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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지금, 여기]대리전을 그만두자
    대리전을 그만두자

    새벽배송 서비스 이용자 2000만명에 들지 못한 1인으로서, 이 논쟁이 이렇게 뜨거울 일인가 깜짝 놀랐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이 노동자 과로와 야간노동을 줄일 수 있도록 자정~새벽 5시 사이의 초심야 시간 배송을 제한하자고 제안하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사실 교대근무와 야간노동이 오랜 진화 역사에서 인간의 몸에 새겨진 일주기(circadian) 리듬을 파괴함으로써 여러 건강 문제를 초래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병원이나 소방서처럼 어쩔 수 없이 교대근무나 야간근무가 필요한 직종에서는 근무 시간 단축과 휴식 보장, 근무조 편성과 배치 조정, 수면 보조 기술 등 건강 피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탐색해왔다.그동안 국내에서 교대근무, 야간노동을 둘러싼 갈등은 대개 노사 간에 일어났다. 안전보건 지침을 제시하고 노사 간 ‘대화의 규칙’을 만드는 것은 정부 역할이지만, 근로환경과 인력배치, 보상은 모두 ‘몫’을 둘러싼 기업과 노동자의 계약이자 투쟁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2025.11.09 22:07

  • [지금, 여기]기부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기부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정육점, 양조장,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그들의 생각 덕분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 작성한 유명한 문구다.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을 설계한 이론이라고 알려져 있다.‘시민 활동가’라는 직업으로 살아온 필자는 저 이론이 인간의 반쪽 면만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 활동가는 누군가의 회비와 후원금 없이는 존재가 불가능한 직업이다. 시민들은 세상이 공평해지고 밝아지길 바라며, 수많은 시민단체·구호단체 등을 후원하고 있다. 사람에게 이익을 챙기려는 욕구 이외에 공익을 위한 공적 심리가 분명히 존재한다.가수 션은 아내 정혜영과 함께 평생 60억원 넘게 기부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기부 마라톤 대회를 열어 81.5㎞를 뛰고 참가비와 기업 후원금 수십억원을 기부해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환경 개선 사업에 쓰이게 했다. 션의 행위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

    2025.11.02 20:05

  • [지금, 여기]성소수자의 삶, 통계로 잡히다
    성소수자의 삶, 통계로 잡히다

    “대한민국에 성소수자는 얼마나 있나요?”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강연 등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공식 국가 통계를 기준으로 한다면 답은 “알 수 없다”이다. 지금까지 국가 차원에서 성소수자 인구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다만 민간 조사를 통해 추정은 할 수 있다. 2023년 글로벌 조사기관인 입소스에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30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있다. 여기에 따르면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답한 한국의 응답자는 6%였다. 전체 인구의 6%, 총인구 약 5100만명에 대입해 보면 300만명이 넘는다. 규모로 따지면 인천광역시나 부산광역시 인구 수준이다. 살면서 이 두 광역시 출신 사람을 한 번도 안 만나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말 그대로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그러나 국가 정책 측면에서 살펴보면 300만명이 넘는 성소수자 인구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국가 차원의 성소수자 인구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노동·교육·보건의료·복지 ...

    2025.10.26 20:13

  • [지금, 여기]학대 잡는 제3자 녹음, 증거 인정해야
    학대 잡는 제3자 녹음, 증거 인정해야

    비교적 흔한 사건임에도 이제는 전 국민이 샅샅이 내용을 알아버린 그 사건. 2022년 9월, 한 웹툰 작가의 자폐성 장애 아들에게 특수교사가 “싫어 죽겠어. 너 싫다고. 정말 싫어” 등 폭언을 반복한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가 있다. 달라지는 아이 모습에 외투 속에 넣어 보낸 녹음기에 담긴 당시의 상황에 대해 2024년 2월 1심은 특수교사가 정서적 학대를 한 것이 맞다며 벌금 200만원 선고를 유예했다. 그러나 2025년 5월 항소심은 이를 무죄로 뒤집었다. 해당 녹음파일이 통신비밀보호법상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하는데 제3자가 녹음한 것이라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학대 여부 판단은 하지도 않았다. 검찰은 상고했다.학대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다 보면 다양한 녹음파일을 듣게 된다. 흐느낌이나 울음, 거친 호흡, ‘짝’ 하고 ‘퍽’ 하는 소리, 그리고 낮게 깔린 욕설. 이 모든 것을 붙잡아 두는 가장 쉬운 기술이 녹음이니까. 장애인 학대, 노인 학대, 아동 학대 등은...

    2025.10.19 20:39

  • 21세기 탐관오리들

    얼마 전, 자신의 SNS에 황당한 광고가 떴다며 친구가 휴대전화 화면 이미지를 보내주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 광고였다. 앗, 이럴 수가? 나도 보여줄 것이 있었다. 내 SNS에 뜬 것은 그라프 목걸이였단 말이다. 쇼핑몰 검색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성실하게 시사 뉴스를 보았을 뿐인데 이런 광고를 받아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재치 만점 알고리즘의 센스에 감탄했다.사실 김건희의 디올 핸드백 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일회성 사건이겠거니 생각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밀실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정경유착,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거대한 정치적 음모라면 모를까, 요즘 세상에 저렇게 대놓고 뇌물을 주고받는 일은 너무 ‘후지다’고 여겼다. 떡값이니, 현찰 든 사과박스니 하는 부정부패와 금권정치의 낡은 관행들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관매직’이라는 고색창연한 단어를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마침내 금거북이까지 등장하면서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2025.10.12 21:54

  • [지금, 여기]기업은 해킹 피해자가 아니다!
    기업은 해킹 피해자가 아니다!

    며칠 전, 지인들과 즐거운 술자리를 가지고 지하철에 탔다가 살짝 잠이 들었다. 2호선 잠실나루역 안내방송 소리를 듣고 급하게 내렸는데, 뭔가 불안했다. 휴대전화를 두고 내린 것이다. 휴대전화에 함께 있던 각종 신용카드도 사라져 지하철에서 하차할 수도 없었다. 2호선은 어디가 종착역인지 예측하기가 힘들다.누군가 휴대전화에 있는 개인정보를 본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벌벌 떨렸다. 주위 사람에게 전화를 부탁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다. 포기하고 경찰서에 가려 하는데, 젊은 청년이 심각함을 인지하고 내 번호로 전화를 걸어주었다. 숨 막히는 몇초가 지나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그 순간 황홀했다. 천사의 목소리가 이런 음성일까? 휴대전화가 합정역 사무실에 있다고 알려줘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지옥 같은 경험이었다. 휴대전화는 한 사람에게 분신 같은 존재이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잃어버려도 개인의 삶에 큰 문제가 발생하는데, 통신사가 개인정보를 유출하면 그 피해는 짐작하기도 힘들다....

    2025.09.28 21:38

  • [지금, 여기]퀴어문화축제 불허를 불허한다
    퀴어문화축제 불허를 불허한다

    9월20일 제17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보수의 성지라 불리는 대구에서 17년 동안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다는 사실에 누군가는 놀라기도 한다. 대구퀴어문화축제는 2009년 대구 동성로에서 처음 치러졌고, 2019년부터는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매해 열려 왔다.그러나 작년부터 대구퀴어문화축제는 대중교통전용지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개최되고 있다. 경찰이 1개 차로만을 사용해서 축제를 하라며 제한통고를 했기 때문이다. 부스와 무대를 설치하고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축제의 특성상 1개 차로로는 제대로 된 축제 개최가 불가능하다. 경찰이 내린 제한통고는 사실상 축제를 금지한 것이다. 조직위원회는 참가자들의 안전과 원활한 진행을 위해 장소를 옮겨야만 했다.경찰이 제한통고 근거로 든 것은 주요도로에서의 교통소통을 위해 집회를 금지·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 집시법 제12조이다. 도로에서의 집회는 어느 정도 통행에 불편을 초래할 수 있고, 그렇기에 교통소통을 위한 집회 제...

    2025.09.21 21:27

  • [지금, 여기]집다운 집, 아동의 권리다
    집다운 집, 아동의 권리다

    학대 피해 아동을 만나러 정신병원에 갈 때가 있다. 몇주 전까지도 집에 살던 아이였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다 가정 내 학대 사실을 알렸고, 그날로 시설에 옮겨졌다. 비밀을 털어놓은 당일엔 집에 가기 무서워서 시설에 가겠다 했지만, 원하면 언제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시설에서 아이는 휴대전화를 압수당했고, 처음 보는 여러 연령대의 아동과 한방을 써야 했다. 내 방, 내 물건이 그리워 집에 가겠다고 말했지만 돌아온 답은 “부모도 널 버렸다. 돌아갈 생각을 하지 말라”였다. 괴로운 나날 끝에 인근 아파트 옥상에 섰다. 뛰어내리기 전에 발견됐지만, 그 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보호는 그렇게 감금과 닮아 있었다.얼마 전, 광주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지내던 10대가 ‘시설의 벌칙이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취침시간 이후 스마트폰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벌을 받았고, 아이는 학교에 간다며 시설에서 나와 결국 아파트...

    2025.09.14 21:25

  • 인권을 가장한 특권

    10여년 전, 구금시설 수용자의 건강권 실태 조사연구에 참여하면서 여러 구금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접견실, 교정 공무원 사무공간, 의무실과 병사(病舍)는 물론 수용자들이 생활하는 거실과 작업장까지 두루 둘러보았고 수용자들을 직접 만나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죄를 지었으니까 사회로부터 벌을 받는 것이지만, 형벌은 어디까지나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어야지 인간 기본권 전체, 특히 건강권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 이는 국제적 규범이자 약속이다. 그럼에도 구금시설은 바깥 사회의 ‘최저 빈곤선보다 생활 수준이 높으면 안 된다’는 암묵적 원칙 때문에 여전히 열악한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당시 수용동을 둘러보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더위였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활짝 열 수 있는 창문은 당연히 없었다. 방마다 한두 대에 불과한 선풍기도 종일 틀어주지는 않았다. 많은 수용자가 추위와 더위 문제를 언급했는데, 한결같이 ‘겨울은 그래도...

    2025.09.07 21:27

  • [지금, 여기]대통령실 담당 업무는 왜 비공개?
    대통령실 담당 업무는 왜 비공개?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많은 일을 실천하고 있다. 그중 국무회의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다. 국무위원들이 발언을 신청하고, 대통령과 토론하는 모습은 역사상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미국 백악관 회의를 보는 듯했고,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지난 8월13일 열린 ‘나라 재정 절약 간담회’도 빼놓을 수 없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이 회의에서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국가 재정 전문가들의 발언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나라살림연구소 정창수 소장은 “자료공개 문제인데, (기획재정부가) 매년 지출 구조에 대해 큰 액수만 공개하고 전체 금액 리스트를 공개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던 것을 대통령 면전에서 한 것이다.이재명 대통령은 “예산 자체는 국회에도 보내고, 비밀도 아닌데 다 공개하기로 하자”고 화답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장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했다. 이 회의의 결과로 예산 내역을 시민들이 꼼꼼하게 검증할 수 있...

    2025.08.3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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