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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여기] 학생인권 탓하다 개혁의 적기 놓친다
    학생인권 탓하다 개혁의 적기 놓친다

    초등교사가 교내에서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하고 보름이 지났지만, 이 비극을 둘러싼 셈법이 제각각이다. 국회는 법률정합성에 위배되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고, 교원을 대표한다는 단체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기회로 삼는다. 교육감은 민원인의 학교 출입을 제한하고 위반 시 형사 고발하겠다는 조례를 입법예고했다. 대통령실 누군가가 학생인권조례를 ‘과거 종북주사파가 추진했던 대한민국 붕괴 시나리오의 일환’이라 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며칠 후 대통령은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를 개정하라 했다. 교권을 강화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약화시켜야 한다는 납작한 논리는 오히려 제대로 된 교육개혁에 걸림돌이 된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함께 존중’을 전제로 하기에 서로 반대말이 아니고, 학생인권조례는 규범이라기보다는 선언에 가깝다. 학생인권조례와 관계없이 교육을 빙자한 폭언이나 억압이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음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정작 악성 민원인은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줄도...

    2023.07.31 03:00

  • [지금, 여기] 바다 사람의 ‘괴상한’ 그리움을 보다
    바다 사람의 ‘괴상한’ 그리움을 보다

    요 몇달간 제주를 다녔다. 지역에 대한 잡지를 만드는 일은 낡고 오래된 연재만화의 이야기 구조와 좀 닮았다. 주인공은 사연이 있는 떠돌이로,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진다. 간신히 해결하고 익숙해질 때쯤 다른 곳으로 떠난다. 아쉬운 작별 후에는 새로운 곳에서 다시 만남과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제주행 비행기를 탈 때면, 나는 이번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재만화에도 가끔 분량조절에 실패해서 길어지는 회차가 있지 않은가. 최근 몇달간 내게 주어진 도시의 삶은 무덥고 신산했다. 바쁜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의 이륙을 기다리다 악천후로 인해 지연되는 중이라는 안내방송을 들으면 마음이 설레었다. 어쩔 수 없이 비행기가 못 뜬다면 서울의 일정과 회의들이 ‘피치 못하게’ 취소되겠지. 그러면 멍하게 폭풍우나 바라보면서 책이나 읽을까. 배움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 했으니 담배나 배워 볼까. 하지만 활주로에서 기회를 노리던 비행기는 한사코 이륙에 성공하...

    2023.07.24 03:00

  • [지금, 여기] 환상 속의 그대
    환상 속의 그대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서태지와 아이들 ‘환상 속의 그대’) 발표된 지 30년이 지난 노래인데도 적재적소의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된다. 정신적으로 강인할 뿐 아니라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신체적 역량을 갖춘 한국의 청년 여성들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가 그런 순간이다. 이를테면, 파충류와 조류에서는 종종 관찰된다지만 인간 여성이 단성생식으로 출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 한국 여성들은 이미 이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영아 유기, 영아 살해 같은 끔찍한 사건 보도에 어떻게 줄곧 ‘친모’만 등장할 수 있겠는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유기하는 것도, 모텔 화장실에서 원룸에서 홀로 출산한 아기를 방치하는 것도 모두 여성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화장실에서 혼자 출산을 하더라도 벌떡 일어나 아기를 병원에 데려갈 정도의 신체적...

    2023.07.17 03:00

  • [지금, 여기]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지 3년이 지났다. 2020년 6월29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 대표발의로 차별금지법이 발의됐고, 이후 3건의 평등법이 더 발의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본격적인 논의도 되지 못하고 국회 안에 잠들어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요구될 때마다 정부가 항상 내놓은 핑계가 ‘사회적 합의’이다. 2017년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한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에 대해서도 올해 법무부는 ‘차별 사유, 규제 범위, 구제 수단 등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계속 중’이라고 답했다. 여론조사에서 이미 70%가 넘는 차별금지법 찬성 응답이 나오고 있음에도, 여전히 정부는 여론을 핑계 대며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평등과 존엄을 보장하지 않기 위해 여론 탓을 하던 정부가 여론을 빌미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에는 적극 나서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3일까지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세요’라면서 국민참여 토론을 실시했다. 결과는 강화...

    2023.07.10 03:00

  • [지금, 여기] 몰래출산 가능하면 아기 안 버릴까
    몰래출산 가능하면 아기 안 버릴까

    냉장고에서 발견된 영아 시신들, 야산에 몰래 묻혔다는 신생아, 온라인으로 사고팔리는 아기들. 경악스러운 뉴스가 연일 쏟아지며, 출생통보제가 지난주 전격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참에 보호출산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임신했지만 낳아 직접 기르길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흔히들 불륜관계나 미성년자 임신 등 다소 극단적인 상황 속 사람일 것이라 추측하지만, 결혼관계 안에서나 성인 이후 출산에서도 영아살해나 아동유기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당장 죽고 버려지는 생명은 살려야 하지 않겠냐며 익명으로라도 출산하게 하자는 논의 역시 우리나라만의 고민은 아니다. 일본도 2021년 11월 한 민간 병원에서 행해진 비밀출산으로 사회적 격론이 있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해 온 일본 시케이 병원을 찾은 한 10대 여성은 병원 상담실장에게만 학생증 등으로 신원을 밝힌 채 의료진에게까지 비밀로 하고 아기를 낳았다. 신원을 밝히지 않겠다는 친모의 뜻으로...

    2023.07.03 03:00

  • [지금, 여기] 갑자기 나이 든 너구리가 되어
    갑자기 나이 든 너구리가 되어

    넷플릭스에 가입했다. 오래전 해적판 비디오테이프로 보았던 영화 한 편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해적판이라고는 하지만 거칠거나 음란한 내용은 아니고, 밝고 동글동글하고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너구리들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다. 그들의 노래와 춤은 전형적인 어린이 만화영화처럼 익살스럽다. 하지만 이것은 싸움에 대한 영화다. 공격과 방어, 수비와 반격이 있으며, 전쟁과 전투와 작전이 나름대로는 있다. 심지어 몇몇 너구리는 두들겨 맞고 차에 치여 피를 흘리고 죽거나, 몇몇은 상대, 즉 인간을 살해하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긴박하고 거친 내용들은 꽤 능글맞게 봉합돼 있어 후반부에 다다를 때까지 두렵거나 서글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너구리들은 포기하지 않고 두 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 내내 싸우고 또 싸운다. 어째 매번 좀 어설픈 실패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라는 제목의 이 기묘한 영화는 1967년부터 시작한 일본 도쿄 인근의 타마 뉴타...

    2023.06.26 03:00

  • [지금, 여기] 밀실 거래가 아닌 사회적 논의로
    밀실 거래가 아닌 사회적 논의로

    어린이 환자, 중증 응급환자들이 진료받을 곳을 찾지 못해 거리를 떠돌다 사망하는 사례들이 속속 알려지면서 대책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도 커졌다. 특히 서울에서마저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정부의 위기의식도 더 커진 듯하다. 진단과 처방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결국 문제는 한 가지 이슈로 수렴 중이다. 바로 의사 인력이다. 어떻게 하면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에서, 지방 병원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들 것인지가 고민이다. 그동안 채택해왔던 주된 방법은 ‘보상’이었다. 이를테면 필수의료 분야의 건강보험수가를 인상하거나, 지방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급여를 높게 책정하는 조치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연봉 4억원에도 의사를 구할 수 없다는 뉴스가 화제에 오른 것이 몇년 전이었는데, 그 숫자는 5억, 6억원으로 가파르게 올라 최근에는 연봉 10억원의 채용공고가 등장했다. 이제 의사인력 확충 방안, 즉 의대입학정원을 확대하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고 있다. 정부와 대한의사협...

    2023.06.19 03:00

  • [지금, 여기] 10월29일의 기억이 던지는 질문
    10월29일의 기억이 던지는 질문

    ‘10월29일 밤, 국가는 없었다.’ 지난 5월15일 발표된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는 이런 문구로 시작된다. 이 문구는 실태조사에 참여한 생존자가 실제로 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0월29일 밤, 사람들 속에서 압박받으며 구조를 기다리던 그때, 그는 국가의 존재를 느낄 수 없었다. 참사를 예방하지 못했던 국가는 참사 당시에, 그 이후에도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국가의 공백을 메운 것은 시민들이었다. 참사 당시 희생자와 생존자를 돌보고 현장 수습과 구조활동에 함께한 구조자들이 있다. 참사 현장에서 신체적·심리적 부상을 입고 이후로도 후유증을 겪으면서도 그날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연대가 되어주는 생존자들이 있다. 참사로 상처받은 이태원 지역을 지키며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과 함께하는 지역 주민과 상인들이 있다. 참사 이후 200일 넘게 지난 현재도 진상규명과 희생자에 대한 온전한 추모를 바라며 침묵하고 있는 국가를 향해 외치는 유가족과 시민들...

    2023.06.12 03:00

  • [지금, 여기] 영 케어러 대책 제대로 마련해야
    영 케어러 대책 제대로 마련해야

    “뭐가 되고 싶니, 이런 것 좀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어요.”막 중학생이 된 아이의 이 한마디에 잔뜩 지친 삶이 묻어났다. 뇌병변장애 여성의 사건 지원을 위해 집에 찾아갔다가 만난 이 아이는 중증장애인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할머니마저 얼마 전 돌아가시면서 사실상 모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중이었다. 거동이 어려운 엄마 대신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엄마 돌보는 일로 옮겨와서 매일 버티고 있던 것이다. 아이를 장기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열심히 찾았으나 학교나 교육청 어디에도 돌봄노동 중인 학생을 위한 지원체계는 없었다. 담임 선생님도 가정 상황을 잘 모르는 눈치였다. 혹시 동사무소나 구청을 통한 지원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역시 없었다. 지역사회 복지체계는 대개 수요자로부터 신청을 받아 작동되는데 아이 혼자 그 신청을 잘하길 기대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신청 기준과 재산 기준 모두 아이의 상황을 약간씩 비켜가고 있었다. 질병, 장...

    2023.06.05 03:00

  • [지금, 여기] 어느 강사의 즐거운 웃음
    어느 강사의 즐거운 웃음

    출강 중인 대학원에서 재임용 대상자 안내 메일을 받았다. 별 문제가 없다면 앞으로 두 해 동안 학생들과 함께 비평과 시각문화를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꽤 머뭇거리며 승낙한 강의였지만, 솔직히 계속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서 정규 강의를 맡은 것은 10여년 만의 일이었다. 공부가 얕고 부족한 탓이라며 짐짓 겸손한 척을 하고 싶지만, 대학원을 갓 졸업한 나를 이끌고 난해한 원전을 한 줄 한 줄 강독해 주셨던 스승들을 생각하면 그럴 면목은 없다. 시종일관 즐거웠던 배움의 시간은 오히려 내게 어떤 두려움을 남겼다. 즉 세상에는 바닷가에 있는 모든 조약돌을 뒤집어 보듯 텍스트를 읽어내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러므로 땅에 떨어진 남의 깃털을 주워 아무리 몸을 장식하려 해도 결국 누군가에게는 들킨다는 것을 그때 나는 배웠다. 이 두려움의 감각은 여러 유혹으로부터 나를 철조망처럼 지켜주었다. 그러다 보니 직장을 다니면서도 꽤 열심히 읽고 쓰고 강의해 ...

    2023.05.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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