺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조문을 왔다. 그들과 얽히고설킨 인연은 무겁고 무섭다. 빨치산 아버지 때문에 집안이 몰락하고, 누구는 죽고 또 누구는 출세 길이 막혔다. 딸은 빨치산이란 족쇄를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작가는 그런 사연들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어떤 것은 발가벗기고 어떤 것은 기웠다. 내상(內傷)이 깊었지만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천연덕스럽다. 가슴이 먹먹한데도 웃음이 나왔다. ‘위장 자수’를 했던 빨치산 아버지는 남의 일이라면 자다가도 뛰쳐나갔다. “오죽했으면 글것냐” “긍게 사람이제”를 달고 살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작은 것들을 사랑했다. 그럼에도 세상을 건너는 법은 서툴렀다. 목이 잘린, 내장을 쏟고 죽은 동지의 시신을 수습했던 전사였...

    2022.10.08 03:00

  • [김택근의 묵언] 추석과 고향, 그 쓸쓸함에 대하여
    추석과 고향, 그 쓸쓸함에 대하여

    추석이 돌아온다. 나라 안팎의 소식들이 암울해도, 태풍이 올라와도 달은 차오른다. 고운 옷 입고 등 굽은 고향을 찾아가는 풍경을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벌초를 하고 멀끔해진 무덤 앞에서 절을 올리면 불효를 용서받은 느낌이 들었다. 가을볕은 또 얼마나 인자한가. 고향에서 햇살을 들이켜면 추억마저 살이 올랐다. 종일 새를 쫓다 지친 허수아비가 잠이 들면 노을이 시나브로 내려와 춤을 추었다. 고요하게 출렁이는 들녘은 더없이 평화로웠다.추석이 풍요롭기에 그 넉넉함이 더 서러운 이들이 있었다. 슬픈 사람은 더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더 외로웠다. 삶이 곤궁하면 밤늦게 마을에 들었다가 새벽녘에 떠났다. 아예 마을에 들르지 않고 성묘만을 하고 떠난 사람도 있었다. 무덤 앞에 놓인 술병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그가 죽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있음을 알았다. 자식이 오지 않는 어머니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발소리를 죽여야 했다. 그래서 객지의 자식들은 죽을힘을 다해 고...

    2022.09.03 03:00

  • [김택근의 묵언] 당신의 지식은 건강하신가
    당신의 지식은 건강하신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용산에 모여 있다. 나라가 온통 어수선하다. 아침에 내놓은 정책이 해가 저물기 전에 저자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사람마다 말이 다르고, 말을 주워 담는 사람마저도 다르다. 해괴한 소문들이 자체의 기이한 생명력으로 떠돌아다닌다.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게 지나고 있다.그러자 100일이 안 된 윤석열 정권을 향해 저주와 조롱이 쏟아지고 있다. “하루속히 정리돼야 할 정권” “준비가 시급하다”는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퇴진운동을 선동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어느 한쪽은 윤석열 정권이 실패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머잖아 다른 한쪽도 움직일 것이다. 다시 거리엔 살기가 자욱할 것이고 곳곳에서 서로를 저주하는 굿판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완충지대가 사라졌다. 정치판에도 중간지대가 보이지 않는다. 그라운드에서는 반칙이 난무하고 있는데 심판의 휘슬은 울리지 않는다. 열성 지지자들만 바라보며 무조건 상...

    2022.08.06 03:00

  • [김택근의 묵언] 이름도 병이 든다
    이름도 병이 든다

    이름에서 악취가 풍겨온다. 이름이 가벼워 둥둥 떠다닌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그들은 기어이 나타난다. 이어령 선생의 말처럼 “책이 페이스북을 못 이기고 철학이 블로그를 못 이기고 클래식 음악이 트로트를 못 이기는 시대”(<이어령의 마지막 수업>)라서 그럴까. 아님 세태를 감지하는 내 안의 감각이 고장 난 것일까. 이름은 각기 달라도 그 이름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가 비슷하다. 매체마다 연일 새 소식을 쏟아내지만 우리네 아침은 진부하기만 하다. 집권여당 대표가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어도, 여권이 혼돈에 빠져들어 정치판이 요동칠 것이라 전망해도 민심은 차분하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 일으키는 먼지가 자욱할 뿐이다. 개혁을 앞세운 야당의 권력다툼도 마찬가지다. 경선이 어디로 흘러가든, 그래서 누가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되든 감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권력다툼에 직간접으로 등장하는 이름들은 이미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이름들이 스스로의 이름에 금칠을 하고 ...

    2022.07.09 03:00

  • [김택근의 묵언] 풀뿌리민주주의 뿌리가 썩고 있다
    풀뿌리민주주의 뿌리가 썩고 있다

    동 대표로 뽑혀 1년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지냈다. 새로 생긴 아파트단지라서 민원이 많았다. 마을 코앞에 야적장이 들어선다 하고, 아파트 옆길에는 화물차량들이 질주하고, 중앙차로 시설은 개통을 미룬 채 방치되어 있고…. 현안을 받아드니 무엇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사안마다 군상들의 이해가 엉켜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면, 가면 속의 탐욕과 위선이 보였다. 낙담했지만 그래서 세상물정에 눈을 뜨기도 했다.크고 작은 일들로 주민들과 관청을 찾아갔다. 공무원들은 민원인을 정중하게 맞았지만 일처리는 도식적이었다. 말투도 메말라 있었다. 민원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공무원의 나라’ 한국에서 공무원들의 ‘민원 굴리기’는 달인 수준이었다. 우리는 차츰 지쳐갔다. 고양시의회를 찾아가도 의원들의 반응은 그저 뜨뜻미지근했다. 무력감이 밀려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노가 차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건장한 체구의 시의원을 만났다. 놀랍게도 그는 다른...

    2022.06.11 03:00

  • [김택근의 묵언] 네 죽음을 기억하라
    네 죽음을 기억하라

    평론가 이어령, 변호사 한승헌, 소설가 이외수. 그들을 향한 추도사가 아직도 허공을 맴도는데 강수연과 김지하의 부음이 들려왔다. 지난 11일 두 사람은 봄의 끝자락에 묻혔다. 그들이 떠났어도 이팝나무는 흰 웃음을 흩날리고 여기저기 꽃불이 옮겨 붙어 대지는 곱다. 저 봄빛은 투명해서 무덤 속까지 비출까. 북망산에도 소쩍새가 울고 있을까. 그들의 치열했던 삶은 죽음을 탄생시키고 그 소임을 마쳤다. 그들은 죽음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배우 강수연의 큰 눈에는 도도한 슬픔이 담겨있었다. 눈물이 가냘프지 않았고, 아름다움은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범접하기 어려웠다. 초봄의 ‘상큼한 도발’과 늦가을의 ‘처연한 순응’이 깃들어 있었다. 강수연은 그런 자신의 이미지를 잘 읽어내는 배우였다.우리 젊은 날의 우상들은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둘씩 그만그만한 크기로 작아졌다. 더러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잡담과 기담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렸고, 친근한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 편하게 살...

    2022.05.14 03:00

  • [김택근의 묵언] 성공한 대통령이 있었다
    성공한 대통령이 있었다

    2008년 10월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대검찰청 국정감사장에서 김대중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다. 100억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 사본을 흔들며 김대중 비자금의 일부로 추정된다고 수사를 촉구했다. 퇴임 대통령 김대중은 다음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한나라당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내가 100억원의 CD를 가지고 있다는 설이 있다고. 간교하게도 ‘설’이라 하고 원내 발언으로 법적 처벌을 모면하면서 명예훼손의 목적을 달성코자 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사상적 극우세력과 지역적 편향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엄청난 음해를 받아왔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는다. 하느님이 계시고 나를 지지하는 많은 국민이 있다. 그리고 당대에 오해하는 사람들도 내 사후에는 역사 속에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2008년 10월20일)그런데 정말 ‘사후에 역사 속에서 후회’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국감장에서 김대중을 할퀸 주성영이다. 그는 최근 책을 펴내 용서를 빌었다. ...

    2022.04.16 03:00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