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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여기]소년법정, 문밖에 서다
    소년법정, 문밖에 서다

    소년 시절 저지른 범죄가 알려져 은퇴한 한 배우를 둘러싸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소년사건을 다루는 법정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특히 그 속에서 피해자는 어디쯤에 서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미미하다.소년보호재판 풍경이 잘 드러나는 곳은 의외로 법정 안이 아니라 문 앞이다. 지적장애 초등학생 여아가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아이는 온라인에서 한 남성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지속적으로 호감을 보이며 만나자고 했다. 약속에 나온 아이를 아파트 옥상에 데려간 그는 성폭력을 몰래 녹화한 후 그 영상으로 협박까지 했다. 다행히 부모의 빠른 대처로 수사가 시작되었고, 가해자를 잡고 보니 이제 고등학생이 된 ‘소년’이었다. 피해자의 변호사로 심리기일 통지를 받고 소년부 재판정 앞 복도에 섰다. 그런데 문 앞에서 제지당했다. 통지서를 내밀었지만,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심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부랴부랴 참여 허가를 구하고 어렵게 법정에 들어갈 ...

    2025.12.14 20:02

  • [지금, 여기]정파적 진실 시대의 사회적 신뢰
    정파적 진실 시대의 사회적 신뢰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현수막을 걸기 좋은 ‘목 좋은’ 장소들이 두세 군데 있다. 지난 몇년간 그곳에는 백신 음모론에서부터 부정선거 음모론, 계엄과 내란 옹호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헛소리를 담은 현수막이 쉬지 않고 걸렸다. 말도 안 되는 주장에 처음에는 한심하다고 혀를 찼지만, 점차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을 믿는 사람들이 ‘실존’하고, 심지어 구체적 행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국내에서 <청부과학>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환경보건학자 데이비드 마이클스 책의 원래 제목은 <의심이 그들의 제품(Doubt is their product)>이다. 이는 “의심이 우리의 제품이다. 그것은 일반 대중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사실들’과 경쟁하는 최선의 수단이며, 또한 ‘논란’을 만들어내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담배회사 경영진의 발언을 비튼 것이다. 담배, 벤젠처럼 사람들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

    2025.12.07 20:21

  • [지금, 여기]혐오 현수막은 표현의 공해이다
    혐오 현수막은 표현의 공해이다

    최근 가족과 식사를 하다가 중국인 무비자 입국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다. 고등학생인 둘째가 왜 중국인을 무비자로 여행하게 하는지 질문했다. 중국인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는 얘기였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면서 대화를 나눴지만, 큰 충격을 받았다. 극우 정치인들의 선동에, 중국인에 대해 적개심과 경계심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이후 길거리에 어지럽게 걸린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 관광 아닌 점령?’ ‘중국 유학생 100% 잠재적 간첩’ 등 혐오 표현으로 가득 찬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걸려 있었다. 둘째 아이의 질문은 저 현수막과 유튜브, 커뮤니티를 보고 나왔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했다. 자극적인 거짓정보는 혐오감정을 갖게 하고, 곧 거대한 폭력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역사가 입증하는 사실이다.헌법 21조는 ‘언론 출판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 규정을 근거로 자유롭게 글을 쓰고, 방송을...

    2025.11.30 19:59

  • [지금, 여기]더 많은 트랜스젠더 친구를 만나기를
    더 많은 트랜스젠더 친구를 만나기를

    11월20일은 매년 차별과 혐오로 인해 세상을 떠난 이들을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사회에 알리는 트랜스젠더 추모의날이다. 이날을 맞아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은 하나의 캠페인 영상을 공유했다. 제목은 ‘나의 트랜스젠더 친구를 소개합니다’이다. 이름 그대로 트랜스젠더 친구를 둔 세 명의 출연자가 친구와의 여러 일화를 이야기하는 영상이다.해당 영상에 나의 친구 예정 역시 출연했다. 예정은 인권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이후 8년간 서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이번에 영상 촬영을 하면서 처음으로 안 사실도 있다. 가령 예정이 만난 첫 트랜스젠더가 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정 외에도 내가 지금 알고 지내는 많은 친구에게 나는 처음으로 만난 트랜스젠더일 것이다. 내가 주변에 나 자신을 알렸을 때 모든 반응은 “전혀 몰랐다. 놀랍다”는 것이었으니.그런 그들에게 나는 어떤 친구로 지금까지 남아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

    2025.11.23 21:37

  • 경찰개혁, 현장 수사관 목소리 담아야

    피해자가 여러 개의 범죄 피해를 한꺼번에 고소했다. 경찰서 담당 수사관은 일부만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송치하고, 나머지는 불송치 결정했다. 피해자가 그 수사관에게 송치결정서와 불송치결정서를 달라고 했더니 아직 수사 중이라 송치결정서는 못 준다는 답변을 받았다.답답한 피해자는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 그 수사관이 피해자에게 전화해 “수사 중인 사건은 정보공개가 안 되니 청구를 취하하라”는 것이 아닌가. 경찰수사규칙 제97조는 송치·불송치 결정서를 피해자에게 통지하는 것을 그 수사관의 ‘의무’로 적어두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 일을 경찰 한 명의 실수나 불성실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아니다. 이렇게 해도 별일 없이 지나가는 허술한 구조로 인해 반복되는 문제 중 하나이다.지난 9월 말,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청을 폐지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검찰제도는 법률가에 의한 수사통제 때문에 탄생했다. 수사통제는 충실한 기소를 위해 1차 수사기관의 수사 전반을 점검하고 보완하...

    2025.11.16 21:49

  • [지금, 여기]대리전을 그만두자
    대리전을 그만두자

    새벽배송 서비스 이용자 2000만명에 들지 못한 1인으로서, 이 논쟁이 이렇게 뜨거울 일인가 깜짝 놀랐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이 노동자 과로와 야간노동을 줄일 수 있도록 자정~새벽 5시 사이의 초심야 시간 배송을 제한하자고 제안하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사실 교대근무와 야간노동이 오랜 진화 역사에서 인간의 몸에 새겨진 일주기(circadian) 리듬을 파괴함으로써 여러 건강 문제를 초래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병원이나 소방서처럼 어쩔 수 없이 교대근무나 야간근무가 필요한 직종에서는 근무 시간 단축과 휴식 보장, 근무조 편성과 배치 조정, 수면 보조 기술 등 건강 피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탐색해왔다.그동안 국내에서 교대근무, 야간노동을 둘러싼 갈등은 대개 노사 간에 일어났다. 안전보건 지침을 제시하고 노사 간 ‘대화의 규칙’을 만드는 것은 정부 역할이지만, 근로환경과 인력배치, 보상은 모두 ‘몫’을 둘러싼 기업과 노동자의 계약이자 투쟁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2025.11.09 22:07

  • [지금, 여기]기부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기부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정육점, 양조장,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그들의 생각 덕분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 작성한 유명한 문구다.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을 설계한 이론이라고 알려져 있다.‘시민 활동가’라는 직업으로 살아온 필자는 저 이론이 인간의 반쪽 면만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 활동가는 누군가의 회비와 후원금 없이는 존재가 불가능한 직업이다. 시민들은 세상이 공평해지고 밝아지길 바라며, 수많은 시민단체·구호단체 등을 후원하고 있다. 사람에게 이익을 챙기려는 욕구 이외에 공익을 위한 공적 심리가 분명히 존재한다.가수 션은 아내 정혜영과 함께 평생 60억원 넘게 기부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기부 마라톤 대회를 열어 81.5㎞를 뛰고 참가비와 기업 후원금 수십억원을 기부해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환경 개선 사업에 쓰이게 했다. 션의 행위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

    2025.11.02 20:05

  • [지금, 여기]성소수자의 삶, 통계로 잡히다
    성소수자의 삶, 통계로 잡히다

    “대한민국에 성소수자는 얼마나 있나요?”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강연 등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공식 국가 통계를 기준으로 한다면 답은 “알 수 없다”이다. 지금까지 국가 차원에서 성소수자 인구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다만 민간 조사를 통해 추정은 할 수 있다. 2023년 글로벌 조사기관인 입소스에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30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있다. 여기에 따르면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답한 한국의 응답자는 6%였다. 전체 인구의 6%, 총인구 약 5100만명에 대입해 보면 300만명이 넘는다. 규모로 따지면 인천광역시나 부산광역시 인구 수준이다. 살면서 이 두 광역시 출신 사람을 한 번도 안 만나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말 그대로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그러나 국가 정책 측면에서 살펴보면 300만명이 넘는 성소수자 인구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국가 차원의 성소수자 인구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노동·교육·보건의료·복지 ...

    2025.10.26 20:13

  • [지금, 여기]학대 잡는 제3자 녹음, 증거 인정해야
    학대 잡는 제3자 녹음, 증거 인정해야

    비교적 흔한 사건임에도 이제는 전 국민이 샅샅이 내용을 알아버린 그 사건. 2022년 9월, 한 웹툰 작가의 자폐성 장애 아들에게 특수교사가 “싫어 죽겠어. 너 싫다고. 정말 싫어” 등 폭언을 반복한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가 있다. 달라지는 아이 모습에 외투 속에 넣어 보낸 녹음기에 담긴 당시의 상황에 대해 2024년 2월 1심은 특수교사가 정서적 학대를 한 것이 맞다며 벌금 200만원 선고를 유예했다. 그러나 2025년 5월 항소심은 이를 무죄로 뒤집었다. 해당 녹음파일이 통신비밀보호법상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하는데 제3자가 녹음한 것이라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학대 여부 판단은 하지도 않았다. 검찰은 상고했다.학대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다 보면 다양한 녹음파일을 듣게 된다. 흐느낌이나 울음, 거친 호흡, ‘짝’ 하고 ‘퍽’ 하는 소리, 그리고 낮게 깔린 욕설. 이 모든 것을 붙잡아 두는 가장 쉬운 기술이 녹음이니까. 장애인 학대, 노인 학대, 아동 학대 등은...

    2025.10.19 20:39

  • 21세기 탐관오리들

    얼마 전, 자신의 SNS에 황당한 광고가 떴다며 친구가 휴대전화 화면 이미지를 보내주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 광고였다. 앗, 이럴 수가? 나도 보여줄 것이 있었다. 내 SNS에 뜬 것은 그라프 목걸이였단 말이다. 쇼핑몰 검색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성실하게 시사 뉴스를 보았을 뿐인데 이런 광고를 받아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재치 만점 알고리즘의 센스에 감탄했다.사실 김건희의 디올 핸드백 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일회성 사건이겠거니 생각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밀실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정경유착,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거대한 정치적 음모라면 모를까, 요즘 세상에 저렇게 대놓고 뇌물을 주고받는 일은 너무 ‘후지다’고 여겼다. 떡값이니, 현찰 든 사과박스니 하는 부정부패와 금권정치의 낡은 관행들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관매직’이라는 고색창연한 단어를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마침내 금거북이까지 등장하면서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2025.10.1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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