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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여기]거울에 비치지 않는 사람들
    거울에 비치지 않는 사람들

    4월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실태조사에서는 2025년 청소년과 성인 성소수자 약 3000명을 대상으로 일상과 사회생활에서의 차별 경험, 건강과 경제적 상황 등을 두루 조사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성소수자 차별 실태조사를 한 것은 2014년 이후 11년 만이다.많은 언론에서도 주목했지만 조사를 통해 드러난 성소수자의 삶은 심각했다. 성인 성소수자 응답자 중 우울 증상이 의심되는 사람은 45.8%로 성인 일반 인구(11.3%)의 4배에 달했다. 성인 응답자의 자살 생각 경험률(39.1%)은 성인 일반 인구(4.6%)의 8.5배였다. 청소년 성소수자 응답자는 우울 증상이 의심되는 비율이 무려 69%나 됐다.이렇게 심각한 건강상태에는 당연히 원인이 존재한다. 성소수자이기에 겪는 차별과 낙인이다. 청소년 응답자 중 31.2%가 교사로부터 괴롭힘을 경험했고, 60.4%가 또래 학생으로부터 괴롭...

    2026.04.19 20:11

  • [지금, 여기]착즙하는 항암 식단
    착즙하는 항암 식단

    ‘암 치유’라는 세계가 있다. 나는 암 진단과 동시에 이 광활한 세계에 떨어졌다. 겁먹은 내 머리 위로 나를 사랑하는 이들의 음성이 들렸다. “암 환자는 잘 먹어야 한다!” 음성은 곧 숯덩어리 형상의 버섯, 닭발곰탕, 슈퍼푸드를 찬양하는 노래가 되어 공중에 울려 퍼졌다. 나는 소심하게 반항했다. “저는 감염 위험도 크고 간도 약해져서 그런 걸 먹을 수 없어요.” 가사가 바뀌었다. 콩, 브로콜리, 토마토, 마늘… 나는 끝내 울먹이며 소리쳤다. “그건 그냥 골고루 먹는 거잖아요!”고개를 들자 녹즙기와 약탕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탑이 보였다. 그것들은 맹렬하게 돌아가며 총천연색의 즙을 짜냈다. 나는 엉겁결에 빨간 주스가 담긴 유리컵을 받아 들었다. 사람들이 내 주위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비트와 당근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컵을 던지고 골목으로 도망치자, 비범한 풍모의 사람들이 길을 막고 마른 뿌리 조각을 내밀며 말했다.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다시 대로변으로 달려 나왔다. 곳...

    2026.04.12 20:01

  • [지금, 여기]6월을 앞둔, 어느 내과의사의 변명
    6월을 앞둔, 어느 내과의사의 변명

    메디컬 드라마에서 내과의사는 잘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하더라도 주인공의 반대편에 선 인물로 그려진다. 메스를 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인공에게 냉정한 조언으로 제동을 걸거나, 능력과 정의감으로 질서를 무시하려는 순간에는 엄격한 원칙을 요구하는 일종의 ‘빌런’ 역할을 맡곤 한다. 그러나 종합병원 현실에서 그것도 중증질환을 담당하는 보통의 내과의사는 그런 빌런 역할을 수행할 여유가 없다. 이들은 환자와 관련된 대부분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문제가 복잡할수록 경험과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다. 내과 질환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듯 환자를 둘러싼 숙의의 시간 또한 길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형외과 수술을 위해 입원한 환자라도, 고령화 시대에는 여러 내과적 문제를 동시에 지닌 경우가 일반적이다. 드라마에서는 종종 생략되지만 이러한 내과적 소견은 치료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환자가 중증 상태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내과 중심으로 재편되고, 호흡기·소화기·순환기 등 다양한 협진이 필수적...

    2026.04.05 20:01

  • [지금, 여기]비실명 판결문은 알권리 침해!
    비실명 판결문은 알권리 침해!

    우리 헌법 제109조와 법원조직법 57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심리는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질서를 방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있을 때 법원의 결정으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형사소송법 59조 3은 누구든지 판결이 선고된 사건의 법원에서 해당 판결서를 열람 및 복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사법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재판 공개는 네 가지 범주로 구분한다. 방청 허용, 재판 심리의 외부적 공개, 재판기록의 공개, 재판 관련 정보공개 등이다. 윤석열·김건희 내란 및 외환 특검법은 “재판장은 특별검사 또는 피고인의 신청이 있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중계를 허가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내란 재판의 경우 전 국민이 관계되어 있고, 재판을 공개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위한 핵심 장치이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각종 개인정보 등 민감한 정보가 공개될 수 있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비교해볼 때 국민의 알...

    2026.03.29 19:57

  • [지금, 여기]집회 신고제를 개정하라
    집회 신고제를 개정하라

    지난여름 아직 용산에 대통령실이 있을 때 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회자로서 발언을 시작하려는데 경찰 정보관이 다가와 조용히 이야기했다. 구호를 외치면 나중에 문제 될 수 있으니 자제해달라고. 물론 신경 쓰지 않고 구호를 외치며 기자회견은 평화롭게 진행했다.어떤 사안에 대해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한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흔히 하는 방법이다. 때로는 기자들이 구호제창 장면을 찍기 위해 여러 차례 구호를 외쳐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는 2020년으로 거슬러 간다.당시 대법원은 기자회견이 단지 기자들에게 회견문을 읽는 것이 아니라 퍼포먼스, 피케팅, 구호제창 등을 하면 옥외집회로 사전에 신고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신고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했다는 이유로 주최자에 대한 유죄 취지의 판결을 했다. 그때부터 기자회견 주최자가 미신고 집회 혐의로 수사, 처벌을 받는 일이...

    2026.03.22 19:55

  • [지금, 여기]치료도 되고, 사고도 되는 위험
    치료도 되고, 사고도 되는 위험

    방사선 조사는 표준 암 치료법 중 하나다. 내 경우에도 그랬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 며칠간 전신방사선 조사를 받았다. 오전과 오후 각각 20분, 움직이지 않도록 몸을 벨트로 동여맨 채였다. 새소년의 ‘파도’가 크게 흘러나왔다. 노랫말에 따라 어깨가 들썩이려 했다. 미동 없이 가만히 있기 위해 꽤나 애를 써야 했다.통상 조혈모세포 이식 전 처치 목적으로 조사되는 방사선량은 총 8~12Gy(그레이). 한 번에 피폭된다면 치명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이 방사선은 나를 살리기 위해 계산되고 통제된 위험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불가피하게 선택하게 된 것과 불가피하게 잃을 것을 신뢰했다. 칙칙하게 어두워진 몸과 뻑뻑한 눈, 대책 없는 피로와 구역감은 적어도 이 병원과 내 몸 안에서 관리되고 사라질 것이었다.1958년 미국 로스앨러모스의 핵 연구시설에서 화학 작업자 세실 켈리가 겪은 사고는 대표적인 임계사고로 기록된다. ...

    2026.03.15 20:00

  • [지금, 여기]‘불편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하여
    ‘불편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하여

    얼마 전 기차 유아동반 칸에 탑승한 아이 엄마가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아이를 관리해달라는 민원을 수차례 받았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구체 정황을 모른다. 그러나 층간소음이 형사범죄를 일으켰다거나 악성 민원인이 접수창구를 초토화했다는 일화 등은 한국에서 괴담이 아니라 실제다.일본의 정신과의사 구마시로 도루는 저서 <쾌적한 사회의 불편함>에서 우리 사회를 쾌적하게 하는 ‘질서’가 ‘지켜야 하는 규칙’을 넘어 ‘침범당하면 안 되는 성역’이 되어감에 따라 이전에는 용납 가능한 일탈 행위가 사회적 비난·죄악의 영역으로 편입됨을 경고한다. 그가 이런 사회의 대표 희생양으로 예시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요구에 바로 순응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공동체가 아이들 소음을 당연한 것으로 수인(受忍)했다면 지금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소동이 곧 잡음·민폐로 규정되는 일이 허다하다. 노키즈존은 본래 아이들 안전을 ...

    2026.03.08 19:58

  • [지금, 여기]SNS는 대통령기록물인가
    SNS는 대통령기록물인가

    지난달 3일, 안철수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은 공무와 직결된 내용을 2010년에 만든 자신의 X(엑스) 계정에 게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공적 기록물을 사적 계정에 남기는 것은 위법 아닙니까? 글 하나하나가 모두 대통령기록물인데, 임기 후 어떤 방식으로 수집하고 관리할 계획입니까?”라고 남겼다.이재명 대통령이 엑스에 캄보디아어로 경고성 메시지를 남겼다가 취소한 것을 비판하기 위해 쓴 글이다. 안 의원의 주장은 적지 않은 논란을 낳았으며, 현재까지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대통령의 SNS가 대통령기록물에 포함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에서는 “대통령, 대통령의 보좌기관·자문기관 및 경호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에서 생산하는 기록물, 상징물, 대통령선물”이 대통령기록물이라고 명확히 규정한다. 기록물의 정의는 공공기록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전자기록물은 전자적인 형태로 작성하여 송신·수신 또는 저장되는 전자문서, 웹 기록물 및 행정정보 데이터세트 등의 기록정보자료라...

    2026.03.01 19:53

  • [지금, 여기]변희수 하사 5주기, 여전한 과제
    변희수 하사 5주기, 여전한 과제

    다가오는 2월27일은 변희수 하사의 5주기이다. 2020년 변 하사가 트랜스젠더임을 밝힌 뒤 강제전역 처분을 받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그사이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2021년 법원은 변 하사에 대해 여성의 심신장애 판정 기준을 적용했어야 함에도 남성의 기준을 적용한 위법이 있다며 전역 처분을 취소했다.그럼에도 군은 변 하사의 죽음과 공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고 그의 죽음을 일반 사망으로 판단했다. 오랜 다툼을 거쳐서야 2024년 국방부는 변 하사의 주된 사망 원인이 강제전역 처분으로 인해 발병한 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순직을 인정했다. 같은 해 6월 변 하사는 현충원에 안장됐다.이 모든 변화는 “기갑의 돌파력으로 차별을 없애버리겠다”고 했던 변 하사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많은 이들이 투쟁해온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곳이 있다. 위법한 판단으로 변희수를 강제전역시키고 오랜 기간 순직 인정조차 거부해왔던 군이다....

    2026.02.22 20:03

  • [지금, 여기]‘암밍아웃’은 사절합니다
    ‘암밍아웃’은 사절합니다

    괴로운 사람만큼 자기 언어가 절실한 사람도 없다. 암을 둘러싼 여러 표현은, 결국 자신의 어려움을 잘 설명하려고 고안된 도구다. ‘암 환자’ 대신 ‘아만자’라고 쓰면서 자신의 질병을 둥글려서 받아들인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긴 하지만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하는 대신 “암 걸리겠다”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럼 이런 말은 어떨까. “제 친구 중에도 도미처럼 ‘암밍아웃’을 한 사람이 있어요.”성소수자의 ‘커밍아웃’에서 따온 이 표현이 커밍아웃의 본래 의미와 맥락을 지워버린다는 비판은 꾸준히 있었다. 타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는 ‘임밍아웃’, ‘덕질’하는 사람임을 밝히는 ‘덕밍아웃’ 같은 신조어도 마찬가지다. 2020년 장혜영 당시 국회의원이 차별금지법 발의와 함께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 해시태그 캠페인을 전개했을 때도 ‘○밍아웃’은 대표 사례로 등장했다. 그로부터 6년이 되어가도록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암 경험자가 된 나는 ‘암밍아웃’이라는 말...

    2026.02.08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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