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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여기]인권위원장, 결자해지
    인권위원장, 결자해지

    며칠 전 일본의 변호사들과 한·일 양국의 성소수자 인권과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의장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던 일을 소개하자, 일본 변호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부러움을 표했다. 국가인권위와 같은 독립적인 인권기구가 없는 일본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었다.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나 또한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지금의 국가인권위가 그때와 같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회와 정부에 권고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별금지법의 입법 취지에 반대되는 행보를 보여 온 것이 지난 2년간 안창호 위원장하에서의 국가인권위였다.현재 국가인권위 안에서는 안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임직원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과장 6명이 보직 반납을 선언했고, 각 부서 직원들도 잇따라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입장문을 올렸다. 지난 10일에는 정책협력국장과 정책협력국 직원들이 내...

    2026.07.12 19:56

  • [지금, 여기]의지의 재구성
    의지의 재구성

    빡빡머리가 된 내게 아버지는 말했다. “의지만 있으면 다 살아.” 하지만 중병을 앓아본 사람들은 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높은 정신의 힘으로 몸을 다스릴 수 있다는 오랜 신화는, 일상이 일상으로 영위되지 않는 순간 산산이 깨진다. 부서진 자리에서 자라나는 마음이 꼭 의지만은 아니라서, 질병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도 여러 갈래로 다양하다.그러나 환우회나 기관이 공모하는 이야기의 문법은 여전하다. 평안한 일상의 주인공이 갑자기 큰 병에 걸린다. 낯선 고통에 몸부림치고, 더러는 나아질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거나 임사 체험을 한다. 그러다 주변 사람들의 사랑 또는 어떤 계기가 마음을 다잡게 한다. 건강해질 거라는 희망과 정신력으로 다시 버틴다. 결국 생환한다. 앓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이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일 리 없건만, 아서 프랭크가 ‘회복 서사’라 이름 붙인 이 이야기틀은 건재하다.그 서사가 아픈 사람을 살리는 데 쓸모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을 수 있...

    2026.07.05 20:02

  • [지금, 여기]“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건강이 화두인 시대이다 보니, 건강보험 관련 논의 또한 뜨거운 감자가 된다. 사회보험의 목적은 혜택을 가능한 한 광범위하고 효과적으로 제공함과 동시에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유지하는 것일 테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 그런 이유로 이 논의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을 수렴하는지, 최선의 방식에 도달하기 위한 시민 사회적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지를 점검하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정치의 직접적 토대가 아니었던 ‘생명’ 그 자체가 정치 영역 안에서 도구화 및 의제화되는 것에 대해 선구적인 견해를 일별하자면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논의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는 인간 생명의 고유한 현상들이 정치 테크닉의 영역에 등장했음을 지적하며, 근대 이전 ‘죽이고(faire mourir) 살게 내버려 두는(laisser vivre)’ 군주의 주권권력과 대비시켜 현대의 생명정치가 ‘살게 하고(faire vivre) 죽게 내버려 두는(...

    2026.06.28 20:00

  • [지금, 여기]‘재산세 인하’ 공약의 딜레마
    ‘재산세 인하’ 공약의 딜레마

    서울에 살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있다면 부동산이다. 처음 구한 무악동 자취집은 방수와 방습이 되지 않아 곰팡이가 가득한 집이었다. 지네, 돈벌레, 바퀴벌레 등 집에서 살 수 있는 모든 벌레를 경험했다. 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 강제 거주를 당했다. 참혹하고 처참한 20대 시절이었다.몇년 전 마포구에 6억원대 아파트 분양공고가 나왔다. 온 가족이 며칠 동안 아파트에 살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결과는 1점 차이로 떨어져 후보자 순위를 통보받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결과는 낙방이다. 현재 그 집은 분양가의 두 배 넘는 금액으로 거래되고 있다. 좀 더 일찍 청약통장을 만들지 못한 젊은 시절을 지우고 싶었다.10번 넘게 분양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제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접었다. 분양가도 치솟아 분양 신청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입금한 청약통장을 해지할지 고민하고 있다. 차라리 저 돈으로 가족과 여행을 가는...

    2026.06.21 20:04

  • [지금, 여기]동성 부부의 법적 보호
    동성 부부의 법적 보호

    최근 보도에 따르면 5년 동안 86쌍의 동성 커플이 시군구청에 혼인신고를 제출했다. 이들 모두 동성 간 혼인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를 당했다. 그럼에도 혼인신고를 하는 동성 부부는 전국에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 간 혼인신고를 하면 접수 자체를 거부당하거나 장기간 처리를 대기해야 했다. 2022년부터 시스템이 개편되어 ‘혼인신고 불수리 증명서’라는 것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담당자가 시스템이 바뀐 것을 몰라서 여전히 접수를 거부하거나 불필요한 절차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시군구청을 찾는 것은 제도 밖에서 배제된 성소수자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남기기 위함이다.더 적극적으로 소송을 통해 제도의 한계에 도전하는 동성 부부도 있다. 사실 많은 경우 동성 부부의 소송은 사별, 이별 등 관계가 흔들릴 때 이루어지곤 한다. 법이 평등하게 설계되지 않았을 때, 법에서 배제된 관계가 겪는 슬픔과 아픔은 ...

    2026.06.14 19:59

  • [지금, 여기]믿음을 응시하는 일
    믿음을 응시하는 일

    아프고 나서 알게 된 기독교의 기도 방식 중에 ‘화살기도’라는 것이 있다. “암 환자인 ○○을 위해 모월 모일 모시 화살기도를 해주세요”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하면 사람들이 기도를 해주는 식이었다. 신도 화살기도도 눈에 보이는 어떤 존재라면, 그것은 한 지점을 향해 수많은 빛살이 꽂히는 모양일 것이다. 확고한 무신론자에게는 이 의식이 조금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믿는다. 그 빛살이 고통받는 사람을 건져 올릴 수 있을 거라고.특정 종교의 신자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즐겨 듣는 염불 메들리도 있고, 석가탄신일이면 연등을 달아보기도 했다. 십자가나 성모상 앞에 서면 두 손을 모아보기도 한다. 점을 보러 간 일도 있다. 사도세자를 모신다는 그에게 정작 사도세자는 3분도 채 머물지 않았던 것 같다. 대운이 트인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암 진단을 받았다. 엉터리 사주와 점괘의 결과는 웃긴 일화로 남았을 뿐이다.내가 성당에 다니기를 바랐던 어머니는, 병을 얻고 ...

    2026.06.07 20:00

  • [지금, 여기]애도의 부재에 대하여
    애도의 부재에 대하여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 필자는 감염중환자실에서 일했다. 지금은 기억에서 잊힌 것 같아도, 당시엔 마스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음울한 예언이 유령처럼 떠돌았고, 유례없이 전파율과 치명률이 상승한 델타 변이 전후로 치료 표준 가이드라인조차 미완이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경험한 피로감과 무력감을 아직 기억한다. 소위 생경함이라는 것일까. Level D 방호복을 입고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청진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감염 방지를 위한 헬멧으로 귀의 노출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의료에서 인류가 200년간 사용해온 도구의 무용이 의미하는 것은 의료기기 하나의 불능이 아니라 손과 귀, 오감을 사용해온 의료행위가 전혀 다른 감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실리콘 소재 장갑 없이는 환자 신체에 손을 댈 수 없었고, 두꺼운 고글 뒤에서 환자 눈을 보지만 환자가 의료진 눈을 보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당시의 생경함 중 필자가 가장 위화감을 느꼈던 지점은 사망 환자...

    2026.05.31 20:14

  • [지금, 여기]무투표 당선, 이대로 좋은가
    무투표 당선, 이대로 좋은가

    헌법 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선언한다. ‘선거권’이란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의 대표적인 것으로 각종 공무원을 선출하는 권리를 말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혈액과 같은 필수 역할을 한다.지난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6·3 지방선거에서 단독 출마나 정수 미달 등의 이유로 전국 후보자 513명이 무투표 당선됐다고 밝혔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시흥시장이 투표 없이 결정됐다. 51만 수도권 시장 선거에서 유권자가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다.무투표 당선자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운동을 중지해야 하며, 선전물 및 시설물을 철거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헌법상 주어진 선거권은 박탈당했으며, 주민들은 당선자와 만날 수도 없어 알권리를 침해받는다. 향후 자질 문제와 책임성도 문제 될 수 있다.무투표 당선자의 법률 규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법 67조는 “대통령 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

    2026.05.24 19:59

  • [지금, 여기]5·17 성소수자평등의날
    5·17 성소수자평등의날

    5월17일은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질환에서 제외한 것을 기념하는 ‘성소수자평등의날’이다. 이전까지는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로 불렸으나 올해부터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에서는 이날을 새롭게 명명했다. 혐오를 넘어서 실질적인 평등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미다.동성애를 질병에서 제외한 것을 왜 국제적으로 기념하고 있는가. 동성애, 성소수자 정체성이 질병으로 분류된 것 자체가 기나긴 차별과 혐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중근세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주로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문제로 여겨져왔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말 성과학이 발전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그러한 논의 중에는 동성애자는 왼손잡이와 같이 선천적으로 다르게 태어난 것일 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수가 지지한 주장은 동성애가 정상적인 이성애에서 일탈한 병리적 현상이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 1953년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통계 및 분류...

    2026.05.17 19:56

  • [지금, 여기]아픈 딸도 아픈 소비자도 아닌
    아픈 딸도 아픈 소비자도 아닌

    “어떻게 친구들의 돌봄을 받을 생각을 했어요?” 질문 뒤에 또 다른 질문이 덧붙기도 했다. “부모님이 도와주시지 않아요?” 내가 무척 용감한 사람이라거나 대책 없이 무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무려 ‘아픈 사람은 혈연 가족이 돌본다’라는 정상성을 거스른 사람이 된 거다.성인이 되면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았다. 암만 질병이 집안의 재앙이라 한들, 20년 가까이 따로 살던 성인들이 갑자기 붙어살면서 즐겁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중증질환이라는 사건은 부모와 나의 관계를 이전보다도 부드럽게 만들기는 했다. 아버지 지인은 상황버섯 한 자루를 챙겨줬고, 친족들은 잘 먹고 낫는 데 쓰라며 용돈을 보내줬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와 부모가 기약 없이 붙어살며 서로의 꼴불견을 인내해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었다.아픈 딸 되기를 거부하고 나니 아픈 소비자가 될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몹시 아프고, 아파서 바빴기 때문이다....

    2026.05.1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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