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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지금, 여기]“마금희, 이 양반이 어뷰징을 걸었네”
    “마금희, 이 양반이 어뷰징을 걸었네”

    곽재식의 단편소설 <칼리스토 법정의 역전극>에서 상대편 변호사 마금희는 변론 도중 재판 내용과 동떨어진 자료들을 이것저것 언급하며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횡설수설을 반복한다. 우주 최강의 승률을 자랑하는 변호사라더니 이 무슨 엉뚱한 행동인가 싶지만, 심지어 “그렇게 나 자신에게 되뇌네, 기억이 나지 않아. 잊고 싶어” 노래까지 부르며 변론을 마무리하는 동안 인공지능이 예측한 ‘우리 편’의 승소 확률은 뚝뚝 떨어진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새로운 증거를 내놓은 것도 아니고 변론이 그럴듯했던 것도 아닌데 왜 우리의 승소 확률이 낮아진 것일까. 눈치 빠른 우리 주인공이 내뱉은 한마디. “마금희, 이 양반이 어뷰징을 걸었네.”목성의 위성 칼리스토에 자리 잡은 이 법정에서는 로봇 판사가 재판을 주재한다. 로봇 판사라면 마금희의 막강한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내려줄 것이라 기대하며 이곳 법정을 선택한 참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판결문을 학습한 인공지능은 ...

    2025.05.18 19:49

  • [지금, 여기]‘2025도4697 사건’ 로그 기록
    ‘2025도4697 사건’ 로그 기록

    사법부에 대한 민심이 분노로 용솟음치자, 서울고법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을 6월18일로 전격 연기했다. 법원은 지난 7일 기자단에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하여 재판기일을 대통령 선거일 후로 변경함”이란 메시지를 보냈다.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결정조차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애초에 집행관 송달을 경기도와 서울로 신속하게 보내고, 2주 만에 재판기일을 잡았는지부터 의문이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다른 음흉한 꼼수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대법원 사태로 법원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쳤다. 법원이 대선에 개입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면서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불안은 신뢰를 흔들고, 재판은 불신의 대상이 되면서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그 결과 법치는 무너지고, 법원은 개혁의 대상이 된다. 대법관을 30명으로 증원하자는 주장이 허투루...

    2025.05.11 20:12

  • [지금, 여기]인권에 중립은 없다
    인권에 중립은 없다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지난 4월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했던 행동이 정치적으로 오해될 우려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위로하고 곁에 서는 일에 중립을 핑계로 머뭇대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말이었다.고통 앞에 중립이 없듯이 인권침해와 차별 앞에서도 중립은 있을 수 없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할 때 방관하는 것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민간은 물론 국가기관에서도 중립을 운운하며 사실상 인권침해와 차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4월28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국가인권위는 2018년 국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부스를 내고 참가했다. 매해 부스를 내며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촉구해왔다. 그런 국가인권위가 7년 만에 축제에 공식 참...

    2025.05.04 20:24

  • 왜 장애인들은 성당 종탑에 올랐나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콰지모도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높은 종탑에 갇혀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간다. 장애인으로서 그에게 허락된 삶은 어둡고 좁은 종탑뿐이었다.성금요일이었던 지난 18일,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인권 활동가들이 서울 혜화동성당의 종탑에 올라 무기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사흘째인 4월20일은 부활절이자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었다. 십자가 위 예수의 고난을 기억하는 날에, 왜 장애인들은 난간·지붕·화장실도 없는 종탑 위에서 하루 종일 내리던 비를 맞아야 했을까.이 사태의 발단은 몇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이자 장애인 거주 시설 원장인 이기수 신부는 2023년 탈시설 반대 토론회에서 1급 지적장애인은 앵무새, 3급은 코끼리와 같다면서 지능이 낮으면 자립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2017년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서 장애를 더는 급수로 나누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자립해서 잘 살고 있...

    2025.04.27 20:27

  • [지금, 여기]산 자를 위해 투쟁하라
    산 자를 위해 투쟁하라

    때 이른 선거의 계절이 찾아왔다.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TV 토론과 지역 유세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조용하고 차가운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살인기업은 어디인가요?”를 묻는 시민 투표다.4월28일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날’을 기념해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 민주노총은 2006년부터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진행해왔다. 산재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노동자 건강과 안전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촉구하는 유서 깊은 행사이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으면서 ‘왕중왕’을 뽑는 투표를 하게 된 것이다. 엄선된 아홉 후보 중에서 두 곳에만 투표를 할 수 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업종별로도 제련소와 중공업 같은 전통 제조업에서부터 반도체 생산 같은 첨단 제조업, 건설업, 플랫폼 유통업체까지 골고루 포진한 가운데 후보들의 이력이 워낙 화려해서 선택이 쉽지 않았다. 경쟁에 밀려 안타깝게(!) 후보에 오르지 못한 과거 수상자들의 이...

    2025.04.20 20:15

  • [지금, 여기]내란 대통령기록물 봉인되나
    내란 대통령기록물 봉인되나

    대통령 파면 이후 대통령실 비서진은 혼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본인이 작성한 기록물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고민하면서 흔적도 없이 폐기 및 은닉할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그 작업은 탄핵과 동시에 대통령실 홈페이지를 닫는 것부터 시작됐다.윤석열 정부는 대통령기록물을 어떤 시스템에 의해 생산·관리하는지 알리지 않았다. 각종 회의에서 1시간 중 59분을 대통령 혼자 발언했다는 ‘말씀 기록’은 존재할지 궁금하다. 국정에 불법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기록물도 초미의 관심사다.대통령기록물을 훼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파기·은닉했다고 생각했던 기록이 대통령실 캐비닛과 강남 영포빌딩에서 부활해서 나타났다. 누군가의 직업의식과 제보 덕분이었다. 이런 일이 많아서 대통령기록물법에는 회수 및 추가이관 조항까지 신설했다.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이 궐위(파면)되면 기록물을 차기 정부 출범 전까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할 것을 의무화하고 ...

    2025.04.13 21:20

  • [지금, 여기]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한 사회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한 사회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너무나도 오래 기다려왔던 그 주문이 선언되는 순간 광장은 환호와 눈물로 뒤덮였다. 내란의 밤으로부터 약 4개월 만에 윤석열은 파면됐다. 추운 겨울을 지나 햇살이 비치는 따스한 날에 시민들은 드디어 진정한 봄을 느낄 수 있었다.“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가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명확하게 위헌적인 비상계엄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시민 저항 덕분임을 이야기했다. 민주주의의 위기였던 내란 사태를 막고 끝내 윤석열의 파면까지 이끌어낸 것은 시민들의 힘이었다. 여의도·한남동·남태령·광화문에서 이어진 집회를 통해, 일상에서의 지속적인 저항을 통해 시민들은 끝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시민들의 힘으로 파면 결정이 이루어진 지금 이후 우리 사회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광장에서 계속 나왔던 이야기가 단지 윤석열 하나만 없는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2025.04.06 20:40

  • [지금, 여기]서로 돌봐야 살아진다
    서로 돌봐야 살아진다

    “너 싸가지 여물고 살아!” 최근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이다. 애순과 관식, 이 어린 연인이 현실의 벽 앞에 생이별을 하는 모습을 온 마을 사람들이 마음 아프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관식을 태워 섬을 저만치 떠나가는 배를 향해 절망 속에 울고 있는 애순을 흘기며 관식의 모친은 욕을 내뱉는다. 그때 관식의 모친을 향해 옆 사람이 냅다 소리친 말이다. 아직 극중 상황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이 대사 하나에 괜히 속이 시원했다. 몇년 전 만난 한 용감한 여성이 생각나서였다.군청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들어가야 하는 작은 시골 마을, 그 마을에 살던 여성은 어느 날부터 마을회관 주변에 출몰하는 구부정한 초로의 남성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동네에서 두 번째로 땅이 많은 부잣집의 잡일을 한다고 했다. 왠지 모르게 침울해 보이는 그 남성에게 인사를 건네보았지만, 남성은 눈...

    2025.03.30 20:51

  • [지금, 여기]내가 바라는 불확실성
    내가 바라는 불확실성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는 조직과 국가 수준의 가치, 문화적 특징을 측정하고 유형화한 연구로 유명하다. 그는 세계 70여개국에 지사를 둔 글로벌 기업 IBM 인사관리 부서에서 일하며 각지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방대한 조사를 수행했다. 그는 동일한 규칙과 조직구조에도 불구하고 국가마다 직원들의 가치와 태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고, 이후 심층 연구를 통해 집단이 공유하는 문화의 특징을 여러 차원으로 유형화했다. 그중 하나가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idance)다. 이는 알려지지 않은 미래, 모호성에 대한 사회의 스트레스 혹은 관용의 정도를 의미한다. 불확실성 회피 지수가 낮은 사회일수록 사람들이 모호성에 잘 적응하고 익숙하지 않은 위험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직업을 바꾸거나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활동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사실 인간의 삶에서 불확실성을 피할 수는 없다. 어쩌면 인류는 불확실성을 다루는 방법을 발전시키며 진화...

    2025.03.23 20:42

  • [지금, 여기]대통령비서실의 부작위 불법 행태
    대통령비서실의 부작위 불법 행태

    대부분의 현대 민주국가는 삼권 분립으로 운영되고 있다. 행정부는 정책 집행 과정에서 소송이 제기되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만약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무시하거나, 이행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제도는 무너질 것이 자명하다. 특히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비서실은 법원의 판단을 더욱 존중해야 하며, 그것이 공권력 행사에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지난달 13일 뉴스타파, 참여연대 등이 제기한 ‘윤석열 대통령비서실 직원 명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 대법원 상고심에서 원고가 최종 승소했다. 판결 이후 소송 당사자에게 판결문이 송달되면 원고 측이 원하는 방법으로 자료를 전달하게 된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제기해 승소한 검찰청 특수활동비 정보공개 소송에서는, 방대한 양으로 인해 직원들이 직접 관련 자료를 가지고 온 적도 있다.만약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공공기관에서 아무런 대응이나 답변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놀랍게도 공개...

    2025.03.16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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